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Big
Conc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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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Vangelis (반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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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년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의 풍부한 선율을 자랑하는 사운드 트랙으로 오스카 상을 수여한
반젤리스(Vangelis, 본명 Evangalos Odyssey Papathanassiou)는 존경받는 전자
음악 작곡가이다.
그리스 태생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여 6살 때 이미 대중
앞에서 첫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60년대 초기에 팝 그룹인 포밍스(Formynx)를 결성해
본국에서 수퍼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1968년 그리스의 학생 봉기로 프랑스로 이주하게 된 그는 같은
그리스 출신의 데미스 루소(Demis Roussos, 보컬)와 루카스 시데라스(Loukas Sideras,
드럼)와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를 결성하고 'Rain
and Tears'같은 히트 싱글로 큰 인기를 모은다.
72년 밴드가 해체된 뒤 전자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반젤리스는 영화제작자 프레드릭 로시프(Frederic Rossif)를 만나 영화
[L'Apocalypse Des Animaux], [La Fete Sauvage]의 배경음악을 작곡하게 되고,
더불어 자신의 데뷔 앨범인 [Earth](74)를 발표한다.
이후 거주지를 런던으로 옮겨 자기 소유인
첨단시설의 레코딩 스튜디오를 갖게 된 그는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 사운드의 조화를 시도하고, [Heaven and
Hell](75), 달에 착륙한 비행사의 목소리가 담긴 컨셉 앨범 [Albedo 0.39](76),
[Spiral](77), [Beaubourg](78) 같은 역작을 만들어낸다.
1978년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여배우 이레네 파파스(Irene Papas)와 협력하여 비잔틴(Byzantine, 동로마 제국)과
그리스의 전통 음악을 정립하는 일을 도모했다.
그는 존 앤 반젤리스(John and Vangelis)라는
이름으로 그룹 예스(Yes)의
보컬리스트 존 안델슨(Jon Anderson)과 몇 장의 앨범을 발매한다. 'I Hear You
now'(80)와 'I'll Find My Way Home'(81) 등이 히트하면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권에서
그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반젤리스의 국제적인 명성은 1982년 영화 [불의전차]의 사운드
트랙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테마송으로 US 팝 차트 10위에 랭크된 그는 이어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의 고전영화인 [Blade Runner](82),
쿠루하라(Kuruhara)감독의 [Antarctica](83), 코스타스 가브라스(Costas-Gavras)의
[Missing](82), 도날드선(Donaldson)의 [The Bounty](84)에서 사운드 트랙을
전담하게 된다.
자크 코스티유(Jacques Cousteau)의 다큐멘타리 음악을 작곡하기도 한 그는
사운드 트랙 작업을 하는 중에도 솔로 앨범인 [The Mask](85), [Direct](88), [The
City](90) 등으로 자신의 음악영역을 더 넓혀갔다.
90년대 이후에도 그의 창작활동은
계속되었고, 영화 [Bitter Moon], [1492: Conquest of Paradise](93)의 사운드
트랙을 작곡했다.
신디사이저가 이끄는 뉴 에이지의 매혹적인 사운드로 사랑 받고 있는 최고의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뉴 에이지 뮤지션인 반젤리스는 최근작 [Portraits (So Long Ago So
Clear)](97)로 여전히 그 명성을 구가하고 있다.
장 미셸 자르와 함께 반젤리스 역시 거장 대열에 속하는 사람이고 뉴에이지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활동을 시작한 반젤리스는 Aphrodite's
Child 라는 밴드의 멤버였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음악을 담당하며 이름을 날렸다.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음악답게 스포츠 다큐멘타리에서 인간승리의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곳에서 열에
아홉은 이 사람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반젤리스는 그리스 출신으로
Aphrodite's Child라는 그룹을 결성, 상당한 성공을 거두며 음악활동을 했으며, 72년 해체 후 Demis
Roussos나 Yes의
Jon
Anderson 같은 유명 보컬리스트와 함께 앨범을 발표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음악은
상당히 부드럽고 인간적이며, 전통적인 음악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어서 듣는 사람은 거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테크노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지만 현재의 테크노 음악이 탄생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
중 하나이다.
80년대에는 대중 음악에 전자 악기가 도입되면서 주로 댄스 음악에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반젤리스는 좀더 진지한 방향으로 전자악기를 대중음악에 사용했던 사람이다.
그가 발표한 앨범 제목들에서도
풍기듯 마음을 고요하고 잔잔한 상태로 이끄는 감상용 음악이지만 난해하거나 어려운 음악이 아니어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반젤리스의 음반을 처음으로 구입하는 사람이라면 1994년에 발매된 영화음악 [블레이드 러너]를 먼저
들어보는 게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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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X-Japan (엑스 재팬)
- 일본식
발음 : [엑스 자팡].
일본음악을 전혀 모른다고 할지라도 이들의 음악한번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일본음악을 듣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들의 음악에 심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너무나도 유명하고 너무나도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일본의 비쥬얼 그룹 X-JAPAN.
현지인 일본에서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식적인 루트가 없는 국내에서 그 인기와 열기가 더욱 열광적이고
지속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내 팬들의 그들에 대한 지지도와 정보 공유량은 정말 대단하다.
'과연 더 이상 국내에서 X JAPAN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관례가 있고 순서가 있는 법. 만의 한분(?)을 위해서라도 그들에 대한 소개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였던 팀 리더인 요시키와 보컬 토시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밴드
X를 결성한다.-요시키 인터뷰에 의하면 멋지고 긴 영어이름이 씬에 유행하던 당시, 오히려 짧은 영어단어가
콘테스트 등에서 더욱 임팩트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밴드 명명의 유례라고 한다. 뜻은 무한의 가능성을 의미.-
이 둘은 고등학교 졸업 후, 1985년경부터 본격적인 프로밴드로서의 활동을 결심, 동경에 있는 라이브
하우스를 기점으로 활동을 한다. 이들은 이해 6월 드디어 인디레이블인 DADA레코드사를 통해 이들 최초의
기념비적인 퍼스트 싱글 [I'll Kill You]를 발매하였다.
계속해서 7월에는 [HEAVY
METAL FORCE 3]라는 인디즈 옴니버스 앨범 'BREAKTHE DARKENESS'라는 곡으로 참가하면서
이들의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다.
이후, 직접 CD를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가지게 된
YOSHIKI는 개인이 아닌 회사명의가 발주가 쉽다는 사실을 알고 아예 스스로 인디 레코드사인 EXTASY
Records를 만들어 버리는 엄청난 일을 한다. 이때 발매된 기념비적인 인디 싱글이 바로
[オルガスム(오르가즘)]이다.
당시, 엄청난 연습량과 라이브의 도를 넘는 격렬함 등으로 멤버
교체가 자주 있던 X였지만 결국, 87년 hide의 참가와 함께 그룹 X는 드럼의 YOSHIKI, 보컬의
TOSHI, 기타의 PATA 베이스의 TAIJI, 기타의 hide라는 라인업이 이루어진다.
평소
hide의 참가를 너무나도 갈망했던 X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멤버 모두가 공원으로 뛰쳐나가 다 함께 체조를
했다는 미소 짓게하는 전설-일본인들은 그들의 일화를 전설이라 표현한다-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1988년 4월 EXTASY Records를 통해 드디어 이들의 첫 번째 앨범 [VANISHING
VISION]이 발매된다. 비록 메이저 발매는 아니었지만 세상에 정식적으로 내놓은 이들의 기념비적인 퍼스트
앨범이었다.
곧이어 이듬해인 89년에는 3월 시부야 공원당에서 메이저 데뷔 라이브를 열고, 4월에는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이자 메이저 퍼스트 앨범 [BLUE BLOOD]를 CBS 소니를 통해 발매하면서 공식적인
이들 대망의 메이저 데뷔를 마친다.
YOSHIKI의 "아무리 좋은 노래를 만들어도 들려주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 노래는 빛을 발 할 수 없다.", hide의 "사운드뿐이 아닌 시각적인 자극" 등의 마인드와
함께 탄생한 당시는 생소했던 개념 비쥬얼. 그렇기에 음악과 외적인 면 모두를 만족시키던 이들의 인기는 무서운
기세와 빠른 전개로 진행되었다.
91년 7월 CBS 소니를 통해 발매한 2번째 앨범 [JEALOUSY]는
전작으로부터 2년 3개월이라고 하는 엄청난 제작기간과 팬들의 기대치가 정점으로 결합하면서 오리콘 차트에서 첫
등장 1위, 100만장을 넘는 성공적인 세일즈를 기록했고, 93년 8월에는 30분이 넘는 곡 하나로 앨범을
장식했던 불멸의 대작 [ART OF LIFE]를 내놓으며 언제나 찬반 양론으로 엇갈리며 X를 혹평하던 일부
평론가들에게 보란 듯이 그들의 실력을 입증했다.
당시로는 엽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퍼포먼스와
돌출 행동 등이 보수적인 평론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들의 음악적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안에 92년 1월 [東京돔 3Days]를 끝으로 베이스의 TAIJI가 돌연 그룹을 탈퇴하게 되고
동년 5월 그 빈자리는 Heath에 의해 메꾸어지면서 X-JAPAN 해체 전까지의 완벽한 라인업이 구성된다.
또한, 1992년 8월 25일에는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이들은 세계 진출 선언이라는 야심찬 기획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다. 이로 인해 앞으로 발매되는 음반은 일본에서는 EAST WEST, 그 밖의 나라에서는
워너 뮤직 인터내셔날을 통할 것을 계약한다. 그리고 이날 X는 베이시스트로 히스를 영입한 것을 정식으로
발표한다.
X가 이처럼 세계진출을 계획했을 무렵, 한가지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이미 미국에 동명의 밴드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X는 밴드명의 개명을 결정하게 되고 처음에는 일본에서 온 밴드라는 의미로 'X
from JAPAN'을 거쳐, 드디어 세상에 알리게 되는 정식 그룹명 'X JAPAN'을 동년 10월 14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식을 줄 모르는 그들의 인기와 열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갔고 92년
YOSHIKI의 솔로 워크 스타팅과 함께 불붙기 시작한 멤버 개개인의 솔로 활동 또한 꾸준하게 이루어져갔다.
이처럼 멤버 개개인의 솔로 활동, 그룹으로서의 전국 투어, 비디오와 싱글 발매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월을
보내고 있던 X JAPAN은 96년 11월 4일 드디어 그들의 메이저 세 번째 정규앨범 [DAHLIA]를
발매한다. 정규 앨범으로는 무려 약 5년 4개월이라고 하는 엄청난 시간이 지나 발매된 작품이었다.
이렇듯
그칠 줄 모르는 인기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그들의 활동에 돌연 일본열도를 슬픔에 잠기게 하는 충격적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소문으로만 돌고 있었던 보컬 토시의 그룹 탈퇴 소식과 함께 X
JAPAN의 해체를 알리는 긴급 기자회견이 1997년 9월 22일 동경 미나토구에 있는 호텔 토쿄에서 열렸다.
12월 31일 도쿄 돔 라이브 [최후의 밤]을 끝으로 X-JAPAN은 해산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장에는 토시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만이 모였다. 이날 인터뷰 중 토시가 빠진 이유에 대해
YOSHIKI는 이렇게 대답했다.
"토시는 더 이상 X-JAPAN의 멤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97년
12월 31일 영원불멸의 존재일 것만 같았던 X JAPAN은 아쉽게도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우리들에게 전설과 신화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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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Roger Waters (로저
워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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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에
가려진 사나이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는 65년에 시드 베리트(Syd Barrett), 닉
메이슨(Nick Mason), 리차드 라이트(Richard Wright)와 함께 사이키델릭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를 결성하였다.
처음엔 베이스만 담당하였으나 광기의 중심 인물이었던
베리트가 68년에 정신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그룹을 탈퇴하게 되어 songwriter의 역할을 맡게 된다. 그는
배리트의 어둡고 병적이며 신비한 음악을 계승해 나갔는데, [Saucerful of Secret]과
[Ummagumma]와 같은 앨범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핑크 플로이드는 73년 앨범
[Dark Side of the Moon]을 발표하면서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200위 내에 가장 오래 머물러 기네스북에도 오르기도 했는데, 여기서 로저 워터스는 대부분의 곡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이들의 인기는 79년 [The Wall]을 발표할 때까지 최고를 달렸다.
이들의
명성은 [The Wall] 발표 후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로저 워터스와 라이트의 사이가 나빠져 결국 라이트가
탈퇴를 하게 되었다. 다음 앨범인 [Final Cut]에서 워터스는 더 어두운 분위기의 곡을 썼으며 앨범을
마무리한 후 그도 그룹을 떠났다.
84년에는 워터스의 공식 첫 솔로 앨범인 [The Pros
and Cons of Hitchhiking]을 발표한다. 2년 뒤 워터스는 Pink floyd라는 그룹명의 사용
권한을 가지고 다른 옛 멤버들과 소송을 벌였으나 결국 패소하게 된다.
87년에 핑크 플로이드의
[Momentary Laps of Reason]은 차트에 올랐으며 워터스는 두 번째 솔로 앨범 [Radio
K.a.O.S]의 준비에 바빴다.
90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기념하는 대규모 콘서트가 베를린
장벽 위에서 거행되었다. 앨범 [The Wall]의 전곡을 재현하는 것으로, 워터스는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 조니
미첼(Joni Mitchell), 밴
모리슨(Van Morrison)과 같은 스타들로 캐스팅된 초호화 멤버들을 거느리고 공연을 하였다.
92년 워터스는 세 번째 솔로 앨범 [Amused to Death]를 발표하였다. 같은 시기 핑크
플로이드는 94년 Division Bell의 투어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II.Classic
M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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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Rage (레이지) / Lingua Mortis
Orchestra (링구아 모티스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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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과 미국에
의존해오던 우리나라 ROCK시장에 언제부터인가 제3세계의 음악들이 서서히 몰려들어왔다. 그 시초로는
<Holiday>, <Always somewhere>, <Still loving
you>등의 발라드로 라디오를 잠식해버린 독일출신 Scorpions 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독일 Rock음악의 국내 유입은 Mania에 대단한 환영을 받았던
Accept에게 바톤이 이어졌으며 급기야 멜로딕 메탈의 최고라 할 수 있는 Helloween의 등장으로 그 절정을
이뤘었다.
Helloween의 등장은 팬들에게 독일 Rock음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이러한
현상은 우리보다 락음악에 있어선 강국이라 할 수 있는 이웃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예전부터
빽판(복사판)으로 울며 겨자먹기식 감상을 했던 Mania들에겐 독일의 트래쉬메틀그룹인 Kreator와 Rage의 국내
발매가 더 큰 이슈였다. 이런 이유는 당시 매니아들의 최고 인기장르였던 Thrash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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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고있는 독일 출신 4인조(3집부터
3인조, 10years앨범부터4인조)Thrash그룹 Rage가 통산 13번째 앨범인 XIII을 들고
나왔다.
이번 앨범이 그들이 추구하던 정통Thrash음악에 충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Deep Purple등
많은 락그룹들이 시도했었던 오케스트라와의 만남을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었다. 사실 Rage에게 그러한 클래식적인 요소는 지난
96년 [Lingua Morits]란 앨범에서 시도 되었으며, 그 영향인듯, 이번 앨범에서도 무작정 두들기는 스피도 보단
곡 자체의 음악적 작품에 충실한 앨범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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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GE - XIII
BMG
- Overture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Days Of December
Sign Of
Heaven
Incomplete
Turn The Page
Heartblood
Over
And Over
In Vain (I Won't Go Down)
Immortal Sin
Pain
It Black
Jus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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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of all days](96)가 Thrash사운드에 집중했다면, 이번 앨범은
음악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15여분에 달하는 대곡인 3부작<changes>는 세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heartblood>와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역시 Rage야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스피드곡 <overand over>, <In
Vain>이 지난 시절 Rage의 트래시컬(?)발라드인 <all this time>(95)과
<fading hours>(96)의 명맥을 이어주고 있다.
또 이번 앨범에서 주의깊게 들어야 할
트랙은 바로 <paint it black>이다. 이곡은 롤링 스톤즈의 곡으로 예전 국내에서는 전쟁드라마의
테마음악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던 곡이다. Rage는 이 앨범에서 보다 서사적인 느낌으로 재 수록 하였다. 드럼의
스트레이트한 리듬감을 느끼며 원곡과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는 일일 것이다. 또 Judas Priest의 기타리스트인
글렌 팁튼의 앨범에도 이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곡과는 전혀 다르게 편곡되어 있어 비교감상해도
좋을것이다.
음악적 구성이 대단한 서사적인 곡 <immotal sin>과 대미를 장식하는 서정적이기 보단
인생의 외로움을 표현한 <just alone>과 4초간 아무 음도 들어가지 않은 마지막 13번째 트랙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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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Scorpions (스콜피온스) / Berliner Philharmoniker
(베를린 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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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콜피언스 ‘Moment Of Glory’
35년 대
118년 : 창립 118년을 맞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철옹성이라 불린다. 단원들의 동의 없이는 단
한번도 ‘허튼’ 짓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베를린 필이 첫 제의가 이루어진 지 5년만에 ‘사건’을
저질렀다.
지난해 통일 10주년 기념공연에서 베를린 필의 지휘자 크리스티안 클로노비츠 편곡으로
로스트로포비치가 160명의 첼리스트와 스콜피언스를 지휘, ‘Wind Of Change’를 연주한 것은 클래식계에
일대 충격으로 다가왔다.
때마침 하노버 엑스포를 유치한 독일 정부는 공식주제가를 맡겼고 스콜피언스는
‘Moment Of Glory’로 보답, 이번 앨범에 실었다. 또 하나의 신곡은 ‘미스 사이공’과 ‘지킬 앤
하이드’의 뮤지컬 스타 린 리히티가 함께 한 ‘Here In My Heart’. 나머지 스콜피언스의 히트곡
8곡도 모두 새롭게 가다듬었다.‘Rock You Like A Hurricane’은 완전히 뜯어고쳐
‘Hurricane 2000’으로 제목까지 바꿨다.
임병선기자
대한매일 2000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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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orpions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