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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6월 12일 수요일
[(녹)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엘리야의 기도에 주님께서 응답하시자, 온 백성이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시라고 부르짖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 백성이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8,20-39
그 무렵 아합 임금은 2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하였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
23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24 여러분은 여러분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에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그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26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27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28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29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30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이리 다가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31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32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33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34 그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35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36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37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으며,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르십니다. 우리는 율법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게 되지만, 사실 예수님께서는 규칙과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율법주의’를 비난하셨지 ‘율법’ 자체를 반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율법의 참된 의미와 목적은 뒤로 한 채 조항을 지키는 것 자체에서만 의미를 찾고 그로써 하느님께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율법주의는 두려움과 편협함과 완고함을 낳을 뿐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 없음’도 경계하십니다. ‘율법의 폐지’를 바라는 사람들은 법은 필요 없고, 사랑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은 법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곧 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유명한 문장인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가 그러한 뜻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하는 사람이, 사랑으로 말미암은 사랑의 법을 꺼리고 거기에 자신이 얽매여 있다고 여긴다면,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자신 안에 사랑이 없으면서도, 율법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자기만족에 기울게 됩니다.
이기적인 자아 추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화하면서 율법을 없애 버리려 하는 것입니다(『울림』, 200-204면 참조). 우리는 규정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율법주의’와 내적인 기준을 없애고 무분별한 자유를 바라는 ‘율법 없음’을 모두 경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율법의 참의미’를 깨닫고, 이를 지키는 율법의 완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매일의 꾸준한 작은 봉헌과 헌신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자 근간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시골에서 살다 보니 은혜로운 일이 참 많습니다. 도시에서 사무직에 종사할 때는 조금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종이나 씨앗을 뿌리면서, 잡초를 뽑거나 예초기를 돌리면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니, 그 안에 얼마나 ‘작은 것들’ ‘소중한 생명’들이 숨어있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물웅덩이에는 벌써 뭔지 모를 작은 알들이 우글우글 거립니다. 적당히 부드러워진 땅속에는 새끼 지렁이들이 꿈틀꿈틀 댑니다.
이웃 밭과의 경계선으로 심어놓은 나무 가지 마다에는 수많은 작은 꽃들이 보송보송 매달립니다. 바닥에는 아주 작은 노란 풀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오릅니다. 그야말로 여기저기 ‘작은 것’들의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만 타고 다닐 때는, 흙을 손에 묻히지 않고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보지 못할 눈부신 광경입니다. 그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경제개발 논리, 속도전에 젖어 살아와서 그런지 너무 큰 것, 빠른 것, 대단한 것, 뛰어난 것, 앞서 가는 것만 선호합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것, 평범한 것, 소박한 것, 가족적인 것,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과 가치는 어느새 뒷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신앙생활 안에도 많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 안에서도 뭔가 대단한 것을 찾아다닙니다. 특별한 분위기만 선호합니다. 말씀 좋고 ‘기도빨’ 세다는 곳만 순례합니다.
본당이나 단체들 강의를 다니면서 절실히 느끼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특강은 한 번씩 분위기를 바꿔주는 외식이나 간식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명강사라 할지라도 반짝 한번 왔다 가는 것입니다. 특강 한번 듣는다고 뭐가 특별히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 간식이나 외식이 아닌 주식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매일의 미사입니다. 매일의 아침 저녁기도, 이것 역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매일 하루 세 번 바치는 삼종기도, 습관처럼 드리는 묵주기도, 수시로 바치는 화살기도, 매일의 꾸준한 작은 봉헌, 일상적인 십가가의 수용, 이런 것들이 사실 신앙의 기본이자 근간입니다.
여기저기 특별한 곳, 대단한 곳, 신기한 곳, 줄기차게 찾아 다녀봐야 그 끝은 언제나 허탈함이며 공허함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작은 것, 일상적인 것들을 중요시 여기고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큰 것, 대단한 것도 중요시 여기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것, 반복적인 것, 구체적인 것,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충실하게 해나가야겠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 큰 사람, 대단한 사람들도 잘 대우하고 환대하지만 내 가장 가까운 가족, 형제, 이웃, 직장 동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작고 소소한 일상들에도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 좋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요한복음에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그러자 나타나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그러자 필립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와서 보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타나엘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길가의 돌 하나로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보다 더 큰일을 하실 수 있다.
2달 전쯤에 봉사자 한분이 제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신부님 본당에서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이해서 성령의 밤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댈러스에서 그게 가능할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한번 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뉴욕에서 성령 기도회를 보았습니다. 지구 차원에서 성령 기도회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당 차원에서 성령 기도회를 한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봉사자는 찬양 팀을 만들었고, 악기 봉사자들로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찬양 팀의 이름을 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라우다떼(찬양하다)’로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성령강림 대축일이 되었고, 봉사자는 찬양 팀과 음악 밴드와 함께 멋진 찬양의 밤을 신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댈러스에 뭐 대단한 게 있을까?’라는 저의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찬양의 밤을 마치고 저는 봉사자에게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앞으로 찬양 팀과 음악 밴드가 함께하여 ‘음악 피정’을 해 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엘리야 예언자와 바알의 예언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알의 예언자는 450명이 넘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였습니다. 상식적으로 바알의 예언자들이 엘리야를 이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바알의 예언자를 물리치시고,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골리앗은 큰 칼과 갑옷을 입었습니다. 다윗은 볼이 불그스레한 청년이었습니다. 손에는 돌팔매만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처럼 배움이 많지 않았습니다. 율법학자처럼 하느님의 계명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어부들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부들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갈릴래아의 어부들과 함께 성장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박해와 시련이 있었지만 교회는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교회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교회는 인류 문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역사하십니다.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다만 그러하게 하소서>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불신에는
이유가 있고
믿음에는
이유가 없으니
온 누리
믿음일 때까지
다만 믿게 하소서
절망에는
이유가 있고
희망에는
이유가 없으니
온 누리
희망일 때까지
다만 희망하게 하소서
증오에는
이유가 있고
사랑에는
이유가 없으니
온 누리
사랑일 때까지
다만 사랑하게 하소서
거짓에는
이유가 있고
참에는
이유가 없으니
온 누리
참일 때까지
다만 참되게 하소서
악에는
이유가 있고
선에는
이유가 없으니
온 누리
선일 때까지
다만 선하게 하소서
추함에는
이유가 있고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없으니
온 누리
아름다움일 때까지
다만 아름답게 하소서
죽임에는
이유가 있고
살림에는
이유가 없으니
온 누리
살림일 때까지
다만 살리게 하소서
오늘의 성인
성 요한 (John)
활동년도 : +1479년
신분 : 수사, 신부
지역 : 사아군(Sahagun)
같은 이름 :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성 요한(Joannes a Sancto Facundo)은 에스파냐의 살라망카(Salamanca) 대학교를 다녔고, 사제로 서품된 뒤에는 그 지방의 교구 사제로 활동하였다. 1463년 그는 중병에서 회복된 후 그곳의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하여 높은 성덕을 쌓아 유명해졌다. 그는 어느 사악한 영주의 미움을 받아 독살되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는 1601년 6월 19일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690년 10월 16일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레오 3세 (Leo III)
활동년도 : +816년
신분 : 교황
지역
같은 이름 :
성 레오 3세는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Hadrianus I) 서거 직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성 수산나(Susanna) 성당의 추기경 사제였던 그는 자신의 교황 선출에 불만을 품은 무리들로부터 수많은 도전으로 시달렸다. 성 마르코(Marcus) 축일의 행진 도중에 반도들에 의해 피납된 그는 혀가 잘리는 등 거의 산송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기적같이 급속도로 회복되어 모든 이들이 이를 기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재임 기간에 프랑크의 왕 샤를마뉴(Charlemagne)를 대관하였다. 이 결과로 그는 교회 재건과 교황청과 국가들 간의 관계 회복을 성공적으로 성취시켰다. 그는 교황으로서 20년 간 재위했고 로마 순교록에 올라있다. 그는 1673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오누프리오 (Onuphrius)
활동년도 : +400년경
신분 :은수자
지역 : 이집트(Egypt)
같은 이름 : 오노프리오, 오노프리우스, 오누프리우스
이집트 테베(Thebae,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의 은수자들 가운데 가장 거룩한 사람으로 공경 받던 분이 성 오누프리우스(또는 오누프리오)이다. 그의 전기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 없으나 파프누티우스(Paphnutius)란 어느 원장이 그를 만난 증언록이 남아 있다. 그를 만난 날 밤 파프누티우스 원장은 은수자 오누프리우스와 함께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 전날의 저녁 음식이 기적적으로 차려졌다. 이때 오누프리우스는 파프누티우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제가 죽으면 장사지내줄 사람을 보내준다고 약속하셨는데,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윽고 오누프리우스가 운명하자 파프누티우스는 산언저리에 그를 묻었는데, 그 자리는 즉시 사라져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오노프리우스(Onophrius)로도 불린다.
복녀 욜렌타 (Jolenta)
활동년도 : +1298년
신분 : 과부, 수녀원장
지역 : 폴란드(Poland)
같은 이름 : 욜렌따, 욜렌타, 졸렌따, 졸렌타, 헤레나, 헬레나, 헬렌
헝가리의 국왕 벨라 4세의 딸인 욜렌타는 폴란드의 볼레슬라우스 5세(Boleslaus V)의 아내인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7월 25일)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녀는 칼리시(Kalisz)의 공작 볼레슬라우스와 결혼하였으나, 1279년에 남편과 사별하고는 클라라 수녀회에 들어갔다. 그 후 그녀는 그네젠(Gnese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27년에 승인되었으며, 예전 축일은 3월 6일이다. 그녀는 또한 폴란드의 성녀 헬레나(Helena)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