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연의 주인공은 구자범 단장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경기도 문화의 전당은 연주회장을 찾기 어려운 문화 소외계층을 위해 ‘찾아가는 공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단을 비롯해 국악단과 무용단, 그리고 도립극단이 연간 10회 가량 교도소나 소년원, 군부대나 장애복지시설 등을 찾아가 특별한 무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경기필은 9일 의정부교도소, 10일 화성교도소에 이어 지난 12일에 이곳 의왕소년원에 방문했는데요. 진행자가 등장해 인사를 하자 아이들은 “와~~”하고 환호하며 신나합니다. 시커먼 아이들이 어두컴컴하게 몰려 앉아있지 않을까, 막연했던 제 편견이 무너지네요. 기대하는 눈빛으로 공연을 기다리는 아이들,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아이들과 전혀 다름이 없는 모습입니다.
곧 100명에 가까운 단원들이 강당 위 무대에 착석을 하고, 지휘봉을 든 구자범 단장이 무대 중앙에 오르자 이윽고 첫 노래가 시작되었는데요. 익숙한 멜로디, 시네마천국의 메인테마 곡이 흐릅니다. 이날 공연의 제목은 ‘영화음악 콘서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 음악들을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려주는 것이죠. 아직 어린 학생들인데 클래식 공연이라 지루해하지 않을까 했지만 첫 곡부터 친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무대에 집중합니다. 동글동글한 아이들의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는 것만 같아요.
구자범 단장은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일어서 지휘봉을 휘두르기도 하며 멋지게 첫 곡을 연주합니다. 올 초, 23명의 단원을 더 영입하면서 98명의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된 경기필. 그들이 내는 소리가 지휘봉 끝에서 멜로디가 되어 학교 강당에 알프레도와 토토의 소중한 아지트였던 영사실을 옮겨다 놓습니다. 그리고 등장한 알프레도 할아버지와 토토.
도립극단의 단원은 영화음악 콘서트를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인 알프레도와 토토를 연기하며 공연에 재미를 더했는데요.
‘나는 왜 이렇게 멋지지 않은 걸까,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엘레나와 잘될 수 있을까.’
여기 앉아있는 아이들도 아마 똑같을 고민들을 했었겠죠. 제임스 본드처럼, 그리고 슈퍼맨처럼 멋진 존재가 되어, 예쁜 여학생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 그런 평범한 고민들을 하지 않았을까요.
<오페라의 유령>과 <007>의 제임스 본드,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다녀가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러브스토리>, <사랑과 영혼>의 메인타이틀도 감미롭게 흐릅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부르며 국민 연주곡이 된 영화 <미션>의 넬라 판타지아가 강당 안을 가득 메우더니, <타이타닉>이 빠진 바다에 <죠스>도 나타나며 다이나믹한 영화음악들이 연주되기도 했는데요.
“신은 저마다 제 용도에 맞게 사람을 빚었어.”
얼굴을 보기가 힘든 맨 뒷 줄 타악기 연주자. 탬버린을 치다가, 트라이앵글을 연주하는가 하면 심벌즈를 울리며 여러 악기들을 한 번씩 연주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그 단원을 바라보다 알베르토 할아버지의 말처럼, 그리고 저 작은 소리들이, 작은 역할들이 모여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여기 있는 이 소년들에게도 저마다의 가치와 역할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기기도 하더군요.
한 해 동안 이곳을 찾아오는 공연은 5~6번 정도라고 하는데요. 공연 진행을 담당한 법무부 소속 차풍회 계장은 이렇게 외부에서 찾아와 이루어지는 행사가 학교 안에 갇혀 있는 아이들에게 활력을 주고, 그와 더불어 심리적·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보다 많은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무언가 조금 다른 데가 있을까. 문득 궁금해 이어 질문했는데요.
“별로 다르지 않아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죠. 물론 이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들어와 있는 건 맞아요. 그건 부인할 수도 없고,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없죠. 다만 안타까운 건 이 아이들 중 대부분이 부모나 가정, 학교, 사회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아이들이라는 거예요. 조금 더 기다려주고, 한 번 더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잘못된 한 순간 선택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죠.”
이곳의 아이들은 보호 기간이 끝나면 다니던 학교에 복학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기도 하고, 또 취업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는데요. 어린 나이부터 이곳에 와, 낙인처럼 찍혀 버리는 경력에 좌절하지 않을까 염려되었는데 선생님은 사뭇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곳에서 나갈 때는 희망을 가져요.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고 성공할 거라고 다짐도 하고, 저마다 꿈들도 있죠. 다만 문제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변화하는 동안 아이들을 기다리는 세상은 변하지 않거나, 더 나빠져 있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많이 속상하죠.”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오즈의 마법사>의 'Over the rainbow'가 연주됩니다.
도로시가 꿈꾸었던 곳은 무지개 너머 에메랄드빛 나라가 아닌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따뜻한 집이었죠. 이 아이들도 어쩌면 같은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요. 잘못과 실수로 조금은 돌아가는 길을 걷게 된 나를, 한결같이 그리워해주고, 기다려준 이들이 있는 따뜻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꿈 말이죠.
첫댓글 구자범지휘자님의 음악이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관객이 누구든 공연에 임하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신 우리 지휘자님..
건강하시지요?
전로사기자님.
기사를 이리 감동적으로 써주시다니 넙죽 인사하고 싶어지네요.
정말 구지휘자님의 음악성은 누굴 닮은걸까요?
어머님? ㅎㅎㅎ
아니요. 전 장로님(아버님)일거 같으네요.
아버님의 오페라 아리아 반주 맞춰주시느라고 첨엔 피아노연습을 더 열심히 하셨었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버님의 아리아를 언제 함 들어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 좋겠다는 ...ㅋ
혹여 어머님이 서운해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나두 노래 잘하는데 하시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