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는 것은 영혼의 근육을 만드는 일이라는 수업내용과 자신의 결핍을 잘 알고 그것을 발전시킨다면 자신만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좋았습니다. 고전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읽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읽는 것과 제대로 읽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 수업을 통해 고전을 제대로 읽고 싶습니다.
수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려운 내용을 영상자료와 유인물들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강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읽고나서.
윤동주 시의 출발이 동시의 세계에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저 또한 입시를 위해 소설을 배우기 이전에 동시를 혼자 썼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 읽었던 시 또한 문삼석 시인의 동시 도토리 모자였습니다. 동시의 세계에서부터 시작된 윤동주 시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윤동주 시인이 쓰고 있는 은유가 그다지 어려운 암시를 담고 있지 않음에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감동을 주는 것이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어떤 꾸밈말이 없음에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해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의 예시로 헤밍웨이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헤밍웨이의 친구들은 10 단어 이하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할 소설을 쓸 수 있냐며 헤밍웨이에게 제안했고, 거기에 대해 헤밍웨이가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고 합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직역하면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은 적 없음입니다. 이 한 문장은 한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윤동주의 동시는 강력함 힘을 가지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5장의 글에서는 수능입시 문제로만 보던 별 헤는 밤에 대해 왜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되었는지 배경들을 알게 되어 다시 한 번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며 수업 중 말씀하신.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알아야 하고. 작가 한명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삶이 달라진다는 강의내용이 다시 한 번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타자를 사랑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있는 윤동주의 태도는, 무조건적인 일치를 꿈꾸는 레비나스의 윤리적 존재론과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 타자의 아픔을 쉽게 이해하지 않고 아픔을 공유하는 윤동주의 타자인식에 감명 받았습니다.
윤동주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항상 자신의 시에 그 시를 쓴 날짜를 적던 윤동주 시인을 떠올렸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쓰인 날짜는 그 시가 완성된 날짜가 아니라. 그 시가 완성되고, 독자가 그 시를 읽고 난후의 달라진 삶의 출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동시와 시가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3. 동영상을 보고 감상문 10행 이상 남기기
동영상을 보며서 윤동주를 알고 삶이 바뀌었다고 하는 주부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10여 년간 모은 윤동주의 교토시절, 특고자료 그리고 재판자료들을 보니 그녀가 얼마만큼 윤동주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인인 자신이 생가를 방문하고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하며 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큰 돌에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처음 시집을 사서 읽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샀던 시는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과 이성복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였습니다. 고등학교 쉬는 시간마다 시속에 한문을 찾아 시집에 적고 있으니, “그 시간에 언어문제나 하나 더 풀어, 문예창작과 간다는 애가 언어 점수가 이게 뭐야” 라고 했던 담임선생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럼 1등급을 맞으면시를 잘 쓸 수 있나요? 물어보려다가 말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시가 나온 수능문제를 틀렸다는 시인의 인터뷰도 생각났습니다. 윤동주의 시 〈소년〉을 서툴게 발음하며 낭송하는 일본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국에서의 시의 위치를 생각해보았고 또 제가 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깊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서툰 한국어로 낭송을 해서 더욱 시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윤동주는 내면에서 그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시대도 언어의 벽도 넘어 설 수 있었다는 일본인의 인터뷰를 보며 문학이란 무엇이며 문학과 문학이 아닌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윤동주 시인의 시 중 좋아하는 시 1편을 올린 후 10행 이상의 감상문 쓰기
정본 윤동주 전집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그 전집에서 제가 가장 슬프다고 생각한 시입니다. (수정)
애기의 새벽
우리 집에는
닭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 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우리 집에는
시계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 달라 보채어
새벽이 된다.
1938년 (추정)
원래 해바라기 얼굴로 감상평을 썼었는데 그것보다 이 시가 더 마음에 와닿아서 다시 올립니다. (이 감상평은 개인적인 제 생각입니다.)
김응교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수업때. 교수님께서 예를 들으셨는데 (완벽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가난한 사람이 응. 나 가난해서 놀러못가. 돈이 없거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시에서 표면적인 내용은 새벽을 알려주는 닭과 시계가 없지만 우는 애기가 젖달라고 보채어 새벽이된다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닭이 없단다 가 아니라 '닭도' 없단다 '시계도' 없단다 라는 구절 때문에 많이 가난한 환경속에서 아기를 키우는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닭도 없단다 , 시계도 없단다 라는 구절만이 바뀔 뿐 나머지 시의 구절은 똑같다는 점에서 작가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혼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수업에 이론을 배울 때 시는 가장 사적인 문학이지만 그 사적인 문학안에 그 시대의 아픔을 알 수 있다. 라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다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 애기의 새벽이라는 시만을 두고 생각했을때.. 저는 자꾸만 가난해서 밥을 제대로 못먹어 젖이 나오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때는 너무 가난하여 애를 낳고도 제대로 몸조리를 못하는 여자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젖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고. 우는 아기를 달래지 못하는 어머니의 가슴이 자꾸 생각납니다. 그늘에서 읽었던 윤동주는 타자를 사랑하지만 거리를 두고 무조건적인 일치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번 떠오르는 시였습니다. 이 시에는 가난하다. 슬프다. 불쌍하다. 라는 단어와 감정들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감정을 느끼는 것도 저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윤동주가 무조건적인 일치를 바라지 않고 멀리서 아픔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시안에서 어떠한 감정을 받는 것은 독자의 영역일 뿐이고. 그 독자의 영역을 지켜주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댓글 한 문장이 한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는 부분에 정말 공감해용
미쳤네요?너무 잘썼네요?왜 저한테 칭찬하고 그러세요? 자신의 입시 경험과 함께 윤동주 시인의 글들을 읽고 다원적인 시각으로 글을 쓰신 것 같아 참 놀랍습니다. 역시 최선덕 학우는 늘 저에게 귀감이 됩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한 정신은 글을 꾸밈 없게 만들고, 나아가 그런 글은 꾸밈 없이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사람은 시험에서 멀어질 수록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ㅋㅋ)
마지막 문단에 담긴 시선이 예뻐서 좋네요.
'판매 중 : 어린이용 신발, 미사용 제품.' 이 문구는 단순한 '슬픔'을 단순히 정의하는 게 아니라, 그 문구 속의 서사성으로 상상력을 자극시켜 더욱 더 큰 영향력을 전달하죠. 저도 좋아하는 문구인데, 여기에도 아시는 분이 있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한난계라는 시에도 해바라기가 나옵니다 윤동주에게 있어서 여름 또는 밝은 날을 뜻하는 말이었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대해석이 아니었으면.
아! 그렇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였습니다. 글..수정중이였는데ㅜ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당
한난계라는 시도 읽어보고
해바라기 얼굴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