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침(徐 沈)
조선 전기 첨지중추원사, 전의소감, 전라도처치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묵(聖默), 호는 구계(龜溪).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서균형(徐均衡)이며, 어머니는 승동정(承同正) 이영유(李永儒)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를 따라 학문을 배웠고, 고려 말 조선 초의 변혁기에 향리에서 은거하여 학문연구에 노력하였다. 세종 대에 서씨 일문(徐氏一門)의 근거지였던 달성을 경상도의 요새로 삼고 성을 쌓기 위해 서침의 땅과 바꾸게 하자 이에 협조하여 포상을 받게 되었는데, 서침은 포상 대신에 환자[還上]의 모곡(耗穀)주 01)을 감하여줄 것을 건의하여 허락받았다. 이로 인하여 인근주민의 추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남산의 옛 역(驛)터와 연신지(蓮信池)와 신지(新池) 등이 하사되었고, 관료로 탁용되게 되었다. 1433년(세종 15) 첨지중추원사가 되었고, 전의소감(典醫少監)을 거쳐, 다음 해에 전라도처치사가 되었다. 대구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그 당시 달성공원에 심은 회화나무가 서침나무로 명명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주01) 세곡을 되돌려 받을 때 운반이나 동물의 해로 손실되는 양을 추가한 양 서 침선생의 묘소이다.
마을 입구에서 본 자리는 아름다운 한송이 목단꽃 같구나!!! 물형으로는 모란반개형이다. 이 집안은 인근에 있는 해복형의 손자 제(현감공파 파조)의 묘소와 더불어 천하의 명당자리와 인연을 맺고 있구나!!!
묘소가 있는 산줄기를 살펴보면 팔공산에서 동남쪽으로 낙맥하여 전진하다가 낙타봉을 거쳐 팔공스카이라인에서 다시 동남, 남쪽으로 내려와 계축, 축간, 간인맥이 교차하면서 내려오는데 용맥의 움직임이 정말 대단하다. 팔공산 3대 명당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점혈을 잘못하여 혈처는 비워져 있다는 것이다. 꽃의 수술대에 많은 꽃밥이 붙어 있는 것처럼 이곳은 혈처가 여러 개가 되는데 하나도 옳게 쓰질 못했으니 너무나도 아쉽다.
위성지도
마을 안내판
마을 입구
입수처
향이 바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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