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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판은 점입가경으로 접어들어 이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대학 동기 희찬이와 5판 3승제로 바둑을 두고 있다. 희찬이는 강력한 맞수이자 오랜 라이벌이다.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바둑도 체력이 따라야 한다. 보통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맞수와의 대국이라면 더 그렇다.
지금부터 10년 전쯤의 일이다. 짜릿하고 강렬한 승부의 세계에 빠져 몇 년 동안 친구와 맞바둑을 두며 바둑 삼매경에 빠져 지냈다.
돌이켜보면 나와 바둑의 인연은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세 살 무렵이었다. 일곱 살 터울의 작은형이 바둑을 배워 동네 형들과 두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 형은 내게 바둑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나는 단수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때는 ‘아다리’라는 일본식 표현을 썼다.
어느 날 형과 마주 앉았다. 1선에 놓인 내 돌을 형이 단수했다. 나는 도망갔다. 그러자 또 단수했다. 도망가면 또 단수하고, 끝까지 몰리면 결국 돌은 죽었다. 형은 끈질기게 따라붙었고 나는 그저 도망치기에 바빴다.
사실 바둑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형이 내 돌을 모조리 잡아버리자 어린 나는 놀라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존심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것이 내 바둑 입문의 기억이다. 당시 작은형의 기력은 아마 9급쯤 되었을 것이고, 바둑판에 처음 앉은 나는 18급쯤 되었을 것이다.
그 후 동네 골목길에서 잡동사니를 싣고 다니며 파는 리어카에서 우연히 조남철 국수의 《위기개론(圍棋槪論)》이라는 헌책을 발견했다. 싼값에 사 들고 와 들뜬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책에는 기본 행마와 포석, 맥, 화점 정석 등 바둑의 기본기가 촘촘하게 담겨 있었다. 책을 펼쳐 놓고 바둑판에 하나씩 돌을 놓아보며 정석을 익혔다. 그러고 나니 어느 순간 동네에서는 상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기력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정석을 배운다고 바둑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책에서 배운 대로 두는데 상대가 정석을 무시하고 엉뚱하게 비틀어 놓으면 당황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하나씩 부딪히며 알게 되었다. 정석은 정답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수많은 대국을 통해 다듬어진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그러던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다. 열여섯 살 때였다.
그 무렵 동네 지인이 기원을 개업하면서 나에게 기원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기원에 출근해 청소하고 손님을 맞고 돈을 받는 등 주인을 대신해 기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월급은 당시 사천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내 기력은 4급 정도였다. 동네 형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었다.
어느 날 사십 대쯤 되어 보이는 손님이 기원에 찾아왔다. 함께 온 사람이 그를 소개했다.
“이분은 김ㅇㅇ 사범님인데, 한국기원 입단대회에서 몇 차례 3등을 하셨지만 입단하지 못한 분입니다. 재야의 고수입니다.”
당시에는 전국의 아마추어 고수들이 입단대회에 참가해 상위 두 명이 프로기사로 입단하던 시절이었다. 프로 초단이 되어 기사로 활동할 수 있는 문턱 바로 앞에서 번번이 3등을 했으니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고수가 기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의 바둑 좀 둔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와 도전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정말 고수였다. 누구도 김 사범님을 이기지 못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기원 원장님이 예우 차원에서 점심을 대접하곤 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김 사범님은 내기 바둑을 두며 생계를 이어가는 듯했다.
나는 그분이 가끔 던져주는 짧은 훈수와 옆에서 고수들의 대국을 지켜보며 기력을 쌓았다. 고수들의 손끝에서 돌 하나가 놓일 때마다 그 수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어느덧 1급 정도의 기력이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아마추어 단(段) 제도가 없었다. 아마추어는 18급에서 1급까지 있었고, 1급도 실력에 따라 강1급·중1급·하1급으로 나누기도 했다. 김ㅇㅇ 사범님은 강1급 가운데서도 최정상급이었다.
기원에서 생활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틈틈이 책을 붙잡고 공부한 끝에 고졸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일 년 뒤 대학에 입학하면서 기원 생활을 그만두었다.
대학에 입학한 어느 날 학생 휴게실에 들렀다. 친구들이 몰려와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수학과 친구가 바둑 아마 3단이라는데, 너 한번 둬봐라.”
친구들은 경쟁을 부추겼다. 이미 그 친구는 바둑 3단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우리는 친구들의 응원과 관심 속에서 휴게실에 바둑판을 펼쳤다. 그리고 내가 두 판을 연이어 이겼다.
그날 이후 나는 우리 대학의 새로운 바둑 강자로 소문이 났다. 소문이 교수님들에게까지 들어갔는지 어느 교수님은 나를 연구실로 불러 한판 두자고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기원에서 프로급 아마추어 고수들 틈에 섞여 갈고 닦은 실력이 그제야 빛을 발하는 듯했다.
졸업 후 포천의 U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도 바둑을 잘 둔다는 소문이 났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읍내에 바둑을 아주 잘 두는 분이 있는데 아마 3단증도 있다네. 같이 가서 한번 둬보게.”
그분과 대국을 했고, 역시 이겼다. 그때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아마 3단 대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 바둑 친구도 줄었고, 나 역시 새로운 관심사들이 생겼다. 바둑판을 펴는 일은 점점 뜸해져 일 년에 한두 번 둘까 말까 했다.
몇십 년이 흘렀다.
2007년, 교장으로 승진하여 이천시의 J교로 옮겼다. 집이 멀어 출퇴근이 어려웠기에 학교 관사에서 지냈다. 퇴근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무료했다.
그때 인터넷 바둑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검색하다 사이버오로에 회원 가입을 했다. 퇴근하면 저녁마다 PC 앞에 앉았다. 처음에는 아마 4단으로 등록했다. 대국을 거듭할수록 승률이 올라갔고 5단으로 승단했다.
사이버 바둑은 승률에 따라 단이 오르내리는 시스템이었다. 승률이 좋으면 승단하고 나쁘면 강등된다. 상대가 누구든 한 판 한 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5단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들을 만났다. 이겼다 졌다를 반복하다 승률이 좋아지니 결국 6단으로 승단했다.
그후 구리시로 전근하면서 다시 바둑을 둘 여유를 잃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대한바둑협회 바둑연맹 관계자의 협조로 심사를 거쳐 아마 5단 자격증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저 명예로운 자격증 하나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 대한바둑협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정식으로 아마 5단증을 신청했다. 그렇게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 두 기관의 아마 5단 자격증을 갖게 되었다.
2015년 정년퇴직을 했다.
퇴직 후 후배가 바둑 강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공인 아마 5단이니 자격도 충분했다. 무료한 백수생활을 보내느니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바둑을 가르쳐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두세 학교에 바둑 강사로 출강했다. 바쁘고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바둑판을 마주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다시 생활의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사 년 후 청소년수련관장으로, 이어서 재단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바둑은 다시 내 삶의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바둑은 참 오래 내 곁에 있었다.
열세 살 무렵 처음 바둑판 앞에 앉은 뒤, 열여섯 살에는 기원에서 고수들의 대국을 지켜보았고, 대학에서는 바둑 강자로 이름을 알렸다. 교사가 되어서는 아마 3단 대접을 받았고, 인터넷 바둑에서는 6단까지 올랐다. 퇴직 후에는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은 문학에 빠져 바둑판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바둑은 어느새 60년 가까이 내 삶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바둑판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바둑이 단순한 놀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둑에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는 열 가지 격언이 있다. 수백 년 동안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새겨온 말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둑판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도 닿아 있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오히려 이기지 못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판을 넓게 보라는 뜻이다.
입계의완(入界宜緩)
상대의 세력에 들어갈 때는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고 신중해야 한다.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허점을 살펴야 한다.
기자쟁선(棄子爭先)
몇 점의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사소취대(捨小就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할 줄 알아야 한다.
봉위수기(逢危須棄)
위험에 처한 돌은 무조건 살리려 하지 말고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신물경속(愼勿輕速)
쉽게 판단하고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동수상응(動須相應)
돌 하나를 움직일 때도 주변의 돌과 호응해야 한다.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의 세력이 강한 곳에서는 먼저 자신을 지켜야 한다.
세고취화(勢孤取和)
세력이 약할 때는 무리하게 싸우지 말고 화합과 타협을 택해야 한다.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승리를 탐하지 말고, 자신의 허점을 살피며, 때로는 버릴 줄 알고, 강한 곳에서는 스스로를 지키며, 불리할 때는 타협할 줄 알라는 이야기다.
바둑판 위의 돌들이 서로 부딪히며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같지만, 돌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와 만난다.
바둑에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자충수’도 있다. 자기 돌의 활로를 스스로 막아 상대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수다.
하수일수록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자충수를 두기 쉽다. 반면 고수는 판 전체의 흐름을 살피기 때문에 자신이 놓을 한 수가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한다.
그래서 자충수는 바둑판 밖에서도 쓰인다. 스스로 한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일컫는다. ‘자업자득’과 비슷한 뜻이다.
세상일도 바둑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달리다 보면 자신이 놓은 한 수가 훗날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당장의 승리만 생각하다가 판 전체를 잃을 수도 있다.
바둑에는 ‘정석(定石)’도 있다.
정석은 바둑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공격과 수비의 좋은 방법으로 인정된 일정한 수순이다. 바둑을 배우면 기본기를 익힌 뒤 정석을 배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위기개론》을 통해 정석을 처음 접했다. 책에서 배운 대로 두면 상대도 그렇게 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가 정석을 무시하고 엉뚱한 곳에 돌을 놓으면 당황했다.
그러나 바둑을 오래 두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정석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답안지가 아니라 수많은 대국을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기준이라는 것을. 정석을 알아야 정석에서 벗어날 때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바둑에는 정석 외에도 행마(行馬), 사활(死活), 맥, 끝내기 등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바둑의 흐름도 삶과 닮았다.
처음에는 포석을 한다. 내 돌을 중요한 자리에 배치하며 앞으로의 판을 준비한다. 전투를 앞두고 병력을 배치하는 것과 같다.
포석이 끝나면 중반전이다. 서로 세력을 넓히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부딪힌다. 많은 승부가 이 과정에서 갈린다.
그리고 종반전인 끝내기로 들어간다. 큰 싸움은 끝났지만 한 집이라도 더 얻기 위해 마지막까지 수를 읽는다.
모든 돌을 다 놓고 나면 계가를 한다. 서로 확보한 집을 세어 승부를 가른다. 결국 한 집 차이로 웃고 우는 것이 바둑이다.
우리 인생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포석을 하고, 한창때에는 세상과 부딪히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생의 끝내기에 들어서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내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남겼는지 헤아려보게 된다.
정석대로 사는 삶은 원칙을 지키는 삶일 것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신뢰도 흔들린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정석대로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문화와 예술에서는 정석의 틀을 벗어날 때 자기만의 개성과 창의성이 살아나기도 한다. 바둑에서도 때로는 정석을 비껴가는 수가 새로운 국면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석을 모르는 사람이 정석을 깨뜨리는 것과 정석을 충분히 익힌 사람이 의도적으로 정석을 벗어나는 것은 다르다.
삶도 마찬가지다.
원칙을 알고 지키는 삶은 비교적 무난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세상에는 편법도 있고, 때로는 내가 아무리 원칙을 지켜도 손해를 보는 일도 있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바둑처럼 수순대로만 풀리지는 않는다.
어느 비 오는 날 오후에 하릴없이 책장을 뒤지다가 먼지가 묻고 빛바랜 바둑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책장을 넘기니 어린 시절 바둑판 앞에 앉아 있던 내가 떠오르고, 기원에서 고수들의 대국을 지켜보던 열여섯 살의 나도 보인다.
인생은 이미 많은 수를 두었다.
이제는 승패보다 지나온 수들을 천천히 복기해 볼 때인지도 모른다.
바둑판 위에서는 돌 하나를 놓는 데도 깊이 생각하면서, 정작 인생에서는 너무 쉽게 돌을 놓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도 아직 판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한 수를 놓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신의 삶을 완전히 계가(計家)할 수 없으니까.

첫댓글 바둑의 수는 정말 신묘막측 한 듯 합니다. 세상살이의 이치와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선배님의 마지막 수는 늘 지혜로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