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25)
북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羊(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김종삼(1921-1984), 『김종삼 전집』, 나남,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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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하다는 아무 뜻도 값어치도 없다는 말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았습니다. ‘북치는 소년’은 ‘무의미’와 ‘크리스마스’를 연결하여 이야기되는 가장 대표적인 시입니다. 시에서부터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했으니 이런 해석이 가장 유리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무의미하기만 한가는 자꾸 읊조려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용 없는’ 말은 있을 수도 있지만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자꾸 읊조리고 읊조리다 보면 어느새 채워지는 아름다움이 무의미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는 무의미한 아름다움이 다른 누구에게는 추억이고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어디에도 그저 무의미하기만 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무의미하기만 한 시 역시도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을 의식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달력을 쳐다보노라면 시간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에 이어서 떠오르는 생각이 이 무의미, 덧없음입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시간이 그렇게 무의미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아, 말이 그렇다고요. 아, 말이, 그래요, 그렇지요. (20231220)
첫댓글 김종삼 시 <북치는 소년> 잘 읽었습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
저 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