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할 충분한 역사적·성경적 배경이 있습니다. 다만 빌립이 실제로 사울에게 순교당할 것을 두려워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당시 상황을 바탕으로 한 추론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스데반의 순교를 목격한 빌립의 심정
사도행전 7장 58절과 8장 1절을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사울은 그 죽임을 마땅하게 여겼으며, 사람들은 사울의 발 앞에 겉옷을 두었습니다.
빌립은 스데반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로 세워진 인물이었습니다(행 6:5). 따라서 두 사람은 같은 공동체에서 봉사했던 동역자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빌립에게 단순히 한 동료의 죽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자신 역시 박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 사울의 박해는 실제로 빌립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5절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고, 사도들을 제외한 신자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빌립도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박해가 빌립의 복음 사역을 중단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예루살렘 밖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빌립은 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였습니다.
3. 그런데 훗날 빌립은 바울을 자기 집에 영접합니다
사도행전 21장 8절
세월이 흐른 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사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빌립의 집에 머뭅니다.
이 장면을 스데반의 순교와 연결하면 놀라운 대조가 나타납니다.
과거의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빌립은 스데반과 함께 일했던 동역자였습니다.
훗날 바울은 빌립의 집에서 환대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과거의 사건을 함께 회상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독자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스데반을 죽음으로 몰아간 박해자의 동역자가, 훗날 그 박해자의 회심 이후 그를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중심에는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목격한 빌립에게 사울은 두려운 박해자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훗날 빌립의 집에 찾아온 바울은 더 이상 과거의 사울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놀라운 역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박해자를 전도자로 변화시키실 뿐 아니라, 그 박해로 상처받았을 수 있는 사람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실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에서 시작해 빌립의 전도와 바울의 회심을 거쳐 가이사랴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한 사람의 회심이 개인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관계까지 새롭게 할 수 있음을 묵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