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김 국 자
우리 동네에 민물매운탕 전문점이 있다. 음식점 입구에 장식해놓은 사진이 특이하다. 다른 음식점의 경우 정물화나 풍경화가 대부분인데, 이 음식점은 장독대를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큰 독에서부터 구멍이 뽕뽕 뚫려있는 떡시루며 자잘한 항아리들이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었다. 오밀조밀 조화를 이룬 옹기 중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옹기는 두루 뭉실 배가 툭 튀어나온 커다란 장독이다. 두툼한 창호지로 꼬아 만든 새끼줄에 참숯과 빨간 고추가 듬성듬성 끼어있는 금줄이며, 버선을 거꾸로 붙여놓은 모습은 마치 친정집 장독대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해마다 장을 담그면 어머니도 저렇게 버선을 거꾸로 붙여놓았다. 장은 정월에 담가야 탈이 없고 특히 말날이어야 한다며, 달력의 말 모양 그림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말날이 돌아오면 가라앉힌 소금물에 메주를 띄우고, 숯과 고추와 대추도 띄운다.
숯은 나쁜 균을 없애라는 뜻으로, 고추는 잡귀 범접 말라는 뜻으로, 대추는 단맛 우러나라는 뜻으로 넣는다. 버선을 거꾸로 붙여놓는 이유는 갈 데 못갈 데 구별하라는 뜻이요, 금줄을 걸어놓는 것은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는 뜻이다.
상갓집이나 병문안 다녀온 사람은 삼칠동안 장독대를 드나들 수 없으며, 달거리하는 여자도 장독대 근처에 얼씬 못한다. 장독이 부정 타면 큰일이다. 집안에 망조가 들려면 장부터 뒤집힌다는 속설 때문에 장독관리에 소홀할 수 없다.
우리고향 충청도에서는 장독대를 장광이라 부른다. 우리 집에서 장광은 신성한 장소였다. 아버지께서 위중하셨을 때도, 오빠가 군에 입대했을 때도 어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설날에는 떡국을, 추석에는 송편을, 햅쌀 천신하는 날에는 햅쌀밥을, 동짓날엔 팥죽을 떠다 놓고 가족의 안녕을 기원했다.
장광의 터줏대감인 커다란 독에는 묵은 간장이 들어있다. 묵으면 묵을수록 달고 맛있는 조선간장은 더위 먹었을 때, 냉수에 타서 마시면 금방 나을 만큼 약효가 있다. 냉장고 없던 시절 된장항아리에 묻어 둔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귀한 손님 오셨을 때 대접하는 비상식품이었다. 키가 오뚝한 새우젓 독 옆에 조개젓 오징어젓 단지들이 놓였고, 그 앞에 고추장항아리들이 놓여있다.
부엌에서 물독으로 사용하다 장광으로 쫓겨난 주둥이 넓은 두멍은 미역이나 북어포 대구포 같은 마른 것을 보관하는 그릇으로 바뀌었다. 공기가 잘 통하는 옹기에 마른 것을 넣어두면 상하지 않는다. 무말랭이나 호박고지 같은 말린 채소를 보관하고, 콩이나 찹쌀 같은 잡곡도 보관한다.
시집 올 때까지 어머니는 장독관리를 내게 맡겼다. 과년한 딸자식 살림 가르치는 과정이었으리라. 신식용어로 말하면 신부수업이나 마찬가지다. 간장. 된장. 고추장. 볕 쐬는 일로부터 깔끔하게 간수하는 일이었다.
결혼 후 친정에서 배운 대로 장을 직접 담가 먹었는데, 아파트로 이사한 후부터 담가 먹을 수 없었다. 직사광선을 받지 못하는 좁은 베란다에서 장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장 역시 냉장고에 보관하니 항아리 용도가 줄었다. 매실효소를 만들거나 오이지 담글 때나 필요할 뿐 별로 쓸모가 없다. 장 담그는 일은 멈추었지만 무청 무말랭이 고춧잎 호박고지 등 마른 것을 보관하며 보물처럼 다룬다.
요즘 가볍고 깨지지 않는 그릇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며느리는 무겁고 다루기 어려운 옹기그릇을 좋아한다. 소박한 멋을 알아서일까? “어머니, 항아리는 버리지 마세요.” 하며 쌀독으로, 소금단지로, 꽃병으로, 관상용 어항으로 애용한다. 쌀벌레 나지 않고 소금이 보송보송해지고 꽃과 물고기가 잘 자라는 장점을 며느리는 잘 알고 있다.
음식을 담아보면 그릇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옹기를 만들어 사용한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할 따름이다. 겉보기에 투박하지만 은은한 멋을 풍기는 옹기를 보며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나? 옹기처럼 호흡하며 이웃과 어울리는 삶을 살았던가?’ 돌아본다.
첫댓글 옛날 어린시절...고향집 장독대가 그립습니다^^^
예 맞습니다 옹기처럼 좋은 그릇 귀한 그릇도 드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