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 할머니의 꽃자리>>를 권하며
오늘 아침 뉴스에서도 들었다.
"일본 아베 정부는 '독도는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검정을 승인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뉴스 내용! 이제 이런 뉴스 식상한가요? 지긋지긋한가요? 일본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지치게 만드는 것.
'독도는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 이 스무 자에 불과한 말 속에는 진실로 엄청난 역사적 사실과 왜곡과 전의(戰意)가 담겨 있다.
'독도는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 이 문장을 한번 인수분해 해보겠다. (복잡한 수식도 인수끼리 분해해 놓고 보면 간단 명료해진다. 국어도 마찬가지. 중심언어를 중심으로 인수분해하면 함의가 분명해진다.)
1. <독도, 영토, 한국, 점유> 이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 그냥 사실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적 사실이며 한국인이면 누구나 너무도 당연하게, 그저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2. <독도, 일본, 영토> 이건 존나 제국주의 한창 땡기던 때, 역사는 조또 물 말아 처먹던 일본 애들이, 1905년부터 조선반도를 집어삼키기 직전부터, 울릉도 같은 부록만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섬 독도(오늘날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 본토보다 더 크다)를 ‘여의주로 만들어 놓고’ 5년 뒤 조선반도를 다 집어삼키고, 36년 뒤 뱉어 놓고서.....“조선반도 삼킬 때 독도는 삼킨 적이 없다.” 고 생떼를 쓰니, 이것은 마치 독도는 해방이 되지 않았다고 우기는 허접한 짓이 아니고 무엇이냐!
3. <한국, 불법, 점유>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아베 정부 이 자슥들은 한국을 아주 불법이나 저지르는 깡패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4. <독도, 일본, 영토, 한국, 불법, 점유> 이렇게 인수분해하면, 일본은 존나 억울하고 한국은 너무나 능력이 넘쳐 섬 하나 불법으로 차지하고 있는 뉘앙스가 짙다. 씨알도 안 멕히는 염병할 문장 같으니라고!
5. <독도는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 일본은 왜 이런 내용을 일본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을려고 하는가? 교과서는 특히 일본에게 있어서 교과서는 ‘일본 정신을 만드는 교범’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직 사상이 굳어지기 전에 요런 말을 집어넣어 ‘존나 이상하고 틀린 말이라도 자꾸 주입시켜 동물을 순치하듯이’ 맹글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광덕 할머니의 꽃자리>> 임나라 글 / 백선제 그림 / 아이들판 펴냄
책속에 있는 그림 한 컷(1)과 책 표지(2)로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월이 흘렀다 해서 깊은 상처가 흔적도 없이 아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일본은 왜 역사를 숨기며 모른 체하고만 있습니까? 우린 왜 그들을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합니까?”
“역사는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기록하고 행동하는 민족이 주인공이 된다.” (요즘 내가 하는 역사 공부의 결론은 항상 그러하다.)
어린이 책 분야에서, “폭력과 야만의 시대인 일제강점기, 지금도 독도문제나 위안부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깡패국가인 일본과 한국을 다룬, 섬세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다시는 그런 뼈아픈 오늘과 내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역사를 내면 깊이 성찰하는 책들은 더 많이 나오고 읽혀져야 한다.
<<광덕 할머니의 꽃자리>>에는 모두 7편의 단편동화가 실려 있다. 모두 다 나직한 목소리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표제작 <<광덕 할머니의 꽃자리>>처럼 슬프고, 안타깝고, 격렬하고, 눈물 나는 작품도 함께.
<<하늘 마을의 사랑>>, <<무화과나무 집>>, <<사랑이 꽃피는 나무>> 같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쓴 임나라 선생님의 작품이라 그 누구에게든 맘껏 권하고 싶다.
* <아이들판> 출판사 이름도 재미있다. 인수분해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지 <아이+들판>이 우선 생각나지만, <아이들+판>도 생각나고, <아! 이 들판>, <아이, 들 판>도 생각난다. <아이들판>! 어떻게 분석해도 아이들에게는 맘껏 뛰놀 수 있는 행복한 정신의 놀이터가 되기를 빈다. 그런 놀이터로 뻔질나게 가고 싶은 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