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10월 28일 월요일 ☆… 우리 왕초누님 문병기-서울 망우동 중랑노인전문요양원
☆… 오후, <동인>에서『中庸』을 읽었다.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 無入而不自得焉 (군자는 그 자리를 바탕으로 하여 행하고 그 밖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귀에 처하여서는 부귀한 처지에서 행하며, 빈천에 처하여서는 빈천한 처지에서 행하며, 이적[夷狄, 오랑캐]에 처하여서는 이적의 처지에서 행하며, 환난에 처하여서는 환난을 당한 처지에서 행하니, 군자는 어디를 들어가더라도 스스로 하지 못함이 없다.)『中庸』제14장’
☆… 오후 4시 30분, 망우동에 있는 <북부노인요양병원>으로 큰누님 문병을 갔다. 망각성(忘却性) 치매(癡呆), 누님은 여전히 가만히 누워계신다. “나 왔어요, 오상수~” 하고 목소리를 높였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또 그림처럼 누워 있다. 이미 수척한 팔다리는 더욱 앙상하고, 온몸 또한 기력이 많이 소진한 상태 그대로다. 손을 잡아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손이 차게 느껴졌다. 울컥 목이 메었다. 지난 9월에 왔을 때 내 손을 잡고, 몇 번이고 팔을 끌어당기어서, 안아드리기까지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눈빛도 조금 흐려진 듯하나 나를 알아보기는 하는 것 같았다. 귀가 어두워 “나, 상수, 오상수~, 오 선생” 하고 소리룰 높여 불렀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오후 5시가 되어서 식사 시간이다. 요양사가 연결한 호스를 통해서 투입하는 죽을 드신다. 잠깐 사이에 죽주머니가 비었다.
☆… 그런데 오늘따라 몹시 팔을 긁으신다. 팔을 걷어보니 몇 군데 반점이 보인다. 몹시 가려워하는 것 같아서 내가 부드럽게 문지르면서 긁어주었더니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웃음을 띠며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 긁어주면서 한참을 말을 걸고 나를 확인시켰더니 때때로 고개를 끄덕거리신다. 마침 요양사가 병실에 들어와서 물어봤더니 환절기에 노인들이 많이 가려워하신다는 것이다. 피부가 건조해서 생기는 소양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로션을 가지고 와서 바르고 문질러 주신다. 여기 요양사분들은 ‘입원해 있는 어르신들’을 아주 친절하게 대하여 참 고맙다. 특히 오늘 누님을 돌보시는 장영순 요양사의 친절한 말씨와 정성어린 손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말을 전혀 하지 않은지 물어 보았더니, 때에 따라서 “아파!”, “싫어!” 하는 말은 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맞은편 병상에 계신 한 노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자서 같은 말을 계속 읊조리고 있는데, 주로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보고 싶어!” 하며 가늘고 구성진 목소리로 반복하신다. 아아, 저 고령의 나이에도 어머니가 간절하게 그립구나. 어머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시니,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눈물겹게 그리운 분이다. 그 주문 같은 독백을 들으면서 이제 동안(童顔)이 되어 누워있는 누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립고 그리운 우리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 어머니의 맏배인 누님을 바라보며, 지난주에 하늘나라로 간 산양누님을 생각하며 허허로운 무상감에 젖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산양누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내가 누님에게 나를 확인시켜 드리기 위해 큰소리로 말한 “나, 오상수, 오상수 왔어”라는 말을 들은, 맞은 편 타령노인께서 “오상수가 누구냐, 오상수가 누구냐” 하고 노래를 한다. 의식이 오락가락하시는 노인께서 머릿속에 와 박힌 말을 되새김하여, 리드미컬하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었다. 창밖은 누렇게 옷을 갈아입은 가을이 무르익고, 남향받이 맞은 편 망우리 뒷산에도 서서히 추색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 요양원을 나서니 길가에 즐비한 가로수도 울긋불긋 가을 물이 들어 계절의 그윽한 정취가 밀물져 왔다. 바람결은 선선하고 쾌적한 가을이다. 돌아가신 산양누님과 병상의 큰누님,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떠나신 어머니를 생각하다보니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시가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이룰 수 없는 소망이지만 ‘엄마’를 부르고 ‘누나’를 부르는 가사가 그냥 좋다. 말 그대로 아늑하고 푸근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머니는 1963년, 내 문경중학교 3학년 초겨울(음력 시월 스무여드레)에 돌아가셨으니 올해 별세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 어머니!! 큰누님 저렇게 누워계시고, 둘째인 산양누님 돌아가시고, 셋째인 양산누님도 몸이 많이 아프시다고 하니 이 좋은 가을이 너무나 쓸쓸하고 허허롭다.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신라의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의 노랫말이 가슴 아프게 파고든다. ‘가을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이…’ 어머니의 같은 태(胎)자리에서 소생한 혈육들이 이미 80고령을 넘어 저렇게 많이 아프시고 또 급기야 그 중의 한 분이 이 가을을 저버리고 가셨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던 누님은 세 분, 왕초 큰누님 오후남, 둘째가 문경의 산양누님 오남주, 셋째가 양산누님 오남희 여사였다. 이름에 모두 '사내 남(男)' 자가 들어가 있다. 아들을 바라는 거족적인 열망을 담은 이름들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사연이다.
☆… 10년 전에 돌아가신 부산의 넷째누님을 비롯하여, 우리 어머니는 모두 딸 일곱을 낳으시고 마흔 셋의 나이에 나를 낳으셨으니, 나는 우리 어머니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만득자이다. 그야말로 나는 우리 어머니의 필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머니와 평생의 심고(心苦)를 함께한 누님들이기에 나를 대하는 누님들은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내 비록 예순의 중반을 넘긴 나이지만,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는 ‘조선에 (다시)없는 아들’이요, 누님들에게는 ‘금쪽같은 우리 동생’이다. 그래서 나 또한 그 분들의 마음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에 늘 마음이 애틋하고, 일찍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정(情)을 누님들에게서 구하며 살아 왔다. …♣ <끝>
첫댓글 사무치는 정...그리움..외로움에 마니 힘드시겠습니다 힘내셔요~!!!
힘내시고 부디 건강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