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리라에서 만난 또 하나의 길, 아부지 트래킹
운남성 여행을행복하게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 번 다녀온 운남성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또 새로운 길을 걷게 됩니다.
이번 여행도 그랬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걷고, 함께 웃고, 비도 맞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산길에서는 서로 기다려주면서 그렇게 또 하나의 운남성 여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조금 깁니다.
그런데 긴 글에 비해 사진은 많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ㅎㅎ
사진이고 뭐고 일단 숨부터 쉬어야 했고, 카메라를 꺼낼 여유가 생기면 또 걸어야 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오면 늘 ‘사진을 좀 더 찍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데, 이번 아부지초만큼은 사진이 적은 게 그날 제가 얼마나 열심히 걸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우겨보려 합니다. ㅎㅎ
그래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풍경은 눈으로 많이 담아왔으니, 그 기억을 따라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곳,
샹그리라에서 만난 또 하나의 길, 아부지초 트레킹
‘샹그리라’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시나요?
눈 덮인 설산, 끝없이 펼쳐진 초원, 푸른 호수와 티베트 마을….
사실 지금의 샹그리라는 처음부터 샹그리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곳은 아닙니다.
원래 이름은 중뎬(中甸).
1933년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이상향을 그렸습니다.
세상과 떨어진 깊은 산속, 눈 덮인 산과 평화로운 계곡이 있고 사람들이 오래도록 평온하게 살아가는 곳.
그곳의 이름이 바로 샹그리라(Shangri-La)였습니다.
소설 속 상상의 장소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 샹그리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디일까?”
히말라야 주변의 여러 지역이 샹그리라의 모델이라고 주장했지만, 중국에서는 운남성 북서쪽의 중뎬이 소설 속 풍경과 닮았다며 2001년 아예 지역 이름을 샹그리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여행하는 샹그리라는
어찌 보면 소설 속 이상향이 현실의 지명이 되어버린 곳입니다.
샹그리라 여행의 중심은 두커쭝 고성(独克宗古城)입니다.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들이 쉬어가던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마을이고, ‘달의 성(Moon Town)’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옛날 이곳 사람들은 집 외벽에 흰색 흙을 발랐는데, 밤이 되면 달빛을 받은 마을 전체가 은빛으로 빛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달의 성.
지금도 밤에 고성을 걷다 보면 그 이름이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그 샹그리라에서 제가 아직 팀을 이끌고 가보지 않았던 길을 찾아갔습니다.
아부지초(阿布吉措).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현지 투어팀에 끼어 한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제가 팀을 이끌고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조건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전날 차마고도 트레킹을 했고, 비까지 내렸습니다.
아부지초는 해발 4,000m를 훌쩍 넘기는 고산 트레킹.
‘오늘 괜찮을까?’
아침부터 계속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결국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출발 시간을 한 시간 늦췄습니다.
그래도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합니다.
두커쭝 고성에서 차로 약 한 시간을 달려 출입구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알았습니다.
아, 오늘 좀 힘들겠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계속 치받아 올라갑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볍게 잘도 올라가는데
왜 나만 죽을힘을 다해 올라가는 것 같은지. ㅎㅎ
며칠 동안 내린 비 때문에 계곡물은 제법 거칠게 흘렀습니다.
바윗틈을 지나고, 돌 사이를 디디고, 물을 건너고….
잘못 디디면 신발이 푹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고산에서는 욕심내면 안 됩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숨이 차면 쉬고, 다시 걷고.
그렇게 한 발 한 발 올라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내가 여길 왜 또 왔지?”
그리고 조금 더 힘들어지면 생각이 하나 더 붙습니다.
“다시는 안 온다.” ㅎㅎ
그렇게 올라간 해발 약 4,220m의 아부지초 고산호수.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쏟아집니다.
제가 기대했던 건 파란 하늘 아래 설산과 어우러진 푸른 호수였는데, 오늘 아부지초는 그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구름은 산을 감싸고
빗방울은 호수 위로 떨어집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고산의 풍경이라는 게 늘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맑은 날의 아부지초가 있다면
비 오는 날의 아부지초도 있는 거겠죠.
오히려 구름과 비 속에 숨어 있는 호수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정상 부근에서는 오프로드 바이크를 타고 올라온 젊은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우리는 두 다리로 헉헉거리며 올라왔는데 이 친구들은 바이크를 타고 산 위를 달립니다.
굉음을 내며 거친 길을 오가는 모습을 한동안 구경했습니다.
‘젊음이 좋긴 좋구나.’
우리는 스릴보다 무릎을 생각하며 다시 하산. ㅎㅎ
아부지초 트레킹은 예전에 제가 걸었던 구코스가 있고, 최근에는 신코스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정과 체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신코스로 올라가 다시 신코스로 내려오는 방법,
구코스를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신코스로 올라가 구코스로 내려오는 방법.
각각 풍경과 난이도, 이동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출발 전 현지 상황을 확인하고 자신의 체력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아부지초를 가는 날은 하루를 통째로 비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고도가 높아 평지에서 걷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평소 산을 잘 타는 사람도 고산에서는 숨이 차고 몸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록이나 속도에 욕심내기보다 천천히 걷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산 적응도 충분히 하고, 물과 간식, 방수·방풍 의류도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두통이나 어지럼증, 메스꺼움처럼 고산증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심해지면 무리해서 정상까지 가려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잦은 시기에는 방수 신발도 꽤 중요합니다.
이번처럼 계곡물이 많으면
“등산화니까 괜찮겠지” 했다가
발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ㅎㅎ
저는 샹그리라를 여러 번 여행하고 여행팀도 이끌었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길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좋습니다.
특히 아부지초를 걸으며 한 가지 바람이 생겼습니다.
이 길에는 앞으로도 너무 많은 것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유명 트레킹 코스들처럼 편의를 위해 계단을 만들고, 데크를 깔고, 전망대를 세우고, 곳곳에 인공적인 시설물을 채우기 시작하면 걷기는 편해질지 몰라도 지금 아부지초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조금씩 사라질 것 같습니다.
흙을 밟고,
돌을 건너고,
계곡물을 지나고,
야생화를 보면서 올라가는 길.
조금 불편해도
저는 이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
날씨 좋은 8월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푸른 하늘 아래 고산의 야생화가 피고, 그 길 끝에서 아부지초의 푸른 호수를 만난다면….
이번에 비 때문에 보지 못했던 풍경을 생각하니 벌써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분명 올라가면서는
“다시는 안 온다.”
했는데 말입니다. ㅎㅎ
유럽 알프스나 돌로미티처럼 압도적인 스케일과 잘 정비된 트레킹 환경을 기대한다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거리와 여행 경비, 그리고 운남성 여행 전체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까지 생각한다면 저는 아부지초를 꽤 매력적인 가성비 고산 트레킹 코스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리장과 차마고도만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세요.
샹그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샹그리라 고성에서 한 시간쯤 더 산속으로 들어가면
아직은 조금 거칠고, 조금 불편하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부지초.
비 오는 날 다녀온 저는
맑은 날의 아부지초를 핑계 삼아
아무래도 한 번 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올라가면서
“다시는 안 온다”는 말을 조금 덜 하면서요. ㅎㅎ
P.S.
참, 내려와서 알게 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비 때문에 걱정이 되어 우리 팀은 원래 계획보다 한 시간 늦게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트레킹을 모두 마치고 내려오고 보니 오히려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끝냈습니다.
현지 가이드가 우리 팀을 보며 꽤 놀라워했습니다.
“다들 체력이 정말 좋다”고요.
그럴 만도 했습니다.
우리 팀의 연령대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
그런데 해발 4,228m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고산 트레킹에서 한 시간 늦게 출발해 한 시간 먼저 끝냈으니 말입니다. ㅎㅎ
그러니 누가 그러던가요.
나이 들면 체력이 떨어진다고.
아부지초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나이는 주민등록증에 있고,
체력은 두 다리에 있고,
갈 수 있는 곳의 한계는 마음이 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올라가면서 몇 번이나
“다시는 안 온다”고 했지만요. ㅎㅎ
그날 아부지초에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우리 팀에서 제일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다들 너무 잘 걸어서
리더가 따라가느라 제일 힘들었습니다. ㅎㅎ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
아직 갈 데가 아주 많습니다.
첫댓글 고생을하면.좋은결과물이주어진답니다
않았어보는 저는
아름답고 부럽습니다
다음여행지는 어디일까요?ㅎ
수고하셨어요
여행 많이 다니시는 영희님이 부러워하시다니...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지는 실크로드, 그리고 청두를 시작하는 구채구, 충칭, 그리고 미식여행 중국 남부, 그리고 치앙마이와 포르투칼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8.10 11:52
와!진짜고수님 이시네요
완전 부럽군요.
아부지초. 함께 트레킹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