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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영창 폐지와 군 복무기간 단축”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 사안이었는데
군복무기간 18개월 단축은 이미 실행 중이고 이제 군 영창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12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양입니다. 고종 때 신설
됐다고는 하지만 사실 일제의 잔재라고 봅니다. 군대 영창이란 교도소와 군기 교육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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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정도 되는 형벌로 보통 15일간 감금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헌병대 생활
33개월 동안 남한산성, 수도방위사령부 영창, 그리고 3군단 헌병대 영창을 모두 경험
해보았습니다. 남한산성은 우리 현역 때 견학 수준으로 방문을 했고, 수도방위사령부
영창은 제가 수감자로 군 징역을 살았습니다. 실제로는 18일을 살았고 만, 15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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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른 이유는 영창과 교도소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군대 징역은 6개월부터 시작됩니다.
일반적으로 죄를 지으면 경찰서 유치장에서 48시간 안팎으로 신세를 지다가 영장을
치던지, 방면하던 지를 합니다. 만약 검사가 영장을 치면 영장실질 심사를 하지요.
영장 실질 심사까지 유치장이나 교도소에서 대기를 하고 이때 신분은 피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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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릅니다. 군대 영창은 유치장 '징계 자'와 교도소 갈 '미결수'를 함께 관리합니다.
'남한산성'이나 '군 교도소'는 군 생활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됩니다. 군 생활이 아무리
풀려도 영어의 몸이고 내무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자기 관리를 잘 하면 의외로 시간을 잘 보낼 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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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실제 6개월 동안 책을 200권정도 읽고 수양 록2권 몸무게 80k. 탈모를 고쳐서
나왔어요. 문제는 군대영창입니다. 이 놈은 근무자가 24시간 수감자를 관리하기 때문에
1분1초가 고름입니다. 수도방위사령부 지하 영창은 근무자 12명이 3교대를 합니다.
저는 남한산성이후 가장 빡센 징역이 '수도방위사령부 영창'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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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부 자대 영창에서 이틀 밤을 새고 지하 감방으로 인계되면서 수갑을 찹니다.
대부분 병사들의 눈을 피해 오긴 하지만 200-300m 거리를 오는데 혹여 누가 볼까봐
신경이 많이 쓰입디다. 주번사령이 작전참모이었고 계급이 대령이니 우리 대장보다
고참 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대장은 신 0희 대령이었고 사령관이 이 0구 중장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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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은 광주 항쟁 당시 전통이랑 손발을 맞춰서 조국에 누를 끼친 위인들입니다.
헌병 근무자가 영창을 간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고 만, 우리 동기 120명 중에 제가 첫
테이프를 끊었을 것입니다. 사고가 왜 났냐고? 일병 때 11 기수 위, 고 참을 몇 대
때렸는데 하필 부 단장이 보았고 중대장에게 보고 되었어요. 우리 병과야 근성을 키워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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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라 웬만하면 상 받을 일이지 징계 먹을 사안은 아니었거든요. 만약 수도방위사령부만
아니었다면 영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대장이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라고
해서 잘됐다 싶었지요. 8시간 폭동진압 교육이나, 연병장 뺑뺑이나 개 찐 도 찐 이니까요.
더군다나 중대 왕 고3명이 내(我) 기 살려준다며 함께 뛰어 줘서 힘든 줄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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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뛰었는데 소대장이 날 생각한답시고 불러서 담배를 줬어요. 이 사실을 인사계가
일러바쳤어요, 3사 중대장이 열 받아 징계위원회를 소집해버립니다. 지금생각해보면
육사 중위가 3사 대위를 우습게 본 것이었어요. 또 하나 재수 옴 붙은 건 뭔 줄 아세요?
내게 맞은 442기가 하필 영창 근무를 서는 중대였다는 것 아닙니까? 10중대 개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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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입니다. 완전 반란군 같은 군복에 수기로 쓴 수형번호를 달고 지하철창문을 여는데
살짝 긴장되더라고요. 제가 누굽니까? 논산부터(2600명) 행정학교 때까지 우리기수120명(
해병포함)중 1빠가 아닙니까? 가-오 완전 상합디다. 바가지 쓴 근무자에게 나를 인수했고
박 병장이 “이놈이 050꼴통이야” 하면서 저를 식당으로 인계했어요. 50은 족히 돼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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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셋이 저처럼 거적 대기 군복을 입고 사시나무 떨 듯 벌벌 거리고 있었어요. 머리를
깎는 모양입니다. 징역에서 뭘 할 때는 항상 군기를 먼저 잡습니다. 그때 수형번호가 '일병,
아무개 명령위반 4.22일 입감‘이었는데 관등성명도 안 해본 감자들에겐 쉽지 않았을 테지요.
제가 보는 데서 헌병대 목침을 한 대씩 치니까 낙동강 오리알로 나가떨어지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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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일병“하면서 나를 부릅니다. 이놈이 마이가리상병을 달았으니 분명 내 아래 기수일
것입니다. 1.2기수 밑이면 나를 알 텐데 모르는 걸 보니 최소 5기수는 밑일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제가 1기수 아래 병사들을 화장실에 10명을 세워놓고 한 따가리 했는데
지금은 수감자가 되어 후임에게 목침을 맞고 머리를 깎였어요. 와, 속상하더이다. 아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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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것이 아니라 분통이 터져서 눈물이 납디다. 니들은 나가면 뒈졌어. 30분 만에 머리 깎고
샴푸 하고 독방 하나를 차지했습니다. 제가 있을 때는 기결이 30명, 미결이 40명 정도
되었고 기결은 대부분 오래된 군 탈자들이었어요, 옛날에는 군대 가면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휴가나 외출을 나가면 그 뒤로 탈영을 했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7년 동안 잡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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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면 군방부장관이 복귀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도 복귀하지 않으면 ‘명령위반’이 됩니다.
그러니 한번 군 탈은 영원한 탈영병인 셈입니다. 잡혀온 사람들 중 일부는 도망 다니기
지쳐서 황혼 길에 털고 가려고 자수한 사람들입니다. 유치장은 5시 기상이고 11시 취침
입니다. 군대가 6시 기상 10시 취침인데 벌 받는 입장이니 1시간 덜자고 1시간 일찍 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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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답니다. 모포개고 점호할 때 군기를 잡습니다. 원산폭격이나 깍지 끼는 것은 기본이고
손등을 경봉으로 자주 치더이다. 그러면 노인네들은 왕 방울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웁니다. 현역 군 탈자나 강간 관련 수감자들이 들어오면 철창 타기를 시키는 것을 보았어요.
7개쯤 되는 유치장 방에 실상은 2개나3개 밖에 운영을 하지 않습니다. 기결수와 미결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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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관리 하는데 고 참들은 기결수하고는 농담 따먹기도 가끔 합디다. 미결수 입장에서는
근무자가 바로 앞에 서있기 때문에 양반 자세로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름입니다. 대열에서
흐트러지거나 이상 조짐이 보이면 여지없이 손등을 맞던지 얼 차례를 받아야하고 화장실도
안 보내주기도 합니다. 보통은 한 시간에 한 번씩 단체로 문을 따기 때문에 열외로 화장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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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점호 끝나면 6시30분, 8시 조식까지 1시간 반이 가장 안 가는 시간
입니다. 사회 교도소는 신문이라도 보지만 군 영창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5시간 동안
가장 편하게 있는 것은 양반자세로 앉아있는 것입니다. 11시 반부터 점심 배식이니 화장
실을 단체로 갑니다. 모든 문을 나올 땐 ‘번호하나 번호 끝‘을 복면복창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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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는 보통 30명 정도가 화장실을 갑니다. 물론 화장실 앞에서 군기를 잡아요.
소변, 대변 상관없이 근무자가 보이도록 시간, 시야, 모두 알아서 조준을 해야 합니다.
보통은 1분을 줍니다. 저는 일주일 동안 대변을 누지 못했습니다. 점심 식단은 그날
사령부에서 사병들이 먹던 음식 중 남은 것을 줬던 것 같습니다. 무슨 국이든 건더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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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아침에 유유하고 빵 나오는 것이 가장 반가웠어요. 저도 2-3일
정도 음식 투정을 했는데 나중에는 없어서 못 먹겠더라고요. 영창에서는 반찬이든 밥이든
한 톨도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김기 국물까지 물로 헹궈 먹었습니다. 18일 영창을
사는데 정말 1년 군 생활 하는 것 같았어요. 저 있을 때는 죽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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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이면 죽어나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제 나이가 21살
이었고 만, 하나님이 보우하사 용케 잘 견뎌냈습니다. 35년이 지나 이런 엿 같은 영창이
패쇄 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물론 반길 일입니다.
2019.12.23.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