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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두산(犬頭山) 동계 야영기 1. 일시 2013. 1. 31.(목) 18:48 ~ 2. 1.(금) 08:38
2. 루트, 거리 및 소요 시간 - 上山 : 수지면 호곡리 신덕마을 → 견두산 (2.08km, 2시간 9분) - 下山 : 견두산 → 호곡리 신덕마을 뒤 → 용주사 → 양촌 → 고정 → 생계 → 상주 (9.12km, 3시간 2분)
3. 준비물 배낭(58ℓ용), 미군용 ACU침낭세트(intermediate bag, patrol bag, bivy cover, sack), 소형텐트(하계용), 매트, 아이젠(1조), 스패츠(1조), 코펠(1인용), 버너, 가스통, 보온용컵, 라면(10봉지), 물(1.8ℓ 3통), 초콜릿 과자(1봉), 사과(2개), 캔 콜라(2개), 다용도 칼, 휴대용 톱, 방한모(2개), 등산장갑(1조), 미군용 방한 수갑(1조), 작업용 코팅 장갑(2조), 실장갑(1조), 헤드랜턴, 소형전등, 여벌 속옷(상하의), 양말(2켤레), 등산복 여벌(상하의, 상의티), 방한목도리, 등산양말, 수건, 손수건, 비옷, 휴대폰 배터리, 사진기, 갤럭시 탭, 스마트폰, 선글라스, 여분 안경(2조), 볼펜 2자루, 라이터 2개, 붙이는 파스(1봉지), 복합마데카솔, 일회용반창고, 휴대용의자, 바닥깔판(우산 천으로 만든 것)
4. 기획 의도 및 준비 - 2007년부터 견두산에 오르기 시작(매년 1~3회 이상 다녔음) - 2009년부터 여름철(7~8월)에 견두산 마애여래입상 앞에서 비박 또는 야영 시작 - 아직 동계에 야영을 하지 않아 금년부터 시작하려고 준비 - 연차휴가 기간이 2월 15일로 종료되어 그 이전에 하기로 함 - 설 연휴를 피하고 눈이 녹기 전에 가려면 이때가 적기라고 판단 - 집사람이 딸집에 가고 없을 때 재빨리 준비해서 곧바로 출발
2013. 1. 30.(수)에 요금관리팀과 지사장과의 Face to Face 행사가 있어 저녁 회식이 있었다. 원래 술을 못해 회식이 있는 날이면 괴롭다. 장소는 불광동 전철역 근처 먹자골목에 있는 <강구 미주구리>였다. 세꼬시, 과메기 등이 나오는 식당이었는데 먹을 만했다. 하지만 제각기 취향이 다르니 뒷말도 있었지만. 맘은 급한데 왜 이리 끝나질 않는지.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가고. 어찌하여 행사 종료를 선언하고 지하철 타고 곧장 집으로 왔다. 준비를 해야 하는데 워낙 술을 못해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소파에 기대고 TV를 보면서 카톡을 하다 11시가 넘어 전실 창고와 여기저기를 뒤져서 배낭을 꾸렸다. 없는 것도 많고 빠트린 것도 많았다. 대충 꾸려서 잠자리에 든 시간이 12시 40분 정도 되었다. 처음 동계 아영을 한다고 하니 이런저런 생각에 중간에 잠이 깨기도 했다. 다음날 일찍 배낭을 짊어진 채 출근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주간업무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부터 휴가를 내려면 미리 작성을 해야 했다. 시간이 없다. 집에다 견두산 간다고 얘기를 하지 않고 살짝 있는 거 대충 싸가지고 나왔다. 더 필요한 거는 사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 우선 서울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앞당겨야 하고 남원에 도착했을 때 견두산에 오를 수 있는 시간도 앞당겨야 한다. 그래야 야간에 오르지 않고 훤할 때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남원지사에 근무하는 김석훈 과장에게 전화를 해서 부탁을 했다. 내가 남원에 도착하기 전에 연락을 할 테니 터미널에서 견두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인 수지 홈실까지 태워다 주라고.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일단 휴가를 올려놓고 인계사항을 주무 직원에게 알려주고 일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동계 수요관리 때문에 점심시간이 한 시간 당겨져서 11시부터 12시까지가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재빨리 불광역으로 가서 근처 등산가계에 들렸다. 우선 코펠과 버너와 매트를 샀다. 정상에서 1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코펠과 버너는 필수적이었다. 시골에 장비가 모두 있지만 시골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올라가려고 또 샀다. 대신에 1인용으로 아주 작은 것을 샀다. 이제 강남터미널에서 남원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강남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갈아타지 않고 바로 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절약이 되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호남선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면서 가는데 이게 웬일이냐. 갑자기 오른쪽 장딴지를 쇠망치로 내리친 것 같았다. 뭐가 떨어졌나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장딴지 근육이 뭉쳤나 보다. 작년 봄에 바래봉 철쭉제에 갔을 때도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뛰지도 않고 정상적으로 걸었는데 그랬다. 절뚝거리며 출구를 찾는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간 데를 또 가고 겨우 호남선 매표소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12분이었다. 12시 10분 차를 놓친 거다. 일단 13시 10분 차표를 샀다. 그 앞 차는 우등고속인데 이번 차는 일반고속이었다.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아까 장딴지 근육이 뭉쳐서 걷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약국에 가서 붙이는 파스를 샀다. 그리고 터미널 지하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마트로 가서 아예 준비물을 사기로 했다. 둘러봐도 살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물(1.8ℓ) 3통과 초콜릿 과자 한 봉지와 라면 2봉지(총 10개)를 사서 올라왔다. 다시 짐을 패킹하고 장딴지에 파스도 붙여야 해서 화장실로 갔다. 다시 패킹을 하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 풀어서 다시 정리하려면 공간도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우선 장딴지에 파스부터 붙였다. 아까 신세계백화점에서 샀던 물건을 여기저기 쑤셔 넣고 승강장으로 올라왔다. 13:10에 출발한다고 김석훈 과장에게 문자를 보내고 딸집에 있는 집사람에게도 알렸다. 이제 간다. 내심 불안했다. 너무 늦어지면 어쩌나.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다리까지 아프니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상관을 지나가면서 김석훈 과장에게 중간 중간에 위치 통보를 보냈다. 곧 도착한다고. 도착해서 배낭을 짊어지고 나오는데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었다. 터미널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너무 힘들었다. 두리번거려 차가 어디에서 오나 보았더니 웬걸 터미널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건너왔네. 다시 절뚝거리며 배낭을 차에 실었다. 황연미 씨와 물건을 사러 시내에 나왔다가 들린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일단 수지면 소재지 호곡리 뒤 신덕마을 경노회관 뒤쪽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정말 고맙게도 여기까지 바로 올 수 있어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곧장 배낭을 짊어지고 갤럭시 탭을 꺼내 Run Keeper를 가동했다. 올라가는 초입이 여름보다는 덜 했지만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 가시덤불이 등산로를 가로막았다. 얼마 전에 겨울철 등산 바지를 샀는데 아마 올라가다 보면 여기저기 뜯기고 찢길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막일 할 때 입는 옛날에 구입한 등산바지를 가져왔는데 배낭 깊숙이 넣어서 다시 꺼낼 수 없었다. 배낭을 고쳐 둘레 메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일단 산판도로가 나올 때까지는 경사도가 낮아 걷기에 편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 길에 들어섰다. 도저히 제대로 걷기가 힘들어 오른쪽 발은 게걸음으로 옆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걸었다. 벌컥 겁이 났다. 이거 가다가 도중에 오도 가도 못하면 어떻게 하나? 급하게 오느라 집에서 스틱도 가져오지 못했다. 한 손에는 물통을 넣은 비닐 봉지를 들고 한 손에는 휴대용 톱과 나무 지팡이를 들고 갔다. 혹시 등산로에 넘어진 나무나 나뭇가지 또는 잡목을 제거하기 위하여 톱이나 낫은 필수적이다. 5분마다 Run Keeper가 알려주는 시간과 이동거리를 들으면서 올라갔다. 출발한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 중간도 못 올라간 것 같다. 견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커다란 소나무가 많아 솔 향기가 진하고 낙엽이 많이 쌓여 있고 부식토가 두툼하여 냄새 또한 향기롭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작년 여름에 왔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등산로 여러 곳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태풍에 넘어져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었다. 침낭과 매트 때문에 배낭이 높아 여기 저기 걸렸다. 그래서 돌아서 가거나 아니면 나뭇가지를 자르면서 올라갔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산 아래가 점점 멀리 보이고 날이 어두워지니 저 아래 마을에는 하나 둘 불빛이 반짝이고 저 멀리 남원과 곡성에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구경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올라갔다. 거의 정상에 다다르자 눈이 아직 녹지 않아 마애여래입상 쪽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더듬거리며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 와~~~~~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바로 구례와 곡성, 뒤를 돌아보니 남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저녁 7시가 되니 해는 넘어가고 어두워졌다. 산 아래 저 멀리 불빛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빨리 야영지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짐을 풀어야 해서 정상에서는 1분도 머물지 못하고 바로 목적지로 향했다. 정상을 출발한지 5분 후에 야영지에 도착했다. 야영지는 마애여래입상에서 남원 쪽 방향으로 몇 미터 앞에 있다. 그 쪽은 응달이라 햇빛이 덜 들고 바람도 막아주어 아주 아늑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눈이 하나도 녹지 않고 제법 두껍게 덮여 있었다. 남원 쪽을 잠시 바라보니 너무 황홀했다. 곡성 쪽도 마찬가지다. 멀리 광주 방향은 하늘이 훤했다. 전주 쪽도 마찬가지였는데 광주 쪽 보다는 덜 한 것 같다.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 와본 중에 가장 멋있고 황홀한 야경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서 빨리 텐트를 치고 짐을 풀어야 쉴 수가 있다. 일단 배낭을 풀어 텐트를 조립해서 세웠다. 항상 텐트를 치던 곳에다 세웠다. 물론 눈밭 위에 세웠다. 그리고 텐트 안에다 배낭 속에 넣어 온 내용물을 다 쏟아놓았다. 너무 지쳐서 라면을 끓일 여유가 없었다. 우선 서울에서 사온 초콜릿을 꺼내 2/3정도만 먹고 남겨두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종일 한 끼만 먹었다. 아침은 서두른다고 청국장 가루만 마시고 나왔고 구내식당에서 10시 50분에 점심을 먹은 게 전부였다. 그러나 배는 고프지 않았다. 일단 집에 전화를 했다. 정상에 도착해서 짐 풀고 쉬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그리고 강희와 균식이에게도 문자를 날렸다. 나중에 강희가 전화를 해와 통화를 했다. 지금까지 5차례 여기서 야영을 했지만 할 때마다 늦게 올라오는 바람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너무 피곤해서 식사도 못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그렇게 피곤한데도 잠은 제대로 오지 않았다. 모든 걸 정돈하고 나니 7시 30분이 넘었다. 일찍 자려고 매트를 깔고 옷을 갈아입고 침낭 속으로 몸을 뉘였다. 그러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올라오느라 또 오른쪽 장딴지 근육이 뭉쳐서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잠시 사진기를 들고 남원과 곡성 쪽 야경을 찍고 들어왔다. 피곤하지 않으면 야경을 더 보고 싶었는데 너무 피곤했다. 바로 들어와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아예 머리까지 푹 둘러쓰고 자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눈밭 위에 텐트를 쳤는데도 전혀 춥지가 않았다. 마치 이불 속에 있는 것처럼 온기가 있어 아주 아늑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견두산마애여래입상 앞은 상서로운 곳이다. 저 멀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 마치 전투기가 날아갈 때 나는 소음처럼 세찬 물길이 계곡을 흐를 때 나는 소리처럼 끊임없이 계속 윙윙거렸지만 이곳만큼은 너무 고요했다. 정말 이상한 현상이다. 물론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서 그러하겠지만 견두산에서 유일하게 이곳만이 그렇게 고요하고 아늑했다. 올라오면서 능선의 등산로에도 골바람이 무서울 정도로 소리를 내면서 불어재꼈는데 여기는 거짓말처럼 조용하다. 예전 2007년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지금처럼 텐트 칠 공간도 없고 잡초와 잡목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 이틀 정도 시간을 내서 작업 도구를 가지고 와서 죽은 나무를 잘라 한 곳에 모으고 잡목과 잡풀을 제거하고 무성하게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잘라주었다. 그리고 남원 쪽을 조망하기 좋게 방해되는 나무와 가지들을 모두 잘라냈다. 그 후 몇 년 동안 조금씩 작업을 해서 구례, 곡성 쪽과 남원 쪽을 잘 보일 수 있도록 했다. 너무 너무 피곤해서 억지로 잠을 청했는데 바람 소리가 너무 심하게 들리고 온 몸이 쑤시고 아파서 제대로 잠이 오지 않았다. 저녁 9시쯤부터 비가 조금씩 계속해서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알고 왔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잠을 청했다. 한참을 자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스마트폰을 보니 새벽 01:20정도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2010년도 서산에서 근무할 때 외환카드를 발급받으면서 사은품으로 준 아주 싸구려 중국제 텐트인데 여름용이었다. 좌우 양쪽에 모기장이 달려있고 또 그 바깥으로 천에 지퍼가 달려 있어야 하는데 이건 지퍼가 없었다. 그래서 바람이 살랑거리니까 위로 날아가서 붙어버렸다. 그러니 빗물이 텐트 내부로 고스란히 다 흘러들어왔다. 그것도 좌우에서 비가 스며들어 배낭에서 풀어놓은 짐이 고스란히 비에 다 젖었다. 등산화를 비롯하여 배낭, 여벌옷 등 모든 게 다 비에 젖었다. 그래서 비가 덜 새는 곳으로 뭉쳐서 한 쪽으로 옮겨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잠자리에는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그렇지만 고아텍스 침낭 커버가 습기를 아주 완벽하게 차단시켜주었다. 아직 침낭 안에는 마치 이불 속에 있는 것처럼 온기가 있었다. 일단 다시 잠을 청했다. 에라이 모르겠다. 자자 자. 자는 게 남는 거다. 항상 여기서 야영할 때 느끼는 거지만 견두산에서 이곳이 지기(地氣)가 가장 충만한 곳인 것 같다. 여기서 자면 아주 짧은 잠을 잤는데도 머리가 맑고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그리고 여름에 매트를 깔지 않고 그냥 땅바닥에 잤는데도 온기가 느껴지고 너무 푸근해서 기분이 좋다. 정말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침 6시가 조금 넘었다. 지퍼를 열고 밖을 보니 온 천지에 안개가 끼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 걱정이 됐나보다. 텐트 안을 둘러보니 난리가 아니다. 온통 물바다다. 이걸 어떻게 하나. 우선 요기부터 해결해야지. 그래서 일단 라면을 두 봉 뜯어서 끓였다. 코펠은 불광역 앞에서 산 것인데 일인용이라 그런지 겨우 라면 두 개가 들어갔다. 밖에는 지금도 비가 오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텐트 안에서 끓여야만 했다. 수증기가 텐트 안에 가득했다. 일단 짐을 최대한 줄여야 해서 이곳에서 소비할 게 있으면 다 없애고 가야한다. 그래서 가지고 간 것 중에서 처치할 만한 것들을 골랐다. 남은 초콜릿 과자는 마저 먹고 사과 두 개도 깎아서 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가 와서 눅눅한데 라면 끓이는 수중기와 범벅이 되어 텐트 안은 뿌옇게 안개가 가득했다. 가지고 올라간 물통이 세 개였는데 올라가면서 마시고 남은 물로 끓였는데도 한 통을 다 소비하지 못했다. 이거 여기다 버릴 수도 없고 다시 가져가야 한다. 욕이 나온다. 원래 날씨가 좋으면 여기서 이틀 밤을 지내거나 견두산에서 밤재를 지나 영제봉과 만복대를 거쳐 정령치를 경유해서 눈꽃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운봉 바래봉까지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날씨도 비가 오고 배낭이 온통 젖어서 무거울 뿐만 아니라 종아리까지 탈이 났으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비는 계속해서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이제 아침도 먹었으니 텐트를 걷고 짐을 챙겨서 내려가자. 일단 짐부터 정리를 했다. 짐을 정리하면서 보니 올라올 때 걱정했던 대로 등산복 바지가 가시덤불에 뜯기고 바위에 짓이겨져서 찢어졌다. 집에 가면 또 한 소리 듣겠구나.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나. 다른 때 같았으면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의 짐 무게가 가벼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 무게가 더 무겁게 되었다. 가져온 것 중 소비한 것이라곤 라면 두 봉, 물 한 통이 전부였다. 그런데 거기다가 온통 물에 다 젖었으니 올라올 때보다 무거울 수밖에. 그래도 버릴 수도 없어 다시 몽땅 짐을 꾸렸다. 올라올 때는 텐트는 배낭 안에 침낭과 매트는 배낭 밖에 묶어서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거추장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침낭을 배낭 안에 넣고 텐트를 배낭 옆에 묶어 달았다. 전혀 사용해보지도 않고 다시 되가져간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동계에 처음으로 야영을 하는 것이니만큼 준비를 많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음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꼭 불요불급한 것만 가지고 와야지. 2009년 여름에 맨 처음 야영을 했을 때도 짐이 무려 80여 kg이 넘어서 6시간 이상 걸려 올라온 적이 있었다. 두 번째부터는 짐을 줄이기 시작해서 이제는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간다. 이번 동계 아영을 거울삼아 다음부터는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가고 그렇지 않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지. 짐을 다시 꾸리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제 저녁에는 야영지에 눈이 10cm 이상 쌓여 있었다. 저녁 내내 비가 줄기차게 와서 그런지 눈이 많이 녹았다. 내가 텐트를 쳤던 부분에 아직 눈이 녹지 않고 주변에는 모두 눈이 녹았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배낭을 둘러멨다. 마애여래입상에서 홈실로 내려가는 길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또 견두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와~~~ 바람이 너무 세차다. 그리고 안개가 잔뜩 끼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스마트 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홈실 쪽으로 내려갔다. 홈실에서 견두산으로 올라오는 등산로는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잡풀과 잡목으로 등산로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내려갈 때 비에 젖은 낙엽이 미끄러울 것 같아 아이젠을 착용했다. 무척 편하고 안전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내려가기가 곤란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넘어질 것 같아 거의 앉은 자세로 기다시피 해서 내려왔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 스틱 대용으로 가느다란 나무막대 두 개를 만들어 짚고 내려왔는데 정말 편했다. 스틱을 집에서 챙겨왔어야 했는데 서두르는 바람에 까먹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훌륭하게 조달을 했다. 가볍고 단단한 나무가 많았다. 나무를 마구잡이로 자르지 않고 가지만 잘라내도 충분하게 마련할 수 있었다. 올라오면서 태풍에 넘어진 나무들이 등산로를 막고 있어 힘들었는데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올라올 때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내려가는 속도가 올라올 때 속도보다 빨랐다. 그리고 오른쪽 종아리도 올라올 때보다 통증이 덜 했다. 산판도로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바로 수지 소재지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양촌 마을로 가는 산판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직도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5분마다 Run Keeper가 소요 시간과 거리를 알려주어 심심하지는 않았다. 한참을 내려오니 용주사가 나왔다. 용주사에서 스님이 우산을 쓰고 나오시면서 “이렇게 궂은 날씨에 산 속에서 지내고 오십니까?” 놀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너왔다. 당초에는 수지 농협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정상에서 배낭을 꾸리면서 지갑이 든 잠바를 배낭 안에 넣고 패킹을 해서 할 수 없이 집에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오른쪽 종아리가 당기고 통증이 왔다. 비도 조금씩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젖은 배낭은 무겁기까지 했다. 비가 와서 어디서 쉬지도 못하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다리는 아프고 비는 계속 내리고 안경에는 서리가 끼고. 아주 천천히 터벅터벅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다. 생계 마을을 지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비를 맞으며 힘들게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에게 소리를 쳤다. “어이, 어이! 쪼끔 있으면 버스가 옹개 버스 타고 가잉!” 내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러웠나 보다. “네, 일부러 걷고 있는 거예요.”라고 하면서 지나쳤다. 원래 쌩기몬당을 거쳐 가야 하는데 그리로 가면 돌아가는 것 같고 또 우리 산도 볼 겸 오루골로 들어가는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어차피 걸어서 가는 건데 시간도 절약하고 우리 산도 볼 겸 그렇게 루트를 바꿨다. 날씨만 좋으면 산도 둘러보고 잡목도 좀 쳐주고 그랬을 거다. 하지만 비가 오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오면서 눈으로만 휙 한 번 둘러보고 그냥 내려왔다. 씨아시골로 들어가는 곳에 산을 까뭉개서 새로 길을 내놓았다. 보아하니 전신주도 새로 설치해 놓았다. 그것도 삼상고압(三相高壓)으로. 아마 토사채취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요 근래 여기저기서 산을 까뭉개고 있다. 4대강을 헤집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내륙에서 산도 까뭉개고 있다. 물론 이건 정부에서 하는 게 아니고 개인이 산을 사서 골재를 채취하거나 토사를 채취하기 위해서 그러나 본데 자연을 너무 훼손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우리 산 맞은편도 산을 완전이 절토를 해서 못쓰게 만들어 놓았다. 가슴이 아프다. 상주 집으로 돌아오니 11시 40분이 되었다. 정확하게 08:38에 야영지를 출발해서 3시간 2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이동 거리는 9.12km다. 형님께서 연락을 받았는지 미리 급탕을 눌러 놓았다. 얼른 배낭을 내려놓고 온수로 샤워를 하고 나서 형님 옷으로 모두 갈아입었다. 내가 여분으로 가지고 간 옷들이 모두 비에 젖어 할 수 없이 형님 옷으로 갈아 입어야 했다. 비에 젖은 옷들은 형수님이 세탁기를 돌렸다. 아랫방에 미리 장작불을 지펴놓아 뜨끈뜨끈했다. 배낭에서 모든 짐을 풀어서 바닥에 깔아 말렸다. 집에서 다시 견두산을 보니 아직도 안개가 휘감고 있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원래 바로 서울로 올라가려 했는데 배낭과 옷을 말려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루 더 머물고 토요일 올라가야 했다. 이번 동계 아영은 마음만 먹고 있었지 치밀한 계획도 없이 갑자기 진행한 일이라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번 겨울이 그냥 지나가버릴 것 같아 할 수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치밀하고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더 만족스럽게 다녀올 생각이다. 고생은 되었지만 이번에도 기분이 너무 좋다. 다음 여름이 또 기다려진다. 다음에는 가고 싶어 하는 놈과 함께 가야겠다. 이 기쁜 일을 여러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아직까지 이러한 즐거움을 모른 채 지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혹자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아니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어떻게 혼자 그것도 한 겨울에 견두산 꼭대기에서 잠을 자다니! 그렇지만 한 번 해봐라. 마약이다 마약. 갑작스럽게 동계 야영을 한다는 것은 무모하고 일단 여름에 해보고 맛이 들리면 서서히 끌어들여야지. 그렇지만 혼자 가는 게 가장 좋다. 간섭하는 놈도 없고 의견 충돌을 일으키지도 않고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아~~~ 이번에도 해냈다. 힘들었지만. 내년부터는 이보다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거다. 덕분에 오늘 경희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부황도 떴다. 내일 하루 더 나와야 한단다. 2013. 2. 4.(월)
▲ 남원으로 내려가려고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2분 늦게 도착해서 12:10차를 놓치고 13:10차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서울에서 먹을 것을 모두 준비했다. 배낭에 침낭과 매트을 묶어 달았다. 부피와 무게가 만만찮다.
▲ 야영지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텐트 천정에 랜턴을 매달았다. 그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아서 그런대로 좋았다.
▲ 배낭 속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꺼내 놓았는데 나중에 전부 비에 다 젖었다. 저기 보이는 등산화에도 빗물이 들어갔다. 너무 피곤해서 라면도 끓어먹지 못하고 초콜릿 과자 한 봉 뜯어서 먹었다. 오른쪽 발 밑에 초콜릿 봉지가 보인다. 매트만 깔고 아직 침낭은 풀지 않았다.
▲ 저기 있는 저 침낭이 날 살렸다. 저 침낭이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이번 처음 동계 야영을 무사히 마쳤다. 저기 보이는 1인용 코펠은 불광역 근처에서 급하게 산 거다. 시골에 코펠 세트와 버너가 있는데 시골집에 들러서 오면 못 가게 할 것 같아 곧장 올라오느라고 또 하나 마련했다.
▲ 텐트를 치고 남원쪽을 바라보니 황홀 그 자체였다. 사방은 칠흑같이 캄캄한데 멀리서 반짝이는 야경이 나를 무아지경으로 빠지게 했다. 왼쪽으로는 곡성의 야경이 보이는데 이 사진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구례 쪽 야경은 견두산 정상에 가야 보인다. 야영지에서는 곡성과 남원쪽만 보인다. 아마 180도 정도는 커버될 거다. 이렇게 캄캄한 산꼭대기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냐고? 천만에! 황홀하다니까. 저 나무 아래는 절벽이다. 술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아니면 소변을 보려 발을 잘못 디디면 간다 가.
▲ 이쪽이 곡성 방향이다. 남창과 고달이 보이고 곡성도 남원 못지 않게 반짝거린다. 멀리 광주 방향으로 하늘이 훤하다. 전주 방향인 오수 쪽도 하늘이 훤하지만 광주 쪽만 못하다. 정말 장관이다. 이런 맛으로 온다.
▲ 사진기가 후지고 촬영하는 방법을 몰라서 이 정도지 직접 보면 까무라친다.
▲ 온 천지가 암흑천지다. 캄캄할수록 오히려 마음이 포근해진다.
▲ 작은 마을에는 보안등만 깜박거린다.
▲ 여긴 사진기가 흔들렸나?
▲ 아니 이렇게 안개가. 거의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지?
▲ 아침에 일어나니 이렇게 온통 안개가 끼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바로 앞은 절벽이다.
▲ 보이냐? 안 보이지. 비는 계속 내리고 앞은 보이지 않고 텐트 안에는 비가 젖어 물이 흥건하고 종아리는 땡기고 어깨는 쑤시고. 하지만 기분은 좋다.
▲ 텐트 바로 옆에 곡성 쪽으로 나무가 있는데 이렇게 희미할 정도로 안개가 짙게 깔렸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 텐트 바로 앞인데 이렇게 짙게 안개가 끼었다. 아마 우리 동네에서 바라보면 견두산이 온통 구름으로 둘러쌓여 산이 전혀 보이지 않을 거다.
▲ 텐트 안에도 이렇게 안개가.
▲ 바닥에 물이 흥건해서 옷가지를 이렇게 침낭 카바 위로 올려놓았다.
▲ 어제 텐트를 칠 때는 주변에 눈이 10cm 정도 쌓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개고 보니 이렇게 텐트쳤던 사각형으로 된 자리를 제외하고 눈이 녹았다. 저녁 내내 비가 내렸는데도 저 정도 눈이 남았으니 눈이 얼마나 많이 쌓였었는지 짐작이 갈 거야.
▲ 텐트쳤던 자리가 비가 내려서 눈이 녹아 눈 위에 아니 또 물 위에서 잤다. 대충 배낭에 짐을 다 꾸리고 갈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러나 아직 텐트를 개지 못했다.
▲ 아직도 안개가 너무 짙게 끼었다. 혹시 몰라 톱은 들고 내려가려고. 올라올 때 보니까 넘어진 소나무가 가로막아 자르면서 갈야할지도 몰라서.
▲ 라면을 10봉지를 사가지고 갔는데 겨우 두 봉을 뜯어서 끓였다. 코펠과 버너도 시골에 있는데 곧장 오는 바람에 또 준비를 했다. 저 놈의 물병! 세 개를 가지고 올라갔다. 이틀간 머물 걸 예상하고 준비했는데 두 병은 그대로 다시 가지고 내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비에 젖어 배낭이 무거웠는데 저 물병까지 되가져와야 했으니 얼마나 열받았겠냐? 하지만 유비무환 정신을 발휘해서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그랬다.
▲ 여벌로 준비해간 옷도, 배낭도 비에 흠뻑 젖었다.
▲ 침낭을 제외하고 젖지 않은 게 없었다. 그리고 저 콜라도 두 캔을 가져갔는데 하나도 마시지도 못하고 되가져왔다.
▲ 소비할 게 있으면 모두 없애고 가려고 라면을 두 개를 끓이고 있다. 사과도 두 개 다 깍아 먹고 초콜릿 과자 남은 것도 다 먹어 치웠다.
▲ 텐트를 걷기 전에 한 방 찍었다. 어제 저녁에는 저 주변에 눈이 제법 많이 쌓였는데 간밤에 계속 비가 와서 많이 녹았다.
▲ 날씨가 좋았으면 저 주변을 깨끗하게 더 정돈 좀 하고 모닥불도 피우려고 했는데.
▲ 몇 년 전에 내가 주변에 죽은 나무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는데 지금도 그대로다.
▲ 보긴 저래도 물 구덩이에 있는 거다. 텐트 안에도 물이 흥건하다.
▲ 비가 계속 와서 눈은 녹고 안개는 끼고 정말 심란하다.
▲ 텐트 안이다. 침낭을 제외하고 성한 것이 없다. 모두 물에 젖었다.
▲ 저 미군용 ACU고아텍스 침낭이 날 살렸다. 저 침낭의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이제 텐트를 개고 집으로 가야겠다. 텐트쳤던 자리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다.
▲ 이제 내려가려고 텐트를 다 걷었다. 텐트쳤던 자리가 물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 이제 패킹이 끝났다. 아이젠과 톱만 남겨두고 모두 배낭에 다 집어넣거나 매달았다.
▲ 침낭은 배낭 안에, 텐트와 간이의자를 배낭 옆에 묶고 매트는 배낭 위에 매달았다.
▲ 내려오면서 촬영한 견두산 정상이다. 남원시에서 설치한 안내판과 표지석이다.
▲ 여긴 구례군에서 설치한 표지석이다.
▲ 남원시에서 설치한 안내판과 표지석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거라 해상도도 떨어지고 급했는지 움직여서 상태가 좋지 않다.
▲ 홈실에서 견두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여기저기가 이렇게 엄청나게 큰 소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좀 치워야 하는데.
▲ 저렇게 큰 나무는 내가 가져간 휴대용 톱으로는 엄두를 못낸다. 엔진톱 아니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 여긴 소나무가 집단으로 왕창 쓰러져 우회해야 한다. 배낭이 높아 가지에 걸려서 애먹었다.
▲ 남원시에서 얼른 이걸 치워줘야 하는데 시(市)나 면(面)에서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 밤재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는 구레군에서 아마 다 정비했을 거다. 예전에도 그쪽 등산로는 잘 정비가 되었다. 그러나 남원쪽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는 관리를 하지 않고 방치해 두고 있어 아사리판이었다. 그러니 등산객들이 계속 구례쪽에서만 올라가고 있다. 아마 홈실에서 올라가는 사람은 동네 사람과 나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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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선 사진부터 올린다.
동계 야영기는 정리정돈을 해서 내일에나 올리마.
너무 길 것 같다.
사연도 많고 할 얘기도 많고.
혹 ACU가 무슨 말이냐고? 미 군용 전투복을 말한다. 영어로 Army Combat Uniform의 약자다. 1980년 중동전을 치르면서 국방색에서 사막용으로 바뀐 제복이다. 살색 비스무레 한 것에 얼룩이 있는 모양의 군복이나 위장복을 말한다. 위키피아에서 설명한 내용은 이렇다. The Army Combat Uniform (ACU) is the current combat uniform worn by the United States Army. It is the successor to the Battle Dress Uniform (BDU) and Desert Camouflage Uniform (DCU) worn from the 1980s through the early 2000s. It features a number of design changes, as well as a different camouflage pattern from its predecessor.
계속된다. The ACU and its component materials are manufactured by the existing industrial infrastructure which produced the now-obsolete BDU. Official military-grade ACUs are made of 50% nylon and 50% cotton. All other blends are not official issue.
한의원에 이틀만 다니면 될 줄 알았는데 하루 더 나오란다. 그래도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오히려 지난 12월 하순에 장작을 만드려고 상암산에서 통나무를 옮기다 넘어졌는데 무릎이 좀 껄쩍지근하다.
퇴직하고 20년은 육신을 더 부려야 하는데~~~
조심해야지. 너무 혹사시키지 말아야지.
나이를 생각해야지 몸을 너무 혹사시키는것 같다.
고생했다.
혹사?
견딜만 해.
그런다고 죽기까지 하겠어?
할 수 있는 한 새로운 시도를 해야지.
다음 계획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북한산에서 금요일 저녁에 야영하는 건데 잘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더 하나 있다.
해안선을 따라 강원도 고성을 출발하여 동해안, 남해안과 서해안을 걸어서 일주하는 건데 될지 모르겠다.
그것도 수지 않고 계속 스트레이트로.
두 달 정도면 될까?
누가 동참할 사람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