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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강진군과 해남군의 화원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04월 05일 (화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점심때까지 맑고 화창하였으나 오후부터 구름이 끼고 흐렸으며 약간의 박무가 보였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2도에서 영상 15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바람재(도림길 시멘트 포장도로, 에코브릿지, 산자락길 안내판) 이정표(첨봉 0.9 Km, 백호리 3.0 Km, 주작산휴양림 7.2 Km)-첨봉(351.5봉, 땅끝기맥 상 화원지맥 분기점, 첨봉 설명판)
이정표(화원지맥, 삼거리 2.0 Km, 도암/옥천경계 4.3 Km)-바람재(215미터, 이정판과 동물생태이동통로 위-일출(주작덕룡 능선 위)-388.3 삼각점봉(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진달래
잡목등로-295.2봉(이정판)-돌담-건들재(용동길 2차선 포장도로)-편백나무 조림지-지독한 가시잡목 등로-351 무명봉(고사목, 382.4봉 갈림삼거리)-벌목지-산죽지대-수원백공 부부묘지-비포장
임도(국가지점번호판, 삼산평활 임도기점 2.0 Km)-벌목지 후박나무 조림지-김해김씨 가족묘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우측)-산죽등로-편백나무 군락지-
137.5봉(띠지들, 철망)-비포장임도-구룡목재(가재길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상가 버스정류장, 물좋은가재골과 상가마을 표지석, 구룡목 설명판, 상가저수지)-시멘트 포장도로-밭경작지와
농막-시멘트 포장도로-청주한공 묘지들-편백나무와 산죽터널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사거리 이정표(첨봉 4.15 Km, 연동리 4.7 Km, 주작산휴양림 9.4 Km)-청주한공 묘지-밭경작지-
무명묘지 3기-능선진입-계단식 등로-무명묘지 2기-195.5봉(이정판)-184.5봉(이정판)-69번 송전탑-덕음산(덕룡산) 갈림삼거리봉-산죽터널-덕음산(327.3봉, 정상판)-갈림삼거리 복귀-폐헬기장-
산죽지대-전망바위-산죽과 진달래 등로-동백나무와 산죽등로-전망바위봉-바위암릉-416.4 암봉(이정판)-산죽과 잡목등로-383.7봉(이정판, 인식불가 삼각점)-357.9 바위무명봉-산죽 그물망
등로-산죽 돌담등로-산죽터널-265.8 바위무명봉-274.5봉(이정판)-해남터널(13번 공룡대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편백나무 안부)-교통호와 초소들-편백나무 군락지-우슬재(150미터, 해남로 2차선
포장도로, 5.18민중항쟁 사적지 소공원)-콘크리트 계단-잡풀 무명묘지-비포장임도-잡목등로-콘크리트 초소들-전망바위-안전로프와 위험 경고판(제도권 등로진입)-산죽등로-바위암릉 우회등로-
447.3봉 갈림삼거리-447.3봉(이정판, 바위암릉)-갈림삼거리 복귀-위험경고판과 안전철봉-로프 등로-진달래 등로-안전목책과 로프-헬기장(420미터) 이정표(만대산정상 1 Km, 우슬경기장 1 Km,
금강저수지 1.7 Km)-안부 이정표(만대산정상 0.7 Km와 금강재삼거리 2.4 Km, 금강저수지 2 Km, 옥천영신임도 0.8 Km)-바위암릉(안전목책과 로프)-440.3봉(이정판, 삼형제바위)-바위암릉
로프구간-453.6 바위무명봉-깃대봉(458.4봉, 정상판)-만대산(493.1봉, 정상석과 정상판, 전망데크) 이정표(금강재삼거리 1.7 Km와 금강산정상 3.7 Km, 금강저수지 2.7 Km)-산죽터널-
465.8봉(이정판)-안전목책과 로프등로-무명안부-396.1봉 갈림삼거리 이정표(금강산정상 2.6 Km, 만대산정상 1.1 Km, 금강저수지 1.6 Km)-396.1봉(이정판)-갈림삼거리 복귀-377.1
무명봉(진달래꽃과 굵은 참나무)-320.3 무명봉(국가지점번호판)-금강재 안부 갈림삼거리(벤취쉼터) 이정표(금강산정상 2 Km, 만대산정상 1.7 Km와 삼봉 3.9 Km, 주차장 2 Km)-벤취쉼터1-
381.6 무명봉(멧돼지 만났을 때 요령 설명 플랭카드)-산죽등로-419봉(이정판, 삼면경계봉)-진달래꽃 능선등로-무명안부-쉼터 갈림삼거리 이정표(금강산정상 0.6 Km, 금강재삼거리 1.5 Km와
만대산정상 3.2 Km, 쉼터 0.9 Km)-산죽등로-바위 로프등로-헬기장 이정표(금강산정상 0.4 Km와 팔각정자 1.8 Km, 쉼터 1.1 Km와 금강재삼거리 1.7 Km)-금강산성-469.8봉(의산띠지와
진달래꽃)-헬기장 복귀-우정봉 갈림삼거리 이정표(금강산정상 0.2 Km, 금강재삼거리 1.9 Km, 우정봉삼거리 0.3 Km)-산죽등로-길주의(갈림삼거리 우측) 이정표(금강산정상 0.1 Km,
헬기장 0.3 Km와 금강재삼거리 2 Km 및 만대산정상 3.7 Km, 주차장 2 Km)-돌탑과 바위암릉-금강산(488.3봉, 정상석, 벤취쉼터들)-482.8 삼각점봉(이정판, 해남11 삼각점, 무인산불감시
카메라)-483.4 무명봉(국가지점번호판과 바위들)-바위와 산죽등로-458.2봉(이정판, 국가지점번호판)-길주의(437.9 무명봉, 띠지들, 갈림삼거리 우측)-바위암봉 우회-325.9 무명봉(관목의 참나무)-
아침재-69번 송전탑-길주의(287.7 무명봉, 띠지들, 갈림삼거리 우측)-가시잡목등로-289.9봉(이정판)-지독한 가시잡목등로-참나무 군락지와 조림지-비포장 임도-무명묘지2(잡풀)-255.7봉(이정판)-
241.6 무명봉(잡목들)-바위너덜등로-동백나무 등로-뚜드럭재(마산로 2차선 포장도로, 뚜드럭재 소공원 이정표)-산행종료
산행거리 : 24.87 Km (바람재에서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 찍고 뚜드럭재까지)
지맥산행 : 23.97 Km - 첨봉에서 뚜드럭재까지
접속구간 : 총 약 00.90 Km - 바람재에서 첨붕 분기점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1시간 35분 (05시 46분부터 17시 22분까지 접속구간 모두 포함하여)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2022년 4월 4일 23시 00분 산행 준비하여 집에서 산행 들머리인 바람재를 향해 애마로 출발
04시 30분 쉬면서 내려 와 바람재에서 40여분간 차박
05시 20분 집에서 준비한 김밥과 어묵탕으로 아침식사
05시 46분 아침식사 후 배낭 정리하여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맞춰 산행 시작
올때 - 17시 22분 뚜드럭재에서 화원지맥 제1구간 산행 종료한 후 해남택시 콜
18시 10분 바람재에 도착 해 애마 회수(택시비 21,500.-원)
18시 45분 해남읍 티파니모텔 투숙(40,000.-원)
19시 40분 모텔 근처의 순대국집에서 순대국 특으로 저멱식사 해결(8,000.-원)
화원지맥이란 ???
화원지맥은 땅끝기맥 첨봉(352봉)에서 서북으로 가지를 쳐 화원반도를 떠받들고 목포앞바다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83.5 Km되는 산줄기로 영암호와 금호호의 남쪽 분수령이 된다.
덕음산(덕룡산, 327 봉) , 만대산(493봉), 금강산(488봉), 역마산(308.3봉), 성산(146봉), 형제봉(143.1봉), 국사봉(174봉), 옥매산(174봉), 일성산(335.1봉), 운거산(318봉), 금굴산(228봉), 깃대봉(229.3봉)을 지나며 이 산줄기의 이름은 반도를 지나는 특성을 살려 화원지맥이라 칭한다.
가시잡목들이 우거지기 전 가장 난해한 화원지맥에 들어 선답자들의 명성을 확인하며 더워지는 날씨에 많은 땀을 흘리며 힘들게 첫 구간 산행을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화원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남 강진군과 해남군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오래전부터 산행자료를 준비하고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확인하다 보니 온몸에 심한 생채기를 만들며 너무나 힘들게 마무리를 한 고흥과 여수지맥이 생각 나 선듯 나서지 못하고 있다가 올 봄이 지나면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 용기를 내 보는 시간이지만 여전히 많은 고민과 걱정이 앞서는 산행이기도 하다.
지난 주에는 일이 바빴고 주말에는 빠질 수 없는 외조카 결혼식이 잡혀있어 산행을 하지 못하고 쉬다가 월요일 밤에 늘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틀간 산행 준비 후 걱정하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멀고도 먼 해남군 바람재로 내려가는데 예상보다도 훨씬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많은 선답자들이 화원지맥을 진행하며 이전보다는 좋은 등로가 생긴듯 하지만 여전히 남도 특유의 가시잡목들이 남아있고 봄이 되면서 우거지기 시작하니 하루라도 빨리 가장 악명 높은 화원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만 한데 새롭게 만나게 될 화원지맥에서는 또 어떤 인연과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해가 많이도 길어져 가능하면 길게 진행해 전구간을 3구간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지만 현지 등로 상황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으니 급하지 않게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어둡기 전 하루를 마감하며 속도가 나지 않으면 원래 계획대로 4구간으로 나눠 진행해도 좋겠다는 계획으로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는 마음이 걱정속에서도 약간의 설레임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독한 가시잡목으로 인해 워낙 험하기로 유명한 화원지맥 마루금이다 보니 사전에 구간을 나눠 진행하기 어렵기에 산행 들머리인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 바람재로 올라 집에서 준비한 김밥과 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 한잔까지 마시니 새벽 5시 30여분이 지나면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출발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래도 예상보다 뚜렷하게 나 있는 분홍빛 진달래꽃 등로를 타고 첨봉을 다녀 와 건들재를 통과하고 상가마을을 지나며 이렇게 등로가 좋으면 혹시 오늘 뚜드럭재 넘어 흰재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도 가져 본 시간이지만 역시 화원지맥은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마루금이었다.
이름있는 덕음산을 들린 후 바위암릉으로 이뤄진 416.4봉으로 올라 진행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13번 공룡대로를 통과하는 해남터널 지나 493.1미터의 만대산이 지척으로 솟아있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금강산이 이어지는데 그 마루금 좌측 아래로는 생각보다 드넓은 해남읍 도시가 회색빛으로 빛나고 있어 잠시 바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악을 남겨본다.
바위암봉인 416.4봉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화사한 진달래꽃이 만발한 잡목 등로를 헤치며 힘들게 내려가 우슬재를 통과하고 다시 잡목속 고도를 높여 조망이 뛰어난 전망바위를 지나니 거대한 바위암릉이 길게 이어지고 그곳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우측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447.3봉에 도착을 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즐겨 본다.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진달래꽃과 소나무 넘어 저 멀리 방금 전 어렵게 넘어 온 덕음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 땅끝기맥의 두륜산과 그 좌측으로 주작산의 공룡능선에서 덕룡산으로 이어지는 톱날능선이 길게 이어지고 그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화원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어 지나 온 마루금과 첨봉이 좌측으로 휘어지며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환상의 파노라마를 즐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어렵고 힘들게 진행하는 산행이다 보니 잠시 불어오는 봄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말리며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망중한을 즐기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남겨진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신산경표 상 162 전지맥 산행의 마무리가 다가오니 가시잡목들로 명성이 자자한 화원지맥도 더 이상 미룰수가 없어 새순들이 돋아나기 전에 내려가 진행을 하기로 하니 괜시리 마음이 무겁게만 다가온다.
지난 주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일이 바빠지고 휴일엔 빠질수 없는 외조카의 결혼식이 있어 참석하다 보니 또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어 바쁜 일 정리하고 곧바로 해남으로 내려가는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두어번 쪽잠을 자고 자경동마을 위쪽의 바람재에 도착을 하니 새로운 에코브릿지가 생겼고 그 한쪽에 이정판과 이정표가 설치된 옆으로 넓은 공터가 있어 그곳에서 잠시 더 차박을 한 후 새벽 5시 10여분에 일어나 옆지기가 준비해 준 김밥과 오뎅국물로 아침까지 해결하고 나니 하루해가 길어졌는지 5시 30여분이 지나니 주위 사물이 보일 정도로 여명이 밝아지기 시작하고 곧바로 배낭 챙겨 멀고도 긴 가시잡목 천국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자경고개는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자경동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다음지도에는 바람재로 표기되어 있으며 바람이 세서 바람재란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도 한다.
자경동은 1587년 해남윤씨 16대손 윤선호가 삼산 송정에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 용동리 중에서도 산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인 도림마을이 도림, 분동, 화연동, 자경동의 4개 작은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경동에서 강진 수양리로 이어지는 산길은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일지암과 다산초당을 오가며 학문을 논하고 친분을 쌓았던 길로 알려져 있다.
출발하며 애마를 주차시킨 도롯가를 보니 첨봉까지 0.9 Km 거리란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남도오백리 역사숲길이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첨봉을 찍고 다시 내려와야 하지만 에코브릿지가 생기면서 다시 고갯마루로 내려왔다 오르기가 귀찮아 배낭까지 챙겨 벌목 후 나무들을 조림해 놓은 능선으로 올라 주능선 옆 나뭇가지에 배낭을 걸어 두고 가벼운 몸으로 북동방향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 줄기 상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걸어 오르니 벌목 후 나무들을 식재한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곧이어 묵은 임도에 가시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오르다 등로 우측을 보니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 자경동마을에 드넓은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작천소령과 주작산자연휴양림을 끼고 있는 땅끝기맥의 477.7봉이 바로 직척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는 주작산과 덕룡산의 경계지점에서 땅끝기맥 마루금의 방향을 바꾸는 436.9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옛추억을 상기시키며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용동리는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리로서 방애산과 오마산 등이 있어 골짜기가 많고 등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용동리(龍洞里)란 지명은 용이 하늘로 오른 못이 있었다 하여 비룡골 또는 비룡동, 비렁골, 용동이라 불리던 것이 행정구역 통폐합 때때 고정된 것이다.
자연마을로는 도림리, 분동리, 송계리, 신동골, 재경골, 화개동이 있는데 이중 신동골과 화개동은 양촌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되었고 용동마을은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주작산 줄기에 터를 잡고 있으며 가옥은 산줄기 밑으로 흩어져 있는데 주작산은 마을 앞 동남쪽을 가로막고 있다.
도림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고 동쪽으로는 주작산, 남쪽으로는 대둔산, 서쪽으로는 삼산면 덕음산, 북쪽으로는 첨봉의 자락인 자경동이 에워싸고 있으며 이목마을은 오마산에 둘러싸인 마을로 양촌제를 축조하면서 이목이 수몰되자 신동이 이목마을로 바뀌었다.
남동쪽으로 생각보다 가깝게 다가 와 있는 땅끝기맥의 주작산과 덕룡산 경계지점의 산줄기들과 작천소령을 눈으로 확인하며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굵은 편백나무들이 몇그루 보이는 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약간 더 휘어져 진행되고 다시 시작되는 키작은 산딸기 가시나무들이 우거진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마루금을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여름철 우거졌다 말라있는 잡풀들과 잡목 사이로 잠시 후 만나야 할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는 잠시 후 만나야 할 화원지맥의 덕음산과 바위암봉으로 이뤄진 416.4봉이 사진 좌측으로 우뚝 솟아 있으며 우측 뒤 저 멀리 쌍봉처럼 보이는 봉우리들은 깃대봉과 만대산 을 좌측으로 지나 금강산이 엷은 박무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만대산 우측 뒤 저 멀리로는 흑석지맥의 흑석산과 가학산 및 호미동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월출산과 서기산 줄기가 낮아진 산줄기의 모습으로 엷은 안개속에 미소를 보내고 있는 듯 보인다.
생각지도 못했던 화원지맥의 만대산과 금강산 방향과 흑석지맥 그리고 땅끝기맥까지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우거졌던 가시잡목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다 이제 등로 우측을 보니 남쪽으로 몇번인가 올랐고 한번은 예상보다 많은 눈이 쌓여 오소재까지 진행하지 못하고 작천소령에서 진행을 멈췄던 따읕기맥의 주작산 앞으로 톱날처럼 흐르는 공룡능선이 보기에도 아찔한 풍경으로 새벽잠을 깨우고 있다.
덕룡산과 주작산의 경계를 이루는 작천소령에서 저 톱날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오소재로 내려설 수 있는데 거리에 비해 칼등 암릉으로 이뤄져 있어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길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이 많이 내포하고 있는 구간이라 조심하게 진행해야 할 구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등로 좌우측으로 예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과 조망에 취해 많은 사진들을 남기다 보니 걱정했던 가시잡목보다는 환상의 자연에 취한 기분으로 드디어 땅끝기맥에서 분기하는 화원지맥의 시작점인 첨봉에 도착을 해 잠시 옛추억에 젖어보는 시간도 가진 후 몇장의 사진을 담아 본다.
첨봉(352m, 땅끝기맥 상 화원지맥 분기점)은 한자로 뾰족할 첨에 봉우리 봉자이니 뾰족한 봉우리를 뜻하는데 해남군의 지명유래를 찾아보니 삐죽산이 보이는데 그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삐죽산(원경산 또는 첨봉)은 옥천면 대산리와 백호리 및 용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40m이고 꼭대기가 뽀족하고 높아서 북쪽으로 멀리 바라보며 경치가 아름다우며 옥봉(玉峰)이라고도 하니 백옥봉의 아호가 여기에서 인연했다고 한다.
첨봉은 강진군과 해남군의 군계로서 화원지맥은 온전히 해남구역임에도 이곳 이정표에는 강진군에서 화원지맥을 표시했다.
개인적으로 이제 세번째 오른 첨봉인데 다시 한번 더 오를 수 있는 기회나 있을지 몰라 조금 더 머물며 마지막이 아니길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자경동고개 일명 바람재에서 약 900미터을 완만하게 올라 화원지맥의 분기점인 첨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과 추억들을 남기고 다시 올라갔던 잡풀과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이제 진행방향인 남서 방향으로 바람재 지나 올라야 할 388.3 삼각점봉이 우측으로 마루금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382.4봉이 나무사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 마루금 좌측 뒤 저 멀리로는 땅끝기맥의 두륜산이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저 두륜산 역시 몇번인가 올라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을 모두 남겼는데 어느 곳이든 처음의 희열과 열정은 회가 거듭될수록 반감되는지 이제는 조금 더 세세한 풍경까지 찾아 봐도 오래된 첫 경험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듯 그리워지기만 한다.
그 두륜산 좌측으로는 오소재 지나 주작산으로 이어지는 남도의 공룡능선이 보기에도 톱날같은 형상으로 다시 한번 초대를 하지만 언제 다시 들릴지 모르니 눈으로나마 많은 추억으로 남겨 본다.
내려오면서도 오를때와 마찬가지로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지맥 마루금들을 확인하다 보니 편백나무 군락지 지나 금새 나뭇가지에 배낭을 걸어 둔 곳에 도착을 해 무사히 배낭을 회수한 다음 여전히 벌목된 능선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식재된지 얼마되지 않아 제대로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자경동고개 일명 바람재 위 에코브릿지를 통과하며 진행 방향을 보니 능선으로 오르는 입구에 반바지님이 215미터의 바람재란 커다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놔 사진에 담고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른다.
자경고개는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자경동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다음지도에는 바람재로 표기되어 있으며 바람이 세서 바람재란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도 한다.
고갯마루 좌측 아래로는 새벽에 조차시킨 애마가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고 하루종일 혼자 자리를 무사히 지키고 있기를 희망하며 진행한다.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에코브릿지 위 바람재를 지나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등로 주변으로는 흐드러지게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꽃들이 화사하게 반겨줘 그나마 다행이다.
초반부터 가파른 진달래 능선을 따라 어렵게 오르니 갑자기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고 몇장의 사진으로 일출장면을 담은 후 이어지는 잡목들과 진달래꽃들이 혼재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바위와 약간의 산죽지대를 통과한 후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과 준희님이 걸어 둔 이정표가 보이는 388.3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이마의 땀방울을 닦으며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잡목들이 우거져 선답자들의 고통스러운 산행후기가 거짓이 아님을 확인하지만 아직까진 가시들이 없고 진달래꽃이 만발해 고통을 덜어주니 견딜만하고 이정도 등로라면 뚜드럭재 넘어 조금 더 진행할 수 있으리란 희망으로 첫번째 삼각점봉을 출발한다.
삼각점 지나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관목의 참나무들과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꽃이 만개해 산객의 외로움을 달래주며 친구가 되어준다.
잠시 후 보이지 않던 키 작은 산죽지대가 짧게 나타나고 다시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타고 이리저리 묘기를 부리듯 전진하니 관목의 활엽수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295.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295.2봉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여전히 잡목들과 진달래꽃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이어지고 간간히 파람잎들이 달려있는 어린 동백나무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곧이어 제법 높은 높이로 돌을 쌓아 둔 돌담이 나타나는데 성터는 아닌듯 보이는데 왜 돌담이 이곳에 존재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돌담 지나 계속 완만하게 잡목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진행 방향으로 보니 건들재 넘어 올라야 할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382.4봉과 그 우측 뒤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관목의 동백나무 군락지 지나 용동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건들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양쪽으로는 노란 개나리꽃들이 만개했던 지고 있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 온다.
건들재(건댓재, 용동길 2차선 포장도로)는 좌측으로 전남 해남군 옥천면 용등리와 우측의 백호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그 지명유래는 찾을 수 없다.
건들재 도로를 건너 콘크리트 옹벽이 사라진 비포장임도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지도를 보니 이 비포장임도가 잠시 후 능선에서 내려 와 지나야 할 상가리 상가마을로 이어지는 듯 보여 잠시 고민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바꿔 좌측 잡목 능선으로 붙으니 관목으로 변한 편백나무 조림지가 짧게 나타나며 등로를 만들고 있어 잠시 편안하게 오른다.
하지만 그 편백나무 조림지가 끝나자마자 지독한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고 등로 위로는 제법 굵은 바위너덜들이 깔려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힘들게 오르니 관목의 활엽수들이 나타나 그마나 진행에 도움을 받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새벽부터 만났던 295.2봉과 388.3 삼각점봉 넘어 좌측 뒤로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이 보이고 그 뒤로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도 보이며 우측 뒤로는 땅끝기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덕룡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참으로 힘들게 급경사 오르막 잡목등로를 헤치며 올라 드디어 좌측으로 382.4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멍개가시나무와 고사목이 그 갈림삼거리 분기점을 지키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제 서쪽에서 북쪽인 우측으로 크게 꺽어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잡목등로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잠시 후 굵은 소나무들과 활엽수들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과 진달래꽃이 만개한 내리막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전진하니 갑자기 전기톱 소음이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하고 등로 우측으로 벌목 현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살펴보니 등로 우측 바로 아래에서 몇명의 사람들이 벌목을 하고 있고 그 뒤 저 멀리 옥천면 들판을 가운데 두고 좌우측으로 화원지맥 마루금이 반원형을 그리며 병풍처럼 둘러싸고 그 뒤 저 먼쪽 좌측으로는 흑석지맥의 흔석산과 가학산 및 호미동산이 마치 거대한 하나의 산처럼 솟아 있고 그 우측 뒤 먼곳으로 땅끝기맥의 월출산에서 우측 뾰족한 서기산 방향으로 흐르는 산줄기의 흐름이 잘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며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갑자기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어 더욱 어려운 등로를 만들고 이리저리 벌목들을 넘어 우측 벌목지로 가니 진행방향인 북쪽으로 상가리 지나 낮고 둥그런 195.5봉 넘어 좌측의 덕음산과 우측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416.4봉 그리고 우측 끝자락으로 깃대봉과 만대산이 보이고 그곳 바로 뒷쪽으로 흑석지맥의 거대한 봉우리들과 우측 가장자리 방향 제일 먼쪽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땅끝기맥의 월출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이 잡목속에서도 그나무 위안을 주고 있다.
진행 방향과 북동 방향으로 화원지맥과 흑석지맥 그리거 땅끝기맥의 마루금들을 확인하고 벌목지를 따르니 갑자기 키가 큰 산죽터널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산죽터널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벌목지 좌측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조금은 편안하게 그 벌목지를 따라 내려가니 최근에 조성된 듯한 수원백공 부부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국가지점벙호판에 삼산평활 임도기점 4.0 Km란 이정판이 서 있는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벌목하는 전기톱을 사용하는 작업자들이 타고 올라 온 트럭 2대가 보이고 아저씨 한분에게 인사를 건네고 물어 보니 편백나무와 닮아 있지만 가벼워 경제적 가치가 없는 침엽수림을 제거하고 후박나무 계통의 나무들로 수종을 개량하고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 비포장임도에서 작업자와 잠시 수종 개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벌목된 나무들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벌목 후 식재지가 펼쳐지는데 살펴보니 잎이 넓고 두꺼운 식물인데 처음에는 후박나무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종류의 식물이다.
그곳에서 알바하는 줄도 모르고 편안하게 그 벌목 후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며 등로 좌측인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해남군 삼산면 마을과 들판 뒤로 병풍산과 태양산 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 삼산천이 엷은 안개를 피우며 흐르며 그 우측으로는 달바위산 능선이 보이는데 사진 우측 자아자리 앞으로는 서당산과 호산 방향의 산줄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담고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등로는 식재지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잠시 편안한 벌목지로 알바를 하고 있어 우측으로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며 힘든 산행을 이어가지만 생각지도 못한 남서 방향의 산줄기와 삼산천을 사진에 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린 묘목이 식재된 방향으로 짧은 알바 후 정상 마루금을 찾아 진행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김해김공 묘지지대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간다.
진행 방향으로 잠시 후 올라야 할 137.5봉이 하얀 산벗꽃 위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비포장임도로 바뀌면서 북쪽 저 멀리 195.5봉 지나 덕음산과 만대산으로 이어지는 화원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풍경들도 보인다.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임도 우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그 아래 백호리와 옥천면 마을들과 들판 넘어 따읕기맥의 서기산 줄기가 여전히 엷은 박무속에 아름답게 보이고 있어 사진에 남기고 조금 더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는 직진의 좌측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되는 임도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여전히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키가 큰 시누대가 나타나는데 많은 선답자들이 우측 우회 등로를 이용했늕 마루금보다 우측 우회 등로가 더 잘 나 있어 잠시 고민하다 좌측 시누대 숲을 뚫고 정상 마루금으로 오르니 시누대 구간만 통과하면 진행이 조금은 수월해 진다.
편백나무인지 일본삼나무 군락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가 보이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정상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137.5봉에 도착을 하는데 북쪽 방향으로는 높은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그 철망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다만 부뜰이 홀대모 운영자님이 진행을 하면서 각 봉우리마다 이정판을 설치했는데 왜 이곳만 빼 먹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정판도 없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보이는 137.5봉에서 사진만 남기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철망을 따라 내려가니 이곳은 완연한 여름으로 달려가기 시작하며 온 세상이 초록으로 변하고 그 초록을 즐기기도 전에 희미한 등로를 찾아 걸어가야 하는 산객은 조바심은 내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잠시 후 다시 시누대와 동백나무 군락지가 짧게 나타나고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땅끝천년숲옛길이란 산행과 관련없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좌측 옆으로는 상가 버스정류장과 거대한 상가저수지 그리고 도로 건너편으로 물좋은 가재골 및 상가마을 표지석과 구룡목 설명판이 서 있는 가재길 2차선 포장도록 지나는 구룡목재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구룡목재(80m, 구렁목, 가재골과 상가마을 입구 표석 및 상가마을유래 안내판)은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백호리의 용심마을 중에서도 김해김씨들이 모여살고 있는 금동마을에서 삼산면 상가리 중리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구룡목이란 안내판이 있어 읽어보니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산맥의 기운을 읽고 그에 기대어 터를 잡아 농토를 일구고 마을을 이루어 살았으며 부와 건강 그리고 뛰어난 인물은 그 산맥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고 믿었다.
백두대간의 호남정맥에서 이어 나온 땅끝기맥이 덕음산과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화원지맥으로 나뉘는데 그 화원지맥이 세력을 일으키는 지점에 구룡목재가 위치한다.
1914년 이전에는 해남군 녹산면에 속해 있었으며 현재 백호리 용심마을과 삼산면 상가리 중리마을이 경계를 맞대고 있다.
인접한 계동마을은 고려시대 치소(治所-행정기관이 있던 곳)인 옥산고성이 있었던 곳으로 이 구룡목재가 군사적으로 또 지리적으로 요충지였음을 증명한다.
선사지대부터 해남의 유력한 세력들이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중요한 육상통로로 이용되었으며 또한 임진왜란 이후에도 대흥사와 그 이남을 오가는 모든 문화와 사람들이 거쳐 갈 수 밖에 없는 길목이었다.
그 구룡목재에서 가재골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상가저수지 방향으로 나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자마자 다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하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묵은 밭경작지와 무명묘지지데 지나 잘 정리해 둔 밭경작지와 농막이 나타나는데 아저씨 한분이 주위를 정리하고 있어 물어 보니 초지를 파종한 밭농작지로서 농사철에 쉬면서 농기구들을 보관하기 위한 농막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으로 강아지 두마리도 함께 키우고 있다.
그곳을 지나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좌측 마늘밭 가장자리로 그물망이 설치된 매화과수원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나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진행 방향 우측 묘지들과 밭경작지 넘어 올라야 할 무명봉 뒤로 195.5봉이 뚜렷하게 올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일본삼나무들이 보이는 언더 넘어 다시 도로 좌우측으로 시누대가 우거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오지만 등로는 도로로 변해 있어 진행에 어려움은 없다.
그 시누대 언덕을 넘어가자마자 진행방향으로 상개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 뒤 저 멀ㄹ 이제부터 올라야 할 무명봉과 195.5봉이 지척으로 다가오는데 아직까지는 해발고도도 높지 않아 진행에 대한 부담은 덜한 시간이다.
상개마을이 있는 상가리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작은 하천이 흐르며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데 가재 위쪽이 되므로 상가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웃가재, 바구당거리, 새터, 장군바웃골, 점, 중리마을 등이 있는데 웃가재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상가리의 그것과 같고 바구당거리마을은 바위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새터마을은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장군바웃골마을은 장군이 짚은 흔적이 있다고 전해지는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점마을은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중리마을은 중앙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상가리 상개마을로 내려가니 지나온 방향으로 첨봉까지 4.15 Km에 우측의 주작산휴양림까지는 9.4 Km 란 거리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보이는 갈림사거리에서 직진의 창고 건물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청주한공 묘자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과 뒷쪽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화원지맥 마루금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빙 돌아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방금 전 통과한 상가리 상개마을도 다시 한번 더 사진에 담고 오르니 무명묘지3기 지나 계단시 밭 경작지 처럼 생긴 등로에 관목의 활엽수들이 자라고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한동안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다시 무명묘지 2기가 보인다.
그 묘지들을 지나 여전히 완만하게 이어지는 약간의 잡목 등로를 따라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도상 195.5봉에 도착을 하니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95.5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북쪽에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크게 바뀌고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 등로를 헤치며 잠시 걸어가니 진행 방향 앞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올라 만나야 할 좌측의 덕음산과 중앙부의 바위암봉인 416.4봉 그리고 우측으로 깃대봉과 만대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사진에 담고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힘겹게 전진하니 다시 잡목들이 약간 사라지고 관목의 활엽수들 사이로 진분홍빛 진달래꽃이 만발해 잡목으로 인한 산행의 피로도를 많이도 줄여주고 있다.
지독한 잡목속에 진행 방향으로 덕음산과 416.4봉 그리고 깃대봉과 만대산을 살펴보고 어렵게 그 잡목 구간을 빠져 나가니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가 열리면서 관목의 활엽수와 진달래꽃이 혼재되어 있는 풍경이 펼쳐지더니 금새 굵은 벗나무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84.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이곳까지의 등로는 예상보다는 좋지만 그렇다고 진행하기 편안한 상태는 아니기에 생각보다 속도가 나질 않아 날머리를 어디로 정해야 될지 갈팡질팡하는 시간인데 진행하면서 고도차이가 크고 기온이 올라 초여름같은 무더위로 힘들게 진행하였기에 뚜드럭재까지 진행한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산행이 되었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84.5봉을 지나니 잡목이 줄어들고 화사하게 피어있는 분홍빛 진달래꽃들이 등로를 밝혀 줘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전진하니 69번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서쪽 방향으로 방향을 바뀌고 있다.
진달래 등로를 따르니 남도 특유의 단단하고 키가 작은 활엽수들이 등로를 차지하고 그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27.3미터의 덕음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그 갈림삼거리에 배낭을 벗어 놓고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산죽 군락지가 보이고 오렵게 빠져 나가니 드디어 준희님의 정상판만 걸려있는 327.3미터의 덕음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남겨본다.
덕음산(327.3 m, 덕은산 德隱山, 덕룡산)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와 삼산면 상가리 및 옥천면 영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옥천천(玉泉川)의 발원지이고 해남읍 연동리(蓮洞里)의 주산(主山)이다.
명칭 유래를 보면 덕음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덤벙산으로 부르며 덤벙산을 한자로 차자하여 덕음산(德陰山)이라고 명명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덕음산은 땅끝기맥에서 뻗어내린 화원지맥에 속하며 옥천천의 발원지이고 해남천의 지류인 남송천의 발원지기도 하다.
덕음산 중턱에 천연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된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이 있고 정상 부근에는 신선바위와 유암(油岩) 등이 있다.
해남군지(1925)에 유암은 군의 동남간 10리(약 3.93㎞)에 있고 바위가 산에 붙어 있으며 곁에 계택(溪澤)이 없고 날씨가 맑으면 마르며 비가 오려면 물이 분다.
축축함으로 그 진액(津液)의 낮고 깊음을 보아서 시우(時雨)의 다소(多小)와 가뭄을 점쳤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덕음산 아래에는 해남읍 연동리 입향조인 어초은 묘지와 500여 년 동안 내려온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 및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과 땅끝순례문학관이 있다.
덕음산 자락의 어초은 묘지와 녹우당은 풍수지리의 형국에서 좌청룡과 우백호 안산을 잘 갖추고 있어서 해남에서는 명당터로 알려져 있다.
호남읍지(해남)에 덕음산은 현의 동남으로 7리(약 2.75㎞)에 있고 기암이 우뚝 솟아 중봉(重峰)이 나래와 같으니 그 봉우리를 이름하여 진봉(振鳳, 봉이 펼치는 형국)이라고 하며 윤구가 아버지를 여의고 그 아래서 3년을 시묘하고 자손이 눌러 살며 세상이 변하여 관명을 누리나 세상이 백련동이라 일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은 사적 제16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등산로는 우슬재에서 신선바위 왕복에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덕음산 정상에서 추억을 남기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복귀해 벗어 놓은 배낭을 둘러메고 이제 북쪽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가니 보도불럭들이 깔려있고 관목들이 자라고 있는 폐헬기장 지나 산죽이 빼곡하고 그 사이로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난해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힘들게 산행을 진행한다.
힘들게 그 산죽지대를 빠져 나가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심호흡하며 남쪽으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다녀 온 덕음산이 지척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땅끝기맥의 두륜산이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로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며 그 우측 옆으로는 현산면의 비조산과 화산면의 선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선은지맥 마루금들이기에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선은지맥을 확인하고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해남읍 연동리의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과 해남윤씨녹우당 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서당산과 호산이 솟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사적 제167호로 지정된 녹우단은 해남윤씨 일가의 종택과 사당 등을 함께 이르는 말로서 녹우당(錄雨堂)은 고산 윤선도(尹善道)가 살았던 사랑채를 일컫는데 지금은 해남윤씨 종가 전체를 녹우당이라 부른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어초은(漁樵隱) 효정(孝貞. 1476-1543)이 백련동(現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15세기 중엽에 지은 건물로 녹우당이란 이름의 유래는 집 뒤 산자락에 우거진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녹우단은 덕음산을 주산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 최고 명당자리 중 하나로 유명한데 덕음산을 뒤로 그 줄기인 성매산/옥녀봉/호산을 잇고 있어 흔히 풍수지리의 산서(山書)에서 말하는 현무/청룡/백호/주작이 잘 짜여진 명당자리로 손꼽힌다.
해남윤씨는 세 곳의 중심영역이 있는데 첫 번째는 해남 윤씨가 처음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강진군 도암면 강정리 덕정동으로 해남윤씨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은 백련동 녹우당에 터를 닦은 어초은 윤효정이 태어나고 그의 아버지 윤경(尹耕)을 비롯해 조부인 윤사보(尹思甫)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두 번째로는 해남윤씨의 윗대 선조들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시조 윤존부(尹存富)를 비롯하여 7세 윤록화(尹祿和), 중시조인 윤광전 (尹光琠)과 그의 아들인 윤단봉(尹丹鳳), 윤단학(尹丹鶴)의 산소가 있는 강진군 도암면 계라리 한천동이다.
마지막으로 윤효정이 해남으로 장가들어 자리를 잡고 해남윤씨가를 번성시킨 곳이 백련동으로 지금의 연동이다.
고산의 5대조인 윤경은 7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막내인 윤효정이 해남읍 백련동에서 크게 가업을 이루고 어초은공파를 형성하였으며 이후 해남윤씨가 번창하게 되었다.
어초은 선생이 해남윤씨를 이 지역의 명문집안을 성장시키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경위는 당시 해남에서 가장 큰 기반을 가지고 있던 대부호이자 향족(鄕族)인 초계정씨(당시 해남정씨)의 사위가 되어 경제적 기반 확보를 이룰 수 있었으며 이후 자손이 영주할 새터를 잡고 가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초은 선생은 해남을 학문의 길로 이끌었다는 금남 최부선생으로부터 수학하였고 윤구(尹衢), 윤행(尹行), 윤복(尹復) 세 아들을 문과에 급제 시키게 되며 해남윤씨가를 명문사족으로 자리 잡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국문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단가 문학의 최고봉인 고산 윤선도를 배출하였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1626-1694)는 현재 심사정 및 겸재 정선과 함께 조선 후기 삼재(三齋)중 한명으로 문인화가로 이름이 높았고 국보인 자화상을 그렸으며 아들 낙서 윤덕희와 손자 총고 윤용의 3대에까지 그 예술적 재능이 이어졌다.
녹우당은 조선후기 공재 윤두서의 학문과 예술의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 및 소치 허유 등 쟁쟁한 학자와 문인 예술가들이 머물거나 교류한 곳이 되어 해남의 유교 문화와 문화 예술의 중심공간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녹우당 뒤 저 멀리 서당산과 호산 뒤로는 달바위산과 남각산도 보이는데 그 남각산 뒷쪽으로는 급격하게 낮아지는 산줄기로 이어지는 화원지맥 마루금이 끊어질듯 이어지는 비산비야를 이루고 있는 모습도 살짝 눈에 들어 온다.
전망바위에서 지나 온 덕음산과 두륜산 그리고 흑석지맥 및 녹우당을 살펴보고 남각산 뒤로 휘돌아 가는 비산비야를 이루는 화원지맥까지 확인한 후 우측 진행 방향을 보니 416.4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다시 약간의 산죽과 분홍빛 진달래꽃이 만발한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썩어가는 고사목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고 곧이어 진달래 등로 지나 키 작은 동백나무와 산죽이 혼재되어 있는 난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어렵게 통과한다.
난해한 동백나무와 산죽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빠져 나가니 다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오늘 걸어 온 화원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우측 뒤로는 두륜산과 선은지맥 분기점이 있는 도솔산 그리고 좌측 첨봉 뒤로 주작산과 공룡능선이 환상의 풍경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옥천면 백호리의 마을과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우측의 화원지맥 마루금 뒤로 주작산과 공룡능선이 톱날처럼 날카롭게 펼쳐져 있고 주작산자연휴양림이 있는 작천소령 좌측으로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 뒤로는 덕룡산과 길게 이어지는 바위암릉이 옛 추억을 떠 올리게 만들고 있다.
그 주작 덕룡 바위암릉 좌측 뒤 저 멀리로는 숨어 있는 강진만 넘어 가을 억새로 유명한 장흥군 천관산이 거대한 산군을 이루며 몇번인가 만났던 아름다운 추억을 들려주고 있어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다시 눈을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옥천면 마을과 드넓은 들판 그리고 좌측 앞으로 영춘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13번 공룡대로가 좌측으로 휘돌아 가고 옥천면 뒷쪽으로는 18번 해강로가 길게 뻗어 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뒤 좌측으로 땅끝기맥의 서기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는 땅끝기맥에서 약간 떨어진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 지나 덕룡과 주작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환상을 노래한다.
산세를 낮춰 이어지는 땅끝기맥 마루금 뒤 저 멀리로는 강진군과 장흥군의 400-500미터급의 산줄기들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저곳은 호남정맥과 사자지맥 앞으로 흐르는 무명의 산줄기들이다.
이제 진행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바위암릉으로 이어지는 416.4봉이 지척으로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로 우슬재 지나 올라야 할 화원지맥의 깃대봉과 만대산이 드높게 보이고 그 만대산 우측 뒤 저 먼곳으로는 옥천면 마을과 월평천 그리고 13번 공룡대로를 넘어 흑석지맥의 주산인 흑석산과 가학산 및 호미동산이 하나의 봉우리처럼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만대산 좌측으로 보였던 금강산과 해남읍은 사진에 잘려 담지 못하였는데 바로 앞 바위암봉인 416.4봉으로 오르며 환상적인 모습으로 보게 될 것이기에 아쉬움은 없다.
이제 눈을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생각보다 크고 넓은 해남읍이 바로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해남읍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는 화원지맥 마루금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바로 앞으로는 신안리 들판과 생미저수지 그리고 호산이 보이고 사진 정중앙 뒤로는 남각산과 그 우측으로 화원지맥의 역마산이 보이는데 그 역마산에서 남각산 뒤로 흘러 좌측의 나즈막한 비산비야로 보이는 산줄기로 이어지는 환상의 화원지맥 마루금이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저 역마산 가기 직전 뚜드럭재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처음 생각은 저 역마산 지나 806번 산이로나 18번 공룡대로인 흰재까지 갔으면 좋았겠다 생각했지만 에상은 예상일 뿐 실제 진행하다 보니 여러가지 변수들로 인해 뚜드럭재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산행이 되었다.
다시 눈을 해남읍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앞으로 해남읍 들판과 저수지들 우측 뒤로 서당산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 무명 산줄기가 마치 독립된 산처럼 솟아 있는데 높이가 240미터급으로 해남읍 내사리 방향의 무명봉도 보인다.
그 바로 좌측으로는 삼산천과 13번 땅끝대로가 희미하게 보이고 그 좌측으로 조만간 만나야 할 선은지맥의 태양산과 병풍산 줄기가 좌측 두륜산과 분기점인 대둔산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 발걸음을 조금 더 붙잡는다.
그렇게 사방팔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출발하려는데 서당산과 무명봉 뒤 사진 우측 가장 먼 곳으로 희미한 산줄기가 보여 지도를 꺼내 확인해 보니 짧은 마지막 구간만 남겨 놓고 있는 진도의 진도지맥인데 점찰산 주변의 산줄기처럼 보인다.
기대하지도 못했던 선은지맥과 진도지맥까지 확인하고 바위봉 지나 암릉을 타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바위 사이로 빛바랜 잡풀들과 잡목들이 자라고 곧이어 바위봉에 도착을 하는데 바로 눈 앞으로 더 높은 바위봉이 보이지만 나무들이 전혀 없어 정상이 아닌 잡목들이 보이는 이곳 등로 좌측 잡목 가지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놨고 그 주위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함께 걸려있는 416.4봉에 도착을 해 해남읍을 배경으로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데 해남읍은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정상판을 배경으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가장 높은 바위암봉으로 오르니 드디어 진행 방향인 북쪽과 북북서 방향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우슬재 넘어 깃대봉과 만대산 그리고 좌측의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화원지맥 마루금이 결코 쉽지 않은 산행임을 알리고 있다.
화원지맥 전구간을 통틀어 가장 높고 장쾌한 산줄기가 이어지는 최고의 구간이 펼쳐지는 곳이기에 다시 지도를 꺼내 주위 산줄기와 봉우리들 그리고 마을과 들판들을 확인하는 순간은 시간적으로 조금 지체는 되지만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바위암봉 정상에서 다시 한동안 사방팔방으로 둘러보니 처음 바위봉에서 살펴 본 모습과 동일한 풍경과 조망들이기에 많은 사진으로 남기고 출발하려다 남서쪽을 살펴보니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과 어초은사당, 해남윤씨녹우당, 추원당, 어초은묘, 땅끝순례문학관 및 백련지 마음무덤이 막힘없이 전부 내려다 보여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해 본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고산 윤선도 유적지 내에 위치한 해남윤씨의 유물전시관인데 한옥으로 지어진 유물전시관은 고산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으며 2개의 전시관으로 나눠진 유물전시관에는 총 4,600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해남윤씨의 역사와 전통 및 사대부가의 삶에 대하여 기록된 고문서와 서책들을 전시하고 있고 제2전시실에서는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의 생애와 학문 및 문학 그리고 그림 등을 전시하고 있다.
고산 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유물로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보물 제481호), 고산 윤선도 수적관계 문서(보물 제482호), 지정14년 노비문권(보물 제483호)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해남윤씨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알 수 있다.
그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뒤로는 호산과 서당산이 앞을 막고 그 뒤 저 멀리 좌측으로는 선은지맥이 정중앙 가장 먼곳으로는 진도지맥이 그리고 사진 우측 가장 먼곳으로는 내일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화원지맥 제2구간 날머리인 황산면 마을이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는데 박무로 인해 확실하게 분별하기는 쉽지 않다.
바위암릉과 암봉으로 이뤄진 416.4봉 넘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분홍빛 진달래꽃이 만발한 아래 키 작은 산죽 등로가 이어지고 힘들게 그 산죽 등로를 통과하니 곱게 피어난 진달래꽃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잠시 진달래 터널을 지나며 고통을 해소하니 다시 산죽터널이 나타나고 산죽지대를 지나니 관목의 참나무에 준희님 이정판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그 주변으로 진달래꽃들이 활짝 펴 있는 383.7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그 이정판 앞에는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삼각점 표시가 없는데 어떤 표식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봉우리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여전히 이 산객만큼 키가 큰 진달래나무에 분홍빛 꽃이 만개해 있고 그 아래에는 키 작은 산죽이 등로를 뒤덮고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어 조심스럽게 천천히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산죽이 끝이나고 작은 바위가 나타나는데 주위로는 여전히 분홍빛 진달래꽃들이 아름답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383.7봉이 바로 눈앞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백호저수지 지나 저 멀리 오늘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바람재와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이 보이고 그 바로 뒤로 작천소령 지나 주작산이 솟아 있으며 그 좌측으로 톱날 형상의 공룡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그 공룡능선 뒷쪽으로도 둥그런 봉우리가 보여 지도로 확인해 보니 가을 억새로 유명한 장흥의 천관산이다.
보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조금은 달리 보이는 풍경과 조망을 구분해 보는 재미가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덕음산에서 416.4 바위암릉과 바위봉 그리고 383.7봉을 넘어오기까지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일망무제의 풍경과 조망에 취하다 보니 생각보다 속도가 많이 느려져 있고 그래도 예상보다 나쁘지 않은 등로를 따라 순조롭게 진행은 하지만 기온이 오르고 고도차이가 많아 체력적으로 조금씩 어려움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동쪽과 북동쪽으로 펼쳐진 옥천면 마을과 들판들 그리고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친 땅끝기맥 마루금을 확인하며 천천히 내려가니 제법 키가 큰 산죽지대가 펼쳐지는데 그 위로 관목의 활엽수들과 진달래꽃들이 보이고 등로가 보이지 않기에 조심해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그물망이 보이는데 오래되었는지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되어 있다.
잠시 더 그 그물망을 따라 내려가니 무명안부 가까운 곳에 나즈막한 돌담이 보이는데 지도에는 별바위로 표시된 곳으로 돌담의 이유를 몰라 아쉽기만 하다.
돌담을 지나 산죽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산죽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를 지나자마자 이 산객의 키만큼 큰 산죽터널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2주전 솔잎에 눈을 다쳐 고생한 경험이 있어 눈을 보호하며 어렵게 키가 큰 산죽들을 헤치며 천천히 조심하며 오르니 도중에 바위들이 산죽지대 가운데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두어번의 바위를 지나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도 확인하며 조금 더 전진하다 뒤돌아 보니 산벗나무 뒤 저 멀리 383.7봉이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산죽이 사라지며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74.5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잠시 심호흡을 해 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를 지나니 다시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그 산죽지대를 빠져 나가니 갑자기 키가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지독하게 우거진 키 작은 잡목들과 관목의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며 진행 방향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우슬재와 산판도로 그리고 깃대봉과 만대산 좌측 뒤로 금강사나지 이어지는 화원지맥의 하이라이트 구간이 시원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진행 방향과 등로를 가늠해 보고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해 진행을 어렵게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13번 공룡대로 4차선 포장도로와 영춘저수지 그리고 옥천면 마을과 들판이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고 그 뒤 저 멀리로는 서기산에서 남쪽으로 산세를 낮추며 흐르는 땅끝기맥과 그 땅끝기맥 뒤로 솟아 있는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 우측 아래로 덕룡산의 바위암릉이 다시 눈길을 잡는다.
몇장의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우거진 잡목가지마다 연두빛 새순이 피어나며 변화되는 계절을 알려주고 조금 더 그 잡목등로를 따르니 우거진 굵은 편백나무 몇그루가 서 있는 해남터널을 통과하는데 이 해남터널 아래로는 13번 공룡대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13번 공룡대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해남터널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콘크리트 초소와 교통호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굵은 편백나무 군락지가 펼쳐지며 무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이제 차량 소음들이 귓전을 때리기 시작해 지도를 보니 해남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우슬재가 가깝게 다가 와 있어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다 허기가 져 배낭 내려 준비한 빵과 과일로 배를 채우고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힘을 내 편백나무 군락지를 내려가니 드디어 우슬재에 도착을 해 도로를 건너니 우슬재정상 설명판과 해남군 5.18사적지 해남7호라는 표지석을 확인한다.
우슬재(150m, 우슬치, 해남로 2차선 포장도로, 옥천면과 해남읍의 경계)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해남읍 신안리와 옥천면 영춘리 사이의 고개로서 만대산(443m)과 덕음산(327m) 사이의 골짜기에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지형이 소가 무릎을 꿇고 있는 형국이라고 하는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청구도(24층 15면)에는 우슬치(牛瑟峙)로 대동여지도(20첩 4면)와 다른 고지도에서는 우슬치(牛膝峙)라고 한자가 각기 다르게 표기되어 있으며 인근에 우슬저수지가 있다.
우슬재에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우슬재정상 설명판을 읽어 보니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 21일 밤부터 전개된 계엄군의 광주봉쇄작전에 따라 해남 주둔 31사단 93연대 2대대가 22일 밤 9시에 이곳 우슬재에 무장병력 40여명을 배치하였다.
이들은 23일 오전 우슬재 정상을 통과하려던 시위대 차량을 향해 총격을 가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내용으로 평범해 보이는 고갯마루가 피로 물든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고갯마루로 변한 내용이었다.
그 우슬재 지나 콘크리트 계단으로 올라 약간의 잡목과 빛바랜 잡풀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풀이 무성한 무명묘지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는데 좌측 가까운 곳에서는 여전히 포크레인이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소음이 심하게 난다.
산판도로를 내면서 만들어진 높은 절개지를 힘들게 오르니 다시 잡목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이제는 조급하지 않게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진행하는데 신경을 쓰며 속도를 무시하니 마음만은 편안해 진다.
하기야 서두른다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마음 비우고 잡목들을 헤치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447.3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잡목 사이에 걸어 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콘크리트 벙커가 보인다.
그 벙커 지나 이어지는 잡목들을 피해 힘들게 오르니 바위가 보이고 바위 지나 잠시 진달래 꽃 오르막 등로를 빡세게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그 바위로 올라 우측을 보니 여전히 옥천면 마을과 들판이 보이지만 지금까지 보였던 13번 공룡대로와 영춘저수지는 바로 아래 산자락에 막혀 보이지 않고 우측 끝자락의 덕룡산과 바위암릉을 시작으로 좌측으로 땅끝기맥과 만덕산 줄기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로 희미하게 장흥의 천관산과 부용산 줄기가 펼쳐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부용산에서 천관산 앞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바로 사자지맥이었다.
동쪽으로 옥천면과 그 뒤로 흐르는 땅끝기맥 및 만덕산 그리고 강진만 넘어 장흥의 천관산과 그 주위를 흐르는 사자지맥 마루금까지 확인하고 눈을 남쪽과 남남동쪽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앞으로 방금 전 넘어오며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겼던 416.4봉과 그 뒤 저 멀리 희미한 땅끝기맥의 두륜산과 그 우측으로 대둔산에서 분기하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두륜산 좌측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바람재와 첨봉 그리고 우측 앞으로 휘돌아 이곳으로 이어지고 있는 화원지맥 산줄기가 경외로움을 선사하고 그 첨봉 뒷쪽으로는 주작산과 남도의 공룡능선이 여전히 날카로운 톱날 모습으로 산객의 눈길을 붙잡는다.
지금까지 걸어 진행을 하면서 만났던 풍경들과 비슷한 모습들이지만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다시 많은 사진에 담고 이제 바위를 지나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생각보다 거대한 바위암릉으로 이뤄진 등로로서 잡목들도 살아남기 어려운지 듬성 듬성 그 바위들과 공존하는 풍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진행하다 보니 우측 끝자락의 447.3봉은 저 바위암릉 능선 뒷쪽으로 우회한 후 다시 바위암릉 위로 거꾸로 올라 만나게 되는 특이한 구조의 정상 바위암봉이었다.
많은 사진을 담고 가슴으로도 다 담지 못할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을 추억으로 남기고 다시 거친 잡목들과 바위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며 등로 좌측인 서쪽 방향을 보니 해남읍이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지만 등로 옆으로 자라고 있는 잡목들로 막혀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바위 위에 물기가 없어 말라있는 듯 보이는 바위손들이 바위를 완전히 뒤덮고 그 바위손들을 지나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좌측을 보니 드디어 해남공설운동장이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뒷쪽으로 오봉산이 펼쳐져 있으며 우측으로는 생각보다 크고 넓은 해남읍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 해남읍을 병풍처럼 둘러친 화원지맥 마루금이 우측으로 흐르고 좌측 앞으로는 호산과 서당산 지나 선은지맥 끝자락이 남해바다 방향으로 산세를 낮추는 풍경까지 그저 감탄하기 바쁜 시간도 만들고 있다.
그곳 전망바위에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서쪽의 화원지맥과 해남읍 그리고 남쪽으로 지나온 마루금과 주작산에서 두륜산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 그리고 땅끝기맥과 화원지맥 사이로 산세를 낮추며 흐르는 선은지맥까지 많은 사진들을 담고 오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 앞으로 전라남도학생교육원에서 설치한 위험 경고판이 서 있고 등로에는 굵은 로프가 설치되면서 키 작은 산죽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굵은 로프를 넘어 정리된 등로에 도착을 해 좌측을 보니 전라남도학생교육원 방향으로 철봉과 함께 등로가 정비된 모습이 보이는데 지금까지 고생한 화원지맥 마루금과는 완전히 다른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의 모습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이용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이제 잘 정비된 비포장임도 같은 로프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넓은 등로 좌우측으로 설치된 굵은 로프를 따라 오르니 바위암릉도 보이고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산죽 군락지도 통과하며 여유를 찾다 보니 갑자기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옆으로 바위암릉을 우회할 수 있는 우회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동안 우측에 거대한 바위암릉을 두고 우회하다 보니 바위암릉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 배낭을 벗어 놓고 우측 바위암릉 방향으로 오르니 금새 주능선으로 올라 거꾸로 걸어가니 굵은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447.3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바위암릉 위 447.3봉 역시 멋진 조망처로서 사방팔방 모든 방향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열려있는데 지금까지 만났던 모습들과 유사하기에 사진으로만 남기고 지금까지 잘 보지 못했던 진행 방향인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마루금이 좌측으로 흐르다 우측으로 꺽어 깃대봉과 만대산이 솟아 있고 다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눈길을 따라가지 좌측 뒤 저 멀리 금강산도 이제 많이 가까워진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으로 금강산까지 이어지는 화원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사진에 담은 후 이제 눈을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해남공설운동산과 오봉산 그리고 신안2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작은 들판 지나 호산과 서당산이 여전히 사진 중앙부를 차지하고 그 뒤로 선은지맥 전 구간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좌측 끝자락의 땅끝기맥 상 대둔산에서 분기한 선은지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반원형을 이루다 사진 중앙부 우측 뒤 낮아진 지점 방향으로 남해바다를 향해 그 맥을 다하는 모습까지 환상의 파노라마를 만들고 있는데 저 산줄기를 타고 걸어가며 오늘 환상의 조망을 즐긴 이곳을 바라보는 마음과 풍경을 어떨련지 벌써 궁금하기만 하다.
이제 정남쪽 방향으로는 방금 전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한 바위암릉 마루금에 우거진 잡목 사이로 화사하게 피어있는 분홍빛 진달래꽃이 아름답고 그 뒤에 서 있는 관목의 소나무들이 환홀감을 주는데 그 뒤 저 멀리 덕음산과 두륜산 및 대둔산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고 그 좌측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첨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뒤로 주작산과 공룡능선이 거리가 멀어졌음에도 여전히 그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산줄기를 감상하다 보니 공룡능선과 두륜산 사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둥그런 봉우리가 눈길을 사로잡아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바로 완도의 상황봉과 그 주위로 이어지는 완도의 5산 줄기처럼 보인다.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그 바위암릉을 내려가 벗어 놓은 배낭을 회수해 갈림삼거리에서 다시 굵은 로프 등로를 따라 북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이어가니 등로 우측 로프 넘어 철난간과 녹슨 위험 경고판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그 바위지대를 넘으니 관목의 활엽수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꽃이 화원을 만들고 있는 뚜렷한 능선 등로가 펼쳐져 있어 오랫만에 편안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잠시 후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등로 주변으로는 멋진 진달래 군락지가 열리면서 마치 진달래꽃 마중 산행을 하는듯 꽃길속을 걸어 진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마음 편히 분홍빛 진달래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갑자기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이 짧게 나타나고 곧이어 드넓은 헬기장이 보이는데 등로는 우측으로 돌아 이정표가 서 있는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만대산까지는 1 Km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이 표시된 이정표가 반가운 시간이다.
헬기장을 우측으로 돌아 만대산까지 1 Km 거리란 이정표 뒤로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이곳도 역시 아름다운 진달래꽃길이 짧게 열리고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무명안부 지나 조금 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이정표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우측으로 옥천영신임도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잠시 더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바위암릉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 좌측 옆으로는 3단 바위도 높게 올려다 보인다.
조심스럽게 그 바위암릉 지대를 타고 오르니 빼곡하게 자라는 산죽 사이로 정리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산죽지대를 통과하니 다시 바위암릉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분홍빛 진달래꽃이 반겨주고 굵은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440.3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 우측으로 삼형제바위라 표기된 부분이 있어 살펴 보지만 어느것이 삼형제바위인지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440.3봉을 출발하기 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바위암릉의 447.3봉 넘어 416.4봉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땅끝기맥의 두륜산과 선은지맥의 분기점인 대둔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완도의 상왕봉과 주작산 및 공룡능선이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이 눈길을 잡는다.
이곳에서 보기에는 바위암릉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잡목도 심해 보이지 않는데 실제 진행을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드는 참으로 난해한 등로의 연속이기에 왜 선답자들이 그렇게 악명 높아 했는지 이해가 되는 화원지맥이다.
지나 온 마루금과 옥천면의 마을과 들판을 살펴보고 다시 그 봉우리를 출발하니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산죽들이 보이고 다시 바위암릉 등로도 나타난다.
그 바위암릉을 올라 등로 좌측을 보니 여전히 거대한 해남읍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남각산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그 뒤로 희미한 산줄기가 보여 확인해 보니 진도의 점찰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진도지맥 산줄기드이다.
그렇게 사진을 담고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면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로프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바위들과 진달래꽃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 위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458.4미터의 깃대봉에 도착을 하는데 잡목들로 인해 조망도 없고 자료도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깃대봉에서도 지나온 화원지맥 마루금과 해남읍이 보여 잠시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한동안 평이한 능선 등로가 이어지는데 이곳도 연두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며 봄이 오고 있음을 빛깔로 알려주기 시작한다.
잠시 후 다시 분홍빛 진달래가 만개한 화사한 등로로 바뀌고 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여유롭게 걸어가니 이정표가 나타나고 곧이어 넓은 전망데크 위에 앙증맞은 정상석과 그 뒤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이 정상판을 걸어 둔 493.1미터의 만대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만대산(493.1m, 萬代山)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와 옥천면 영신리, 마산면 장촌리, 송석리, 맹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남읍의 진산인 금강산과 이어지는 산인데 봉우리가 서로 떨어져 두 군데에 걸쳐 있다.
대동지지(1865)에 처음으로 나오는데 호남읍지(1872)에 따르면 현의 북쪽 13리(약 5.11 Km)에 있고 금강산에서 꿈틀거려서 나와서 북으로 굴러 여러 봉우리로 솟아나니 기세가 장하고 크며 언전하기를 원효대사(元曉大師)가 그의 철석(鐵錫)을 던져 여기에 떨어지므로 그대로 눌러 살았다고 하고 지금도 유지인 석탑이 있다.
세칭하여 원효봉이라고 하는데 봉우리가 특출하게 서 있어 이름하여 식봉(食峰)이라고 하는데 매년 정월 상원(上元)에 달을 보아 저녁달이 이 봉우리에서 뜨면 풍년이 들 것이라고 점쳤고 또 남쪽에 기암이 천길 높이 솟아 하늘을 떠받들었는데 이름하여 입암(立岩)이라고 한다.
석천(石川, 지금의 마산천의 상류)이 만대산(萬代山) 아래에 있고 일동의 계류가 모두 반석 위를 흐른다.
감사(監司) 임억령(林億齡)이 계류가에 자리 잡고 살며 그대로 석천(石川)이라 호를 썼는데 그 마을 이름을 장자(長者, 지금의 장촌)라고 한다 라고 하였다.
명칭 유래를 보면 만대산(萬代山)의 명칭은 대대로 이어지는 여러 대의 자손(子孫萬代)에서 유래된 듯하며 만대산의 수려한 풍경을 해남의 진산 금강산에 빗대어 명칭을 만대산(萬臺山)으로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해남 향토사학자들은 마산면에 있는 만대산(443.2m)을 북만대산(北萬代山)이라 하고 해남읍과 옥천면에 걸쳐져 있는 만대산(493.1m)을 남만대산(南萬代山)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해남읍의 진산 금강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줄기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산으로 옥천면의 진산이며 땅끝기맥에서 뻗어 내린 화원지맥에 속한다.
해남읍의 진산 금강산과 만대산의 경계인 구생동에서 마산천이 발원하고 마산 쪽 만대산과 금강산의 경계에 있는 은적사에는 비자나무가 자생하며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분류산성암층 석영반암이며 암질은 석영반암이다.
마산 쪽 만대산에 죽산성(竹山城)과 해남 맹진리 암각 매향비(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37호 지정)가 있으며 해남읍과 옥천면의 경계에 금강곡과 금강저수지가 있다.
옥천면 쪽에는 만대산과 덕음산 경계에 우슬재가 있으며 우슬재 아래에는 우슬체육공원이 있고 옥천면 영신리에 1919년 3·1운동을 일으킨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지강(芝江) 양한묵(梁漢黙, 1862~1919)의 생가가 있다.
드넓은 나무 전망데크에 비해 만대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데 그래도 지나 온 방향인 남쪽과 남서 방향으로는 약간의 조망이 터져 전망데크 끝자락에서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남서 방향으로 금강저수지 지나 해남읍이 내려다 보이고 그 해남읍 뒤로 달바위산이 우측으로는 남각산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호산과 서당산이 보이고 호산과 서당산 뒤로는 조만간 만나야 할 선은지맥 마루금도 길게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해남읍은 전라남도 해남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으로 동쪽은 만대산, 서쪽은 남각산, 남쪽은 호산, 북쪽은 금강산이 위치하고 있어서 시가지는 산들로 에워싸여 있고 넓은 농경지는 해남천과 삼산천이 흐르는 서쪽의 하천변에 주로 나타난다.
호구총수(해남)의 동리를 살펴볼 때 조선 시대에는 현일면(縣一面)과 현이면(縣二面)에 해당하는 지역이었고 이들은 조선 말기에는 명칭이 바뀌어 군일면(郡一面)과 군이면(郡二面)으로 불리었다.
1914년에 두 면이 합쳐져서 해남면(海南面)이 되었고 해남군 이름을 빌어다가 사용하였다가 1955년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73년 마산면 보평리가 편입되었다.
현재 1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는데 법정리 중에서 고도리(古道里)는 고둣몰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곶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는 읍성 앞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왔었는데 이때의 지리적 환경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동여도(21첩 4면)에 의하면 읍치 앞까지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왔던 하천은 남천(南川)이었고 지금은 해남천(海南川)이라고 하는데 해리(海里)는 바닷몰 또는 갯 마을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해리는 이들의 한자식 표기이다.
성내리(城內里)는 해남읍성 안쪽에 위치하고 남동리(南洞里)는 해남읍성 남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다.
백야리(白也里)는 큰고개라는 뜻의 백야치(白也峙), 백치(白峙)에서 유래하였고 구교리(舊校里)는 샛골이라고도 하며 옛 향교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며 향교는 1789년에 신교리로 옮겨갔다.
보평리(洑坪里)는 봇들이라고도 하며 충신보가 있는 들 마을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보평리는 그것의 한자식 표기으로 관련 지명으로 복평제(洑坪堤)가 있다.
만대산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제한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천천히 출발하니 빼곡하게 우거진 산죽 사이로 잘 정리된 뚜렷한 내리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 산죽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꽃이 피로를 풀어 주는 듯 하다.
그렇게 한동안 산죽과 진달래꽃들이 혼재된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어느 순간 산죽들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465.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담아 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465.8봉을 출발하니 짧은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가 나타나고 굴곡진 관목의 활엽수 등로로 변한 평이한 마루금을 따라 전진하니 키 작은 산죽들과 바위들이 간간히 보이지만 그저 평이한 진행하기 좋은 등로의 모습이다.
다시 이어지는 키가 큰 산죽과 진달래꽃이 혼재되어 있는 가운데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진행 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초록으로 변해가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안부 지나 완만하게 걸어가면 금강저수지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 사진에 담고 통과하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굵은 소나무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396.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계속 산세를 낮추는 산죽 등로를 따르니 굵은 참나무와 산죽들이 섞여 있는 뚜렷한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잠시 후 산죽과 진달래꽃에 둘러 쌓여 있는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377.1 무명봉도 넘는다.
무명봉 지나 여전히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고 키 작은 산죽들이 우거져 있는 320.3 무명봉에서 등로는 다시 북서 방향에서 서쪽으로 휘어진다.
그곳 무명봉지나서도 연두빛 등로로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바위지대를 통과하니 벤취쉼터 하나와 좌측으로 주차장 하산 등로가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는 금강재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금강재(290m, 신기릿재)은 전남 해남군 해남읍 해리와 옥천면 신계리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지명유래는 보이지 않지만 금강재는 좌측 해남읍에 있는 금강산과 금강저수지의 이름을 차용한 듯 보이고 신기릿재는 우측의 신계리의 이름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벤취쉼터 하나와 좌측으로 주차장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금강재를 지나자마자 좁은 공터 옆에 벤취쉼터 하나가 또 설치되어 있는데 주위에는 우거진 산죽지대가 보인다.
금강재를 지나 약간의 굵은 참나무와 관목들 사이로 산죽들이 보이고 연두빛으로 변해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와 바위지대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키 작은 산죽과 진달래꽃이 혼재되어 있는 멋진 마루금이 길게 펼쳐지고 곧이어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멧돼지와 만났을 때 하는 행동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멧돼지 조우시 행동 요령을 적어 놓은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공터 무명봉 지나 이어지는 관목의 참나무 사이로 산죽이 길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나 있고 이제부터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산죽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다시 산죽과 분홍빛 진달래꽃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좁은 공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가장자리에 서 있는 관목의 참나무 위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419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지도에는 무명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지도에는 무명봉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현지에는 419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에서 출발하며 등로 우측인 북쪽을 살펴보니 443.2미터의 또 다른 만대산이 보이고 사진에 담은 후 그 만대산 반대 방향인 남서 방향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데 조금 더 걸어가니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진달래꽃 등로 지나 우측으로 벌목된 듯한 풍경이 나타나고 그 앞으로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고 그 금강산 우측 뒤로는 높은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세워져 있는 482.8 삼각점봉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많이도 진행을 했고 날머리로 생각한 뚜드럭재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지도를 보니 날머리까지는 아직도 먼 거리이기에 마음 비우고 진행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 앞으로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금강산성과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아름답게 이어지고 사진에 담은 후 이제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남쪽과 남동 방향을 확인해 보니 우측 뒤 가장 먼곳으로 땅끝기맥의 두륜산이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 덕음산과 416.4 바위암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으며 그 좌측으로 447.3봉과 좌측으로 돌아 오르며 깃대봉과 만대산으로 이어지는 화원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오늘 만든 고운 추억으로 가슴에 묻어 본다.
오늘 새벽부터 걸어 온 화원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이제 눈을 다시 금강산 우측 뒤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의 장촌저수지와 좁은 농경지 뒤로 내일 올라 만나야 할 화원지맥의 308.3미터의 역마산이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는 마산면 들판 옆으로 산막천이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모습도 희미하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역마산으로 이어지는 화원지맥 마루금 넘어 저 멀리 희미하게 봉우리들이 보여 지도를 살펴보니 제3구간이나 마지막 구간에 만나야 할 화원지맥의 일성산과 운거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과 마루금이 보이지만 이 산줄기의 마지막 날머리인 목포구등대는 거리감이 멀고 약간의 박무가 껴 있어 확인하기 어려워 아쉬움도 남긴다.
진행 방향인 북서쪽으로 목포구등대까지 비산비애로 이어지는 화원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초록빛으로 변해가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우거진 잡목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초록빛 등로를 타고 언덕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419봉 능선에 울긋불긋 봄꽃들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조금씩 멀어지고 사진에 담고 또 다시 나타나는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무명안부 지나 진달래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인 북쪽과 북북동쪽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방금 전 지나 온 419봉 좌측 뒤로 443.2미터의 또 다른 만대산이 솟아 있으며 그 산줄기 뒤 저 먼곳으로는 오래 전 홀로 즐겼던 흑석지맥의 가학산과 흑석산 및 호미동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옛 추억을 알려주며 잊혀졌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망바위에서 북쪽과 동쪽 방향으로 펼쳐진 풍경들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몇장의 사진으로 남긴 후 다시 이어지는 진달래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 우거진 산죽 앞으로 이정표가 서 있어 확인해 보니 등로 좌측 방향으로 쉼터 하산길이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내려가면 지도에 표기된 쉼터로 내려갈 수 있는 곳으로 쉼터는 해남읍 해리에 있어 자료를 찾아 보니 해리는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법정리로서 명칭유래를 보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만조 때면 바닷물이 해남천(海南川)을 거슬러 올라왔다 하여 본래 갯몰 또는 바댓몰이라고 불렸다가 한자식 지명에 따라 해리(海里)로 개칭하였다.
본래 군일면 지역에 속하여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해리와 신교리, 동외리, 천변리의 각 일부를 붙여 해남군 해남면 해리로 개설되었다가 1955년 해남면이 해남읍으로 승격하여 해남군 해남읍 해리로 개편되었다.
해리는 현재 해리마을과 성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해리마을의 입향조로 초계정씨의 사위인 민중건과 유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전하나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조선시대 초 이부상서를 지낸 초계정씨 정원기 또는 정윤기가 입향조라고도 하지만 관련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입향조를 알기는 어렵다.
성동마을은 해리마을에서 분리되었는데 본래 해리는 고려 옥산현의 지역으로 영암 땅이었으며 조선 1437년에 해남현의 치읍에 딸린 땅이 되었고 호구총수(戶口總數, 1789) 기록에는 해리와 관동리로 나뉘어 현일면 혹은 군일면에 속하여 있었다.
그 후 해리와 관동리가 어느 시기에 합하여졌다가 1920년경 해남천 남쪽을 신해리, 북쪽을 해리라고 하였다.
옛 관동리 지역인 신해리는 해방 후에 성동마을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본시 객관(객사)의 동쪽이라 관동이라 칭하였으나 객관은 없어지고 해남읍성의 일부만 남아 있어 그 성의 동쪽이란 의미로 성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해리는 북으로 금강산(金剛山, 488m)과 접하고 동으로는 우슬재와 금강저수지가 위치하며 마을 내에는 해남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금강골에서 발원한 냇물이 흐르고 명산인 금강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서 경관이 수려하여 배산임수를 갖춘 명당으로 꼽힌다.
이정표가 서 있는 쉼터 갈림삼거리를 지나 우거진 산죽지대 사이로 뚜렷하게 뚫려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산죽 사이로 분홍색 진달래가 방긋 웃어주고 있어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을 위로해 주고 있다.
그 산죽지대를 따라 오르니 바위 로프 등로가 나타나고 그 바위 위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419봉 좌측 뒤로 흑석지맥의 가학산과 흑석산 그리고 호미동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그 가학산 뒤로 월출산의 천황봉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흑석지맥 우측인 북동 방향으로는 땅끝기맥의 서기산도 보여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산죽과 진달래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전진하니 금강산정상까지 0.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드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그 헬기장 정상에서 주위를 살펴보지만 생각보다 풍경과 조망이 좋지 않아 제한적인 사진 몇장 남기고 지도를 보니 남동 방향으로 469.8봉이 보여 배낭 내려 놓고 잠시 다녀 오기로 하고 돌담이 허물어진 곳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제대로 된 모습이 남아 있는 금강산성의 돌담이 보인다.
금강산성(436m, 죽산성, 넓은 헬기장)은 전라남도 해남군의 해남읍 구교리와 마산면 장촌리 사이의 금강산에 있는 산성으로 금강산에 있기 때문에 금강산성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금강산에 옛 성과 금강사(金剛寺)가 있다는 간략한 내용이 있으며 산성의 둘레는 약 9 Km쯤 되는 매우 오래된 성인데 수비대장을 담당하였던 승병 영주(靈珠) 스님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산성을 지나 가시잡목들이 보이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우거진 산죽과 진달래꽃이 만발한 도상 469.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은 물로 그 흔하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아쉬움 속에 산죽과 화사하게 만발한 진달래꽃들만 사진으로 담고 뒤돌아 나오려는데 정상 좌측 옆으로 띠지 한장이 보여 다가 가 보니 대구의산님이 걸어 놓은 띠지 한장이 반갑게 보인다.
다시 한번 더 사진에 담고 뒤돌아 나와 허물어진 금강산성을 타고 조심스럽게 헬기장으로 올라 물 한모금 마시고 벗어 놓은 배낭을 찾아 산행을 이어간다.
헬기장을 출발해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진행 방향 앞쪽으로 잠시 후 만나게 될 금강산과 그 우측 뒤로 높은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삼각점이 박혀있는 482.8봉이 보이고 북서 방향으로는 내일 오전에 만나게 될 308.3미터의 역마산이 높이는 낮지만 제법 뾰족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이제 남서 방향을 보니 해남읍 지나 저 멀리 대둔산에서 병풍산과 선은산으로 이어지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보여 사진에 담으며 산죽 사이로 펼쳐진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강산이 바로 눈 앞으로 다가 온 지점에 다시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좌측으로 우정봉 삼거리 방향이고 직진 방향으로는 금강산정상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이다.
우정봉 삼거리 갈림삼거리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우거진 산죽과 진달래꽃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어 편안하게 진행되고 조금 더 전진하니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 뒤 가까운 곳에 금강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다시 천천히 걸어 오르며 등로 우측을 보니 역마산 우측으로 옥천천 지나 영암호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지맥 마루금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다녀오지 못한 또 다른 443.2미터의 만대산 넘어 흑석지맥 마루금도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사진을 찍으며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는 금강산성이 이어지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인 우측으로 금강산정상까지 이제 0.1 Km 거리라는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좌측으로 주차장으로 하산할 수 있는 금강산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우측으로 몇발자국 걸어 가니 금강산성이 끝나는 지점 위에 돌탑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바위암릉 지나 우측으로 금강산 정상이 지척으로 올려다 보이고 그 바로 우측으로 높은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세워져 있는 482.8 삼각점봉도 보인다.
다시 또 능선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으로 해남읍과 오늘 걸어 온 화원지맥 마루금 넘어 땅끝기맥과 선은지맥이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바위 구간을 타고 오르니 다시 빛바랜 억새들이 보이는 곳에서 남동쪽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해남읍과 그 뒤로 대둔산과 그곳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선은지맥이 보이고 대둔산 좌측으로는 높게 솟아 있는 두륜산 지나 주작산과 공룡능선 지나 덕룡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줄기가 보인다.
사진 정중앙에서 시작된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에서 상가마을 지나 좌측으로 덕음산과 416.4 바위암봉이 솟아 있고 그 좌측 중앙부로는 깃대봉과 만대산 지나 바로 앞으로 금강산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환상의 화원지맥 마루금 전구간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좌측으로 뻥 뚫려 있는 능선 등로를 따라 진행하며 해남읍과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화원지맥 마루금에 대한 많은 사진들을 담다 보니 북동 방향으로 서기산을 중심으로 땅끝기맥도 보이기 시작하고 북쪽으로는 마루금에서 떨어져 있던 만대산 넘어 흑석지맥 마루금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만대산 좌측으로 옥천천 지나 영암호로 이어지는 물길이 박무속에서도 너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북쪽과 북서쪽 방향을 확인하고 다시 조금 더 걸어가다 등로 좌측인 남쪽을 보니 바로 발아래 생각보다 넓고 거대한 해남읍이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는 남각산 줄기가 중앙 뒷쪽으로는 호산과 서당산 줄기가 보이고 사진 좌측 가장 먼 곳으로 높게 솟아 있는 두륜산 우측으로 선은지맥 분기점인 대둔산도 보인다.
그 대둔산에서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선은지맥이 자꾸만 이 산객을 부르듯 보이는데 이번달이 지나기 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해 본다.
등로 좌측으로 해남읍과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화원지맥 전구간 그리고 땅끝기맥과 선은지맥까지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들을 감상하며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금새 넓은 나무 전망데크 위에 앙증맞은 정상석과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488.3미터의 금강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금강산(金剛山, 488.3m)은 전라남도 해남군의 해남읍 구교리와 마산면 장촌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488.3m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이 산에 봉수가 있었는데 남쪽으로는 관두산에 응하고 북쪽은 다만 관문에 보고한다는 기록이 있고 여지도서(해남)에 관아 동쪽 5리에 있으며 영암 월출산에서 뻗어 나와 고을의 으뜸이 되는 산줄기이다 라고 수록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은 북쪽의 금강산 줄기가 이곳에서 멈추었다고 말하고 지명은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산에 수목이 무성하고 기암이 많은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는데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초점이 있다는 것이 양자의 공통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산에 옛 성과 금강사(金剛寺)가 있다는 기록이 있고 1872년지방지도(해남)에는 금강산(金崗山)이라고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해남)에는 금강현(金剛峴), 금강천(金剛川), 금강보(金剛洑)가 표기되어 있으며 현재도 금강산성, 금강폭포, 금강령 등의 관련 지명이 있다.
금강산 정상석 앞에서 사진과 추억을 담고 전망데크 좌측의 끝자락인 서쪽 방향으로 가 보니 보이는 풍경과 조망이 제한적이고 지금까지 진행하며 보거나 만났던 모습들이기에 새로운 풍경을 찾다 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화원지맥 마루금이 서쪽에서 북서서 방향으로 펼쳐져 있어 몇정의 사진에 담아 본다.
서쪽 바로 앞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무인산불감시 카메라와 삼각점이 박혀있는 482.8봉이 바로 지척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는 내일 만나야 할 역마산이 살짝 머리를 내밀고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영암호의 물줄기들이 남해안으로 흐르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방향인 서쪽과 북서서 방향을 살펴보고 그 이름들을 불러준 후 북쪽과 북북동쪽을 살펴보니 화원지맥 마루금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443.2미터의 만대산과 그 뒤로 흑석지맥의 주봉들이 암봉의 모습으로 가깝게 보이고 그 바로 우측 뒤로는 땅끝기맥의 월출산 천황봉 정상부가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다.
흑석지맥 우측인 북동 방향을 살펴보니 밤재 지난 흑석지맥 분기점에서 우측의 뾰족하게 솟아 있는 서기산 지나 산세를 낮추며 남쪽으로 흐르는 땅끝기맥 마루금이 보여 사진에 담고 덕룡산과 주작산 방향을 찾아 보지만 그곳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남쪽과 남동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화원지맥 전 구간이 보이고 그 마루금 뒤로 덕룡산과 땅끝기맥의 공룡능선과 주작산이 보이고 남해읍 넘어 두륜산과 대둔산 그리고 선은지맥까지 지금까지 보고 사진으로 담았던 유사한 풍경과 조망들이 다시 이 산객의 발걸음을 잠시 더 붙잡는다.
이제 서쪽과 남서서 방향을 보니 남해읍 우측 뒤로 남각산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한 진도지맥의 점찰산 주변 산줄기도 존재감을 여전히 알리고 있다.
금강산정상에서 잠시 머물며 많은 추억과 사진을 담고 다시 그 전망데크를 출발하니 잡목과 산죽 사이로 잘 정리된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열려있고 조금 더 전진하니 커다란 바위가 등로 옆에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 바위지대를 통과하니 해남11이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높은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며 녹색 철망에는 신선님이 이정판을 걸어 놨고 그 주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482.7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다시 사진 한장 담아 본다.
무인산불감시 카메라 주위로 아름다운 분홍빛 진달래가 만발한 풍경도 사진에 담고 그 482.7 삼각점봉을 출발하니 이곳도 역시 누군가 등로를 정비해 놨는지 산죽과 진달래꽃 그리고 잡목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잠시 후 국가지점번호판과 작은 돌맹이들이 정상에 박혀있는 483.4 무명봉을 통과하고 관목의 활엽수 옆으로 바위들이 보이는 등로를 지나니 키 작은 산죽등로가 이어지더니 다시 너럭바위도 만난다.
한동안 우거진 산죽과 빼곡하게 피어난 진달래꽃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잘 정비된 넓은 등로를 따라 평안하게 전진하니 좁은 공터에 국가지점번호판이 세워져 있는데 그 번호판 바로 아래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458.2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본다.
국가지점번호판 아래 이정판을 걸어 둔 458.2봉에서 출발하기 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482.8 삼각점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 남해읍이 여전히 잡목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잠시 내려가니 너무나 화사하게 군락을 이루며 분홍빛 꽃다발을 자랑하는 진달래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바위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무명봉이 솟아 있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남각산 지나 진도의 진도지맥이 희미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한가운데 높은 점찰산도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다.
남서쪽으로 진행되던 관목의 활엽수 아래 산죽과 분홍색 진달래꽃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전진행니 등로는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가고 잠시 더 걸어가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진행된다.
여전히 관목의 나무 아래 산죽들이 우거진 뚜렷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우회해 통과하며 등로 우측을 보니 여전히 남해읍 서쪽 지방과 남각산이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 선은지맥 산줄기도 박무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 해남읍과 남각산 그리고 선은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가며 이제는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무명봉과 깃대봉 지나 남각산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진도지맥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진행하니 갑자기 수직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그 로프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로프를 타고 수직바위를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보이고 곧이어 참나무들이 서 있는 좁은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는 다시 굵은 참나무들이 보이는 뚜렷한 능선 등로로 이어지고 마음 편히 느긋하게 전진하니 관목의 참나무가 서 있는 325.9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니 멋진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초록으로 변해가는 주위 풍경들을 감상하다 보니 좌우측으로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도상 아침재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선답자들은 한동안 더 진행해 만나는 비포장임도를 아침재로 부르기도 하는 듯 보인다.
아침재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해남읍 구교리와 마산면 장촌리 사이의 고개로서 조선지지자료(해남)에서 조치(朝峙)라고 기재되어 지명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고 조선지형도에는 조령(朝嶺)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향토지에 따르면 지금도 해남에는 이 나라 5대 명문에 꼽혔던 연안 이씨와 한말 세도의 씨족 표본이었던 민비 가문인 여홍 민씨가 많이 살지만 조선 시대에는 이 두 성씨의 세도가 어찌나 높았던지 해남에 부임하는 현감은 아침마다 두 집안에 문안 인사를 드리고 돌아와서야 비로소 정사를 돌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명은 현감들이 해남읍에서부터 북쪽의 고개를 넘어 20리 밖의 마산면 화내리에 살던 여홍 민씨를 아침마다 찾아갔던 일에서 유래하였다.
나즈막한 안부인 아침재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번호 확인이 안되는 송전탑을 통과하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482.8 삼각점봉과 488.3미터의 금강산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이 아름답게 이어지는데 조금은 거칠었던 속살과는 달리 연두빛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참나무들이 눈길을 잡는다.
송전탑을 지나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살펴보니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있는 287.7미터의 무명봉이다.
무명봉 지나 북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오르니 막 잎을 틔우기 시작하는 덩굴식물들이 등로를 가득 채우고 바위들도 보이면서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등로가 진행에 어려움은 있지만 아름답기만 하다.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방향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연두빛으로 변해가는 잡목들을 헤치며 힘들거 전진하니 굵은 활엽수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고 그 주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도 함께 걸려있는 289.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능선 상 289.9봉 넘어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와 관목의 잡목들 그리고 바닥에는 키 작은 산죽들이 혼재되어 있는 난해한 등로를 만나 어렵게 전진한다.
한동안 같은 풍경의 산죽 등로를 타고 어렵게 진행하니 잡목들은 더욱 더 우거져 한발 전진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진행 방향으로 255.7봉과 우측 뒤 저 멀리 내일 올라야 할 308.3미터의 역마산이 보이는데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멀게만 느껴진다.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 능선을 조금 더 진행하다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사이로 참나무 어린 묘목들이 식재되어 있는 조금은 편안한 등로가 나타나 그곳으로 우회해 진행을 이어간다.
울퉁불퉁 진행에 어려움은 있지만 잡목들이 사라진 참나무 군락지와 조림지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바로 아래 내려다 보이는 비포장임도 건너 올라 만나야 할 255.7봉을 살펴보며 사진에 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그 255.7봉 우측 뒤 저 멀리 역마산이 조그믹 가까워지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20여분을 지나고 있어 오늘 뚜드럭재 지나 역마산을 넘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조심하며 참나무 사이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마산면 상등리와 장춘리의 경계 지점으로 어느 선답자들은 이곳을 아침재로 부르기도 하는 듯 보여 자료를 찾아 보니 예전의 아침재를 이제는 이곳으로 바꿔 부른다는 내용도 보인다.
아침재는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학동마을에서 마산면 장촌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조선시대 마산면 장촌리에는 해남을 좌지우지하는 토호세력이 살고 있었다고 하며 해남에 부임해온 현감들은 토호세력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하여 매일 아침 아침재를 넘어 문안인사를 다녔다고 한다.
아침재의 명칭 유래를 보면 현감들이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가기 위하여 넘어 다녔다고 하는 데서 아침재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조치(朝峙)라고도 하였다.
아침재는 금강산의 서쪽 줄기에 위치하고 아침재의 정상에는 아침재농원이 있으며 아침재농원에서는 황칠나무를 기른다.
현재의 아침재는 본래 아침재 위치(학동마을에 있는 해남의 희곡작가 우록 김봉호 생가 쪽)와는 다른 해남읍 구교리 학동마을에서 마산면 화내리와 장촌리 쪽으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지금은 해남읍에서 마산면 화내리와 장촌리로 넘어갈 때는 뚜드럭재를 통하여 다니고 있어 아침재는 인적이 드믄 편이다.
비포장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전봇대가 나타나고 그 전봇대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비포장임도가 보여 그곳으로 들어가니 벌목 후 나무을 식재한 능선이 나타난다.
그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비포장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오르니 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임도는 끝이나고 지독한 잡목 아래 고사목들이 쓰러져 있는 난해한 등로가 이어진다.
지독한 잡목과 고사목 지대를 지나 잡풀들이 우거진 무명묘지2기를 지나니 다시 한동안 가시잡목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바위 등로를 만나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마산면 마을과 들판 그리고 그 우측 위로 만대산 넘어 좌측 저 멀리 흑석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만대산과 흑석지맥 좌측 아래로 흐르는 옥천천을 살펴보고 그 뒤로 보이는 희미한 산줄기를 확인해 보니 영암의 395미터인 상은적산과 이어진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등로 우측으로 화원지맥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만대산과 흑석지맥의 가학산과 흑석산 그리고 호미동산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255.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이기에 주위 상황을 살펴보니 분홍빛 진달래가 반겨주고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이제 북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마지막 뚜드럭재를 향해 진행을 이어간다.
약간의 잡목 아래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잡목들이 태클을 걸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잡목 사이로 내일 넘어야 할 역마산을 살펴보며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굵은 참나무 아래 잡목들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내리막 등로에 자갈 너덜 등로가 이어지고 조심하며 어렵게 내려가니 동백나무와 콘크리트 교통호 및 초소 지나 드높은 돌철망이 나타나 어렵게 그 철망을 내려가니 마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뚜드럭재 소공원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뚜드럭재에 도착을 해 오늘 하루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뚜드럭재(88m, 유목재, 마산로 2차선 포장도로와 소공원)는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와 화내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서 지명유래는 보이지 않지만 용전리에 용전리와 화내리 경계에 있는 고개이름으로 뚜드럭재가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
다만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용전리에 버드나뭇골마을(유목동)이 보이는데 버드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으로 유목동이라고도 불리는 마을이 보이는데 이 유목동에서 이름을 차용해 유목재라 불리기도 한다고 전한다.
시작하기 전 계획은 이 뚜드럭재 지나 조금 더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기온이 올라 무덥고 가시잡목들로 인해 속도가 나지 않아 이곳까지 무탈하게 내려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다.
배낭 정리하며 해남택시를 불러 기다리니 10여분 지나 택시가 도착하고 퇴근 시간이라며 약간은 돌아 가지만 큰 차이가 없어 기분 좋게 바람재에 도착을 해 애마를 회수하고 해남읍에 있는 티파니 모텔을 예약해 간단히 샤워 후 근처의 식당에서 국밥으로 저녁까지 해결하고 나니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예상보다 나쁘지 않은 등로를 따라 뚜드럭재까지 왔으니 내일 하루 더 황산면사무소까지 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 하루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피곤이 밀려 와 곧바로 꿈나라로 향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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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칠갑산님, 멀고 먼 땅끝 해남 땅에 다녀오셨군요. 꼼꼼한 산행 기록과 자세한 지역 설명은 후답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987년 4월 6일. 20대 충청도 총각이 첫 직장을 찾아 전라도 해남 땅에 내려가 8년 반을 살았습니다. 주말이면 갈데가 없어 동네 바닷가를 서성이다 도맡아 숙직을 하고, 일요일 아침에 배낭을 메고 나서면 동네 사람들이 이상한 차림이라고 쳐다보던 시절입니다.
비포장 먼짓길을 터덜거리며 찾아 다니던 두륜산, 달마산, 금강산이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주었습니다.
칠갑산님 덕분에 사진과 귀에 익은 지명들을 떠올리며 옛 생각에 젖어 봅니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셨군요 봉화동천님,
충청도에서 먼 해남까지 내려 가 처음에는 서먹했겠지만 쉽게 들리지 못하는 곳들을 찾아 좋은 추억을 남기신 듯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 또 다시 찾기 쉽지 않은 곳들을 다른 사람의 사진으로 대하게 되면 그때 고왔던 추억으로 되살아나 다시 새로운 추억으로 남게 되나 봅니다.
조금이나마 고운 추억이 되셨다니 다행이며 정성스럽게 달아 주신 답글에 감사 드림니다.
한동안 산행기가 없어 궁금했었는데 화원지맥 밀린 발자취를 올려주셨군요.
땅끝기맥 하면서 지났던 첨봉분기점 모습도 반갑고,
남도 특유의 잡목과 드러나는 해안 풍경을 보면서 옛 시절로 되돌아 간 심정입니다.
남은 지맥도 얼마 남지않았는데 4구간으로 나누어서 즐기시는 여정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갑자기 바쁜 일정들 때문에 어렵게 산행후기를 정리하다 보니 이곳에 올릴 시간이 어려웠네요
이제서야 모든 바쁜 일이 마무리되고 해외 출장 건도 정리가 되어 마음 먹고 시간을 냈답니다.
말씀처럼 오래 전 땅끝기맥을 걸었던 추억을 소환도 해 보고 남도 특유의 잡목들도 즐기며 진행하며 좋은 시간 잘 보냈답니다.
어둠속에 진행하기 싫어 가능하면 밝은 시간에 진행하다 보니 4구간으로 조금은 여유롭게 잘 진행하며 마무리를 하였네요
우리보다 달반정도 뒤에 진행하셨는데.
바람재 풍경이 전혀 다름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바람재에 공사중으로 비포장 이엇거든요.
건들재에서 잡목구간은 지금 생각해도 난감했던 기억입니다.
네 부뜰이 운영자님,
바람재는 공사가 끝나 아름다운 도로가 생겼더군요
좋은 계절에 올라 잡목들의 저항도 있었지만 진달래꽃과 야생화를 친구 삼아 즐겁게 잘 진행하고 왔네요
운영자님의 산행후기도 참조하며 큰 어려움 없이 잘 마무리가 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