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송이
어제와 오늘 뒷산을 돌아다니며 길을 내고, 꾀꼬리 버섯을 따고 밤송이를 주웠다. 밤은 떨어진 게 뵈지 않고 지나간 태풍 탓인지 가시 돋친 밤송이는 아직 쩍쩍 벌어진 것들이 아닌지라 배낭에 넣어가지고 와서 마당에서 작업을 했다. 한참을 밤송이를 까다보니 참 신기하다. 불과 하루 이틀 사이인데 밤송이 방 안에서 삼형제들이 갈색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어떤 놈들은 벌써 갈아입고 문이 열리기를 고대하고, 어떤 놈들은 아직 하얀 잠옷바람으로 세월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어제 깐 밤들은 오늘 말리려 내놓으니 어느새 갈색으로 변해 있지 않은가? 땅에 굴러 떨어져 눈에 덜 띄려는 속내를 읽으니 밤이 참 귀엽고 대견하다. 대개는 송이 안에 세 알이 있는데, 세 알 모두 균등하게 살이 오른 놈이 있고, 세 알 중 두 알이 속이 차고, 하나는 쭉정이이거나, 세 알 중 한 알이 뚱뚱 동글이가 되고 두 개가 쭉정이이거나 하는데, 뭘까 삼형제는 방 안에서 어떤 결심들을 했기에 가운데 놈에게 밀어주기를 하거나, 양쪽 놈에게 양보하거나, 아니면 셋이 똑같이 나누거나, 두 형제에 치여 찌그러들거나 했을까? 그런 방 속 사정들이 각기 다 달라 새삼 유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떤 놈은 헐크처럼 제 옷이 터지도록 하얀 속살이 부풀기도 했다. 주체할 수 없는 생명의 힘인 듯. 빛나는 흰 살결은 역시 눈부시다. 한참을 하면 역시 허리가 아프고, 어디서 모기가 날아와 머리 주위를 엥엥 거리다 목덜미를 문다.
아무리 두 겹 고무 바른 목장갑을 끼고 밤송이를 까더라도 역시 가시에 찔리게 마련이다. 그래도 밤알들을 보면 흐뭇해진다. 먹고 싶은 생각보다 그냥 보고 흐뭇해한다.
꾀꼬리버섯
뒷산엔 소나무들이 많다. 버섯들도 많이 나왔는데, 아는 버섯이 없어 버섯책을 간간히 보고 있다. 그런데 꾀꼬리 버섯들이 많이 보였다. 꾀꼬리 버섯은 휙 뿌리듯 무더기로 나고 살구빛처럼 곱다. 살구 냄새가 난다는데 나는 코가 나빠 냄새를 잘 못 맡는다. 그래 많이 따 말리기 위해 다듬으며 냄새를 맡으니 살구 냄새가 난다.
소나무 아래 빙 둘러 큰 무당버섯이 났는데 먹는 건지 몰라 그냥 내려왔다.
산초열매를 따서 장아치를 담근다고 했지만 낫으로 길을 내고 버섯을 따다가 산초는 그냥 말았다.
네발나비
네발나비가 예쁘다. 예전엔 배추흰나비가 좋았는데 요즘은 네발나비가 부쩍 반갑고 예쁘게 보인다. 네발나비는 가을의 나비인가? 이맘때와 참 잘 어울린다. 아침볕이 찾아오면 네발나비는 은행알 담가둔 통에 앉았다가, 장독대에 앉았다가, 부대자루 위에 앉았다가, 해바라기에 앉았다가 팔랑팔랑 날아간다. 범 무늬 옷을 예쁘게 입었지만 이름은 한 없이 수수하게 네발나비다. 날개 끝이 물결치듯 하늘로 몇 자락 파상모양이다. 네발나비는 내 한가의 손님이다.
초승달
가을 하늘이 높다. 해 지고 서산에 올라온 초승달은 잠깐이지만 한가위 보름을 꿈꾸게 하여서 더 마음이 담긴 것 같다. 달이 지고 나는 간혹 시골살이에서 9시쯤 집에 오며 가등이 꺼진 길 위에 멈춰 하늘을 올려본다. 내성천변에서 올려보거나 뒷산 바위 위에서 올려보면 참으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언젠가는 뒷산에 올라가 그래야지 결심한다.
첫댓글 초승달이 너무 예쁘네요^^
아~~~~~~~~~~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