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에 대한 대응과 근원적인 삶의 사유 / 박용진
ㅡ 영화 아버지의 길 리뷰
제22회 전주 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영화 <아버지의 길>은 슬로단 고르보비치 감독의 2020년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체제에서 세르비아 공화국으로 남기까지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분쟁을 치르는 힘든 여정을 걸어왔다. 독립 이후에도 정쟁의 해소와 곤궁에 빠진 서민들을 추스름은 어느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공통의 문제였다.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일부 사회에선 개인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가 있다.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기아에 허덕일 수도 있는 노동자의 상황을 외면하는 부조리는 우리와 공존하는 게 사실이다. 영화는 임금체불에 이어 회사에서 해고된 부모들에게서 아이들 양육이 어렵다면서 최선의 아동 이익 명분으로 사회복지센터에서 아들과 딸을 무기한 강제 위탁하려 한다. 이러한 일의 배경에는 아이 한 명당 국가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을 착복하려는 복지센터장의 탐욕이 있음을 안 아버지는 관료들의 부패를 고발하고 아이들을 되찾으려 수도인 베오그라드까지 300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어서 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영화 <아버지의 길> 은 폭넓은 부성애를 담고 있다. 수직과 깊이에 있어서는 모성애에 비견할 수 없지만 사회적 가정적 책임을 동시에 짊어진 부성애, 아버지들의 마음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든지 비슷할 것이다. 참으로 광대하다고 느낀다.
유고연방체제가 붕괴하면서 무정부 상태까진 아니어도 전쟁을 건너온 일반 서민들의 삶은 어려워졌다. 세세히 들여다보면 임금을 못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탐욕을 위해 부모와 아이들의 의사를 철저히 짓밟고 강제로 부모와 분리시키는 가짜 행정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삶을 그린 영화처럼 상상밖의 험난한 일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비교적 유고 내전과 가까운 시기에 개봉한 영화들을 보면 <그르바비차>(2008. 야스밀라 즈바닉 감독)와 <세르비안 필름>(2010. 스르쟌 스파소예비치 감독)이 있다. 그르바비차 같은 경우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 세르비아 군인들이 여성들에게 가하는 끔찍한 인종청소 행위를 그린 영화이고 세르비안 필름은 잔혹한 스너프 필름의 영화로서 전쟁의 광기가 지난 뒤의 참담한 현실의 대체적 호소라 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사태로 흉흉한 분위가 전 세계를 덮고 있다. 평화가 아닌 고통스러운 전쟁에다가 스스로 몸을 담아 버리는 인간의 악한 행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부처님은 아함경에서 오온五蘊의 상호작용에서 악함이 생긴다고 했다. 물질, 표상, 의지, 판단 이성의 작용, 감각이 횡으로 종으로 얽히고설켜 악한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질세계에서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인간 고통은 생존본능의 과다에서 비롯한다. 생명체로써의 생명 유지와 확장은 기본적인 욕구이자 존재의 필수 요건이지만 이를 넘어서면서 인간에게 내재된 짐승의 측면이 커지는 것이다.
세르비아는 내전을 치르며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조의 고통을 넘어왔다. 인종, 종교, 정치이념에 대한 전쟁 광기와 가족을 보호하려는 부성애는 생존본능에 기인하는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하며 영화는 모순된 인간 행위 이후의 상황에서 생존이라는 삶의 근원적인 사유를 꺼내게 한다.
전쟁이 가져오는 수많은 후유증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가정의 붕괴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다. 결핍은 충족을 향하는 과정이라고 위로하기 전에 이를 잊지 말아야 함을 영화 <아버지의 길>은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