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 문화재 지정 30주년 기념 공연을 보고
김문성(kimdica) 기자
7월 12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경기민요의 문화재 지정 30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무대가 마련되었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각종 공연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前) 경기민요 보유자 묵계월 명창, 최고령 현역 여성 소리꾼인 경기민요 보유자 이은주 명창 그리고 고 안비취 문하의 소리 맥을 지키고 있는 이춘희 명창을 비롯해 각 문하(門下)의 전수조교와 이수자 20여 명이 함께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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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민요 3인의 국창. 왼쪽부터 묵계월, 이은주, 고 안비취 명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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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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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보존회(회장 이춘희)가 주최한 이날 공연에서는 소리제의 특징을 살릴 수 있도록 각 문하별로 소리꾼들을 내보냈다. 안비취 문하에서는 잡가 <제비가>와 <긴아리랑> 등 아리랑 연곡을, 묵계월 문하에서는 잡가 <적벽가>와 <난봉가> <염불> 등 서도소리를, 그리고 이은주 문하에서는 잡가 <형장가>와 <태평가> <창부타령> 등 경기민요를 관중들에게 들려주며 경기민요의 문화재 지정 30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한 2부에서는 경기민요의 소리극화를 위해 애쓰는 이춘희 명창이 고 안비취 명창의 유지를 따라 만든 창작소리극 '미얄할미뎐'을 선보이며 경기소리극의 상품화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했다.
경기민요계의 자성과 단결을 촉구하는 자리
경기민요는 이창배, 정득만, 이소향, 안비취 등 당대를 풍미했던 경기소리꾼들의 노력과 이의 중요성을 뒤늦게 인식한 문화재관리국의 정책적 뒷받침에 힘입어 <유산가> <적벽가> <평양가> 등 12잡가가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로 지정예고 되었으며 6년 후인 1975년 7월 12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그 보유자로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3인이 인정되었다.
이들은 보유자 인정과 함께 복수의 '전수장학생'을 두었는데 이은미, 임정란, 이춘희, 김혜란, 고주랑, 김영임, 김금숙 등이 전수장학생을 거쳐 이수자로 인정되었으며 전숙희, 이호연, 최영숙, 이금미, 한진자 등 오늘날 경기소리계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명창들이 이들 3인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경기민요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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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민요 30년을 지켜온 소리꾼들. 아래쪽 왼쪽부터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김영임, 전숙희, 고백화, 윗줄 왼쪽부터 김금숙, 임정란, 김혜란, 이춘희, 이호연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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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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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문화재 지정 만 31년이 되는 이날 공연은 이들 3명의 전설적인 명창의 문화재 지정을 축하하는 것에 더하여 경기소리의 발전과 보존에 평생을 바친 3명창의 노고를 치하하고 경기민요의 대중화를 위해 고군분투해 온 중견소리꾼들 그리고 이제 막 소리에 입문하여 평생 '경기소리지기'로 살겠노라 다짐하는 젊은 소리꾼들 모두를 격려하는 자리를 겸하였다. 또한 이 공연은 최근 외형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경기민요계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오해와 알력다툼으로 결속력이 약해진 경기소리계에 자성과 단결을 촉구하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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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민요의 소리극화와 경기민요계의 화합에 전념하고 있는 (사)경기소리보존회 이춘희 이사장(경기민요 보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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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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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총기획한 이춘희 명창의 부쩍 수척해진 모습에서 이 공연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춘희 명창은 이소향, 묵계월, 이은주, 김옥심, 안비취 등 경기소리의 전설적인 1세대 명창의 뒤를 이어 경기소리의 법통을 잇고 있는 2세대 소리꾼으로 그녀는 1세대 명창들이 남긴 주옥같은 경기소리의 맥을 잇기 위한 수많은 과제를 혼자 도맡아하다 시피하고 있다.
'인간문화재'라는 타이틀은 예능적인 능력 외에 지정종목의 보존 그리고 그 종목에 종사하는 많은 실기인들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해야 하는 능력까지도 포함한다. 2세대 소리꾼 가운데는 이춘희 명창이 유일하게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어 경기소리의 이러한 과제와 현안은 그녀의 몫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1세대 명창들 사이에 '인간문화재'를 두고 빚어졌던 오해를 풀고 이를 단합의 장으로 유도해야하는 일도 그녀가 해결해야 할 일부 숙제인 것이다. 경기민요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화합과 상생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이춘희 명창이 묵계월, 이은주 두 원로명창과 의기투합(意氣投合)하였고 이렇게 해서 이날 공연이 성사된 것이다.
왜 김영임 명창은 무대에 서지 못했을까
그러나 그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작 묵계월 문하의 전수교육보조인 김영임 명창이 이날 공연에서 배제됨으로써 이러한 좋은 취지는 퇴색하고 오히려 실기인들 사이에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되었다. 왜 김영임 명창은 이날,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자리를 지켜야 했을까?
상당수의 관객과 국악계 인사들은 이날 영상과 공연을 통해 김영임 명창이 배제된 것은 실수라기보다는 고의성이 짙고 이것이 경기민요계의 단합과 화합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고 결국에는 경기민요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재생산 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국악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모 피디는 '화합과 단결을 강조한 공연에서 특정인을 배제한 것은 공연취지를 스스로 무색케 한 것으로 이는 결과적으로 관객을 모독한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어떤 갈등과 알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공연 주최 측에서 적극적인 조정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김영임씨를 무대에 세웠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또한 국악과 모 교수는 '개인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라고 전제하고 "1세대에서 끝났어야 할 모습이 2세대 소리꾼들에게서 목격되는 것은 서글픈 현실로 이러한 상황이 더 고착화되기 전에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이춘희 명창은 "애초 각 가문별로 공연시간을 할당하고 출연자 역시 가문에서 책임지고 정하도록 했다. 김영임 명창을 무대에 세웠으면 하는 의향을 수차례 피력했으나 누구를 무대에 세울지 말지를 강제하기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면서 김영임 명창이 무대에 서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한 명창 밑 한 문화재만 인정된다는 불문율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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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계월 문하에서 수학했던 고 지화자 명창과 현 묵계월 문하의 전수조교인 김영임 명창. 그러나 이날 공연에서 이 둘은 아예 소개조차 되지 않아 관중들로 하여금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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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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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영임 명창이 무대에 서지 않은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스승과의 갈등설, 스승의 배제설, 또 다른 배제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소위 '인간문화재'제도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즉 경기민요계의 골 깊은 갈등의 단초는 '문화재보호법'이 만들어지면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준보유자 제도가 없어지고 전수교육보조자의 복수화가 가능해진 90년대 들어 경기민요뿐만 아니라 국악계 전반이 심각한 갈등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지난해 문화재청에서 흘러나온 경기민요의 통합문제 등은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경기민요의 경우 워낙 보급이 잘 되어있는데다 그 수요층이 두텁기 때문에 국가지정 문화재에서 해제하거나 지방으로 이관하는 것도 한 방법이며, 종목만 지정하고 보유자를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운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 가야금 산조의 함동정월 류나 강태홍 류처럼 산조 종목은 계속해서 지정을 하되 보유자를 두지 않는 방식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인식하는 부분과 실기인들이 인식하는 부분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어 보인다. 즉 경기민요가 대중화되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전제'라는 게 실기인들의 공통된 견해다. 대중화된 경기민요는 <창부타령> <노래가락>같은 유흥 민요로 실제 문화재로 지정된 12잡가는 실기인들 조차도 좀처럼 부르기를 꺼려해 만약 문화재를 해제할 경우 <토끼화상> <갖은 방물가> 등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지금은 전승단절의 위기에 놓인 소리들처럼 이들 12잡가도 맥이 끊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결국 경기민요와 같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분야는 해제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알력과 분쟁을 조정할 것이 아니라 그 위상에 맞는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훌륭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게 국악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수혜의 폭을 확대하는 게 대안, 실제 제한 규정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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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심곡> 공연을 마친후 왼쪽부터 묵계월, 장덕화, 이성림 예총회장, 김영임, 이은주, 한진자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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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 명창 밑에서 한 명의 문화재만이 인정된다는 보이지 않는 불문율을 깨고 실력이 뛰어난 소리꾼들이 '문화재'라는 타이틀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수혜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수한 제자들이 여럿일 경우 어쩔 수 없이 몇몇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을 고치자는 뜻.
문화재보호법에 보유자의 수를 한명으로 제한한 규정이 없으며 가야금병창 박귀희 문하의 안숙선, 강정숙, 가야금산조 김죽파 문하의 양승희, 문재숙 두명의 명인이 보유자로 인정된 선례도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날 공연을 감상했다는 김영임 명창 역시 "경기소리꾼들이 단합해 경기민요의 파이를 키우고 그 수혜의 폭을 넓히는 것에 전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앞으로는 이런 부분도 염두에 두고 활동하겠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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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민요의 전설적인 명창으로 추앙받는 고 김옥심 명창. 그녀의 인기는 사후 20년이 다 되어가도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네티즌들에 의해 각종 블로그와 카페등에서 '신드롬'화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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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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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쁜안나님 잘 읽었습니다 이수자명창들도 각성해야할부분이 많구요 모든 무대기회균등 실력인정등 절차들이 지방에도 잘못된것은 똑같은 절차같구요 국악민요의 법과 제도 를 하루빨리 올바르게 바로잡아 커나갔음 하는 바램입니다
우수한제자들 수혜의 폭을 넓혀 모든이들에게 기회균등.... 누가 가르쳐주지않아도 올바르지못한 방법은 어떻게 지방도 흡사한지 탄식이 저절로....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3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