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김소진, 강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 『자전거 도둑』, 이 영화는 전후의 이탈리아 경제 공황의 암울함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실업과 빈곤이 거리를 휩쓸고, 그 상황에서 겨우 영화포스터 붙이는 직업을 얻는 아버지. 자전거가 있어야만 하는 직업의 특성상 살림을 저당잡히고 자전거를 간신히 마련한다. 그러나 포스터를 붙이는 사이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온종일 자전거를 찾아 거리를 헤매이던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고 만다. 그러나 곧 붙잡혀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수모를 당한다. 안타깝게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들, 그렇지만 이내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는 아들.
이와 동일한 제목의 소설이 김소진의 소설에도 있다.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끈끈하게 이어지는, 모질고도 따스한 핏줄의 인연이 잘 녹아 있다.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구멍가게를 꾸려나가는 아버지를 도와 도매상으로 물건을 떼러 다닌다. 어느 날 계산 착오로 소주 두 병이 빠져 있음을 알게 되나, 혹부리 주인 영감은 결코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계산 착오란 가난한 그들에게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고, 그후 아버지는 소주 두 병을 슬쩍 담음으로써 그 손해를 보상받으려 한다. 그러나 오히려 주인 영감에게 그 사실이 발각되고, 그 순간 나는 겁에 질린 아버지를 대신하여 도둑이라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실제 도둑질을 한 아버지는 혹부리 영감의 교육 정신에 격려 받아 호되게 내 뺨을 갈긴다.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않겠다던 그때 어린 나의 끔찍한 다짐과 혹부리영감에 대한 복수, 그리고 그로 인한 혹부리영감의 파산과 간접 살인.
이제 어른이 된 나의 자전거 도둑인 그녀는 어린 시절, 간질 때문에 정상적인 성장을 멈춘 오빠에게 성적 상처를 받은 존재이다. 그녀는 엄마가 집을 비우며 부탁했던 오빠의 식사 심부름이 두려워, 며칠동안 그를 방치한 나머지 간접 살인을 하게 된 아픔을 지니고 있다. 나와 그녀는, 이제 현실의 그림자이자 아픈 환영인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확인한다.
김소진의 작품에서 끈질기게 이야기되는 아버지의 삶이란, 어쩌면 개인적 차원이 아닌 우리 시대 모든 아버지의 삶이다. 아버지로 인해 상처받은 자신이란 어쩌면 아버지에게 칼날을 들이민 자는 아니었겠는가. 무능한 부모 탓에 어려운 성장기를 거쳐야만 했던, 그래서 언제나 피해자라 생각해 온 자식들이란, 결국 부모에게 토끼같은 자식들의 눈빛이라는 칼날을 들이밀며 그들을 혼탁한 세상으로 빠트린 무의식적인 가해자였을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들의 가벼운 말 한마디는 얼마나 아픈 비수가 되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