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6 은6 동2 + 무관의 영웅들 … 세계가 놀랐다|

[박희영]

금6 은6 동2 + 무관의 영웅들 … 세계가 놀랐다
ㆍ스피드·피겨·쇼트 새 역사… “한국을 배우자”
ㆍ김연아 ‘차원 다른 연기’ 올림픽 하이라이트로
ㆍ톡톡튀는 20대 초반 선수들 기염 온국민 환호

지난 16일 이상화(21·한체대)가 전날 모태범(21·한국체대)에 이어 스피드스케이팅 500m를 석권하자 AP통신은 “한국이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도는 모습이 어느새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익숙한 장면이 됐다”고 타전했다.
이승훈(22·한체대)이 남자 1만m에서 우승하자 “이번 대회 가장 깜짝 놀랄 만한 대이변”이라고 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과거에는 일본이 기술을 전수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됐다”며 “이제는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보도했다.

영광의 얼굴들 밴쿠버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28일 밴쿠버 팬퍼시픽호텔에서 열린 ‘한국 선수단의 밤’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밴쿠버 | 연합뉴스

2010 밴쿠버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동계스포츠 역사를 다시 썼다.
이전 올림픽까지 쇼트트랙을 제외한 다른 종목에서는 금메달이 없어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은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 4개를 수확하며 일약 겨울스포츠의 강국으로 떠올랐다.

스피드스케이팅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은 이번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 걸린 금메달 12개 중 3개를 획득, 종주국인 네덜란드(3개)와 함께 가장 많은 금메달을 가져왔다.

쇼트트랙에서는 이정수(21·단국대)가 2관왕을 차지하며 여전히 강국임을 자랑했다.
전체 메달 24개 중 8개를 따내 미국(6개)을 제치고 가장 많은 메달을 딴 국가가 됐다.

피겨 여왕 김연아(20·)가 보여준 피겨 여자 싱글 연기는 이번 올림픽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온 세계가 가장 관심을 모았던 종목에서 김연아는 역사상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뉴욕타임스가 “김연아는 지난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 우사인 볼트가 보였던 압도적 실력차를 재현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경쟁자들과 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보였다.

외신들은 이 같은 성과를 두고 ‘기적’과 ‘이변’으로 표현했지만 기록과 메달은 ‘운’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기 체육학회장인 이영종 교수(한체대)는 “기적이라고들 말하지만 아무 노력 없이 기적이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경기장인 태릉국제빙상장에서 훈련한 뒤 밤에 또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트랙을 돌았다.

쇼트트랙 선수들은 태릉 선수촌에 입소한 모든 종목의 선수들 중 가장 이른 새벽 5시30분에 추운 빙상장에 모여 훈련을 시작했다.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트를 신은 뒤 거의 1년 내내 휴일이 없을 정도로 점프를 하고 또 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팬들은, 응원하는 국민들은 보름 동안 과거 어떤 동계올림픽 때보다 행복하고 즐거웠다. 이상화의 눈물에 함께 울었고, 모태범의 깜찍한 세리머니에 함께 기뻐했다.
이호석과 성시백이 충돌했을 때 모두 아쉬워했고,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실격에 함께 분노했다. 김연아가 감격적인 눈물을 흘리는 순간, 모두가 함께 힘찬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과거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의 메달색깔에만 열광했던 국민 모두를 겨울스포츠의 진정한 팬으로 끌어올린 게 밴쿠버 올림픽의 특별한 성과다.

2008 베이징 올림픽부터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이번 동계올림픽은 국가 대항전에 대한 응원문화의 변화를 굳히는 올림픽이기도 했다. 금메달에 열광하고 오심에 분통을 터뜨렸지만, 팬들과 국민들은 최선을 다하고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올림픽과 유독 인연이 없었던 이규혁(32·서울시청)에 대해 팬들은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실수를 저질러 금·은·동 싹쓸이를 놓치게 한 이호석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보냈다.

한국체육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20대 초반의 선수들도 선배들과 달리 은메달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남자 쇼트트랙 계주팀은 은메달 획득 뒤 팬들에게 큰절을 올렸고 막내 곽윤기가 시상대에서 ‘시건방 춤’을 선보일 때 우리는 함께 웃으며 진심어린 축하 박수를 쳐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