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색의 비밀은 안토시아닌
그런 꽃들의 색깔은 크게 보아 빨강, 파랑, 노랑, 하양 색으로 대별할 수 있다. 왜, 어째서 저렇게 색이 다 다르단 말인가. 생물의 다양성(多樣性, diversity)라는 것이다. 자 이제, 빨간 장미꽃잎이나 붉은 양배추 잎을 한 움큼 따서 막자사발(mortar)에서 콩콩 찧어 액즙을 쥐어 짜낸다. 그렇게 낸 즙을(물로 희석하여) 시험관에 따르고 거기에 식초 한 방울 떨어뜨려 본다. 대뜸 붉게 변색한다! 다음은 거기에다 양잿물(수산화나트륨, NaOH) 한두 방울을 넣어보자. 문득 푸른색으로 바뀐다! 이런!? 희한한 요술이 따로 없다! 꽃물이 리트머스처럼 산성에서는 붉은색으로, 알칼리성에서는 푸른색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 짙은 색깔의 것이 좋은 지시약(指示藥)이 될 수 있으니, 앞에서 쓴 두 재료 말고도 포도껍질, 검은콩, 홍차, 버찌, 제비꽃(violets), 철쭉, 나팔꽃, 당근들도 리트머스 대용으로 쓸 수 있다. 꽃물과 잎 즙물의 성질이 리트머스와 다르지 않다는데, 그 속에 과연 어떤 물질이 들었기에 신통방통하게도 이런 변화무쌍한 변덕을 부리는 것일까. 안토시아닌 탓이다.
먼저 리트머스를 본다. 산길을 가면서 큰 나무 밑둥치나 널따란 너럭바위에 둥글납작한 것이, 거무스름하거나 회백색의 버섯 같아 보이는 푸석푸석한 그 무엇이 빽빽하게 또는 띄엄띄엄 붙어있는 것을 본다. 가문 날에는 습기를 잃어서 손을 대면 바싹 부스러질듯하지만, 비나 온 뒤에는 물을 가득 머금어서 생기가 나고 제 색(色)을 낸다. 그것이 지의류(地衣類, lichen)로, 공기오염에 찌든 도시에서는 살지 못하기에 이 식물을 공해(公害)의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생물(指標生物,indicator)’로 삼는다.
그리고 지의류는 특이하게도 조류(藻類, algae)와 균류(菌類, fungi)가 함께 사는 공생식물이다. 조류는 주로 녹조(綠藻)/남조(藍藻)이고 균류는 자낭균(子囊菌)/담자균(擔子菌)이며, 전자는 엽록체를 가지고 있어서 광합성을 하고, 후자는 팡이실(균사)로 서로 뒤엉켜있다. 현미경으로 지의류를 보면 세(떡)층으로 되어 있으니 가운데에 조류를 신주(神主) 모시듯 넣어두고 균류가 겉을 싸서 보호하고 있다. 균류는 균사로 수분이나 거름을 머금어 조류에 그것들을 공급하면 조류는 엽록체로 양분을 만들어 균류에 주니 일러 왈 공생(共生, symbiosis)이다. 이렇기에 지의류는 다른 생물이 살지 못하는 불모지(不毛地)를 앞장서 쳐들어갈 수 있어서 ‘천이(遷移, succession)’의 개척자 노릇을 한다.
실험실에서 쓰는 리트머스는 이끼에서 뽑는다
얼마 전 화산재를 내뿜어냈던 북쪽의 ‘얼음나라’ 아이슬란드에서는 지의류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식욕촉진제로 쓰기도 하고, 빵이나 우유에 넣어 먹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북극의 툰드라(tundra)에 풀 닮은 것이 지천으로 길길이 자라는 것(북극의 유일한 생산자)이 바로 이것들이며 사슴과 순록의 먹이 감이 된다. 결론으로 산(酸)과 염기(鹽基)를 측정하는 리트머스는 지의류인 ‘리트머스이끼’에서 뽑는다! 리트머스이끼 과(科)중 주로 Roccella tinctoria, R. montagnei, Dendrographa leucophoea 들에서 리트머스물감(dyes)을 추출하니, 이것이 올세인(orcein)이란 보라색 물감인데 현미경염색이나 식품색소로도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