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에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주머니에 똑딱이 카메라를 넣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4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서당을 돌아서 뒷산으로 올라갑니다.
아침 공부하기 전의 산책입니다.
꽃들이 피는 시기엔 내 놀이터가 되는 곳입니다.
산길은 조금전까지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발 밑에서는 참나무 낙엽들이 밟히는 소리가 사삭 사삭 기분좋게 들립니다.
내 발바국소리보다 더 가늘게...내 어깨를 두드리는 소리도 있습니다.
소리가 아닌 느낌으로 다가오는 빗소리입니다.
이런 안개비는 우산으로 가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온 몸으로 스며들도록 그냥 두면 됩니다.
안개처럼 스며드는 빗소리.... 기분이 참 좋습니다.
조금 있으면 민들레가 피어나고 꽃마리가 피어나고 할 자리에
잔디가 물방울을 매달고 있습니다.
이것도 꽃만큼 아름답습니다.
자연히 쪼그리고 앉아 꽃보듯이 봅니다.
어느 시인은 말했었지요?
자세히 보아서 이쁘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정말 그렇습니다.
잔디가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쁜 것을 넘어서 대견한 것도 보입니다.
돌틈 사이로 한 겨울에 초록잎을 내밀고 있는 뱀딸기입니다.
틈이라는 것이 대상들 사이에 관계를 멀어지게도 하지만 그 틈으로 인해 이렇게 한 생명이 자랍니다.
혹시라도 틈이 벌어져 소원해진 친구가 있다면
그 벌어진 틈만큼의 성숙한 관계로 다시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뱀딸기가 오늘 아침에 나에게 가르쳐줍니다.
참나무 한 그루에 한쪽은 비가 스며들었고 한쪽은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한쪽에서 보면 분명 비가 왔었고..또 다른 한쪽에서 보면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마른 쪽과 젖은 쪽의 주장을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나무 사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청미래덩굴이라고 하는 망개입니다.
난 이 열매를 보면서 청미래덩굴이라고 하면 꼭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망개도 물방울을 머금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비가 온 것은 분명한 가 봅니다.
위쪽의 참나무 마른쪽에게 오늘은 니 주장을 굽혀야 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산길을 오르면서도 연신 시계를 봅니다.
공부시간에 지각을 하면 안 되니까요.
내려가야 할 시간입니다.
어차피 정상까지 올라갈 발걸음도 아니었습니다.
내려 오는 길에 달맞이꽃 로제트를 봅니다.
로제트(rosette)는 장미꽃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로제트 식물은 어느 특정한 식물 이름이 아니고
근생옆이 방사선 모양으로 땅위에 퍼저나가는 것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가을에 씨를 뿌린 식물들이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땅에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잎은 햇빛을 골고루 받기 위해서 서로에게 비껴 납니다.
이 작은 식물에게서' 배려'라는 깊고도 아름다운 낱말의 뜻을 배웁니다.
참으로 대견하게도 잎은 서로 서로 비켜나 있습니다.
위에 난 잎이 아래에 난 잎의 햇볕을 가리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이제..정말 공부하러 들어가야 할 시간입니다.
서당 마당의 팽나무는 오늘도 나를 반깁니다.
어서 오라고...
~~
오늘 배운 맹자님의 한 마디는
孟子 曰 人之患이 在好爲人師니라
맹자님꼐서 말씀하시길
"사람들의 병통은 남의 스승되기를 좋아하는데 있다."
어줍잖은 얄팍한 지식으로 또 아는 체 하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달맞이꽃 로제트에게 배운 '배려'와 뱀딸기에게 배운 '틈의 미학'
오늘 아침의 제 스승은 달맞이 꽃과 뱀딸기와 맹자님이었습니다.
첫댓글 박무 속에 산책이 신선합니다.
좋은 수필 잘 감상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시는 발걸음이 백리길이라도 심심치는.않겠습니다~
단봇짐속에 편의점 삼각김밥도 제맛일듯~ㅎㅎ
절대 안 심심합니다.ㅎㅎㅎ혼자놀기가 제 특기입니다.
@자유 저랑 같은 취미를~ㅎㅎ
반갑습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샘의 가르침을 오래도록 받겠습니다.
마치 저도 함께 그 안개비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싱싱한 아침산책을 한 느낌입니다.
로제트 현상.저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염두에 두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자유서당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ㅎㅎ고맙습니다.낮게 낮게 몸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과 어려운 시절에 견뎌야하는 인내와 그러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그 모든 것을 겨울철 풀꽃들이 가르쳐줍니다.
로제트 현상...그런거였군요.
처음 들어보지만 한 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유님의 배려로 풀꽃에게 한걸음 더 다가서는 법을 배웁니다.
이제 밖에 나가보면 요런 모양을 한 식물들이제법 눈에 들어 올 것입니다.꽃마리.개망초,민들레,꽃다지,냉이....이런 녀석들이 저렇게 겨울을 나고 있어요.
좋은 글 읽으며
새날을 맞이 합니다.
오늘 맞이한 새날에는 어떤 작품을 만났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