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6p5cqjgUo4?si=1XwJDyyzKChuG5BW
요즘 인기라는 삼프로 릴리전 시리즈.
속뜻을 모른 채 성서의 문자의를 어떻게든 납득해보려고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해온 결과
원수를 사랑하지 못해 미음속으로 자책하는 기독교인을 위해
나름대로 인문학적 교훈을 주는 이런 결론을 찾기도 한 듯.
주님과 동시대 다른 문화권에서 원수사랑, 용서 이런 단어들이 어떤 맥락에서 이해되었는지를 연구하고
그것이 통치자와 철학자의 덕목이었음을 밝힌 뒤
(그 시대에는 노예에게는 복종만이 덕목이었다고)
주님은 당시 피지배자의 핍절한 삶을 사는 대중들의 눈을 바라보시며
통치자처럼 철학자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말고 살라는 뜻이었다고 해석하는 김학철 교수.
사랑이 꼭 감정이 수반된 행위일 필요는 없으며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함에 반드시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정의한다.
사랑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생존과 번영을 도와준다는 뜻이고
원수는 나의 생존과 번영을 저해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사람은 보통 오른손잡이라서 남을 때리면 상대의 왼뺨을 때리게 되는데
오른뺨을 때린다는 것은 손등으로 때린다는 뜻이고 그것은 폭행에 모멸을 더하는 행위라고 한다.
그래서 당시 벌금도 손바닥으로 때린 행위의 백 배 되는 금액을 매겼다고.
그리고 그렇게 상대를 칠 수 있는 사람은 맞는 사람보다 높은 계급이 아니면 불가능했으며
너의 위치를 잊었느냐, 감히 어디서, 라는 뜻으로 손등으로 때리면
맞은 사람은 자기 위치를 깨닫고 물러나 무릎 꿇고 잘못을 비는 것이 상례였다고 한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는 다 존엄한 인간이니 비굴하게 무릎꿇지 말고 같은 인간으로 당당히 서있되
폭행으로 되갚지 말라는 의미로 왼뺨까지 내어주라고 하셨다는 것.
즉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이 끝없이 순환되니 너희가 먼저 그 고리를 끊으라는 의미라고.
질문자가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등의 말씀은 너무 가해자만 유리한 일방적인 가르침 아니냐고 따지자
김교수는 모든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 노릇을 오가며 살아간다,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가해자였을 수 있다.
원수를 용서하라는 것은
가해자를 코너로 몰아 낙인찍지 말고 돌이킬 여지를 주자는 말씀이다, 라고 해석했다.
문화비평, 텍스트 비평이 더해진 성서해석이 꽤 심도 있고 흥미롭다.
자, 그럼 속뜻을 알게 되면 이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서에는 겉뜻 그대로 영적 진리인 구절들이 더러 있고, 이를 '얼굴과 손' 구절이라 부른다.
성서의 속뜻을 사람에 비유하면 겉뜻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대부분의 구절들은 속뜻을 가리고 있는 '옷'에 해당하는 구절이고
얼굴과 손처럼 드러난 부분은 겉뜻 그대로, 글자 그대로 진리라는 것.
그럼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속옷을 달라면 겉옷을,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이 부분은 얼굴과 손일까? 옷일까?
옷이다. 속뜻이 설명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부분은 글자 그대로가 진리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글자 그대로 행하지 못해 고민할 구절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닐까?
현대인에게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는 자존감 문제라든가, 착한 사람으로 살려는 노력을 '증후군'이라 명명하는 이런 심리학 사조가
성서와 어떻게 조화 혹은 부조화 되는지 궁금해지는 요즘,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방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