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와
성서해석” (Structuralism and Biblical
Studies)
-- 목 차 --
들어가는 말
..................................................................................................................................
3
I. 주제에 관한 논문들의 내용 요약
A. “석의의 과제에 있어서 구조주의적 방법의
위치” 와 “구조주의에서 구조주의적 주석으로” (Daniel
Patte의 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이란 무엇인가? pp.13~68) ..................... 3
B.
“Structuralism and Biblical Studies," Vern S. Poythress, JETS 21/3
(September 1978),
pp.221~237 ................................................................ 9
C. “The Structuralists and the Bible," Richard
Jacobson, Interpretation 28 (1974), pp.146~164
............................................................................ 11
D. "Structuralist Criticism" and "Biblical Strucuralism," in
Reading the Old Testament : Method in Biblical Study, John
Barton (Philadelphia, Westmimster Press, 1984),
pp.104~139 ..............................................................................................................12
II.
“구조주의와 성서해석” -- 저자들 간의 동의점 및 차이점을 중심으로 한 정리
.................................................................
14
나오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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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구조주의(構造主義 structuralism)는 "인간의 문화적 체계의 구조를 통해 의미를 인식하는 방법에 관한
철학이론"이라 할 수 있다. 성서해석에 있어서의 구조주의적 비평(Structural Criticism) 혹은 구조주의적 주석(Structural
Exegesis)은 소쉬르와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방법론에서 끌어낸 주석적 방법들을 성서해석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공시적 비평 방법
가운데 하나인 '구조주의적 비평'은 정경비평이나 사회학적 비평에 비해 역사비평적 관심을 더욱 배제시키기 때문에 공시적 해석의 대표적 방법으로
간주된다. 19세기 이후의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 방법들이 본문 이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몇몇 학자들이 194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된 일반 구조주의의 학문적 방법들을 수용하여 성서를 연구해왔다. 언어학에서 시작된 구조주의 연구는 문화인류학에 의해
크게 활용되었으며, 그후 철학, 심리학, 사회학, 문예비평, 그리고 최근에는 성서 연구에까지 적용되고 있으며 특히 레비스트로스의 신화에 대한
연구가 히브리 설화 연구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구조주의는 무엇이며 구조주의적 주석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 구조주의적 주석 방법을
성서 해석에 적용할 경우의 장, 단점은 어떤 것이며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I장에서는 네 편의 논문을
택하여 이것들을 간략히 요약한 후, II장에서는 이들 논문들의 동의점 및 차이점들을 중심으로 하여 “구조주의와 성서해석”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한정된 논문들을 사용하므로 별도의 footnote나 bibliography를 사용하지
않았다)
I. 주제에 관한 논문들의 내용 요약
“구조주의와 성서해석” 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대표적인 논문들을 선별하고, 그 각각에 대하여 간략히 요약 기술하려한다. 선별된 글들은 앞 장의 목차에 언급된 Daniel
Patte, Poythress, Jacobson, 그리고 Barton의 글이다. 이 주제에 대하여 가장 상세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Patte의 책 1장과 2장을 다소 역점을 두어 요약하고, 다른 저자들의 글과 비교 검토하려 한다.
A. “석의의
과제에 있어서 구조주의적 방법의 위치” 와 “구조주의에서 구조주의적
주석으로” (Daniel Patte의 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이란 무엇인가?
pp.13~68)
1. 석의의 과제에 있어서 구조주의적 방법의 위치
“구조주의적 석의” (structural
exegesis) 라 하면 언어학자 소쉬르(F. de Saussure)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의 방법론에서 주의
깊게 끌어낸 석의적 방법들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성서를 주석하기 위해 이제까지 사용되어 온 본문비평, 양식사비평, 편집비평 등은
구조주의적 방법과는 조화되기가 어렵다. 전자들은 모두 역사적인 範例, 즉 성서본문에 관한 특수한 前理解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어울려
전체를 이룰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구조주의 방법은 언어적인 범례 (linguistic paradigm)를 가정하고 있다. 언어적인 범례란
언어표현을 역사와 같은 다른 요소들에 대한 접근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를 근본적인 범주로 취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주의적 방법을 석의에
도입하려면 먼저 석의자가 성서 본문에 대해 갖고 있는 前理解를 변경시켜야 한다. 현대의 문화는 우주
중심(cosmos-centered)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 중심(man-centered)이다. 따라서 우리의 전이해도 인간중심적이며 세계관보다는
인간관에 의존한다. 인간은 “의미”(signification) <즉 의미적 본질체, 문화적 가치, 상징 등>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의미가 강제하는 것에 조건 지워진 존재이다. 이같은 변증법적 인간관은 주석적 방법을 언어의 특수한 유형으로 간주할 것을 요구한다.
주석자는 그의 방법들을 선택하고 창조하지만, 동시에 이 방법이 주석자에게 짐을 지워주고 있다. 왜냐하면 각각의 특수한 방법은 본문에 대한
특수한 전이해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다양한 주석들의 정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 주석적 과제의
본질을, 그리고 특별히 해석학적 과제와 그것과의 관계를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하고, 주석학적 방법들과 주석자의 문화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본문을 해석하는 과정은 단일한 현상이지만, 석의와 해석학(exegesis and hermeneutics) 이라는 두
가지 접근 방법을 포함하는 것이다. 석의는 본문 자체의 이해를 목표로 하지만, 해석학은 현대의 해석자와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밝히려 한다. 그러나 이 구별은 19세기의 딜타이(W. Dilthey)가 제기한 구별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는 a)본문의 설명으로서의 해석과 b)본문의 적용으로서의 해석을 구분하였다. 그런데 언어의 존재론적 본질을 인정하는 신해석학의
입장에서 보면, 해석자가 자기 것으로 취하려는(appropriate) 언어의 의미는, 언어를 넘어선 원초적인 영역에 속해 있지 않고 언어 자체에
속해 있다. 본문의 의미전달<해석학>은 본문의 객관적인 분석<석의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의존하지 않는다. 지금
고려하고 있는 언어가 “산 언어”(living language, 즉 speech)인 한에 있어서는 해석학이 직접적으로 가능해지며, 석의는
해석학의 필수적인 전제가 아니다. 그러나 본문은 산 언어가 아니라 “죽은 언어”(dead language)이므로 본문의 해석학이
일어나려면 먼저 본문의 죽은 언어가 생명을 되찾아야만 한다. 이것이 석의의 과제이다. 본문의 담화(discourse)는 석의로 그 장애를
극복할 수는 없으나 생명을 회복시킬 수는 있다. 해석학은 본문의 담화를 새로운 담화로 연장시키는 것이다. 석의는 본문의 담화와 그것의
본질· 의미론적 잠재 능력을 결정해 준다. 석의 자체는 본문을 기호들의 “닫힌 체계”(closed system)로 간주한다. 그리고 해석학은
본문의 담화를 새로운 담화로 늘려준다. 그러나 석의의 목적은 본문이 말하는 그것(it)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학으로 연결되는 데에 있다. 석의가 본문의 죽은 언어를 산 언어로 만들지 못할 때 그 석의는 실패하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석의가
해석학으로 이끌림 받는 것을 석의의 정당성에 대한 첫 번째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석의가 해석학에 이른다고 해서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석의와 석의자의 문화 사이의 관계를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 석의자는 해석의 방법들을 선택하거나 창출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서 본문에 대한 특수한 전이해를 가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문화가 석의자에게 본문의 어떤 전이해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런데 방법론의 전이해와 문화의 전이해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때, 즉 석의의 방법이 석의자의 문화적 요구를 무시하는 석의일
때, 본문의 석의는 잘못된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거나 혹은 해석학으로 이끌릴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방법론의 전이해와 문화의 전이해가 서로
어울리는 것을 석의의 정당성에 대한 두 번째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비판적인 역사서술(historiography)의 요청을
외면하는 근본주의 해석자들이나 성서의 대부분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성서 본문의 도덕적 가르침 외에는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무리들이나
반계몽적인 면에서는 마찬가지 우를 범하고 있다. 이같은 반계몽적인 석의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석의가 해석학으로 인도되는 것을
막기 때문에 부당하다. 이상의 두가지 기준을 가지고 우리는 오늘날 주석적 방법의 다양화 과정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전이해의 변화를
평가할 수 있다.
주석적 여러 방법의 다양화에 대한 평가 a. 전통적인 역사적 주석 : 통시적 주석
이것은 본문비평, 언어학적 연구, 문학비평, 전승사, 양식사비평, 편집비평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주석을 말한다. 이 주석을 “역사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들이 전통적인 역사서술의 요청에 따라서 성서 본문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주석은 근대 문화가 요청하고 있는
“역사적 지식의 윤리”로 이해되는 지식의 윤리에 의해 성서를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 주석은 당연히 성서본문의 의미를 현대인에게 밝혀줄 수
있는 현대의 해석학으로 전개되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런가? 이를 알기 위해 먼저 우리는 역사서술로서의 역사적 주석이
“관련분야를 포괄하는 영역”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가가 사용하는 모든 방법은 그의 역사적 탐구에 동기를 부여하고 지배하는 특유한 구조에
맞게끔 구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역사적 방법에 공통된 첫 번째 특징은 記述的인 성격이다. 이 방법들은 본문의
“무엇”(what)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이다. 현대의 역사가는 “진리”가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여전히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가의 연구영역은 개관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들만을 포함하기 때문에 상당히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역사적”이 아닌 또다른 정당한 연구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편찬의 실증주의적 성격과 이 성격에 기초된 인간관이 바로 이런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주석 방법들에 내포된
특정한 인간관은 “인간은 의미의 창조자”라는 구절로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새로운 상징들을 창조하며, 자신의 주장에 합치되는 특정한 의미를 그
상징에게 부과한다. 따라서 저자의 독특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면, 먼저 저자가 쓰는 용어· 문학적 장르· 전승· 상징의 용법을 선행 저자들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언어가 변형된 정도를 평가해야 한다. 그 다음에, 저자가 반응하고 있는 역사적 상황을 평가해야 한다. 전통적 역사적
주석에서는 저자는 의미론적인 생산자(semantic agent)인 것이다.
전통적 역사적 방법은 결국 통시적 방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주석의 발생학적 관심은 본문에 대한 통시적 관심의 한 측면이다. 역사적 주석자가 규명하고자 하는 본문의 본질은 通時態의
역학(dynamism of diachrony) 안에서 가능하다. 역사가에게 있어 인간은 근본적으로 의미구성의 능동자이므로 본문의 의미론적
잠재성은 저자가 의도하고 있는 것에 의해 엄격히 제한된다. 역사적 주석은 본문의 의미론적 차원(저자가 의도하는 것)을 해명하면 곧
해석학(본문이 의미하는 것)으로 이끌리게 된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방법론적 전이해가 문화적 전이해에 단지
부분적으로만 조화되기 때문이다. 역사적 주석가는 통시적인 접근방식에 의해 인간이 의미의 창조자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의미가 또한
인간에게 부과된다는 것을 긍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구조주의적 방법과의 차이점을 본다. 구조주의적 방법은 통시적이라기 보다는
공시적(synchronic)이며, 또한 본문의 방법론적 전이해로 의미가 인간에 부과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b. 구조주의적
주석 : 공시적 주석 구조주의적 주석에서 첫 번째 두드러진 특징은 전통적인 의미론적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주석은 더
이상 저자가 의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구조주의적 주석은 본문의 언어적· 설화적· 신화적 구조를 밝히려 든다. 저자가
이 구조들을 의도하였는지의 여부를 묻지 않는다. 구조주의적 분석가는 저자가 의도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언어를 연구한다. 그렇지만 언어
자체가 의미론적 차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언어가 그 자신을 인간에게 부과할 때 意味作用(signification)도 또한 인간에게
부과된다.
구조주의자들은 역사적 의미의 단일성(“저자의 의도는 한가지이다”)에 반대하여 “구조적 의미”의 다수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한 본문의 구조는 그 본문의 의미론적 가능성(잠재성)이다. 저자는 의미작용의 창조자로서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경우 이미 구조적 의미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주의적 주석에 함축된 기본적인 전이해로서 “의미는 인간에게 부과되었다” 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공시적 접근방법은 통시적 접근방법과는 분명한 대조를 갖는다. 공시적 연구는 하나의 현상을 시간들의 연속에 의해
이해하려는 대신, 상호 의존적이면서 자발적인 독립성으로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여러 요소들에 의해 그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또한 그것은
직선적인 수평적 역사연구 대신 수직적인 깊이의 차원에 대한 연구이다. 역사가들과는 달리 구조주의자들에게는 발생론적인 관심은 없다.
공시적 연구는 그것이 저자의 창조력으로부터 떠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저자 위에 부과된 어떤 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에 의해 그 특징이
부각될 수 있다.
c. 주석적 방법 중에서 공시적 방법의 多數性 구조주의적 분석은 의미론적 가능성의 다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의 구조는 일련의 의미론적 가능성들이다. 본문에는 통시적 의미론적 차원이 있고, 공시적 의미론적 차원도
인정된다. 언어학자의 눈에는 문학적, 설화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신화적, 그리고 인류학적 구조들이 보일 것이다. 무의식적 요소에
대하여 다양한 전문분야들이 서로 다른 전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무의식적 요소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있는 내재적인 것일 수도 있고, 특정종교
안에서 인간의 특성을 규정해 줄 수 있다. 이것은 무의식의 심층 속에 묻혀 있을 수도 있으며,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지대에 위치할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론적 전이해가 현대문화에서 정당한 것으로 가정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주석적 방법의 다양화는 전통적인 통시적
방법과 연관되거나 병치되어 사용되고 있는 다수의 공시적 주석방법의 출현으로 야기된 것 같다. 신해석학 연구의 영향 아래서 이루어진
전통적 주석방법의 재정식화는 전통적인 통시적 방법을 보충하려는 시도인 듯한데, 신해석학자들은 언어가 본질적인 의미론의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통시적 접근방법과 공시적 접근방법을 통합하는 주석적 방법을 정식화시켰다. 이를 보더래도 주석적 방법의 다양화가
다양한 공시적 방법을 도입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법론적 전이해는 문화적 전이해에 조화되기 위해
변증법적이어야 한다. 즉, 인간은 의미가 부과되기도 하는 의미론적 생산자로 파악된다. 주석이 정당하려면 통시적이며 공시적이어야 한다.
역사적 주석의 정당성은 역사서술에 속하는 규범과 근거들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 유사하게, 공시적 주석의 정당성은 공시적 사회과학들이 개발한
규범과 근거들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 공시적 방법 중에서 구조주의적 방법은 보다 엄격하다. 이 방법은 직접 언어학적 모델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언어학에 속하는 규범과 근거들에 의해 검증될 수 있다. 주석자는 신중하게 각 방법의 한계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구조주의적 주석을 하는 동안 공시적 통시적 접근 방법은 변증법적 인간관을 반영해 주는 변증법적 긴장 안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다양한 주석 방법 중에서, 우리는 공시적 주석 방법, 특히 구조주의적 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주석자는 공시적
방법 없이는 문화적 상황에서 성서의 해석학으로 이끌어지길 희망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구조주의적 주석의 성과가 통시적 주석의
성과와 결합될 때 참으로 중요한 해석학적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하는 암시들을 갖게 되었다. 다만 구조주의적 방법은 더 발전되어야 하고 방법의
사용기준이 보다 엄밀하게 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2. 구조주의에서 구조주의적
주석으로
통시적 주석과 공시적 주석은 상호보충적이며, 이 구분은 저자가 의식적으로 의도한 것이 의미(meaning)인가
저자에게 부과된 것이 의미인가 하는 의미개념을 둘러싸고 있다. 본문의 의미는 본문이란 형태에 부어넣어졌거나 본문 배후에 숨겨진
본질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레마스의 용어로 말하면 “의미효과”이다. 본문을 손으로 짠 담요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전체로서 파악하는 선명한 색깔의
디자인은 의미라고 볼 수 있고, 이 경우 “의미효과”는 직공의 의향과 두 구조(베틀과 염색실)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한 담요의
디자인 효과와 한 본문의 의미효과는 다음 3가지 유형의 구속 요소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즉 직공의 창조성이라는 구속 요인 (=발화의 구조,
structures of enunciation), 문화적 구조라는 구속 요인 (=cultural codes), 그리고 저자와 話者에 작용하는
구속 요인 (=심층구조,deep structures) 이다. 따라서 한 본문이 독자들에게 발화의 구조 뿐 아니라 본문의 창조를 관장한
다른 구조를 환기시켜주는 한에 있어서만 그 본문이 의미있다. 이 과정은 대부분 의식적이 아니다. 인간 존재의 무의식 안에 있는 무시간적,
초역사적 성격의 구조가 있는데, 이를 심층구조라 하며, 이것이 구조주의적 연구의 주요
대상이다.
연사(Syntagm)와 범례 (Paradigm) 본문은 다양한 구조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 된 기본적 요소들로 분해된다. 여기에서 선적· 연쇄적 표현 순서를 뜻하는 “연사적 순서”와, 본문 속의 다양한 문화적 구조와
심층구조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요소들을 모으는 “범례적 독서”의 방법들이 나온다. 범례적 독서로는 구조의 일부만을 볼 수
있으므로, 문화적 구조나 심층구조는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이것의 예는 심층구조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설화구조나 신화적 구조를 통하여 찾아볼
수 있다. 범례적 구조를 최초로 확인하여 그 개념을 정립한 것은 언어학이다. 그러므로 언어학적 모델에 대해 상술할 필요가
있다.
언어학적 모델과 기호론 언어학적 이론의 토대는 Saussure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통하여 세워졌다. 그는 개개의 話者가 사용하는 ‘말’(speech, parole)과, 모든 개개인의 정신에 축적된 단어 이미지의
총체로서의 언어(language, langue)를 구분하였다. 그에게 있어 언어는 사회적이다. 그는 “언어는 화자의 기능이 아니라 개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동화되는 산물이다”라고 했다. 그는 단어들을 하나의 체계로 조직시켜주는 관계의 연결망을 언어의 구조(범례적 구조)라고 부르고, 이것을
기본단위로 분해하였다. 그는 언어의 단어인 기호들(signs)이 갖고 있는 두개의 구성 요소, 즉 소리 이미지와 개념을 각각
記標(significant, 또는 signifier) 와 記意(signifie, 또는 signified)로 표시하였으며, 둘의 관계를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 불렀다. 기 표
표 현 ----- 관 계 기 의 내 용
기호의 의미는 의미작용을 포함할 뿐 아니라 기호의 가치도 포함한다. 기호체계에서 한 기호의 가치는 두 가지 수준, 즉 기호의 기표와
다른 기표들과의 관계, 그리고 기의와 다른 기의들과의 관계로 결정된다.
기호의 학인 기호학(Semiology)은 언어학에
국한되지 않고, 의사전달의 현상으로 볼수 있는 문화현상의 다른 수준들에도 적용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에 구조주의적 방법을 도입하였고, 특히
친족 연구에 결정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그는 친족체계를 공시적 수준에서 “태도의 체계”로 볼 수 있다고 제안하고, 이를 통해 언어학적
모델을 적용하였다. 언어학적 모델이 보편적인 것처럼 인류학적 체계도 인간본성의 보편성 때문에 보편적인 원리로 설명되어지며, 이것이 인류학자들이
언어학적 모델을 채택할 수 있는 이유이다.
기호학적 연구로 인해 우리는 구조들의 복합적인 연결망이 한 본문 안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성서 연구와 관련지어 생각할 때, 많은 수의 구조들 중 설화구조와 신화적 구조는 성서의 의미효과를 생성하는
구조들에 속해 있으며, 성서 본문의 요소들은 이 구조들을 전제로 하고 암시하고 환기함으로써 당시의 독자들에게 의미를
전달하였다.
B. “Structuralism and Biblical Studies," Vern S. Poythress,
JETS 21/3 (September 1978), pp.221~237
성서 연구에 있어서 지난 세기에
풍미했던 역사 비평의 조류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구조와 학문의 다양화에 발맞춰 다변화되고 있다. 그중에 구조주의는 사회 과학으로부터
솟아난 것으로서 일반 학문연구에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특히 성서 연구에 점점 더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1.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간단히 정의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시스템이라기 보다 오히려 방법들이나 범례들의 다양한 집합의 성격이 강하다.
세부적인 방법론에 있어서 구조주의들 간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프레임웍에 있어서도 상충되는 것이 많다. 구조주의는 언어학, 인류학,
심리학, 물리학 등에 공히 적용되어지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구조주의는 3가지 특징적 원리를 갖는다. 1) 전체는 부분들의
산술적 총합 그 이상이다. 즉, 전체는 부분들의 상호 관계들 안에서 설명되어진다. 관계들과 구조들은 해설에 있어서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2) 해설을 위해 필수적인 구조는 현시적인 것의 표층 하에서 발견되어진다. 구조주의에서 관심갖는 구조는 표층구조가 아니라
심층구조이다. 3) 구조주의에서는 통시적(diachronic) 분석에 대립되는 공시적(synchronic) 분석이 중심이 된다.
이것은 어떤 주어진 시간에 존재하는 문화의 “단면”(cross-section)을 조사 실험한다.
2. 구조주의의 역사적
배경 성서 연구에 영향을 미쳐온 구조주의 유형은 언어학, 인류학, 그리고 문학 분석의 세 영역에 뿌리를 박고 있다.
언어학에 있어서는 F. de Saussure가 1916년 출판된 Course in General Linguistics를 통해 언어의 공시적
개관과 통시적 개관 사이의 구분을 소개했고, 공시성에 대한 독립된 연구를 제창했다. 많은 구조주의자들은 이에 영향 받아 언어학의 영역을 넘어
다른 분야에 까지 이를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소쉬르에게 영향받은 학자들로는 프라하 학파의 Nikolai Trubetzkov(1939),
Roman Jakobson(1952), 코펜하겐의 L. Hjelmslev(1943), 그리고 미국의 L. Bloomfield(1933), N.
Chomsky(1965) 등이 있다. 인류학에 있어서는 비교적 단순하여 Claude Levi-Strauss가 독보적 존재이며, 문학
연구에 있어서는 러시아의 Vladimir Propp(Morphology of the Folktale,1928), 프랑스의 R.
Barthes(1965), A.J.Greimas를 들 수 있다. 이상의 개관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문학 작품이나 성서 본문에
접근하려는 구조주의의 방법에는 왕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인류학이나 언어학에서 발전된 이론적인 틀이 계속하여 전진하고 있으므로 성서해석에
미치는 구조주의의 영향도 계속되어질 것으로 보인다.
3. 성서연구에 있어서 구조주의 평가 : 구조주의 정책 유형별
성서본문에 대한 구조주의 해석을 몇가지 정책 유형별로 살펴보면, 1) 언어학을 문학 영역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경우 -- 비록
흥미롭기는 하지만 언어학의 범주가 다양한 문학적 의미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무리이다. 2) 설화나 다른 문학 장르를 위한 기본
범주를 제공하기 위하여 기호학의 이론을 세우는 경우 -- 이 방법의 한계는 기호학이 가진 한계와 같다. 3) 언어학이 개별적인
작품에가 아니라 모든 문학 작품에 집합적으로 적용되어지는 경우 -- 이것은 종교적인 문학작품의 공통적인 구조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하여 성경
계시의 특수성에 보다 큰 관심을 갖는 일반적인 성서 석의자에게는 이같은 구조주의적 접근 방법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4.
구조주의 평가 : 종교적인 주제들 여러 종류의 다른 구조주의의 유형과 정책들은 각기 다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구조주의
전반에 걸쳐 공통적인 근본적 약점이 있음이 사실이다. 구조주의는 그 동기에 있어서 과학적 방법에 의해 “자연”을 지배·
이해· 조절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학은 “하나님처럼 되려하는” 사람에 의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진다. 이것은
실제로 환원주의(reductionism)로 귀착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편 구조주의는 관계들의 조직의 상호작용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의미를 증식하고 작게 구분하려고 한다. 구조주의는 우주적인 범주의 체계를 가지고 특별한 문학 작품을 분석하려고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신화들의 특징을 쌍으로 된 대립 개념으로 설명하려 하고, 그레이마스는 모든 설화들의 특징을 행역자 모델과 연사적 구조로
설명하려 한다. 이 모든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자들은 구조주의가 주는 통찰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하여 문호를 열어야
한다.
성서의 영감교리를 철저히 믿는 복음주의자들은 인간중심, 과학 중심의 동기로부터 발전되어 나온 성서해석학의 도전에 대하여
아직 잘 준비가 된 것 같지 않다. 사회 과학과 언어학, 그리고 구조주의와 같은 인본주의적인 학문의 영향에 생산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복음주의자들은 신적 절대주권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아울러 인간의 선택과 책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가져야 할
것이다.
C. “The Structuralists and the Bible," Richard
Jacobson, Interpretation 28 (1974), pp.146~164
“구조주의”는 언어학
내에서의 어떤 움직임으로부터 나온 원리들을 담화의 다른 영역, 즉 설화, 친족 법칙 등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체계이다. 구조주의적
분석의 중요 원리로 기호의 임의성을 들 수 있다. 기표와 기의 간에는 필수적인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원리들은 편리하게도 이분법으로
배열되어진다. 예를 들면 언어/말, 공시성/통시성 등이다.
레비스트로스가 언어학적 구조의 방법론을 치환시켜 인류학에서 사용한
것에 대하여는 -- Patte 의 설명과 유사하다.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을 이어받아 영국의 인류학자 Edmund Leach는 창조
설화, 에덴 동산 이야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등을 통해 이분법적 구분을 나타내는 다이아그램을 제시한다.
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은 본문을 공시적 전체로 간주하고 시작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전통적 성서해석 방법과는 다른 것이다. 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은
연구의 대상이 역사비평에서의 그것과는 다르다. 다루고자 하는 대상은 본문의 저자나 기원, 또는 역사적 배경 같은 것으로부터 본문 자체, 본문의
심층적 구조로 변환된다. 그동안의 전통적 방법이 본문 뒤에 있는 역사를 밝혀 냄으로 본문의 비밀들을 드러낸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많은 비밀들이 본문 안에 함축되어 있다. 구조주의적 방법이 이제 그 역할을 상당부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저자는 프랑스
학자 R. Barthes의 설화 구조 분석에 관해, 야곱의 “천사와의 씨름” 이야기를 예를 들어 길게 설명하고 있다. Barthes는
그레이마스의 행역자 모델을 이용하여 이 이야기가 역설적인 설계를 가진 “blackmail"임을 밝히고 있다.
발신자: 하나님 객체: 통과 수신자: 야곱
보조자: 야곱 주체:
야곱 반대자: 하나님
마지막으로 저자는 Louis Marin을 언급하면서 그의 작품이 번역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Marin은 주로 의사전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비유와 다른 형태들의 설화들, 전달 메시지와 마음의 의사전달에 관한 문제, 침묵과
대화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 들을 취급한다. Marin은 “The Women at the Tomb"에서 예수의 수난에 관한 흥미있는
다이아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발신자: 하나님 객체: 복음, 영생 수신자:
인류
보조자: 제자들, 여인들 주체: 예수 반대자:
대제사장들,장로들,
가룟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부활을 공동체 전체가 인식할 때만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 갔을 때
그들의 “객체”는 십자가에 못박혔던 시신이었으나, 그들은 예수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를 만난다. 사건 발생에 중심을 둔 설화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담화, 즉 “그 자신의 의사소통, 그 자신의 교통에 중심하는 담화를 발견한다. 그것은 물건들과 시신이 치워지고 빈무덤이
된 그 순간 말들과 메시지들이 대신하여 나타나는, 간단히 말하자면, 말이 사물이 되는 설화 안에서 일어나는 예외적인 순간이다.”
D. "Structuralist Criticism" and "Biblical Strucuralism," in
Reading the Old Testament : Method in Biblical Study, John Barton
(Philadelphia, Westmimster Press, 1984), pp.104~139
1. 구조주의
비평
성서학자들이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으로 성서 본문에 접근하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첫째 이유는 그들이 전통적인
역사 비평 방법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 비평의 여러 방법으로 본문을 분석했을 때 과연 이 분석을 통하여 본문의 의미를 더 가깝고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두 번 째 이유는 성서 비평학자들이 종래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동안 일반 문학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조류와는 점점 동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조주의는 단순히 문학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과학이나 인문학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수용되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해석 유형이다. 성서 연구에 있어서는 언어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연구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사회
생활의 이해에 대한 구조주의적 접근은 사람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기 스스로의 세계를 현저히 만들어 낸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 세계는
자연에 의하여 이루어질 뿐 아니라 문화에 의하여 구성되어진다. 예를 들면 두 사람간의 ‘악수’는 단순히 육체적인 행위를 표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는데, 그 의미는 문화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악수할 그 순간에
우리는 그에게 키스하거나 그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그의 등을 토닥거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악수에 의해서 전달되는 의미는 그 상황 하에서 이들
다른 행위들이 갖는 의미에 달려있다. 우리는 행위가 일어나는 문화 체계의 관습을 알 때까지 그 행위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이와같은 의미의 양상은 언어학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단어들이나 문장들이 갖는 의미는 그들이 부분을 구성하는 체계나 구조의
기능이고, 동시에 그들과 대조되는 체계 안에 있는 다른 단어들과 문장들의 기능이다. 구조주의자들은 의미를 생산하는 모든 구조들은
그것이 언어학적이거나 사회학적이거나 간에, 서로 반대되는 쌍의 용어들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다소 과격한 주장이긴 하나 이분법적인
대조의 원리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본적인 어떤 빛을 던져준다.
구조주의적 비평의 일차적 관심은 본문이
어떻게 의미를 나타내게 되는가, 즉 본문이 의미있는 글이 되기 위한 메커니즘들이 무엇인가에 있다. 구조주의가 밝히려는 것은 어떤 특정한 본문의
새로운 의미가 아니라, 그 본문이 어떻게 지금 가진 의미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독자가 그 의미를 스스로 인지하게 되는 이유와 함께 보여주려는 데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특정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문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문화 체계의 하나로 간주하여 그
문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개별 본문을 연구한다. 전통적인 문학비평은 사람을 ‘의미의 창조자’로 생각해 왔지만, 구조주의는 문학을 의미가
사람에게 부과되는 체계로 이해한다.
2. 성서적 구조주의 이론으로서의 구조주의에서 석의적 방법에로의 전환은
순조조운 과정은 아니다. 원리상으로 구조주의자들은 ‘석의’ 보다는 ‘분석’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본문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보다 한
해석이 어떻게 하여 그 본문의 적합한 해석이 되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이어서 저자는 창세기 1장, 2장과 전도서의 구조주의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은 전통적인 역사 비평의 내용과는 별다른 접촉 없이 수행되어진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전통적 역사 비평의 빛 아래서 더욱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구조주의는 결코 무오한 방법이 아니다. 구조주의적
범주는 우리의 성서 비평 연구에서 그것이 어떤 종류의 비평일지라도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보게한다. 구조주의적 비평 유형은 우리로
하여금 독자로서의 우리 자신을 알게 하고, 우리 자신의 가정과 편견을 갖도록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점이다. 구조주의적 분석의
위대한 기능 중 하나는 우리에게서 저자의 의도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독자의 순진함을 빼앗아서, 저자의 의도나 독자의 이해의 폭이 무한한 것이
아니라 엄격히 제한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점이다.
II.
“구조주의와 성서해석” -- 저자들 간의 동의점 및 차이점을 중심으로 한
정리
본 장에서는 위의 4 Articles을 종합하고, 여기에 아래 2 Articles 을 추가 종합하여 “구조주의와
성서해석”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Robert A. Spivey, "Structuralism and
Biblical Studies: The Uninvited Guest," Interpretation 28
(1974), pp.133~145 2) Elizabeth Struthers Malbon, "Structuralism,
Hermeneutics, and Contextual Meaning," JAAR 51.02,
pp.207~230 1. 구조주의 정의
구조주의는 定意하기가 매우 어려운 운동이다. 1) 무엇보다 구조주의는
하나의 ‘체계’나 잘 정리된 이론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법들과 패러다임들이다. 2) 또한 구조주의적 방법을 적용하는 사람들 간에도 서로 간에
세부사항에 대해 마찰이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작업하는 전체적인 골격에 있어서조차 충돌을 피할 수 없다. 3) 그리고 구조주의는 언어학이나
인류학, 심리학, 물리학, 그리고 심지어는 수학 등 다양한 영역에까지도 적용되어질 수 있다<Poythress>. 구조주의는
“언어학 안에서 일어난 어떤 운동으로부터 추출된 원리들을 담화의 다른 영역들에 적용하는 것이다”<Jacobson>. 이들 다른
영역이라 함은 문장보다 더 큰 유니트, 즉 이야기이거나 친족關係, 또는 법 체계와 같은 것들이다. 구조주의는 작게는 하나의 分析
方法論이고 크게는 西歐 近代 思惟 體系를 흔들어놓은 거대한 理論群이다. 구조주의는 현상과 개체 뒤에 숨겨져 있는 선험적 무의식인 구조의
그물망을 찾으려 한다<Patte>.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존재론이나 인식론등 하나의 철학 안에서 학파나 체계를 가지고 연구해 들어간
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된 학문 영역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일률적 학문으로 다루기는 힘들며 또한 구조주의는 그 자체 안에서
구조주의를 넘어 포스트 모던사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Poythress>.
2. 구조주의의 역사적
배경으로서의 소쉬르의 언어구조학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인류학
성서 연구에 영향을 미쳐온 구조주의 유형은 언어학, 인류학,
그리고 문학 분석의 세 영역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은 앞서 밝힌 바 있다. 구조주의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은 구조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언어학자
소쉬르(F. de Saussure)의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찾는다<Patte, Poythress, Jacobson,
Barton>. 이것은 소쉬르의 구조 언어학이 가히 혁명적이었음은 물론이지만 인류의 모든 것이 언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구조주의 언어 이론은 그때까지의 언어 연구 방법의 일대 전환을 일으켰고 여러 다른 학문에 방법론적으로 영향을 미침으로 구조주의라는 커다란 군을
형성하는데 기초를 마련했다. 소쉬르의 구조 언어학이란 랑그(langue)와 빠롤(parole), 記標(signifier)와
記意(signified), 연쇄체계(syntagmatic)와 계열체계(paradigmatic), 그리고 共時性과 通時性이라는 범주를 사용함으로
언어를 기호들의 지시체계가 아니라 자율적 체계인 자체의 내적구조라는 개념으로 분석하였다<Jacobson>. 그는 “언어는 형식이지
실체가 아니다”(Barton), "언어는 화자의 기능이 아니라 개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동화되는 산물이다“ 라는 유명한 명제로 기존의 사고 체계를
뒤흔들어 놓았다<Patte>. 전통적으로 언어는 실재 세계를 나타내거나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표현하는 도구로 생각해왔다.
언어의 의미는 그것에 외재하는 실재세계나 혹은 우리의 주관적 관념이나 의식 같은 내면적 실재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소쉬르는
이름과 실재 세계, 주체와 내면적 관념의 관계가 아니라 언어를 소리와 개념의 관계로 (즉 기표와 기의 ,혹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기호라고 보았다. 따라서 언어라는 기호의 의미는 개념과 소리간의 자의적 결합을 통해서 언어체계 그 자체 안에서 결정되고, 개별적 기호의
의미도 언어체계 내의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서 온다고 보았으므로 ,이제 언어학적 기호는 언어 체계에 외재하는 그 어떠한 지시대상도 고려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 속에서 지시대상은 사라지고 단지 개념과 소리만이 남게 되는 것이며-나중에 데리다 등을 통해 개념 조차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대화 속에서 주체는 사라지고 주체가 말하는 것은 언어 자체의 메카니즘에의 산물일
뿐이다<Jacobson>.
그렇다면 구조언어학에서 말해지고 구조주의 분석의 뼈대가 되는 몇개념을 살펴보자.
1)랑그와 빠롤--랑그란 언어사용에 관한 사회적 규칙 혹은 관행을 지칭하고 빠롤이란 구체적 상황에서 말하는 사람, 즉 화자가 행하는
개개의 발화를 뜻한다. 다시 말해 빠롤은 일상 속에서 쓰는 구체적인 말이며 랑그란 이 구체적인 말을 소통시키며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무의식적
선험적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 주체가 말한다기 보다는 언어 체계, 언어 구조가 인간을 통하여 말해진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의 연구는 각각의 구성요소 그 자체가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소들간의 체계적 관계, 즉 언어의 무의식적 구조,
랑그의 체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구조주의자들에 의해서 빠롤은 현상이 되고 랑그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빠롤은 인간 주체가 되고 랑그는
이데올로기나 선험적 무의식이 되는 것이다. 빠롤은 구체적 언술이 되고 랑그는 에피스테메(episteme,인식소)가 되는
것이다<Jacobson, Patte> . 2)기표와 기의--언어란 사물과 이름을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음성적 영상으로
결합된 것이며, 언어의 소리 즉 청각 이미지를 기표라고 하고 개념을 기의라고 한다. 언어와 실재 사이에는 완벽한 구조적 통일성이 있을 수 없고
그 사이에는 엄연한 간극이 있으며, 따라서 언어는 경험적 실체가 아니라 추상적 형식의 체계인 것이다. 소쉬르에 의하면 기표와 기의로 구성된
기호는 두가지 특징을 가진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지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 예를 들어 소리나 표현 “나무”와 개념이나 내용 “나무”
사이에는 고유한 본질덕 관계가 없다<Patte>. 따라서 언어와 실재의 연결을 보증해 줄 수 있는 것은 언어의 구조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기호는 표의체계라 할 수 있는 기호의 그물망을 이루는 다른 기호들과의 변별적 대립을 통해서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남(南)이라는 기표에 대한 기의는 북(北)이라는 기표에 대한 기의가 없으면 무의미해지는 것이며 ‘차’와 ‘타’는
‘ㅊ’과‘ㅌ’간의 음운대립과 음성적 차이가 없다면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기표를 생각하건 기의를 생각하건, 언어는 언어체계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개념도 소리도 있을 수 없고, 오직 언어체계를 통해서 나타는 개념적 및 음성적 차이를 통해서만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Jacobson, Patte>. 3)연쇄체와 계열체--연쇄체적(혹은 연사적) 관계란 문장을 구성하는 어휘들 간의
통시적 관계(시간적 순서)를 뜻한다. 예, ‘A는 영어는 잘하지만 수학은 못한다’와 ‘A는 수학은 잘하지만 영어는 못한다’라는 문장은 구성
어휘는 같으나 어휘들 간의 연사적 관계(단어의 시간적 배열)의 차이로 인하여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된다. 계열체적(혹은 범례적) 관계는 문장에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문장에 나타나 있는 특정어휘와 대치되어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어휘들 간의 관계를 뜻한다. 예, ‘교사가 A를 가르친다’는
교사의 자리에 목사, 전도사, 집사 등으로 대치될 수 있으며 A의 자리도 마찬가지 이다. 이들 관계를 계열체라고 한다. 비록 계열체의 관계에
있는 어휘가 문장 속에 나와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무의식적 구조의 연상 작용을 통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Patte,
Jacobson>. 예를 들어 본질이라는 말이나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 단어가 어떤 실제 대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이며 이 개념은 다른 기호들 간의 변별적 대립이나 이 단어에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대체될 수 있는 잠재적 어휘들간의 관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말은 인간이라는 말이나 다른 종교의 신들과 대립시킴으로 파악하거나 하나님이라는 표면 배후에 숨어있는 절대나
진리나 불변이나 무한이라는 개념과 대체시킴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단어는(하나님) 어떤 단어와 대립을 시키느냐 또는 어떤 것들과
동일선 상에 놓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확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주체가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단어는 문화적 틀 속에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Patte. Barton,Jacobson> 따라서 이 개념은 구조주의자들에 의해 하나의 개체나 독립적
구성요소가 중요한 것이나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구조가 중요하며 의미를 생산한다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레비스트로스는 언어구조학적 방법을 통하여 인류학에 접근하였다. 그는 모든 문화에 공통된 질서, 즉 현대문명이든 원시문명이든 서구문화든
인디오문화이든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문화에 공통된 보편적 구조, 심층적 무의식 구조를 발견함으로 각 문화들을 이해하려 시도하였다. 이 보편적
구조 위에 여러가지 형태의 문명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표면현상을 진정한 실재로 여기지 않고 표면적인 자연현상, 심리적 현상
및 사회현상의 근저에 깔려 있는 보편적 근본원리를 발견하려 하였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무의식적 구조는 무의식적 질서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성격의 실체가 아니라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문화적 현상(빠롤)에 대한 구조적 체계인 랑그인
것이다<Jacobson. Patte> 레비스트로스는 변화를 겪지 않는 사회의 신화와 의례의 구조에 주목했으며, 원시문화
자체가 무의식적 구조라는 것이 아니라 원시적 문화이든 서구 문화이든 이 문화 현상을 있게 하는 무의식적 구조가 있는데, 이것이 차가운 사회인
원시문화에 잘 보존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가 무의식 구조로 경제적 생산을, 프로이드가 리비도적 본능을 이야기했다면
레비스트로스는 언어 자체의 구조적 법칙을 이야기했으며, 특히 이원론적 대립체계를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가야할 것은 언어 체계 역시
무의식적 구조가 형식을 부여한 것이지만, 언어 구조는 심지어 결혼의식, 치료의 주슐, 정치적 위계질서, 친족 법 ,성적인 터부, 토테미즘적인
관습, 요리나 경제적인 관습 등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모든 체계는 서로 같은 무의식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소쉬르가 발견한 언어 구조적
방법으로 다른 체계를 분석한다는 것이다. 1)친족 체계 - 레비스트로스는 여러가지 유형의 친족체계 속에서 ‘근친상간의 금지’라는
하나의 보편적 규칙을 찾아낸다. 이와 같은 보편적 근친상간의 금기는 궁극적으로 볼 때, 집단간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보편의 사회적
무의식인 것이다<Patte,Jacobson> . 친족체계는 모두 의사 소통 체계이며 상징체계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자연에서
문화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무의식의 구조적 결과이며, 이원적 대립에 따른 교환이 곧 무의식의 구조를 설명하는 셈이 된다. 성욕,
공포, 애정, 식욕 같은 생리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러한 요인들은 부차적인 것이며 인간정신의 가장 기본적 성향은 무의식적 법칙 즉 기호를
통한 의사소통의 교환이라는 것이다. 2)신화체계 -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를 구조주의 방법으로 (일련의 신화소로 분해하여 새롭게
재배열함으로) 신화가 비이성적인 환상이 아니며, 신화는 과학적 논리만큼 엄격한 무의식의 상징이란 논리에 따라 작용하는 신화 자체의 사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신화란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문화와 자연, 시간과 영원 등의 인간존재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외디푸스 신화는
혈연관계의 과대평가와 경시라는 구조적 대립을 화해시키려 시도하며 인간의 ‘토착적’ 기원을 벗어나려는 문화적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Patte>. 따라서 이런 신화는 오늘의 사회에서도 존재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처방책이 부족할 때 자신이 사회가 바라는 목표를
실현하기에 무력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꿈꾸고, 상상 속에 자신을 투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3. 구조주의의 목표와
특징
구조주의는 그 적용 분야의 광범위함과 그 학문의 깊이에 의한 난해함은 물론이거니와 구조주의가 우리의 사고를 급격하게
전환시키려 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근대의 계몽주의와 휴머니즘에 깊이 잠겨있는 인간 주체적 사고의 틀로써 구조주의를 이해하기에는
구조주의는 우리에게 너무나 낯설어 있다. 물론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를 통하여 사회경제적 구조와 인간 무의식적 구조에 대하여 선이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주체적 사고의 틀 속에서의 구조, 즉 인간 주체적 반항과 투쟁, 그리고 표현과 치료를 통하여 붕괴시킬 수 있는
극복할 수 있는 구조로서의 이해이다. 하지만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조는 반인간주의적 반역사적 구조, 즉 인간이 주체에서 脫되어 있는 구조, 그
자체로 독립적인 구조, 오히려 인간이 갇혀있는 구조, 인간은 구조의 그물망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구조주의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문학 작품 등 다양한 텍스트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기호학인데, 이것은 문학 작품이나 텍스트를 표면
그대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구조적으로 재배열하여 표층적 의미가 아닌 심층적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분석 방법이다. 이것은 롤랑 바르트등
많은 문학 비평가에 의해 그 분야가 개척되고 있다<Jacobson, Barton>. 이것은 해석학의 한 방법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문학 비평이나 텍스트 해석 이외에 다른 분야 모두이며 이데올로기, 정신분석학, 문화 인류학 등 다분히 존재론, 인식론을 이야기하며
따라서 철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조주의의 목표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그 행위의 산물, 즉 언어와 문학 작품을 비롯한 모든
지식과 문화 현상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를 분석하고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주의는 특수하고 구체적인 사실들을 지배하고 한정하고 틀 지우는
일반 기초체계의 전체성, 즉 선험적 무의식적 구조 안에서 구체적인 사실들의 상호관계를 재배열하여 특수한 사실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구조주의는
사회 문화적 현상 속에서 또는 텍스트 속에서 가시적이고 표면적인 경험 현상을 단서로 하되, 이를 진정한 실재로 보지 않고, 표면적인 현상 형태를
규제하는 비가시적이고 본질적인 심층의 구조적 원리를 논리적으로 추론한다.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현상형태의 이면에는 이러한 표면현상을
생성하는 구조가 있고 심층적 구조는 비록 관찰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실재한다는 것이다<Poythress ,Malbon,
Patte> 구조주의의 사유적 틀은 인간주체와 사회구조, 주관적 의식과 객관적 구조간의 관계에서 구조주의는 후자에 중점과 강조를
둔다는 것이다. 서구철학은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하여 현상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주체의 철학이였다. 모든 것의 근원이요 중심은 인간이요, 인간이
주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주의자들은 사회적 구조, 무의식적 구조를 인간 주체의 선행에 놓았으며 여러가지 방법으로 인간주체를
해체시켰다. 먼저 구조주의의 선구인 소쉬르는 자아가 가지는 언어는 자아의 관념이나 사고의 표현이 아니라 언어가 가지는 자체구조의 선험적 무의식에
의하여 지배받으므로 인간주체는 의미화의 원천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기능의 산물이라 보았다. 레비스트로스 역시 언어만이 아니라 친족체계, 신화,
요리문화, 의상풍속 등 모든 사회 문화제도도 의미화 체계이므로 결코 인간 단독의 순진한 사회 문화적 실천은 없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문화적
표면현상은 무의식의 구조를 반영한 것이며, 인간은 이와 같은 심층적 구조의 무의식적 담지자에 불과하다고 보았다<Jacobson,
Spivey, Patte>.
4. 구조주의적 성서해석
철학자 스피노자(B. Spinoza
1632,1677)가 고등 비펑의 문제를 제기한 이래, 성서해석은 여러 방면으로 수많은 도전을 받아왔다. 접근의 방식과 논리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해서 이제는 성서에 대한 안내서나 입문서들이 엄청난 양의 신학들로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불과 300년 남짓한 기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과학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서해석이 부딪혀야 했던 도전과 위기들은 대체로 세
방면으로 간추려 볼수 있다. 첫째. 역사 비평적 접근(historico-critical apporach), 둘째, 양식사 비평적
접근(form-critical approach), 그리고 케리그마 중심의 성서신학 곧 메세지 중심 주석학(message-exegesis)이다.
첫째 방법은 합리주의적 역사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둘째 방법은 문학 장르 비평에 의한 성서에의 접근을 시도한다. 그러나 세째 방법은
실존적 상황을 중시하며 인간 마음에 해석의 촛점을 맞추려고 한다. 이러한 세가지 접근은 한가지 공통적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폐쇄적 연속’을 그 전제로 삼는 역사적 방법론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통시적(diachronic)이라는 점에서 그 세 접근은
일치한다. 그러나, 20세기 초 소쉬르가 ‘일반 언어학 강의’(1916)를 출간한 이후, 구조주의적 접근법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역사주의가 지나치게 통시론에 집착한 나머지, 모든 사실의 계기를 연속으로 파악하려 하고 비교 방법론을 맹신하는데 대한 반발이었다. 그는
언어이해의 새 모델로서 ‘체계’(svsteme)를 제시하였는데, 이는 공시적 접근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Barton은 구조주의의
등장 원인을 두가지로 들었는데, 그 하나는 전통적인 역사비평 방법에 대한 실망감을, 그리고 또 하나는 성서 연구 세계의 밖에서 널리 일어나고
있는 변화된 환경이다<Barton>.
구조주의적 성서 해석의 특징은 기존의 성서해석 방법인 통시적 접근을 일단
유보하고, 배경이나 역사의 비교, 분석등 외적 상황에의 관심보다 본문 그 자체의 관심을 더욱 중시한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혹은 퇴보적이든
간에, 구조주의자는 성서 본문을 공시적 전체(synchrnous whole)로 보고 본문 자체에 접근한다<Jacobson>. 이것은
연구의 객체(대상)가 전통적인 방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본문의 비밀들이 밝혀질 수 있을지는 모르나,
기대되기로는 어떤 모호한 본문들의 조건들이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Jacobson> 구조주의적 방법론은 여전히 “자기
주장”(speaking itself)의 과정에 있는 것 같다. 구조주의자들은 실제적인 적용보다는 이론적인 발전에 더욱 매료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이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향은 상징적인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마음의 구조를 묘사하려는 열망(이것은 레비스트로스에게서
비롯되었다)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다<Jacobson>. 구조주의적 성서해석이 기존의 것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것은 연구의
초점이 문서나 편집이나 케리그마에 대한 질문들로부터 본문과 그 의미에 관한 질문들로 옮겨 졌다는 점이다.
4. 구조주의의 기본
원리들이 성서해석에 미치는 영향
앞에서 우리는 Poythress가 제시한 세가지 기본 원리를 보았다. 즉, 1) 전체는
부분들의 산술적 총합 그 이상이다. 전체는 부분들의 상호 관계들 안에서 설명되어진다. 관계들과 구조들은 해설에 있어서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2) 해설을 위해 필수적인 구조는 현시적인 것의 표층 하에서 발견되어진다. 구조주의에서 관심 갖는 구조는 표층구조가 아니라
심층구조이다; 3) 구조주의에서는 통시적(diachronic) 분석에 대립되는 공시적(synchronic) 분석이 중심이 된다. 이것은 어떤
주어진 시간에 존재하는 문화의 “단면”(cross-section)을 조사 실험한다. 이들 중 먼저 세 번 째 원리를 보면, 통시적
분석에 대립되는 공시적 분석을 강조함으로써 과연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이점은 그동안의 성서 연구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발생학적 해석의 방법들을 몰아내게 된 점이다<Poythress>. 사실 성경은 본문의 기원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거의 없으며, 따라서
아무리 철저한 연구를 한다 하더래도 문서의 기원에 대하여는 추측의 수준이요 따라서 본문의 의미도 불확실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본문 기원의
재구조 작업으로 기독교 신앙의 전반적인 붕괴를 초래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더구나 초자연을 믿는 사람들이 함부로 해석을 하지 못하고 신비로 두는
것들에 대하여 자연주의자들은 본문의 기원이나 발생학적 가설들을 마음껏 적용하여 왔다. 이런 면에서 공시적 분석을 통하여 최종 작품으로서의 성서
본문 자체에 보다 접근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Poythress>. 그러나 공시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단점도
갖는다. 왜냐하면 공시성의 강조는 역사의 중요성을 부정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신화는 궁극적으로 이분법적인 서로
반대되는 개념의 용어로 분석되어질 수 있다. 역사성을 나타내는 신비한 이야기들은 다만 두 번 째 관심사로 밀리게 된다. 이런 논리라면 결국
생명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대조의 신비한 화해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Poythress>. 두
번 째 구조주의 원리는 심층 구조에 관한 것이다. 심층 구조를 강조함으로써 얻는 첫 번 째 이점은 이것이 성경의 의미를 한층 더 넓고 깊게
열어줄 가능성을 주는 데 있다. 구조주의는 때로 두 본문이 심층 구조에 있어 공통점을 갖고 있음을 지적해 줌으로써 서로간의 가까운 관계를 볼 수
있게 한다. 또 하나의 이점은 그동안 자료비평 등에 의해 갈래갈래로 찢겨진 성서의 본문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통전성의 증거들을 더욱 발견하게
해 줄 것이라는 점이다. 정경의 본문들이 통일되어 있다는 증거를 찾으면 찾을 수록 고등비평에서 부르짖던 자료들의 분해작업도 더욱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료비평의 도구들은 본문의 공통적인 구조보다는 차이점과 긴장관계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Poythress>. 심층구조를 강조하는 구조주의가 안고 있는 불리한 점은 무엇인가? 구조주의가 만들어낸
일반적인 이론적 뼈대는 구조주의자로 하여금 심층구조를 ‘밖으로 읽어내기’("read out")도 전에 ‘안으로 읽어들이게’(“read in")
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전체를 보고자 하는 경우에도 구조의 한 층만을 보면서 그것이 전체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다<Poythress>. 마지막 남은 원리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관계의 체계를 사용하려는 것과
관련된다. 여기에는 큰 이점이 있다. 이 원리는 학자들로 하여금 성경본문을 무책임하게 다루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실제로 구조주의적
언어학이나 담화분석을 통해 보여지는 언어와 문학의 복잡미묘한 본문들에 대하여 학자들이 너무 민감하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구조들에 주의를
기울일 때 잘못된 석의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성서 본문들의 다른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여러 책들의 통일성과 응집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며, 성경적 교리를 단독적으로가 아니라 관계성 속에서 연구하게 되는 이점을 가진다. 나아가, 성경의 서사적 구조를 탐구함으로써,
자연주의적 편집 비평의 전제 없이도, 편집비평가들이 얻으려고 했던 것을 이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야기가 단순히 일어났던 것을
우리에게 말하는 방법 뿐 아니라 그 일어난 사건에 성경적 교리를 내포하고 있는 미묘한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방법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Poythress>. 그러나 관계를 강조하는 경우에 입는 위험도 있다. 주어진 본문은 자신과와의 관계 뿐 아니라
그것이 기록된 역사적 문화적 문맥과의 관계도 떠받들고 있다. 그 본문안의 구조적인 관계는 장르나 언어, 그리고 저자의 스타일과 환경에도
관련되어진다. 그러므로 이처럼 여러 겹의 관계들을 강조하게 될 때 필연적으로 성경을 상대화하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많은 경우 현대의
구조주의자들이 자연주의적인 신학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 위험은 더욱 고조되어진다<Poythress>.
나오는 말
본 article은 구조주의와 구조주의적
주석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와 구조주의적 주석 방법을 성서해석에 적용할 때의 문제들을 조명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동안의 전통적인 역사비평이 성경
본문을 등한시하고 오직 성경의 외곽지대만을 살피고 있었다면, 구조주의는 두 팔을 걷어부치고 성경의 본문 속으로 뛰어들어 본문 속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구조적 비밀을 밝히려는 시도로 보여 매우 바람직하나, 동시에 성경의 계시와 영감에 대한 자연주의적 견해를 가진 대부분의 구조주의자들의
그물에 건져 올라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만일 우리가 Poythress가 주장하듯,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실재에 관한 확고한 신학적 신앙적 준비를 갖춘다면, 구조주의의 원리를 활용한 성경해석이 그동안의 부족했던 본문 이해의
넓은 광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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