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 아름다운 세상 】
한 사람의 선행이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처럼 단 사람의 악의적인 마음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도 슬프게도 하는 것에는 단 한사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 여러 사람으로 가득차서 행복과 불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나 스스로에게서 불러일으켜지는 감정 상태에 따라서 사람에 대한 증오와 불신, 단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꽃을 피우는 가 봅니다. 한 아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혼자서 벼랑 끝까지 몰려서는 단 한사람의 악의적인 행동으로 인해 그 벼랑을 뛰어내리는 것만이 최선인 상황에 놓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단 한 사람이 그 아이를 사지로 내몰았던 것일까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아름다운 세상이라서 살맛난다고 말해도 되는 세상일까요? 죽은 아이에게는 한 없이 미안해지지만,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열심히 살아서 ‘살 맛 나는’을 느끼게 해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벼랑 끝에 몰려 죽고 싶지 않으면 처신을 잘하라는 규제만이 앞으로 판을 칠텐데, 아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느낄 새가 있을까요? 한 아이 죽음에 한없이 작아지며 아름다운 세상을 운운하는 것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단 한사람의 악행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처럼 바꾼 것에 가슴이 더욱 아려오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양파를 까다가 눈이 아려 눈물이 올라오는 것처럼, 상처 난 곳에 마늘 즙이 파고들어오는 것처럼, 청양고추의 매운 맛을 느낀 혓바닥처럼 쉽게 가시지 않는 아지랑이가 가슴에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정말로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는 마치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를 묻는 것과도 같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큰 우리내 아들들이 왜 욕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우리 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걸까요? 잘 컸다고 믿은 우리내 아들들은 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행동을 자꾸 하려는 것일까요? 그만큼 살았으면 세상을 알만도 하고 세상에서 이득을 취할 수도 있는 나이인데 왜 사회적으로 철저히 약자인 아이와 여성을 상대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하는 걸까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을까요? 아니 도대체 우리내 아들들은 무엇을 못 배운 걸까요? 가르치지 않은 자를 탓해야 하는 것일까요? 배우려 하지 않은 자를 탓해야 하는 것일까요? 솔로몬의 왕처럼 “아이를 반으로 나누라”라는 답변을 내놓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너도 잘못했고 너도 잘못했다” 라는 황희정승 같은 답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답을 찾고 저렇게 답을 찾아도, 떠나버린 한 아이의 생명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슬픕니다. 한 번 죄를 지은 사람은 또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기사만 자꾸 보입니다. 어디선가 개과천선(改過遷善)해서 잘 살고 있는 전과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일 수 도 있지만, 지금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을 보면 쉬 무시할 수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을 옥죄고 옥죄어서 그들이 죄를 또다시 짓는 것을 막는다면 전과자도 구하고 한 생명의 존엄성도 구제받을 수 있겠지만, 정말 그들이 ‘다시’ 죄를 짓는 세상만이 아니기에 이 대책에 한 숨이 절로 나옵니다. 도대체 구조적으로 어떤 잘못이 있기에 연령을 불문하고 여성이 타의에 의한 목숨을 계속 잃어야 하는가 말입니다. 범죄 자체에 대한 대비책은 당연히 계속적으로 강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일을 도맡아서 할 직군도 있으니 그들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현실을 반영하여 이상적인 현실에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답안이 계속적으로 논의되고 도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의 역할에 따른 노력을 지켜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실행을 하자니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한 현실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이야기 해봅니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바로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뜻을 세워 황폐하게 보이는 곳을 찾아 온정을 뿌리는 것입니다. 같은 공간, 같은 환경 속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가 있는지, 혹여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어 스스로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촉을 세워 살피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눈인사 하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편의점에 가서 보면 또는 은행에 가보면 책상 위에 놓인 ‘동전 모으기 캠페인’ 상자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안을 보면 십 원 동전부터 오백 원 동전까지 ‘마음을 담은’ 동전이 들어 있습니다. 그곳에 동전을 넣은 동기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더라도 그곳에 들어간 동전이 어떻게 쓰일지는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 동전 모으기 상자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긴요하게 사용될지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처럼 동전을 모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움직임처럼, 여러분 마음 하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천인공노할 일이 자꾸만 발생하여 세상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는 때이기에 더욱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삐뚤어진 마음을 달래어 줄 수 있는 ‘고미안실’이라는 마법의 말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의 앞머리를 딴 말입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조금 더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일본 사람들이 우리보다 겸손해 보이는 것이 바로 이 4가지의 인사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여러 가지가 얽혀있는 나라이지만, 닮아가야 하는 선진국에 해당이 되어 우리가 벤치마킹하러 나가면 가장 먼저 체감하고 오는 것이 그들이 생활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러한 행동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 유일하게 같이 주고받을 수 있는 인사말입니다. 서로 더 잘 알기 때문에 더 챙겨야 하는 말이고, 서로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에 잘 챙겨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씩 이 인사말을 챙기면 우리가 체감하는 세상이 무척 아름다울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가래로 1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