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에도 24장에서 시작된 종말과 심판,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가 그대로 이어집니다. 25장의 첫 이야기는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신부의 집에서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상황을 무대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들러리 역할을 맡은 처녀 열 사람이 등불을 마련하고 신랑을 맞으러 갔는데, 슬기로운 처녀 다섯은 등불과 함께 기름도 준비했지만, 어리석은 처녀 다섯은 등불만 마련하고 기름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급히 기름을 준비하러 갔는데 그 사이에 그만 신랑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늘나라가 언제 임할지 알 수 없으니 늘 준비하고 깨어있으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비유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자기 재산을 맡겼답니다.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돈으로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렇게 해서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거기에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겼답니다.
훗날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들이 재산을 두 배로 늘린 것을 알고 크게 칭찬합니다. 드디어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묻어두었던 종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종은 주인이 무서워서 돈에 손을 대지 않으려고 땅에 묻어두었다며 한 달란트를 그대로 다시 내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은 크게 격분하며 재산을 불리지 못한 종을 책망하고 내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열 처녀 비유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라면, 달란트의 비유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그날이 올 때까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인생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뜻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좀 길지만, 31~46절을 보겠습니다.
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는 모든 민족을 자기 앞으로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할 것이다.
40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41 그 때에 그는 또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부하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거라.
42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44 그 때에 그들도 대답하여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45 그 때에 임금은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삶으로 들어갈 것이다."
인자가 모든 민족을 자기 앞으로 불러 모을 것이랍니다. 거기서 모든 사람은 양이나 염소, 둘 중 하나로 판결이 날 것인데 기준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구원의 자리인 오른 쪽에, 예수님을 홀대한 사람은 심판의 자리인 왼 쪽에 각각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한 적이 없다고 의아해하는 사람들과 홀대한 적이 없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 모두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제가 기독교에 입문했던 초창기에 이 말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라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4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40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어려운 이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형제자매 가운데’ 그러니까 예수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공동체 사람들은 대부분 당시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이 묘사하는 것처럼, 당시 사회에서 많은 핍박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 선교를 하다 돌에 맞아 죽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형제자매인 예수공동체 사람들이 함께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비유이야기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해도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를 올바로 알고 있는 목회자라면, 본문에서 말하는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 라는 말씀이 지칭하는 것은, 민족과 종교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 가운데 어려운 이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원대한 꿈을 꿀 여유도 아량도 없이 오로지 교회와 신도들의 생존문제에 다급했던 당시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입을 빌어 말한 것임을 반드시 먼저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이천 년 전에 교회공동체 안에서 선포된 이 말씀이,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외면하지 말고 돌보아야 한다고, 그것이 주님을 말씀과 삶으로 섬기는 것이며,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교해야 합니다. 반드시 거기까지 가야 합니다. 왜냐 하면, 복음은 이천 년 전 그때 거기서 선포된 말씀이지만, '그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의 우리들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본문의 취지를 명확히 알고 있는 목회자들이 오늘날의 우리 한국 교회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충분히 이해할 뿐 아니라 연민의 정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어왔고, 신학교에서조차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기에, 그렇게 설교할 수밖에 없다면 말입니다.
또한 본문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더라도, 그렇게 설교하면 한국교회에서 목사로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들고 어렵기에, 이런 본문으로 설교하기를 포기한 목회자들도 마음 한편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설교하면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한 목회자’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여전히 정직한 설교를 하지 않고 전통적인 교리에 입각해서 설교한다면, 저는 그를 목회자의 탈을 쓴 사기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