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은 흘긴 눈〉은 〈까막잡기〉 보다도 더 지독한 풍자를 보여준다. 풍자의 대상은 ‘부잣집 외동아들’이다.
‘귀공자’는 기생 채선에게 반해서 그가 요구하는 대로 돈을 쓴다. 그러다가 수중의 돈이 떨어지고, 이윽고 아버지를 팔아서 빚을 당겨쓴다.
결국 이 귀공자는 그 짓도 못하게 된다. 귀공자는 마침내 채선에게 “네나 내나 이 세상에서 더 구차히 산다 한들 또 무슨 악을 보겠니? 차라리 고만 죽어버리는 게 어떠냐?” 하고 동반자살을 제의한다.
채선은 속으로는 ‘미쳤나, 죽기는 왜 죽어’ 하면서도 말로는 “그래요. 고만 죽어버려요”라며 찬성한다. 귀공자가 아편을 구해오고, 둘은 그것을 삼킨다. 그러나 채선은 삼킨 척했을 뿐이다.
숨이 끊길 무렵에야 귀공자는 채선이 약을 삼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 차 “미친 개 눈깔같이 핏발”이 선 눈을 흘기다가 절명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채선의 독백이 장식한다. “그 흘긴 눈”이 “정다운 생각이 들어요. 그리운 생각이 들어요!”
이 결말은 귀공자에 대한 채선의 지독한 풍자를 담고 있다. 채선은 “(자신에 대한) 거룩한 사랑을 가진 그이”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면 “기뻐해야 옳을 일 아니에요?”라고 반문한다. 그만큼 귀공자는 지독한 조롱과 조소의 대상일 뿐이다.✧ (1924년 발표)
〈그립은 흘긴 눈〉과 그보다 2년 전 발표작 〈타락자〉는 ‘닮은꼴’소설이다. 모두 기생에 미친 남자와, 남자를 철저히 배신하는 기생을 묘사했다. 현진건은 일본제국주의와 ‘타락자’들 때문에 ‘조선’이 ‘술 권하는 사회’로 전락했다고 파악했다. 그래서 〈술 권하는 사회〉 주인공은 심야에 “아아, 답답해!”라며 울부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