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반 사라이..
카라코람 25일 차(23. 7.17/월) 사마르칸트 ~ 부하라/ 라비하우즈,초르미노르,나디르 디반베기,타키 사라폰 등
조식 후 실크로드의 꽃 부하라(Bukhara)로 이동 / 자유일정. 숙소 : Kamelot Hotel 또는 동급(조식포함)
이른 아침 주변 일대를 걸으면서 일출도 보고 주변 일대를 여유 있게 산책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 08시 부하라로 출발하였다..
너른 목화밭 사이로 난 시원하게 뚫린 포장도로를 따라 거침없이 달려간다. 11시경 사라반 사라이 유적지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곳 사라반 사라이는 크기는 엄청 크지만 앞쪽 입구만 남아 있고 뒤쪽은 복원이 되지 않고 있다. 잠시 사라반 사라이에서 구경을 한 후 부하라로 출발하였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목화는 세계6위라고 하며 미국 남북전쟁 당시 영국에서 목화를 확보하기 위해 이곳 우즈베키스탄의 목화를 구매했다고 한다. 1시간 10분 정도 달린 후 15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했다. 특이하게 이곳은 뽕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둔 것을 볼 수 있으며 11세기 캐라반 사라이 터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규모는 얼마 전에 보았던 것보다 컸지만 앞부분만 복원을 했고 뒷부분은 제대로 복원되어 있지 않았다. 15분 정도 휴식과 유물을 둘러본 후 11:15분 다시 출발하였다. 햇볕이 정말 강하여 바깥에 조금 있었는데 얼굴이 따끔하였다.
사라반 사라이 유적지에 도착하여 잠시 구경을 하며 쉬어 갑니다..
뒤쪽 면은 유적지가 복원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12시 40분 부하라(Bukhara) 시내 호텔( Hotel)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서 컵라면과 맥주 한 컵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불교 사원' 인 비하라(vihara)라는 뜻을 가진 부하라는 고대 중국에서는 안국(安國)이라 불렸던 곳으로 제라프샨(Zeravshan) 강의 하류에 자리 잡고 있다.
숙소 앞의 호수의 분수에서 물이 오리들을 향해 뿜어지고 있고, 오리들도 더위를 피해 조형물 위로 피해 올라가 있습니다..
숙소(우측)가 있는 곳..
부하라(Buxoro)
사마르칸트, 히바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고도 중 하나로, 실크로드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부하라 칸국의 수도로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고대 중앙아시아의 박물관과 같은 도시이다. 아르크 성을 비롯하여 카론 미나렛 등 부하라가 남긴 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다. 고속 열차로 사마르칸트에서 1시간 반 정도 소요되어 접근성도 용이하다. 우즈베키스탄의 현재 수도는 타슈켄트지만 부하라는 9세기 사만 왕조가 처음 수도로 정한 곳이었다. 그리고 사만 왕조를 이어 터키계 왕조인 카라한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세계적인 교역 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때 부하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상업과 수공업이 크게 번성하고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여 당시 세계 문화의 한 축을 이룰 정도였다. 그런데 부하라는 1220년 봄 몽골 칭기즈 칸의 침입을 받았는데 당시 하레즘 왕조의 도시였던 부하라의 지배자는 칭기즈 칸의 지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몽골에 대항해 싸웠다. 그러자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본보기로 칭기즈 칸은 건물을 모조리 부수고 귀중한 유물을 약탈하면서 부하라를 처절하게 파괴하여 폐허만 남게 되었다. 부하라가 다시 제2의 운명을 개척한 건 14세기 티무르 시대였다.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승자 티무르의 열정과 이슬람에 대한 깊은 신앙으로 부하라는 찬란한 이슬람 도시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거대한 성벽과 요새가 만들어지고, 동서남북으로 곧게 도로가 뚫렸고 화려한 왕궁이 지어지고 이슬람 사원과 학교, 병원, 도서관, 공중목욕탕, 주거지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 되어 되살아났다. 전성기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360여 개, 메드레세 113개가 도시를 가득 채웠고 유네스코가 도시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오후 4시 일행 3명이 숙소를 나와 택시(3,000 솜)를 타고 먼저 도착한 곳은 ‘연못 주변’이라는 뜻을 가진 라비 하우즈(Lyabi-khauz = at the pond)였다. 부하라 칸국 시절에는 50개나 되었던 하우즈가 전염병의 원인이 되었기에 구소련 연방 시기에 47개 하우즈가 폐쇄되어 지금은 부하라에 3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연못 주위에는 나디르 디반베기(Nadir Divan Beghi) 마드라사와 나디르 디반베기 하나카(Nadir Divan Beghi Khanaka) 그리고 쿨켈 대시(kukeldash) 마드라사가 자리하고 있다.
오후 4시 일행 3명이 숙소를 나와 택시(3,000 솜)를 타고 먼저 도착한 곳은 ‘연못 주변’이라는 뜻을 가진 라비 하우즈(Lyabi-khauz = at the pond)였다. 부하라 칸국 시절에는 50개나 되었던 하우즈가 전염병의 원인이 되었기에 구소련 연방 시기에 47개 하우즈가 폐쇄되어 지금은 부하라에 3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연못 주위에는 나디르 디반베기(Nadir Divan Beghi) 마드라사와 나디르 디반베기 하나카(Nadir Divan Beghi Khanaka) 그리고 쿨켈 대시(kukeldash) 마드라사가 자리하고 있다.
라비 하우스 연못 오른쪽 광장 숲에 있는 서민들에게 사랑받았던 터키의 이슬람 학자 호자 나스루딘(Hodja Nasruddin) 동상..
라비 하우즈(Lyab-i-Hauz): 하우즈란 연못을 의미한다. 라비 하우즈를 둘러싸고 역사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어, 역사적인 경관이 아름답다. 과거 부하라에는 수 많은 하우즈들을 조성하여 물을 공급하였으나, 전염병의 원인이라 판단되어 대부분 다시 매웠다. 남아있는 많지 않은 하우즈 중 하나이다. 연못 오른쪽 광장 숲에는 서민들에게 사랑받았던 터키의 이슬람 학자 호자 나스루딘(Hodja Nasruddin)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자(Hodja)는 스승을 의미하는 명칭이다.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귀족들을 풍자하고 서민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었던 호자 나스루딘의 상징인 당나귀를 타고 손을 흔드는 동상이다
호자 나스루딘의 상징인 당나귀를 타고 손을 흔드는 동상에서 아이들이 인증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 합니다..
호자 나스루딘 동상 뒤로 나디르 디반베기(Nadir Divan Begi) 마드라사가 자리하고 있다. 지역의 행정 책임자를 디반베기라 불리는데 나디르 디반베기는 카라반 사라이였던 이곳을 1622년 마드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나디르 디반베기(Nadir Divan Beghi)
부하라의 제대로 된 모습을 내일 보기로 하고 오늘은 저녁시사를 하고 마무리하였다.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예술가위 등을 구경할 수 있었으며, 식사는 현지식으로 하였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잠시 휴식을 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예술 가위를 구경할 수 있고..
코켈타시 마드리사..
코켈타시 마드라사(Kukeltash Madrasah): 라비 하우즈 북측에 위치한 마드라사로 1569년에 건립되었다. 당시의 유명한 관리 쿨바바 코켈타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부하라에서 가장 큰 마드라사 중 하나로 160개의 기숙사가 있다. 화려하지 않고 절제된 양식이 특징적이다.
식사를 한 '올드 부하라 레스토랑'..
현지식으로 저녁 식사를 합니다..
호수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합니다..
이곳에서 아이스트림도 사 먹고 잠시 쉰 후 숙소로 들어 가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