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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bs.co.kr/1tv/sisa/historyspecial/view/vod/1743787_30885.html
■ 단명한 대한제국[1897~1910] 애국가와 프란츠 폰 에케르트
KBS 역사스페셜 제41회[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금지곡~ 개천절]에 의하면 애국가 작곡은 안 익태가 아니라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작곡한 독일 제2제국의 해군 소속 음악가인 프란츠 폰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4.5~1916.8.6]이다.
프란츠 폰 에케르트는 1879년 일본의 해군 군무국에 일하던 중, 민영환의 동생 민영찬이 주한 독일공사와 협의 1900년 한국에 군악대 창설 교사로 초빙되자, 1901년 2월, 50인조 정규 군악대의 각종 악기를 가지고 내한하여 이듬해 8월 대한제국 애국가를 발표하고, 또 매주 목요일에 탑골공원에서 연주회를 가져 모차르트, 바그너, J.슈트라우스 등의 음악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하였다.
그는 고종황제의 명을 받고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했으며, 그 경위에 대해서는 민영환의 대한제국 애국가 발문에서 잘 설명되어 있는데 본래 군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2년 정식 국가로 지정되며 프란츠 폰 에케르트는 그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고 대한제국 황립 군악대장을 겸임하게 된다.
대한제국 애국가가 처음 쓰인 행사는 1901년 9월 7일 고종황제의 만수성절이었다.
당시의 영문잡지는 대한제국애국가가 신선하고 강렬했으며, 그 연주는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1910년 일본의 한국강점이 시작되자 이 곡은 금지곡이 되었고, 기미가요가 공식 국가가 된다.
그는, 1910년 대한제국 군악대가 해체되고 이왕직(李王職)양악대로 바뀌자 악대의 지휘를 백우용에게 맡기고 자신은 개인지도 등의 음악활동을 계속하면서, 한국 현대음악의 선구자인 김형준.이상준.백우용.정사인.김재호.홍난파 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사후 마포구 합정동 114번지 양화진의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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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上帝)는 우리대한을 도우소서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며 남북분단되자 대한제국 애국가는 또 다시 버림을 받게 되는데, 프란츠 에케르트가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도 작곡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프란츠 폰 에케르트의 대한제국 애국가 가사는 영국 국가의 내용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몇 차레의 변화가 있었다.
"상제는 우리나라를 도으소서. 성수무강샤"는 1904년 황성신문의 가사 " 상제는 우리나라를 도으소셔. 영원 무궁토록 나라 태평고."를 보면 다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10년 부터 해방전까지는 스코틀랜드 민요 곡조에 "동해물과 백두산..." 부터 " 이 긔(기)상과 이 맘으로...까지" 의 가사를 붙인 윤치호 작사의 애국가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졌다.
그리고 안 익태의 애국가 가사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상제[단군]가 하느님으로 바뀌었지만, 구한 말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민중들 사이에서 상제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후렴)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는 배제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 애국가 작사가는?
1.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 단심일세.
4.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다음은 朝鮮 世祖때 26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판서가 된 南怡 장군이 氣槪를 표현한 시조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닳아 없어지고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 물은 말이 마시어 없어졌다.
男兒二十未平國 사나이가 스물에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뒷날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작사자는 아직까지 '미상'이며, 8차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작사가 미상'이라는 표현이 생략된 채 작곡가만 기재되어 있다.
작사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추정되는 인물들 중, 한때 윤치호가 현행 애국가의 가사를 지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김덕균 성산효대학원 효학과 교수에 따르면, 1955년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들이 모인 가운데 윤치호 작사설을 심의한 일이 있었다. 그 결과 윤치호 단독 작사가설 찬성 11표, 반대 2표를 얻었다고 한다. 비록 찬성표가 많았지만 반대표가 있는 이상 '완전한 사실'이 될 수 없었기에 부결되었다고 한다.
윤치호 작사가설이 유력함에도 불구하고 공인되지 않은 것은 그의 친일 행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 박홍갑 편사부장은 "친일 행적이 있다고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윤치호 작사가설이 맞는지 틀린지 가리기 위해)개인 연구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치호설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윤치호 외에도 안창호, 민영환, 최병헌 등이 현행 애국가의 가사를 지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중 최병헌의 증손녀 최애영(72) 전 뉴욕가정상담소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 증조부여도 좋고, 다른 사람이어도 좋죠. 아무튼 정부가 애국가 작사가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바 있다.
그녀는 애국가 관련 자료를 뉴욕총영사관에 보내는 등 애국가 작사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애국가 가사를 누가 어떤 배경에서 만들었는지 모른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 안 익태의 '만주국'과 '한국 환상곡'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에 재학 중인 송병욱씨가 월간 객석 2010. 3월호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안익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독일 베를린 구 필하모니홀에서 열린 '만주국 창립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베를린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자신이 작곡한 축전음악 '만주국'을 연주했다.
만주국은 일본이 중국 북동부를 점거한 뒤 1932년에 세운 괴뢰정부다.
송병욱씨는 독일 영상자료실인 트란지트필름으로부터 입수한 동영상 자료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음악회를 녹화한 7분여 길이의 동영상에는 '만주국 창립 10주년 축하 음악회'라는 독일어 자막이 찍혀 있고,콘서트홀 중앙엔 대형 일장기가 세로로 걸려 있다.
합창이 삽입된 음악의 작곡은 안 익태, 가사는 일본인 에하라 고이치가 맡았다.
가사 내용은 일본과 만주국의 영광을 기리고, 당시 일본과 동맹을 맺은 독일 및 이탈리아의 건승을 빌고 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악보도 없었고 안 익태의 작품 연보에도 기록되지 않은 곡이다.
송병욱씨는 또 '만주국'의 선율이 애국가가 실린 '한국 환상곡'의 최종 완성본에 삽입됐다고 주장했다.
안 익태가 해방 이후 '만주국'을 연주할 수 없게 되자 '한국환상곡'에 끼워넣었다는 것.
이에 따라 '애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친일 음악인 문제를 연구해온 노동은 중앙대 교수는 "일본 정부가 기원 2600주년 봉축회와 만주건국 10주년 기념회를 치르면서 안 익태의 은사인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곡을 의뢰한 사실 등으로 볼 때, 안 익태의 친일행위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북한 애국가
북한은 1947년 박세영(1901~1989)이 작사하고 김원균(1917~2002)이 작곡한 애국가를 부른다.
인민 루니 정대세 선수가 월드컵에서 눈물 흘리며 부르던 북한의 애국가는 호전적인 내용과 거리가 멀다.
1절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력사에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
2절 백두산 기상을 다 안고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 진리로 뭉쳐진 억센 뜻
온 세계 앞서 나가리 솟는 힘 노도도 내밀어 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
한 없이 부강하는 이 조선 길이 빛내세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이후, 프랑스나 독일등 유럽국가들은 국수주의의 폐혜를 극복하기 위해 애국가나 전투적인 전쟁군가들을 부각시키지 않는 교육정책을 취하기도 한다.
※ 정권말기의 부도덕성이 홍수처럼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중대한 총선 관권부정선거에 조족지혈인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그나마 좋은 정치인들을 나쁘게 매장시키고, 어용언론들의 물타기에 악용되고 국민들의 실망과 의구심만 지연시킬뿐이다. 더욱 대선을 앞두고 극우세력의 도둑성의 실체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형상인데 유시민의 애국가를 빙자한 자신을 포함한 진보세력의 정체성에 대한 사족은 누워침뱉기일 뿐이다.
http://blog.daum.net/hanhonor/243
http://blog.daum.net/chltnxo5113/770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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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Note] 애국가에 대한 단상
번호 115714 글쓴이 시골훈장 조회 211 누리 75 (75,0, 9:6:1) 등록일 2012-5-11 22:49 대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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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작은 비석 | IP 211.228.227.x 작성일 2012년5월12일 02시1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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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눈이 | IP 221.154.178.x 작성일 2012년5월13일 12시0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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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시골훈장 | IP 180.64.58.x 작성일 2012년5월13일 12시24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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