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강해16(행16:1-10)
오늘은 사도행전16장 말씀입니다.
사도행전16장은 사도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을 기록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선교여행에서 사도바울은 아주 중요한 인물 몇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약성서 디모데전후서의 주인공인 디모데와
그리고 루디아라는 여성입니다.
목회는 능력 있는 사람 혼자서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목사님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유명한 목사님들은 그 목사님들의 개인적인 능력이 탁월해서 그런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유명한 목사님들 뒤에는 훌륭한 조력자들과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사도바울의 일생을 보면,
사도바울이 위대한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바나바와 마가, 실라, 그리고 오늘 등장하는 디모데와 루디아라는 여신자 뿐만 아닙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도 있고,
그 외 수많은 평신도 동역자들이 사도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심지어 목숨을 내놓고 같이 동역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실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고 성령이 충만해도,
그런 주의 사역자와 함께 한 동역자들이 없으면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아무리 무능하고 부족한 하나님의 종이라도,
여러분들이 오늘 이 바나바와 마가, 디모데와 루디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동역자가 되어 준다면,
우리도 사도바울과 같이 위대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목회자 혼자 이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동역자와 함께 이 교회를 섬겨야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한 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동역자가 되어 주시길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서
이 디모데와 같은 사람과 함께 동행 했기 때문에 큰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요, 아버지가 헬라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의 혈통은 모계 중심사회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유대의 혈통을 가졌다고 해도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유대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이방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디모데는 혼혈로 태어난 관계로 할례를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할례를 받지 못해도 구원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이 내려졌지만, 일부러 할례를 거행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잡음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도바울의 유연한 태도와 지혜로운 결정이었습니다.
때로는 살아가면서 이런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복음에 필요하다면 할례로 인해 불필요한 논쟁이나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지만
해서 불필요한 오해나 논쟁거리가 사라진다면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청년디모데를 데리고 다니기 위해서
할례를 거행하고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사도바울은 아시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비두니아로 갈려고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에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아서 마게도냐로 향하게 되었다고...
7-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복음사역은 내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하심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하고 복음을 전할 때, 항상 내 뜻과 생각대로 하기보다
항상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전도의 전략을 세웠지만 하나님께서 다르게 인도하실 때,
우리는 항상 유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내 고집대로 전도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내 전도의 방식과 방향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항상 기도하고,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일 수 있고, 환경일 수 있고,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내 뜻을 가로막을 때는
어떤게 하나님의 뜻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사도바울을 한번 보세요.
사도바울은 아시아쪽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게도니아로 향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의 계획을 접고 마게도니아를 향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도바울은 아시아 선교를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와 준비를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실거 같습니까?
지금이야 우리가 다 아는 말씀으로 보니까. 따라야죠. 하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집과 주장을 내 세울 겁니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지금까지 준비한 건데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느냐....”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게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계획하다가, 강력한 반대나 환경에 부딪혔을 때
무조건 밀어붙이기 보다는 한발 물러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에 대한 믿음을 갖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원칙도 지켜야 하지만 유연성도 가져야 합니다.
원칙만 주장하면 고집으로 변질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여유를 가지고 유연함으로 대처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기 계획을 철회하고 마게도니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자 한번 보세요. 그랬더니 거기에 누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준비된 기도하는 여인들을 만나고
그 중에 자주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경건한 귀한 동역자를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이 루디아의 직업을 자주장사로 소개되어 나오는데,
이 당시 자주 옷감을 만들어 파는 사람입니다.
이 옷감은 비싸고 귀한 고급옷감입니다.
뭘 말하는 겁니까? 이 루디아는 상당한 재력가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인연으로 인해 루디아는 바울의 상당한 재정적 후원자가 되어
사도바울의 선교에 큰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만일 자기 계획과 고집대로 아시아로 갔다면,
이런 동역자를 만나기는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루디아의 만남을 통해서 유럽의 복음전파에 큰 밑거름이 된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보면, 항상 복음이 가는 곳에는 마귀의 방해와 시험이 항상 따릅니다.
사도바울이 루디아의 집에 초대받아서 복음을 전하는데,
귀신에 들려 점을 치는 여자종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자종의 주인은 여자종의 점치는 것으로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로 인해 귀신이 그 여종에게 떠나버리게 되자,
여종의 주인은 하루아침에 자기 밥줄이 끊어지자
관청에 고발해서 사도바울 일행을 매질하고 감옥에 잡아넣어 버립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때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지만
가끔 억울한 일, 분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복음을 전한다고 다 환영하고, 다 좋은 일만 생기지 않습니다.
때로는 복음이 방해를 받고, 훼방 놓는 훼방꾼들이 꼭 생깁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걸 겁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니 하세요.
제가 처음 이 곳에 와서 무료급식할 때, 별의 별 희안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술을 먹고 와서 행패를 부리고 서로 싸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게 돈을 달라고 떼쓰는 사람도 있었고,
안주면 목사가 돈 안준다고 고래고래 욕하고 고함지르고
나가면서 벽에 발길질을 하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내가 저분들을 도와준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분들은 저를 향해 욕하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참고 견뎠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그런분 한분도 안계십니다.
토요일 예배때 일찍와서 자리에서 기다리시고, 불평불만하시는분들이 없습니다.
얼마나 평화롭게 또 귀기울려 말씀을 잘듣고 예배를 그렇게 잘 드릴 수가 없어요.
그 시험을 이겨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오늘 사도바울과 그 일행도 복음을 전하는데, 매를 때리고 감옥에 집어넣어요.
얼마나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상태겠습니까? 불만을 가질만하잖아요.
그런데, 사도바울과 실라는 그 감옥에서 어떻게 지냅니까?
기도하고 찬미했다.....그렇게 나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하는데, 어려움을 만납니까?
기도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세요.
그랬더니 한번 보세요. 하나님께서 그 밤중에 옥문을 열어주시지 않습니까?
간수들이 그들의 기도와 찬송을 들었다....그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기도와 찬송을 하나님만 들으시는게 아닙니다. 세상이 듣고 봅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을 세상사람들이 보고 듣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핍박하고 훼방해도,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오늘 이 간수들이 비록 죄수의 몸으로 갇힌 사도바울과 실라지만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 보여주신 놀라운 역사를 통해
이 간수들도 조차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 때, 비록 환란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오히려 그 환란과 핍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영혼들이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 세운 교회가 어느 교횝니까? 바로 빌립보교회 아닙니까?
이 빌립보교회는 환란과 빕박 가운데 유럽에 열매되어 세워진
유럽의 최초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두란노교회도 저를 도와 함께 동역해 주시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방의 빛이 되고, 이 지역에 소망이 되는 빌립보 교회와 같은 그런 교회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이 오고, 시험이 와도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저와 함께
주님이 우리 두란노교회에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믿음 안에서 그 사명을 이룰때까지 함께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