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8:4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것일 겁니다.
영화를 통해 비쳐진 역사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개선함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할 때 밝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나라들이 다들 그것을
알고 있지만 왜 그랬을까, 또 왜 되풀이 할까 생각해봤더니 대부분은 기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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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더이다. 세컨드 잡을 포기하고 영화를 보러 왔으니 저에게는 나름 오페라를
보는 것만큼이나 스페셜day 입니다. 촛불 정권이 들어서더니 ‘택시 운전사’부터
6.29까지 차례차례 다룰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 ‘삼청교육대‘도 ’실미도’같은 대작
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영화 한 편 보는데 극장을 무려 4번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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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시네마 측의 갑 질 때문인데 오늘은 분통이 터지지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안성 촌 동네에 영화광들이 이렇게 많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현재 500만을
넘겼으니 ‘1987’도 1,000만을 넘기라고 응원하겠습니다. 영화‘1987’은 서울의 봄
이후로 박종철, 이 한열 열사의 통한의 죽음을 다룬 현대사의 아픈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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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영화를 본 소감은 내 청춘이 이글거리며 살아나는 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 윤석 이놈 물건입니다. 내 이놈의 아우라 를 ‘타자’에서 아귀 역 할 때 알아봤는데
이번엔 대공 분실 처장 역으로 대박을 또 쳤습니다. 액션에 떡 대까지 그냥 죽여줍니다.
비주얼로만으로 역대 급 카리스마를 뿜을 수 있는 연기자가 몇 안 되는데 저는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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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근으로 김 윤석을 평가합니다. 감독의 영화 만드는 솜씨도 스웨그입니다.
1987년의 공기를 2시간 동안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하는 드라마로 재현해냈습니다.
무겁지만 역동적이고, 따뜻하면서도 울림이 큽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이 사망하자 곧바로 증거 인멸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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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및 용공 사건을 전담하는 대공 수사 처 박 처장(김 윤석)의 지시로 시신을 화장
하려 하는데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서울지검 최 검사(하 정우)가 화장 동의서에 날인을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입니다. 치안본부장(우현)은 부랴부랴 취재진을 모아 ‘단순
심장 쇼크사’라고 거짓 발표를 합니다. 그 유명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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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멀티 캐스팅 영화의 전범이라 할 만합니다. 한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닌 데다, 한 인물도 허투루 그리지 않은 치밀한 연출 때문입니다.
대공수사 처 박 처장, 최 검사(하 정우), 수감 중인 운동권 인사의 옥중 서신을 배달하는
교도관 한 병용(유해진), 87학번 대학생 연희(김 태리), 사건 담당 윤 기자(이 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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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인사 김정남(설 경구), 중앙일보 사회부장(오 달수), 동아일보 사회부장(고 창석)까지
말 그대로 ‘배우 군단’이 줄줄이 사탕으로 릴레이 하듯 등장해서 거대한 퍼즐의 작은 조각
역할을 하고 빠집니다. 가히 어벤져스 급입니다.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분명한 역사
의식을 담고 있지만, 연출 면에 있어서 리스크가 큰 구조입니다. 자칫 이야기가 구심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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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제작진은 ‘어떻게 진정성 있게 보여줄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재현했다는 80년대 신문사 편집국, 스노우 진과
청재킷의 백골단 무리들, 남영동 고문실, 연세대 정문 등은 사실감 있게 재창조됐습니다.
83학번인 저는 이때 ‘수방 사‘를 거쳐 3군단 헌병대에 사병으로 군복무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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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 하면 제가84년 4월 군번이니까 87년 10월에 무조건 전역을 해야 되는데
85.4.22 군 영창을 사는 바람에 동기들보다 한 달도 넘게 특명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한열 열사가 죽던 해 87년 6월이었으니까 한열이가 연대 경영학과 2년차이었겠지요.
여기서 잠깐, 열사와 의사는 무슨 차이가 있냐면 의롭게 죽은 것은 같은데 뜻을 이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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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의사(안중근 의사)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열사(이준)라고 아마 중학교 때 배웠을
것입니다. 하여튼 87년 6.9. 이 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있던 날 공교롭게도 저는 말년 휴가
차 광주에 있었고 광주 신역에서 이 한열 열사의 운구행렬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군인이어서 어리둥절했지만 괜한 서러움에 치기가 섞인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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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강 동원(이 한열)과 김 태리의 러브라인이 달달했는데 겨우 페어로 가는 신발 한
짝으로 끝나버려서 아쉽습니다. 흑기사와 미녀가 마주보는 그 한 컷 때문에 여심은 심 쿵
했을 것입니다. 그 신발이 삼화고무에서 출품한 ‘타이거‘운동화인데 지금 이 한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답디다. 저는 고향이 담양이고 한열 이는 화순 촌놈인데 아마도 그 무렵 화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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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물 ‘적벽‘이 댐 공사로 수몰되었고 부동산 투기가 성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여간 저는 참 희한한 역사의 운명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격자로 서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통하고는 적과의 동침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악연이었겠지요. 광주항쟁, 삼청교육대, 순화
교육대, 필동 수도방위사령부, 3군단 헌병대까지 7년 임기 내내 저를 데리고 다닌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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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다닌 건지 몰라도 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84년 대공 분실이 아스토리아 호텔
뒤편(남산)과 남영동에 있었을 것입니다. 남영동은 내무부 관할이었고 남산은 506보안대
관할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수방사 있을 때 강다리 검문소 동작, 영동, 한남 정도를 파견
나갔지요. 그때 경찰, 보안, 헌병 3개 분과가 각자의 임무를 띠고 한솥밥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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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506보안대 병장이 헌병 초소 장(육사39)에게 들이 대는 바람에 헌병 내무반은
찬바람이 쌩쌩 불었고 일병인 저와 제 동기는 숨도 못 쉬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악동인 제가 거사를 준비했고 보안대 내무반을 쳐들어가 개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 보안대 초소장이 아마도 중사이었지요. 그 놈이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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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구경에 진짜총알을 장진 하는 겁니다. 저는 그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고참 들이 나를 구해줘서 간신히 넘어가긴 했지만 지금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때 죽지 않은 걸 보니 저도 명줄 하나는 타고 난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 대공 분실
(남영동)팀과 남산(506보안대)팀들이 서로 쳐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제가 과거에 게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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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 야구 방망이 들고 경쟁 오락실 때려 부수던 생각도 났고 저한테 오지게 얻어맞고
탈영한 내무부 소속 전경 생각도 났습니다. 두환 형님은 원래가 깡패 출신 아닙니까?
7년 해먹었으면 됐지 더 해쳐먹겠다고 욕심 부리더니 결국 백담사를 간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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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뭐 회고록인가 뭔가 내서 억울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다시 감옥을 보내든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호헌철패, 독제 타도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6.29선언의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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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②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③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사범들의 석방,
④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⑤ 자유언론의 창달,
⑥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⑦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⑧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
① peaceful transition in February 1988, by the president a constitutional revision
a straight line.
② president by revising the election law ensuring fair competition.
③ granted amnesty and release of offenders, the situation of the Kim Dae-jung.
④ respect for human dignity and increase basic human rights,
⑤ Creating a free press,
⑥ Implementation of local and educational autonomy
⑦ Ensure healthy activities of political parties,
⑤ Perform a drastic social septic tank
2018.1.17.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