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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6차 풍수지리 간산 및 2024년 시산제 안내(2024년 4월 20일 원주지역)
이번 66차 간산은 백두대간에서 분맥(分脈)된 한강기맥(漢江岐脈)이 남서쪽으로 행도(行度)하여 우뚝 솟은 치악산(雉岳山)자락이 일군 국형사(國亨寺) 경내에 소재한 동악단(東岳壇)에서 2024년 시산제(始山祭)를 거행할 예정입니다. 그간 우리 학회에서 행하던 시산제는 매년 2월 말부터 3월 중에 행해졌으나 올해는 총선이 끼어 있어 정치적 잡음 등을 고려하여 늦깎이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곳 동악단에서 행하는 시산제는 갑진년(甲辰年), 청룡(靑龍)의 해를 맞아 동쪽 목(木)과 관련이 많습니다.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우리나라의 산천(山川)은 지금도 진혈대지(眞穴大地)를 품고 있어 적선유덕(積善有德)하고 효성(孝誠)이 지극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맑은 마음, 밝은 눈, 지극한 정성으로 구산(求山) 하면 반드시 참된 대혈(大穴)을 얻을 수가 있지만 아무런 적덕(積德)이나 공덕(功德)이 없는 사람이 허황한 욕심만을 채우려 한다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땅이 지닌 영성(靈性)입니다.
사자소학(四字小學)에 '積善之家 必有餘慶' '不善之家 必有餘殃' 이라 하여, 선행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많지만, 악행을 쌓은 집안이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고 했듯이 하늘은 적선(積善)을 쌓은 사람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풍수에서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터도 반드시 선행(善行)과 적덕을 쌓은 자가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와도 같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방안 풍수와 작대기 풍수란 말이 있습니다. 즉 만 권 서적에 막힘이 없이 논리적 풍수 법리(法理)는 정통해도 막상 산에 오르거나, 산 일을 하고자 하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심장과 손발이 떨리는 지사를 방안풍수라 합니다. 풍수사란 논리가 정연하고, 법리에 능통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사(先師)들과 동행하여 여러 현장을 체험하고 산야를 찾아 목력(目力)을 쌓고 터득해야 개안(開眼)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이론은 박식해도 산안(山眼)이 밝지 못한 지사를 방안 풍수라 합니다.
또 역마살(驛馬殺) 끼가 있어 전국의 음양택을 발이 닿도록 답사하거나 선사들이 용사하는 것을 먼 발치에서 참관하다 보니 터릏 보는 안목이 생겼더라도 막상 실전에 홀로 임하면 응용할 법리(法理)를 몰라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풍수사를 작대기 풍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정을 받는 풍수사가 되는 길은 많은 이론을 섭렵하고 선사들과 산야를 주유(周遊)하며 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2024년 우리 연구회에서 실시하는 시산제에 역사에 관심이 많거나 풍수지리 회원님들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 일시
▶ 2024년 4월 20일(토요일) 오전 08:00 (지방에서 참여하시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최대한 시간을 늦췄습니다)
2. 집결지
▶ 서울 : 양재동 서초구청 맞은편(수협은행 앞)
-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하차하여 1번 출구로 나와 50m 정도 걸어오시면 수협은행 앞 도로에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 출발 및 경유지 예정 시간
양재역(서초구청 맞은편 수협은행 앞, 08:00 출발) → 동천역 환승센터(08:50) → 수원인터체인지(영동방향) → 남원주 IC(11:00) → 원주시 행구동(국형사 경내 동악단 시산제 장소) → 원주시 행구동(운곡 원천석 묘소) → 중식(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이기 묘소) →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김제남 음택) → 귀경
※ 간산에 대해 문의하실 분은 정철화 부회장(010-3745-2357), 문영래 사무국장(010-9853-1357)에게 연락 바랍니다.
3. 답사 안내 및 풍수 해설 : 채영석 회장, 정철화 부회장
4. 2024년 시산제 및 간산 안내(간산은 현지 사정에 따라 장소와 순서등이 바뀔 수 있습니다)
1) 시산제(始山祭) 국형사 동악단 <원주시 행구동 98번지>
산을 관장하고, 산을 수호(守護)하는 신을 산신령(山神靈)이라 한다. 자연계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간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보고 그 생성(生成)이 가능하다고 믿은 원시신앙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산신의 신체(神體)로, 호랑이와 동자를 대동한 신선상(神仙像)으로 나타난다.
산신에게 축원(祝願)하는 일을 산신제, 또는 산제(山祭)라 하는데 요즘에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성껏 제수를 마련하여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데 보통 '시산제' 라 한다. 이번에 치러지는 우리 연구회 시산제는 2024 갑진년(甲辰年) 목(木)의 해를 맞아 치악산이 목신(木神)을 품은 동악단(東岳壇)에서 치룰 예정이다.동악(東岳)이란 조선의 오악단(五岳壇)의 하나로, 치악산의 천년 송림이 울창하게 감싸는 국형사(國亨寺) 경내에 있으며 이 사찰은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 불렀다.
조선 태조(이성계)는 이곳에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해마다 봄, 가을이면 원주, 횡성, 영월, 평창, 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산제를 올렸다. 이로 인해 고문암은 '나라의 만사형통을 기원' 한다는 의미로 '국형사(國亨寺)' 가 되었다.
오악단이 세워진 연유는 왕사(王師)인 무악대사가 계룡산(鷄龍山)에 머물면서 산신(山神)을 현몽(現夢)한 뒤 태조에게 진언하여 우리나라 다섯 군데에 산신단을 세웠다고 한다. 중악(中岳)은 계룡산 신원사에 세웠으며, 동악(東岳)은 치악산 국형사, 서악(西岳)은 황해도 구월산, 남악(南岳)은 지리산 화엄사에, 북악(北岳)은 묘향산에 세워졌는데 특히 이곳 국형사의 동악단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이곳 동악단의 산신각 좌향이 을좌신향(乙坐辛向)으로 한양을 응시하는 것도 특이하다.
지금도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국태민안과 함께 주민들의 안녕을 고하는 산제 등을 올리는 유서 깊은 곳으로 정착되어 우리 연구회도 회원들을 비롯한 각 가정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고자 이곳 동악단에서 정성을 다하여 산제를 올릴 예정이다.
2) 蜂腰穴로 알려진 운곡 원천석 음택 <원주시 행구동 산37>
치악산(雉岳山) 연맥이 일구는 행구동에 소재한 운곡의 묘소는 친구로 지낸 세 살 터울 위의 무학대사가 소점 한 것으로 전한다. 당시 무학대사가 두 개의 터를 정한 뒤 집안에 벼슬과 부귀(富貴)를 안겨주는 자리와 만대자손(萬代子孫)에게 평화를 주는 자리 중에서 택하라 하자 운곡이 후자를 택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묘소를 조성하였는데 지금도 원씨 문중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곳 묘소는 1971년 묘소가 도굴당했으나 석관(石棺) 등으로 안치된 바람에 광중 까지는 파지 못한 것으로 전한다.
선생의 본관은 원주이고 자(字)는 자정(子正)이며, 호는 운곡(耘谷)이다. 1330년(고려 충숙왕 13)에 종부시령 이란 작은 벼슬아치이던 부친 윤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글 잘 짓기로 소문난 선생은 국자진사(國子進士)를 지냈으며, 조선 3대왕 태종의 스승이기도 하다. 고려가 망할 기미가 보이자 원주의 치악산에 숨어 살면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조선 건국 초기 선비들이 변절하던 시절에 고려조에 대한 절의를 끝까지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운곡은 생전에 시 1,144수를 남겼으며, 그 중 「회고가」가 유명하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五百年)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라 하노라.”
태종은 왕이 되고 세 번이나 스승을 뵙고자 치악산을 찾았으나 그는 몸을 숨기고 만나주지 않았다. 치악산의 태종대는 그때 태종이 원천석을 기다리면서 잠시 쉬던 곳이라 한다.
태종이 그를 찾아간 것은 스승에 대한 예우를 생각한 면도 있었지만 뛰어난 학자를 새 왕조에 받아들임으로써 명분을 얻어 정통성을 확보하려던 수단이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태종은 원천석의 차남인 형을 현감으로 등용하여 다소나마 위안으로 삼았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점지했다는 이곳 무덤을 두고 풍수인들 사이에 설왕설래(說往說來)하면서 논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선생의 묘소에서 기룡혈(騎龍穴)의 일종인 봉요혈(蜂腰穴)에 대한 사실(眞僞) 여부를 조목조목 설명하고자 한다. 이기법(理氣法)으로는 을입수(乙入首)에 8층 을좌신향(乙坐辛向)으로 격침(格針)되고, 금두화각(金頭火脚)의 천강(天罡)의 증적(證迹)을 보이는 전순(氈脣) 아래 분수척(分水脊)에서 양파(兩破)로 추리하는 기룡처(騎龍處) 파구처(破口處)는 좌수(左水) 경파(庚破)와 우수(右水) 해파(亥破)로 측정된다.
묘소 전방 용맥 끝 용진처(龍盡處)에는 그의 부인 묘가 오랫동안 방치하다시피 관리되다 근래에 산뜻한 모습으로 단장되었으나 풍수적 가치는 적다.
3) 玉女端粧形의 이기 음택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산 43-1번지 능골>
이기(1522~1600)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字)는 가의(可依)이며, 호는 송와(松窩), 시호는 장정(莊貞)이다. 1546년(명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55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삼사 등의 여러 관직과 강원도 관찰사, 양주목사 등을 거쳐 예조판서,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578년 양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1583년(선조 16)에 대사헌이 되어 사헌부 관인을 이끌고 이이(李珥)를 탄핵했다가 장흥부사로 좌천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순화군(順和君)을 수행하여 고향인 강원도에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주전론을 주장한 북인의 입장에서 유성룡(柳成龍)의 주화론을 공격하였으며 1594년에는 정철(鄭澈)이 최영경(崔永慶)을 무고하게 죽인 일을 공격하였다.
대사헌 시절에는 말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 타고 가던 말이 거리에서 주저앉은 일이 있었는데, 그 후로 민간에서 키우던 말이 주저앉으면 사람들이 대사헌의 말 이라 하면서 청렴함을 칭송하였다. 1603년에 청백리에 뽑혔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이곳 묘소는 완벽한 장풍국(藏風局)의 국세(局勢)를 이루는 가운데 머리가 둥근 탐랑체(貪狼體)의 주봉(主峰)에서 낙맥(落脈)하는 주룡(主龍)의 기세가 활발하다. 입수처에서 살짝 고개를 쳐들고 비룡(飛龍)의 모습으로 올라와 당판을 일구고 옥녀단장형(玉女端粧形)이란 형국명을 얻었다. 풍수에서 말하는 옥녀(玉女)란 천상(天上)의 여인으로 절세미인(絶世美人)과 함께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주봉(主峰)은 머리가 둥근 귀인형(貴人形)과 함께 주변에 옥녀가 머리를 빗는 빗사 등이 있어야 한다. 또 화장대나 장롱, 분갑 등의 사격을 갖추어야 하고, 옥녀가 목욕하는 담(潭)이나 연못 등이 구비되어야 좋다. 과연 이곳 터가 옥녀가 기거하는 합당한 형세를 구비했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기를 바란다.
이기법(理氣法)으로는 8층 해좌사향(亥坐巳向)에 병파(丙破)로 88향법의 문고소수(文庫消水) 이다.
4) 窩處에 조성된 仁穆大妃 부친 김제남 음택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370-2>
김제남(金悌男. 1562~1613)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字)는 공언(恭彦). 시호(諡號)는 의민(懿愍)이다. 그의 둘째 딸이 선조(宣祖)의 계비(繼妃)인 인목대비(仁穆大妃)가 되면서 연흥부원군에 봉해졌다.
계비가 낳은 영창대군(1606~1614)은 선조의 14번째 아들로 유일한 정비(正妃) 소생으로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선조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절차 등을 축소한 권정례(權停例)의 형식으로 공빈김씨(恭嬪金氏) 소생인 광해군(光海君)을 세자로 책봉하였으나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세자를 바꾸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조가 죽자 소양강에서 시주(詩酒)를 즐기던 서양갑 등 7인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를 들어 그 중심에 영창대군의 외조부인 김제남이 있다는 “칠서(七庶)의 옥” 사건으로 1613년 세 아들과 함께 모두 사사(賜死)되었다. 사사 후 김제남은 경기도 양주군에 묻혔으나 1616년 인목대비의 폐모론(廢母論)이 일면서 무덤에서 다시 나오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다. 그 후 사돈인 달성서씨(達城徐氏) 서동주가 몰래 암장하였다가 인목대비 복위 후 이곳 원주로 이장하였다.
계축옥사(癸丑獄事) 때 8살 나이의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강화부사 정항(鄭沆)에 의해 살해당했으나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관작(官爵)이 복구되었다.
이곳 터를 일구는 용맥은 백두대간에서 서쪽으로 분맥(分脈)된 기맥(岐脈)이 오대산 비로봉을 일구고 남서쪽으로 행도하는 한강기맥(漢江岐脈)으로 횡성군과 양평군에 걸쳐있는 금물산(今勿山, 791m)에서 한 맥이 남서쪽으로 진행하다가 지정면 간현리의 간현봉(386m)을 일구고 여기서 낙맥(落脈)하는 내맥(來脈)이 기복굴곡(起伏屈曲)으로 내려와 김제남의 장남인 김래(金琜, 1576~1613) 묘소 뒤에서 과협(過峽)하여 밋밋한 양룡(陽龍)으로 진행하다가 평지처럼 넓은 와장(窩場)의 터를 점한 음택으로, 섬강 건너편의 목성체(木星體)인 건등산(259.5m)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 터를 와혈(窩穴)로 평(評) 하는 산객(山客)도 있지만 와혈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합당한 조건이 필수적이다.
와혈이란 그 모습이 닭 둥우리, 또는 소쿠리처럼 오목한 모습이 되어 사상(四象)의 태양(太陽)으로 분류한다. 즉 일반적인 음양(陰陽)의 모습으로 따진다면 오목한 음중(陰中)에 볼록한 양처(陽處)를 혈심(穴心)으로 삼으므로 양혈(陽穴)이라 한다.
그 모양은 마치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다 하여 개구혈(開口穴)이라 하고, 손바닥이 위로 젖혀진 앙장(仰掌)이라 하여 장심혈(掌心穴)로 불리기도 한다. 혈을 일구는 주룡은 볼록한 음룡(陰龍)으로 들어와 오목한 와혈(窩穴)의 모습인 음래양수(陰來陽受)가 정형(正形)이다.
그리고 와혈은 도두(到頭)가 분명하고 혈을 감싸는 양사(兩砂)가 현릉각(弦稜角)이나 우각(牛角)처럼 품 안으로 안는 듯한 모습이어야 하며 전체적인 혈의 형상은 오목한 중에 혈심(穴心)이 약간 치솟은 와중미돌(窩中微突)이어야 진혈(眞穴)이 된다. 그리고 와겸혈(窩鉗穴)은 기맥이 약간 깊게 통하므로 유돌혈(乳突穴)보다는 심장(深葬) 해야 한다.
『장경(葬經)』에 [고장어학조자의천(故藏於涸燥者宜淺) 장어탄이자의심(藏於坦夷者宜深)] 이라 하여 “유방처럼 볼록한 유돌혈은 맥이 부상(浮上)하므로 얕게 매장해야 하고, 평탄하거나 오목한 앙장형(仰掌形)이라면 맥이 가라 앉아(下沈) 들어오므로 약간 깊게 매장하라” 하였다.
과연 이곳 터가 와혈의 조건을 구비했는지 여부는 현장에서 판단하시기 바란다. 이기법은 8층 임좌병향(壬坐丙向)이다.
5. 회비(교통비, 중식, 기타 비용 등): 5만원.
- 회비는 당일 사무국장에게 납부.
6. 신청기간 : 일반회원은 4월 15일(월)까지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7. 신청방법 :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반드시 이름과 연락처 등을 이곳 사이트 게시판 아래 댓글을 달아 주셔야 추후 연락이 가능합니다.
Tel)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02-922-0207, 010-6282-9721,
8. 연락처
서울, 경기, 전국 : 정철화 (011-745-2357), 문영래 : (010-9853-1357)
9. 기타 : 산행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복장과 나경패철, 필기도구, 간식 등 (우천 시도 예정대로 간산을 진행할 예정이오니, 비가 오면 우산이나 우의 등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사전답사, 수고 많으셨습니다.
동천역 환승센터에서 타겠습니다.
손정호 선생님 참석, 수협앞 이용합니다
임원들 외 일반 회뭔들은 필히 댓글을 달아 주시키 바랍니다.
참석 합니다 박종남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수협은행 앞에서 출발합니다.
저 예병린은 개인용무가 바빠서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잘 다녀 오세요
박기현고문님, 유도상위원님,
서민경위원님, 홍강호위원님참석합니다.
하태주 위원 참석합니다.
운영위원들 께서는 우리 학회 1년 행사중 중한 시산제 행사 이오니 가급적 참석을 요합니다.
김행기 정암풍수 회장님 외 1명
부산 지부장외 1명 참가합니다.
(합2명, 원주 현지합류)
[긴급 공지]
*2024.4.20일 시산제 및 간산 취소*
우리 연구회 4.20일 예정된 원주지역 시산제 및 간산행사는 많은 비 예보로 인해 취소하오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추후 우리 학회 간산 또는 대풍련 합동 간산일정이 잡히면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4.20일 시산제 및 간산행사는 취소되었슴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ㅡ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장 올림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