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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정[서울 남산 전통 활쏘기 국궁장]
 
 
 
카페 게시글
박형상변호사님 스크랩 삼행시- 초파일(활터에서)/김대근
남산 석호궁 추천 0 조회 18 11.08.23 16: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초파일(활터에서)


초록빛 돋아나 열어젖힌 새봄
파리한 민얼굴로 수줍게 웃으며
일일이 몸 흔들어 피는 송화(松花)


초고리가 어설피 활터 위를 돌자
파득이며 참새들 과녁 아래 숨는다
일렬로 늘어선 궁사, 활을 매긴다


초시(初矢)에 실어 보낼 정제된 마음
파공음 귓가를 울리며 바람에 태운다
일시(一矢)의 궤적을 쫓아 그려지는 포물선


초시(初矢)가 아슬하게 과녁을 스친다
파드득, 장끼가 놀라서 땅을 박찬다
일시(一矢)를 다시 매기며 시선을 가다듬다


**초고리: 어린 매를 일컫는 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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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꽃은 역시 송화다. 같은때에 피는 철쭉같은 화려한 꽃에 비하면 피는듯 마는듯하다. 게다가 꽃으로 보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송화는 꽃가루를 바람에 실어 세상의 구석구석으로 보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요즈음 매일 들리는 곳이 활터다. 활에 빠져산지 이제 열달째다. 활터에 나오는 궁사들의 평균 궁력(弓歷)이 평균 시오륙년이니 나는 그야말로 노랑병아리다. 어찌보면 병아리도 과할지 모르겠다. 국궁은 참 좋은 운동이다. 전신운동은 물론이고 정신집중에 좋을뿐 아니라, 활터가 산속에 있어서 경치도 그만이다. 도시생활에서 이만한 호사가 왠일인가 싶다.


활터에서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객(客)이다. 소유권의 지분을 가장 많이 소유한 것은 꿩들이다. 활터를 경계로 산 정상쪽 언덕과 산 아래쪽 언덕에 각각 꿩 가족이 산다. 재밋는 것은 활터에 내려와 돌아다니며 놀다가 제각각 갈길을 간다. 꽤나 넓은 곳이어서 서로 장소를 두고 다투는 일을 없다. 아주 가끔 고라니가 다녀간다. 어쩌다 발시한 화살을 수거하러 가다가 숲길에서 사람과 고라니가 서로 놀라 멈추어 설때도 있다. 일전에는 팔순을 넘긴 고문님 한 분이 고라니와 마주쳤는데 고라니가 놀라 펄쩍 뛰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참새들은 서른마리쯤 된다. 아마 숫자로 치면 가장 많을 것이다. 요즈음 보기드문 산비둘기 서너마리도 하루에 몇번 들러 간다. 지분이 없이 그냥 떠돌이도 있다. 들고양이가 그놈인데 이놈이 한번 뜨는 날에는 숲의 여기저기서 새들이 피하느라 부산을 떤다. 그나마 한달에 한번이나 두번정도 들리는 녀석이다. 하얀색으로 제법 귀티가 나는 녀석인데 덩치가 제법 크다.


며칠전에는 숫꿩인 장끼 녀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실은 사고사를 당했다. 대회가 있을때 과녁에 떨어진 활을 수거해 사대로 보내주는 역활을 하는 운시대를 고정하는 와이어가 있는데 무었에 놀라서였는지 화들짝 날아오르다 외이어에 머리를 부딪치며 목이 부러졌다. 달려가 날개를 잡고 들어올리니 고개를 들어보다가는 푹 꺾이고 만다. 몇번을 고개를 들어보려고 하다가는 꺾이고 하더니 숨을 거두었다.


이녀석은 죽기 하루전에 끼인 살을 끝내 풀지 못한 탓이려니 했다. 하루전에 위에서 이야기한 그 들 고양이 녀석이 둥지 근처를 어슬렁 거렸는데 자신의 둥지쪽으로 고양이가 가지 못하게 하려고 계속 고양이 앞을 얼쩡대며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이 숫꿩을 어찌해볼 요량으로 발을 뻗어 보기도하고 갸르릉 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펄쩍뛰면서 덮치는 고양이에게 잡힐뻔 하기도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끼를 보며 수컷이란 동물의 공통적 운명에 가슴이 쓰려왔다. 오! 불쌍한 수컷이여!


그래도 녀석은 일부다처로 일부일처의 굴레에 매여사는 인간 수컷에 비하면 행복하달까... 뭐 그런 복잡한 사련의 정이 녀석에게서 느껴졌다. 암튼 그렇게 용감하게 싸우던 녀석이 다음날 사고사로 죽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또 다른 수컷이 그 녀석의 영토와 처자까지 모두 차지했다. 무주공산에 무혈입성한 그 녀석은 우리가 활을 쏠때면 과녁옆 바위 위에서 오도마니 우리를 지켜보곤 하는 것이다. 며칠만에 적응이 되어서인지 화살이 과녁을 때리는 꽝꽝거리는 소리에 미동도 않는다.


활터는 채석장이 있던 산 아래 위치해있다. 버려진 채석장 절벽에는 매가 둥지를 틀었다. 가끔 활터위를 빙빙 돌다가 가끔 수직으로 내려 꽂혀서 작은 새나 들쥐등을 잡아가고는 한다. 요즈음은 막 사냥을 배우기 시작한 초고리가 자주 활터위를 빙빙돈다.


며칠있으면 지금 암꿩이 품고 있을 알에서 깨어난 새끼꿩을 데리고 산책을 나올 것이다. 게다가 활터 주변에 제법 개체를 늘린 아카시가 꽃을 피울 것이다. 그때쯤에는 아랫동네 벌통에서 벌들도 소풍을 올 것이다.

 

 

지난 겨울 눈 내린 어느날 밤 야사 중에...

이렇게 늦은 밤에 활을 쏘고 난뒤 화살을 줏으러 과녁으로 오가면

유난히 부엉이가 울어줌~~

"너도 참! 너도 참!" 이렇게 말이다.

 

비오는 활터

비가와도 활을 쏜다.

이런 날 와이프가 한마디 한다.

"이런 날도?"

"이런 날은 화살이 미끄러워 잘 나가지."

"???"

 

                               

핸드폰으로 원샷을 날린 자리에서 과녁까지의 직선거리는 정확하게 145미터다.

양궁의 최대 표적거리는 90미터다.

국궁의 표적없이 살상력을 갖는 거리는 통상 200미터에 이른다.

시위를 놓고 잠깐~ 정적이 흐른뒤에 과녁에 적중하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린다.

온몸의 세포가 해방을 이루는 시간~ 이 몇초의 쾌감을 위해 오늘도 활터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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