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시인’ 하덕규씨. 그의 노래가 다시 ‘세상 밖’에 울려 퍼지고 있다.
80년대 들국화 김현식 조동진씨 등과 함께 당시 20,30대 젊은이들을 사로잡으며 그들을 ‘자연·고향·인간에로의 향수’에 젖게 했던 ‘시인과 촌장’의 음유시인. 이후 90년대 내내 자신의 내적인 구원의 길을 따라 ‘현대적 기독교 음악’(CCM)의 세계에 몰입해 있던 그가 최근 옛 멤버 함춘호씨와 다시 만나 ‘다리’ 앨범을 내놓고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새출발’을 선언했다.
“모든 것들은 그 다리를 찾지…오랜 날들 울며, 울며, 울며…”라는,‘다리’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게 다가온다. 하지만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그의 노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방황 타락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구원의 평화를 되찾은 그의 삶 자체가 한곡의 ‘본질로의 회귀’를 갈구하는 노래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예전처럼 변함 없이 ‘동화’를 꿈꾸는 것 같은 그의 가냘픈 목소리도 사실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신앙·인격적으로 성숙됐음을 느낄 수 있다. 지난 81년 추계예술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그는 미국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붓을 놓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노래는 김민기 한대수 등,70년대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달래주던 선배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30년대 미국 대공황기에 노동자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싸우며 노래했던 우디 거슬은 그가 노래하고 싶은 ‘그 무엇’의 방향을 가르켜 주었다. 그는 시대상황에 직유법을 통한 반기를 들기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본래적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건강한’ 노래를 추구했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건강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쌓이기 시작했다.“노래만 그렇게 하지 내가 하는 게 뭐 있다고…”하는 삶과 노래와의 괴리에 대한 자조가 그의 내부를 점점 짖눌렀다. 매일 위스키 반병을 마셔야 잠이 드는 등 술에 찌든 생활과 하루 2갑 이상씩의 줄담배로 그의 심신은 망가져 갔다.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몸이, 또 마음이 망가져 가고 있던 86년 겨울 본능적으로 그는 누나가 다니던 교회를 찾았다. “거기서 저를 괴롭혔던 ‘이중성’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채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자아분열과 동일선상의 문제임을 발견했지요” 그리하여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또 삶과 노래와의 괴리를 연결하는 ‘다리’를 발견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후 그는 대학 캠퍼스 등 곳곳을 돌며 전도 공연, 간증 활동을 했다. 무엇보다 종교와 대중 예술의 접목을 통해 기독교인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던 CCM의 국내 활성화에 한몫을 한다.89년 기독교방송의 ‘가스펠 아워’의 진행을 맡기도 했고 95년부터는 역시 기독교방송의 ‘CCM캠프’를 진행해오고 있다. 또한 그 자신이 독집으로 쉼, 광야, 집 등 세 CCM 앨범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시인과 촌장’의 앨범 제목이 왜 ‘다리’인지 쉽게 알 수 있다.“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분열을 다시 잇고 싶다”고 하는 그의 오랜 갈구가 보다 성숙된 목소리로 울려 나오기 때문이다. 하덕규. 그는 맑은 목소리로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소리의 전도사’다. 그의 노래를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올리고 있다.
1958년 7월 21일 강원 홍천생 1980년 '명동 쉘브르"에서 동창생 오종수, 후배 전홍찬과 함께 결성한 트리오 바람개비로 대중음악 활동 시작 (아마추어 노래자랑에서 세 번 떨어지고 네 번째 합격해 이종환씨의 권유로 쉘부르에서 '낮' 시간에 노래함) 1981 전홍찬 떠나가고 오종수와 둘이서 서영은의 단편소설 '시인과 촌장'을 팀이름으로 해 '시인과 촌장' 1집 출반 (유니버셜레코드) 1982년 이명훈에게 '님타령'을 줌 1982년 오종수 결혼후 사업차 떠나가고 혼자서 '하덕규 Solo' 출반 (대성음반) 1983년 남궁옥분에게 '재회'를 줌 1984년 양희은에게 '한계령' '찔레꽃 피면'을 줌 1985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노래전시회 1'에 '비둘기에게' 발표 1985년 샘터 파랑새 극장에서 '우리노래전시회 옴니버스 콘서트' 참가 1986년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함께 시인과 촌장 2집 [비둘기에게, 사랑일기, 푸른 돛] 출반 (동아) 1987년 시인과 촌장 첫 콘서트 - 꿈나무 소극장 1988년 시인과 촌장 3집 '숲' 출반 (동아기획) 1989년 시인과 촌장 두 번째 콘서트 '숲 이야기' - 계몽 아트홀 1989년 CBS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Gospeop Hour' 진행 1989년 첫 시집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출간 (청맥 출판사) 1990년 하덕규 첫 번째 가스펠 음반 '쉼' 출반 (서울 음반) 1991년 하덕규 숭의 음악당 콘서트 - '자유' 1991년 시인과 촌장 Best '시인과 촌장 1981-1991'출반 (서라벌레코드) 1992년 하덕규 Solo '광야' 출반 (서울, 국제음반) 1993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 자선 공연 - 학전 소극장 1994년 굶주린 지구촌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음반 ' 한톨의 사랑되어 ' 기획 출반 (삼성 뮤직) 1994년 조하문, 신형원, 조동익, 장필순, 손진태, 이무하, 박용준, 최덕신, 송정미, 손영진, 이문세 등과 함께 기아대책기구 기금마련 해외 공연 - 미국, 캐나다, 브라질 1995년 CBS FM 개국 - 하덕규의 CCM CAMP 진행 1997년 하덕규 Solo '집1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출반 (서울, 국제음반) 1997년 하덕규 호암아트홀 콘서트 '집1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1997년 하덕규의 CCM Camp, 찬양사역자 연합회와 함께 '제 1회 CCM 컨퍼런스' 개최 1998년 '부흥'앨범에서 고형원의 곡 정결'을 부름 1998년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부흥 ' 콘서트 참가 1999년 전주 한일 장신대 출강 1999년 '부흥 2000' 앨범에 고형원의 곡 '그날'을 부름 1999년 '부흥 2000' 저국 투어 콘서트 참가 (서울, 부산, 대전, 목포 등) 1999년 부흥 미주 공연 참가 (L.A, 워싱턴 D.C) 1999년 조성모에게 '가시나무'를 줌 2000년 시인과 촌장 4집 'The Bridge' 출반 (작스미디어) 2000년 시인과 촌장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 The Bridge' 콘서트 2001년 천안대학교 교회실용음악과 출강 2001년 프로젝트 앨범 Painter 참가 (유지연, 정종원, 한웅재, 하덕규) 2001년 부흥 2001 전국 투어 콘서트 참가 2001년 부흥 2001 미주 투어 콘서트 참가 2002년 천안대학교 교회실용음악과 전임교수 2002년 CBS TV '하덕규의 노래가 있는 풍경'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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