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병산 은혜사
❁ 창건년도: 2001년
❁ 창건주: 김방호
❁ 현주지: 김방호(일공一空)
❁ 소재주: 거제시 신현읍 삼거리 (지세포 가는 길 500m 지점)
거제시 삼거리 마을에서 일운고개(반송재길)로 가는 길목에 보면 오른쪽 편에 “북병산 심원사 600m"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에서 200m가다 보면 왼쪽에 은혜사란 안내판이 보인다. 걸어서 5분 거리이다.
북병산 자락 선자산골짜기라고 한다. 거제도 옛 절터인 은적암(隱迹庵)을 찾아 3년을 헤멘뒤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곳은 일반인들의 산행이 금지된 곳으로 자연이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으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주지스님의 말에 의하면 고려시대 이곳에는 은적암이 있었고, 바로 밑 논에는 은적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흔적도 없고 문헌상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현재 은혜사 뒤편에는 옛날 은적암이 있었던 흔적으로 기와와 돌담 등이 보인다. ‘거제사찰을 찾아서’ 책에 보면 「 옥림산(현재 옥녀봉)에 은적암은 고려왕조에 창건되어 조선 중엽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하여 전소되었다. 지금도 축대나 추춧돌, 대나무 숲이 있어 그 규모를 짐작케 하며 기와조각 그릇 등이 출토되기도 한다. 또한 오래전부터 일운면 삼거리에 탑과 고적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고전문학자 ‘고영하’씨는 ‘옥림산에 조선시대에는 은적암(隱寂庵)이란 큰 절이 있었고, 삼거리 북병산쪽에도 똑 같은 이름의 은적암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심원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고려시대 고찰인 은적암이 북병산 앞쪽 (지금 은혜사)에 있었는데 그 암자에 빈대가 많아 살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 당시 이방오라는 주지 스님이 절을 떠나면서 행자승 김상업에게 너 갈대로 가시라 하시면서 “ 너는 나를 보고 있지 않느냐” 라는 말씀을 남긴 후 떠나갔다 한다. 스님이 떠난 자리에서 앞산을 바라보니 산이 하나 있었다. 그 산이 북병산이다. 김상업은 앞에 보이는 북병산으로 가서 산 중턱에 지금의 심원사를 1781년 창건하였다고 한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북병산 자락에는 은적암이란 암자가 있었고 그 자리는 지금의 은혜사 절터라고 추정해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국의 유명한 절 이름은 동일한 것이 많다. 은적암도 경주남산 은적암, 여수 은적암, 공주 은적암, 남원 은적암 등 다수가 있다. 이런 연유로 볼 때 거제에도 같은 이름의 은적암이 2개 없으란 법도 없다.
거제도는 신라시대에도 절은 있었으나 미미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18대 의종이 귀양(1146년)오면서 많은 절이 탄생하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전설처럼 전해내려 오는 은적암 이방오 주지스님의 흔적은 지금의 은혜사에서 임도를 따라 300m가면 바위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글씨의 흔적을 보니 고려시대 같으면 600~700년전일 것인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30년 전 계룡산에 올라 의상대사가 장기를 두었던 장기판의 흔적을 본적이 있는데 최근 10여년전에 그 흔적이 살아졌다. 아마 풍화작용에 의해서일 것이다.
가는 가을이 아쉬워 붉게 물들은 가랑잎은 한잎 두잎 떨어지고 졸 졸 흐르는 시냇물은 자연이라는 단어를 흠뻑 적서 준다.
일공주지스님은 6살 때 불교에 입문하여 1965년 승적( 僧籍)하여 오늘에 으르고 있으며 일부 스님들이 무소유(無所有)라고 하는데 이는 모두 허구이다. 스님도 인간이고 먹고 살아야 한다. 절도 지어야 하고 밥도 해 먹여야 한다. 무소유(無所有)란 살아 있을 대는 소유(所有)이고 죽고 난 후에는 무소유(無所有)라고 강변하였다.
스님, 어릴적부터 불교에 입문하여 무었을 득도하셨나요?
‘없습니다. 無입니다’
거제도 사찰순례를 하면서 얻은 대답 중 몇몇 주지스님은 無라 하였다. 無想無念의 無 인가? 알 길이 없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뜻인가? 불교의 진리가 無窮無盡하기에 無인가? 의문을 남긴 채 발길을 돌린다.??????????????????
이학규(李學逵, 1770∼1835년)선생의 낙하생집에
은적암(隱寂庵)
[在玉林山今廢] 재 옥림산(옥녀봉)금폐 / 아양동
度世隨緣是 세상은 인연 따라 사는 것,
相尋不弍門 서로 애타게 그리니 두 마음 아닐지라.
虛樓圍澗響 텅 빈 누각엔 산골 물소리 에두르고
高石走松根 뽐낸 돌엔 소나무 뿌리 감는다.
山外朱陽沒 산 넘어 붉은 태양 떨어지니
僧邊碧樹昬 스님 곁의 푸른 나무 어둑하다.
孤菴眞隱寂 외딴 암자가 자연에 묻혀 고요해도
惟愛谷禽喧 오직 사랑하는 골짜기에 새소리 가득할 뿐,
< 부처님께 절을 하는 이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문경 봉암사 편에 보면 저자와 그 부인의 대화가 소개되고있습니다. 독실한 불자인 부인과 답사 광신도인 저자는 서로의 종교와 취미를 존중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봉암사 간다니까 3층석탑도 잘보고 이왕이면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도드리라고 합니다. 내가 왜 그깐 나무나 쇳덩어리에 절을 해야하나 하고 저자가 반문하니, 불자 왈
" 나무나 쇳덩어리에도 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라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마음을 내려놓는 일(下心)입니다.
<절을 찾을 때 마음가짐>
사람은 누구라도 나이가 들거나 철이 들면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를 돌이켜 보고 지나온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하게 되며, 오늘의 나의 위상을 반조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또한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종교라도 하나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생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것이므로 순간적인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의 선택에 따라서 자기의 인생관이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기 때문에 종교의 선택은 아주 신중을 기해야할 중요한 인생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종교를 갖게 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소망으로 종교를 갖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① 종교를 통해 확고한 마음의 신념을 얻어서 안정된 마음을 찾고자한다.
② 마음의 안정을 구하기 위해서 절대자에게 의지하고자한다.
③ 내생의 安樂(안락)을 위해 極樂往生(극락왕생)하고 싶다.
④ 현실생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바라는 소망이 모두 성취되고 싶다.
⑤ 종교는 깊은 철학과 높은 도덕률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교양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 기위해 서다.
자기의 참 생명을 자기 스스로 발견해서, 자기 속에 묻혀있는 진실한 자기를 발견해서 [참 나]를 찾아, 진실한 [나]로서의 생활을 하는 종교를 찾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바로 그러한 종교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부처님은 성인이고 큰 어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입니다. 절을 찾을 때의 마음가짐을 위에 말한 옛 사람처럼 철저하게 하지는 못해도, 거룩하고 큰 어른이 계시는 집에 간다고 생각하고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가로액자: 문수보살님 지혜 (학업성취용)
세로글자: 옴 (불교 경전 첫머리 글자, 뜻은 50여가지로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드나 '하늘'이라고도 함)
“옴”자의 의미
진언(眞言)은 번역하지를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진언은 범어(梵語)이므로 당연히 뜻이 있습니다. 수행상 번역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므로 옛부터 번역하지 않았는데 뜻도 여러 가지를 지니고 있어 한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옴자에 대해서 참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옴은 범어 (om)의 음차(音借)입니다. 기도할 때에 쓰는 말로 신성한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인도에서는 불교 이전부터 기도어로써 쓰이고 철학 종교서의 첫머리에 두었다고 합니다.
원래의 음은 아(a)-우(u)-움(m)의 합성된 것으로써 부라만교에서 특별히 존중하는 3신(三神)을 뜻하기도 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진언 첫머리에 두는 것은 다 아는 바입니다.
수호국계다라니경에서는 옴은 부처님의 법신 · 보신 · 화신 의 3신(三身)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여 옴자를 관(觀)할 것을 권하고 있고 그 공덕으로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를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옴자에는 귀명, 공양, 3신(三身), 깨달음, 섭복(攝伏)의 5가지 뜻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옴자가 법신, 보신, 화신 3신(三身)을 포함한 큰 뜻을 지닌 것으로 안다면 옴자를 염(念)하고 관(觀)하는 방법도 얼마간 이해가 될 줄을 압니다.

주지스님은 조계종에서 이 내용을 10만장 써오면 절을 지워준다고 하는데 그 실현 가능성은???

은혜사 뒷편에 보이는 은적암 흔적

은적암 흔적

은혜사 입구에는 지금도 작은 폭포가 흐르고 있다.

옛날 은적암 주지인 이방오스님이 돌에 새겨진 석각.
거제 31번째 부사 이방오는 영조 38년(1762) 7월16일에 도임하여 동왕 39년(1763)12월초6일에 통신사의 항해에 항차원의 사고로 파직. 그 때 이방오라는 부사가 파지당하고 은적암에 귀의하여 살다가 흔적을 남긴 이름인지는 나도 몰라??? 이 돌에 새겨진 이방오와 거제 부사 이방오의 한자는 같다.

첫댓글 거제 사찰을 찾아서...
無다, 세상사 헛되고 헛되도다.
살아간다는 것은 ???
옴자의 비밀, 잘보았습니다.
옴마니반매움....
그러한 내용들이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