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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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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사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평평한 지점에 바위 모양이 마치 병풍형상을 한 깎아 세운 듯이 벼랑을 이룬 바위가 있고 그 곳에 약수가 솟구친다. 이와 같이 병풍형상을 한 바위가 있다 하여 병풍바위라 일컬어진다. 이곳에는 이른 새벽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약수를 뜨기 위하여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
범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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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호불사를 통하여 가다 남쪽에서 능선을 넘어서면 당도하게 되는 곳이 바로 범바위이다. 바위의 모양이 범의 형상으로 되어 있으며 옛날에는 울창한 숲과 많은 무당들이 드나들며 굿을 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바위틈에서 쉬지 않고 솟아 오르는 약수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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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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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 뒤로 능선을 타고 넘어서면 동편에 작은 계곡이 있다. 이 골짜기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으며, 100여 미터쯤 내려가게 되면 많은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은 5개소의 약수터가 있으며, 이 약수터에서는 많은 생수가 솟아 오른다. 이 생수를 마시기 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 골짜기는 옛날에 뱀이 많아서 인근 주민들 사이에 뱀사골이라 불러졌으며 한때 뱀이 무서워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엔 뱀이 모두 자취를 감추어 이 산책로야말로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요, 깨끗하고 소박한 오솔길이다. |
포망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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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일제 시대때 일본군이 연못을 만들어 이를 표적삼아 포사격 훈련을 하던 곳이며 현재도 약수터 위에 있는 바위덩이가 그 당시 포탄을 맞아 일부가 파손된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후 이 연못의 물은 산 아래 지역에 있던 삼화농장의 식수 및 농업용수로 사용되던 중 1988년 위 농장이 아파트 부지로 확장되어 1990년 송도산악회 여러 회원들의 뜻을 모아 약수터로 확장 개발되어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
문학산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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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은 인천도호부의 남쪽에 있다하여 남산, 학의 모습과 같다하여 학산, 산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 봉화둑산이라고 불려왔으며 성산, 배꼽산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산이다. 문학산은 길마산, 수리봉, 문학산정상, 연경산, 서달산 등이 동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져 산맥을 이루고 있어 우리고장 연수구의 지붕이라고 일컬을수 있는 산이다. 문학산(232m)은 이미 기원전부터 우리 역사속에 등장하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건국설화에 비류가 미추홀에 도읍했다는 사실이 전해져오고 있는데 여지도서(與地圖書) 인천도호부 고적조에는 '문학산 정상은 미추왕(비류)의 고도(古都)라 하였고 안정복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문학산위에는 비류의 성기(沸流成基)가 있고 성문의 비판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성내에는 비류가 파놓은 우물이 남아있다'고 서술하면서 '동국여지승람에 그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을 개탄한다'고 아쉬워했다. <세종대왕실록>에도 '인천에 성이 있어 이곳을 미추홀고성 혹은 남산고성이라고 불렀는데 성내엔 작은 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문학산은 비류백제와 함께해온 인천지역의 성스러운 산이다. 문학산 정상에 처음 비류가 쌓았던 성은 여러차례 보강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1492년 임진왜란때 인천부사 김민선이 성을 수리하여 사민을 거느리고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당시 왜군들은 문학산성 동문밖 1백여보 되는곳에 주둔했는데 수리봉 부근에는 왜적들이 쌓았다는 왜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 문학산성은 약220m정도가 남아있어 인천광역시 기념물 1호로 지정돼있다. 문학산 정상에는 김민선장군의 영혼을 기리는 사당인 안관당이 있었다. 인천도호부 주변마을 사람들은 매년 두번씩 제사를 올렸으며 일제시대때 안관당이 불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안관당제를 유지시켜왔으나 문학산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또한 문학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어서 남쪽으로 안산정왕산의 정왕봉수와 북쪽으로 서구 가정동의 축곶봉수와 서로 응하였다. 이 봉화대로 인해 문학산 꼭대기가 배꼽모양같다고 하여 배꼽산, 봉화둑산이라고도 불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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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재산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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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구 동춘동 해안가에 자리잡은 봉재산은 (해발 103m) 청량산에서 이어진 야트막한 산이다. 해발 100m 남짓의 봉우리 4개가 남북으로 흐르는데 남쪽, 서쪽으로는 황해바다가 접해있고, 북쪽으로는 청량산이, 동쪽으로는 동춘동일대의 아파트단지가 맞닿아 있다. 봉재산 주변에는 동막마을, 능허리, 척전마을, 시듬물, 신촌 등의 자연부락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곳 주민들은 아직도 동막어촌계와 척전어촌계를 중심으로 갯벌을 이용한 어로생활을 하고 있다. 봉재산은 산세가 완만해 정상까지 오르는데 20분정도면 충분하다. 산정상에 오르면 송도앞바다 갯벌과 송도해상신도시 조성공사현장이 눈앞에 들어오고, 시화지구, 영흥도, 덕적도, 무의도, 용유도 등이 보인다. 예전부터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지금도 인천방어를 위한 중요한 군사적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봉재산이라는 산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전하는 것이 없다. 다만 이산에서 기우제를 자주 지냈는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제를 올렸다는 뜻으로 봉제산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동막과 자앞마을(척전마을) 일대에서 번성했던 영일정씨 집안에 중추동지사라고 하는 벼슬아치가 나왔는데 이를 기리고자 사람들이 동지산이라고 했던 것이 와전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산의 모습이 범이 앉아있는 것 같다해서 범좌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 산곡대기의 큰 바위를 범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바위는 봉바위라고도 부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