“이제 누구에게 經·禪·德을 배워야 합니까” | ||||||||||||||||||||||||||||||||||||
‘탄허 3걸’ 칭송 받은 대강백 통광스님 ‘인연 따라 떠나’ 10일 지리산 칠불사서 영결·다비식…1500 사부대중 애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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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백이신 제월당 통광 대선사께서 인연 따라 가시니 이제 누구에게 글을 배우고 선지를 묻겠습니까.” 이 시대 대강백 제월당 통광 대선사가 3일 1500여 대중의 애도를 뒤로하고 인연 따라 적멸에 들었다. 통광 스님은 각성·무비 스님과 함께 탄허 3걸로 칭송받는 최고의 강백이다. 10일 경남 하동 지리산 칠불사에는 높고 깊은 산세를 뚫고 1000여 대중이 찾아들었다. 선지(禪旨)를 이해하는 안목이 당대의 최고라 평가받고, 이전 세대의 최고 강백들의 가르침을 받아 경전과 조사어록 해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대강백이자 선승인 통광 스님을 보내는 대중들은 아쉬움과 탄식으로 가득했다. 칠불사에서 엄수된 대강백 통광 스님의 영결식은 여느 장례식장과는 달랐다. 장례는 문도장(門徒葬)이지만 장의위원장은 무비 스님이 맡았고, 불국사 승가대학장 덕민 스님이 호상을 맡았다. 대강백의 가는 길을 최고의 ‘강백’들이 배웅했다.
이날 영결식장은 눈물의 장례식이었다. 함께 수학한 덕민 스님은 영결사 내내 눈시울을 붉히고 도반을 먼저 보내는 안타까움에 울음을 삼켰다.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학들도 울었고, 스승을 보내는 문도와 제자들도 울었다. 재가신도들의 울음도 그치지 않았다. 영결식 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지 않으려고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우는 신도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덕민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본래 존귀인(尊貴人)은 존귀인 자리에 머물지 않아 수미산정에도 찾을 수 없으니 혹시나 방초안두(芳草岸頭)에나 남모르게 스치면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게 가실 바엔 쌍계사 큰 스님 방장추대식이라도 보고가실 일이지, 더구나 병객(病客)인 무비화상은 어쩌라고 그리 먼 길을 쉽게 가실 수 있나요”라며 인연의 끈을 놓치려 하지 않았다. 덕민 스님은 통광 스님을 이사를 넘나들어 선과 교, 전법과 불사를 성취해 부처님의 은덕을 갚은 지혜인으로 칭송했다. 덕민 스님은 “스님의 오음(五陰)은 보내지만 법신은 이 도량에 상주하신다. 쌍계의 물소리와 동산에 달이 올라 아자선방(亞字禪房) 전각에 걸리면 스님의 고풍스런 해맑은 모습이라 우러러보겠지만, 섬진강 바람에 흔들리는 갈잎에 촉촉이 젖어든 밤이슬은 우리들의 흘린 눈물이라고 기억해 달라”고 애도했다.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 대종사는 “모든 부처님과 조사가 오고감이 없는데 제월통광 화상도 또한 오고감이 없도다. 환화공상(幻化空相)은 일어나고 멸함이 있으나 환상의 실체는 일어나고 멸함이 없도다”라며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니 밝은 달은 비추고 맑은 바람은 떨치도다. 비록 이르되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하나 봄이 오면 옛을 의지해서 풀이 스스로 푸르도다”라고 법문했다. 쌍계사 주지 성조 스님은 통광 스님의 전법과 교화, 감화의 원력을 그리워했다. 성조 스님은 “칠불사는 통광 대선사의 온 열정과 삶이 녹아있는 조계종 복원불사의 한 지표가 될 만한 생생한 현장으로, 선사께서 이곳을 복원해 신남신녀에게 불보살의 법음을 접하고 후학들의 교육에 힘쓴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조 스님은 “통광 대선사는 급변하는 시대변화와 환경에도 수행과 기도, 불사와 교육에 변함없는 의지와 정진은 무엇으로도 찬탄할 수 없다”면서 “우리 수행자들이 선사의 전법과 교화에 열정을 본받고자 하며, 이른 시간에 다시 오시어 선사의 큰 빛을 비추어 달라”고 애도했다.
공병수 칠불사 신도회장은 “지리산이 큰 스님이셨고 일곱 부처님의 발걸음이 큰스님이셨고 끊긴 적 없는 섬진강이 큰 스님이었다”면서 “비록 세연을 다 하시어 이연하시지만 중생구제의 보살 원력으로 다시 사바세계로 환생하시어 칠불사의 적막을 거두고 한국불교 중흥의 초석이 되어달라”고 말했다. 여상규 국회의원은 조사를 통해 “처음 스님을 뵈었을 때 맑고 청정한 그 자체였고, 삿된 욕심을 버린 모습은 해맑기 그지없었다”면서 “스님의 가르침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을 위한 일에 항상 앞장서야겠다는 마음을 배웠다. 스님을 뵐 수 없다 해도 이미 스님은 우리들의 마음에 부처로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유행 하동군수도 “칠불사에 가을이 들었습니다. 수천여 개의 아자방 그 기왓장 위로 큰 스님의 미소를 영원히 담아두겠다”면서 “부디 뭇 생명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소서”라고 애도했다.
영결식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밀운 스님과 원로의원 혜승·정관·성우 스님을 비롯해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종정예경실장 효광 스님,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 혜거 스님 등 출자자 400여명 등 사부대중 1500여 명이 참석했다. 아자방에 모셔진 제월당 통광 대선사의 법구는 영결식 직후 명정-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신도 순으로 칠불사 일주문 인근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된후 거화 의식에 따라 착화됐다. 하화에는 불국사 승가대학장 덕민 스님과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쌍계사 주지 성조 스님, 문도대표 등이 참여했다.
통광 스님의 49재는 9월 12일(초재), 19일, 26일, 10월 3일, 10일, 17일, 24일(막재) 칠불사에서 봉행된다. 지리산 칠불사=서현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