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김경희
여학교 시절 방학 때가 되면 읍내에 공부하던 짐 꾸러미를 챙겨 분둑골을 향한다.
겨울방학의 풍광은 여전하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을 앞 큰 저수지에 썰매를 타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린아이들은 엉거주춤 서툰 걸음으로 빙판을 내딛나 하면 좀 익숙한 큰아이들은 노련한 자세로 쌩쌩 소리가 날정도로 속도를 내어 “쩡쩡” 얼음 소리가 온 동네 진동을 한다.
아침이면 아랫목에서 일어나기 싫어 늦잠을 자고 싶어 버텨 보지만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는 자명종 시계보다 더 크고 정확하게 들려온다. 못 들은 척 하고 숨죽여 누워 있으면 부싯갱이로 방문을 두드리며 나를 깨우는 소리에 견딜 수가 없다. 눈을 비비며 신발을 질질 끌고 헛간에 준비된 작두와 짚단이 나를 기다린다. 입이 뽀록나온 내 모습 을 힐금힐금 쳐다보며 "이년 또 주둥이가 댓 발이나 나왔다." 여물을 썰며 할아버지와 나는 이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따신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 씌고 읽었던 책 중 연애소설이 그 당시 필독처럼 읽은 “박계형 작 머무르고 싶은 순간”여학생 사이에 은밀히 알려진 책이다.
아침부터 마실 나온 친구들과 모여 연애를 꿈꾸며 월간지 뒷장에 펜팔 란을 뒤적거리며 각자가 원하는 조건의 남학생한테 편지를 보내며 누가 빨리 답이 오는지 내기를 했다.
빨간 자전거를 탄 우체부 아저씨가 오실 시간과 소리는 변함이 없다. 제동장치 당기는 소리와 동시에 양철 대문을 두드리며 " 연애편지요" 라는 농담 섞인 목소리에 또래들은 서로 자기 편지라고 뛰어 나가지만 편지의 주인공은 봉자였다.
그날 봉자는 우리들의 부러움과 긴 장속에 회답을 씌느라고 연습장에다 밤을 새워 근사한
문장력을 동원해 우표를 붙여 보냈다고 자랑을 했다.
며칠 후.
어느 날 분둑골에 큰 사건이 터졌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시골이라 낯선 사람의 방문은 누구나가 다 알 수 있다. 해 질 녘 군청색 잠바를 입은 남자가 마을 앞을 서성이며 "봉자를 만나려 왔다고 했다. 얼마 전 펜팔의 주인공 강원도 원주에서 온 고3졸업반 남학생 이였다.
자그마한 동네에 낯선 청년의 방문 소문이 순식간에 확산되고 그 남자는 봉자 아버지가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며 "이놈 네가 군인이가 학생이가" 하며 분을 못 삭여 부르르 떨었다. 봉자 아버지의 반응에 그 남자는 봉자아버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주먹을 불끈 쥐자
온 동네사람들이 뜯어말렸다.
구경꾼들은 웅성거리며 동네가 벌집 쑤신 것처럼 발칵 뒤집혀 원주에서 온 남자는 동네청년들의 안내로 사라졌다. 봉자는 많은 사람의 손가락질과 질타를 받은 충격으로 앓아누웠고 그 후 우리들은 마실 금지령이 내려 집안에서 꼼짝을 못했다. 장난삼아 했던 펜팔이 빗어낸사건은 분둑골 사람들의 영원한 화젯거리가 되어 요즈음도 간혹 친구들을 만나면 그 때 그 시절의 펜팔이야기로 분둑골의 추억을 들추며 깔깔거리며 행복해한다.
=== 치매병동을 다녀와서
김경희
지난해부터 음악 치료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음악치료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기관이나 시설 쪽으로 대상을 찾아 현장을 떠났다.
첫발을 내딛은 곳이 창녕 노인 정신 병원이다.
이곳은 노인성 질병을 앓고 있는 특히 치매환자들이 대부분이라 설명을 듣고
선생님이랑 함께 창녕 정신병원에 도착 할 때는 설렘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막상 도착하여 폐쇄된 공간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다양한 장애를 동반한 치매환자들. 선천적 소아마비. 중추장애.
목숨만 부지하고 움직일 수 없는 분 등……. 한 할머니는 손발이 없이 몸뚱이로 꼬물꼬물 기어 오는 모습이 마치달팽이가 기어 다니는 것을 연상케 하여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 지만 그 할머니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관심인지 아니면 분 냄새 에 대한 호기심인지 나의 얼굴을 비벼댔을 때 순간 못난 내 행동과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이러는 내가 복지사라고? 복지사 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지며 " 넌 언제나 건강하고 안 늙을 것 같아?"
나를 반문하며 그분을 왈칵 끌어안았다.
노래방 기계를 틀고 노인 한분 한분의 병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악기를 나누어 드리며
추억의노래와 함께 젊은 시절로 되돌려 보는 시간들이다.
동기부여를 유발시키기 위해 내가 먼저 손뼉을 치고 흥을 돋구면 이구동성으로
어슬픈몸짓을 하며 입술이 달싹거리기도 한다. 어떤분은 지난 세월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나의 직업에 대한 보람을 느껴진다.
음악 앞에서 다들 한마음이 되어 굳은 표정들은 어느새 환한
웃음꽃이 피어있는 노인들의 볼과 온몸을 비비며 스킨십을 했다.
엄마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아기처럼 나의 치맛자락 을 붙들고 놓지 않아 주체할
수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진져 "할머니 아프지 말아요!" 아기
다루듯 온몸을 쓰다듬으며 한분 한분께 손을 잡고 눈물을 훔치며
인사를 했다.
담당 선생님과 나는 음악 치료를 한 효과와
결과를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담당선생님 왈" 웃는 모습만 보았는데
울보 선생님이라 며 놀려댄다.
불현듯 건강하게 살아주신 친정어머니 생각을 하니 고마워진다.
돌아오는 길목에 우리 집에 와 계시는 어머니가 즐겨 피우는 담배 한 보루와
여름옷 한 벌을 사왔다. 막상 내가 사온 옷가지와 담배를 보시며 "담배는
내 구미에 맞는데 옷은 너무 젊은 사람이 입는 색깔이다. 하시며 마음에 내키지 않아 옷을 살짝 덮어 버린다. 원래 옷을 까다롭게 입어 시는 것은 알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효심은
간데없이 화를 불쑥 내며 이제는 엄마 옷 절대 안 사줄기다" 하며 고함을 버럭 지르니
그래도 너는 효녀다. 하시며 화내는 딸을 다독거리며
내 마음을 읽은 엄마의 모습이 고마웠다. 세상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