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불교의 용어를 구사하여, 득의만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왕국조차 볼 수 없다.
자기를 잊고 있는 조직의 세포이다.
개개의 생명이 조화된 마음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불퇴전의 조직은 확립되어 가는 것이다.
지(智)와 의(意)에 의해 만들어 낸 논쟁에서는,
조직에 왜곡이 생기는 것 이외에 다른 효과는 없다,
불벌(佛罰), 법벌(法罰)은,
자기 자신의 부조화한 검은 상념이 만들어 낸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현상화되어 가는 것으로,
신불의 뜻은 아니다.
만약 불신(不信)에 의해 벌을 준다고 하면,
그것은 신이라고 자칭하는 저급령의 장난임을 알아야만 한다.
올바른 마음으로,
올바른 행위에 근거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불의 빛에 의해 뒤덮여 있기 때문에,
악령이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육체의 지배자인 자기의 마음의 왕국에,
누구도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벌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조화한 상념에 의해, 자기 자신이 불러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마음속에 자신이 만들어 낸 벌을 두려워하는 상념을 가지면,
그 세계로 통해, 현상화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신리가 아닌 이치에 맞지 않는 이론을 믿고,
항상 마음속에서 불안과 격투의 신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과 행위에 대해, 잘 반성해 볼 것이다.
신앙에 대해 공포심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를 잃은 조직의 세포이며,
마음속의 공포를 보다 높여 가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의 왕국의 지혜를 깨닫지 않은 지도자가,
자신의 형편에 맞게 조직을 확장해도,
부조화한 상념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며,
육체적으로도 부조화가 현상화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지도자들이야말로 위선자이며,
지론은, 결론에 있어,
스스로를 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신불의 법칙이다.
마음을 설하는 종교지도자가,
자신의 마음에 평안을 얻지 못하고,
항상 마음이 격투를 하여,
다른 종교를 무지라고 공격하는 것은,
마음의 지도자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위선을 자인하여,
지도를 포기하고, 정법에 따라야만 할 것이다.
또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들 위에 서 있는 자야말로,
사람들에게 복지와 마음의 평안을 주기 위한 행위와 책임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자아아욕의 본성은, 끝내는 자신을 멸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기만과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고,
바르게 사실을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꿰뚫지 않으면,
까마귀 떼의 군중으로 변해,
싸움과 파괴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마음이 없는 부조화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대중이 선동되어,
투쟁과 파괴의 행위가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실행되는 것은,
지옥의 아수라로 통하는 것이다.
양심이 없는 주의와 주장에 의해 폭력을 행사하고,
마치 사회의 승리자로 자부하는, 그런 사람들은 위선자이다.
그들은 물질 경제에 주안점을 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인간을 믿을 수 없는,
물질과 경제의 노예로 변한 무리들이다.
그 안에서는 배신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다.
약자들은 저항할 수 없고,
총검에 의한 폭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까지 속박할 수는 없다.
육체는 속박할 수 있어도,
마음까지는 폭력으로 지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은 반작용의 폭력을 받아,
마음속에는 평안을 얻을 수 없다.
권력의 자리에 붙어 있을 때에도,
그 자리를 타인에게 빼앗기는 것만을 생각하여 마음의 안태는 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사회는, 어두운 상념에 덮여,
수많은 혼란을 경험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유와 평등의 마음이 싹터,
조화에의 상념은 현상화되어 간다.
그것은 인류가 신불의 자식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되었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주 자신에게 묻는 반성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이다.
인류는, 봉건 혹은 독재의 역사를,
오랜 투쟁과 파괴의 업을 변천하여 진화해 왔다.
그리고 신불의 몸인 이 지상계에,
쌓아 올려왔던 일부 인간의 물질 경제의 독점은,
대중의 불평불만을 유발하여,
사회주의적 계급투쟁으로 변화되어 왔다.
하지만 이것도, 마침내는 원시 공산사회에서,
보다 차원이 높은 만민 평등의, 공존공영의 사회로 되어 갈 것이다.
물질 경제를 초월한 마음의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 우선의 사회로 진전되어 갈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자신의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신불의 지혜의 보고를
스스로의 힘으로 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