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로드스꼴라 5기 멀대입니다.
5기는 현재 중부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인 북부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올리는 이 소식이 이 베트남 여행에서의 마지막 소식이에요. 아쉬우시죠?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11월 8일이면 한국에서 5기 떠별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이제 베트남 북부에서 5기 떠별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사진과 글로 만나요.
10.29 <하노이 도착>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껐다. 기차 바로 옆으로 달리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들. 논라와 헬멧을 쓴 사람들. 물건을 끌고 다니며 파는 상인들과 바닥에 앉아 과일을 파는 상인들. 레일을 따라,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 북부의 일상이 펼쳐졌다. 중부와 북부는 또 어떻게 다를까. 또 어떤 여행이 기다릴까.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기대와 설렘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온다. 조금만 더 가면 하노이다.
-멀대
10.30~11.2 <마이쩌우>
눈이 마주친다. 그와 나 사이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내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내가 먼저 할까, 말까. 또 외면당하면 어떡하지.
“신짜오!” 머리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언제나 방정인 내 입이 나선다.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오른팔은 더 격렬하게 흔들어댄다. 마음속으로는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외치면서.
이런 나에게 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환하게 웃어주거나, 조용히 침묵하거나. 아낌없는 웃음을 지어줄 때면 난 그 순간 누구보다 행복했고, 침묵으로 내 눈을 피할 때면 쓸쓸히 웃어야했다. 처음에는 쥐구멍으로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름대로 적응을 해나갔다. 그들은 날 무시하는 게 아니고 다만 조금 쑥스러울 뿐이라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거라고 다독거리며 말이다. 그렇잖아, 도시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도 외국인인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산속 깊은 곳에 사는 그들은 더 한 게 맞지.
여전히 난 당당하게 인사를 하며 걸어 다닌다, 그들이 대답해주지 않아도.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 그게 내가 베트남에서 배운 것이다.
-사랑
길을 가다 팔찌를 보게 되면 두 발은 움직이질 않고 지갑은 열리기 바쁘다. 베트남여행에서 지금까지 산 팔찌만 9개다. 마이쩌우 트래킹 마지막 날, 하오아저씨네서 타이족 수공예 팔찌를 만들었다. 빈 아주머니가 몇 번이고 시범을 보여줘도 내 눈엔 그 실이 이 실이고 이 실이 저실이라 어렵게만 느껴졌다. 엉켜있는 화려한 색깔의 실들 중 검정색과 노란색을 골라 나무에 묶어 땋기 시작했다. 팔찌의 1/8쯤 꼬았을 때, 내 인내심은 바닥났고 그때부터 막 했다. 힘도 일정하게 주지 않고 오른쪽왼쪽 그런 거 지키지도 않았다. 결국 내 팔찌를 보고 알로하는 ‘망고 위를 지나가는 개미’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난 6기가 오면 내가 직접 팔찌를 만들어서 줄까 할 만큼 예쁘다고 생각한다. 다들 말리지만.
오늘 깨달은 것은 팔찌를 살 땐 가격을 절대 깎아선 안된다는 것. ‘또이 라 홉씽(저는 학생이에요)’ 이나 ‘쭉 쑥 쿠웨(건강하세요)’ 라며 떠는 애교로 안되는 지극한 정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조아
빈호아성 마이쩌우.
마이쩌우에는 물소가 많다.
버스를 타고 갈 때도, 마을 산책을 할 때도, 트래킹을 할 때도 물소들을 볼 수 있다.
논에도 있고, 마을길에도 있고, 산에도 있다.
물소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물소는 예쁘다.
물소는 마이쩌우다.
-동동
그들의 수줍던 미소가 즐거움의 미소로 바뀌던 날.
3박 4일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마이쩌우 하오아저씨 댁으로 돌아왔다. ‘난’이라는 9살 꼬마아이가 자전거를 가지고 수줍게 다가왔다. 난을 뒷자석에 태운 후 마을 드라이브를 했다. 갑자기 난이 내 어깨를 잡고 일어섰다. 그걸 본 ‘뚝’이라는 아이도 이치의 어깨를 잡고 일어섰다. 우리는 아이들이 떨어질까 조마조마 했지만 아이들은 더 빨리 달리라며 신이 났다. 우리는 자전거로 레이싱을 시작했다. “꼬렌! 꼬렌!” (한국어로 “힘내라 힘.”)을 외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라파엘
마이쩌우의 밤은 구례의 밤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하오아저씨네 집 앞 잔디밭에서 타이족 공연을 보며 들뜬 밤을 보냈다. 다음날, 어제 밤 놀았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잔디밭에 널부러져 있었다. 여행과 일상이 행복하게 만날 수는 없을까. 마이쩌우를 떠나는 날, 떠별과 길별 모두 이곳저곳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웠다. 마이쩌우의 풍경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알로하
빈 아주머니는 마이쩌우 반락마을 `하오 패밀리 홈스테이` 안주인이다. 우리가 마이쩌우에서 3박 4일 트래킹을 하는 동안 늘상 맛있는 밥을 준비해주셨다. 그 밥은 베트남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같이 걷지 않으셨지만 숙소에 도착 할 때마다 우리를 반겨주셨다. 빈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 칠 때 마다 만난 미소는 너무 예뻤다. 미소를 지을 때 생기는 눈 주변의 주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치
11.3~11.8 <하노이>
베트남 현지 길별 짜노와의 마지막 밤, 떠별들은 편지며 소소한 선물을 준비해 801호로 모였다. 라온이 인터뷰 요청을 위장해 짜노를 801호로 불렀다. 짜노가 방으로 들어오자 화장실과 발코니에 숨어있던 떠별들이 나와 다 같이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짜노는 쑥스럽고 웃기다는 표정으로 케이크를 받아 초의 불을 껐다. 케이크의 생크림이 떠별들의 사랑만큼 짜노 얼굴 여기저기 발렸다. 그리고 짜노와 함께 했던 시간중 기억에 남는 것과 하고싶은 말을 서로 이야기 했다. 짜노 안녕. 오래오래 잊지 못할 거예요.
-그래
한국문화원의 공간을 빌려 케이팝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공연을 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공연을 하면서 이렇게 환호를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케이팝 친구들도 공연을 했는데 우리보다 더 잘 추는 것 같았다. 그 다음은 서로 준비한 줄넘기, 윷놀이, 젓가락 놀이, 공기놀이를 했다.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한국에 있는 놀이와도 많이 비슷했다. 젓가락놀이는 공기와 비슷해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베트남어, 영어,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베트남의 문화가 나에게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고 느꼈다. 그 친구들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순심
"한 달만이네.“ 한 점의 별도 없이 깜깜했던 하노이의 밤,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 닌과의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바오 닌의 집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각자가 느꼈던 베트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떠별 한 명 한 명이 이야기를 하고나면 바오 닌은 따듯하고 섬세한 말로 응답 해주었다. 그 날 바오 닌이 해주셨던 말 중 역사는 우리가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 속에 흐른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행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역사가 내 삶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바오 닌과의 대화는 밤하늘에 달이 수줍게 인사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우리는 작가의 서재까지 둘러보았다. 이별의 시간, 그와 대문 앞에서 악수를 했다. 마주잡았던 손은 고된 삶을 보낸 사람의 손이라기엔 너무 따듯했다.
-이응
베트남에서는 초록불이 들어와도 길을 건너기가 어렵다. 신호를 무시하고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들이 많기 때문이다. 호치민이나 꽝아이, 꽝남성에는 횡단보도만 있고 아직 신호등이 없지만 하노이는 신호등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베트남이 왔을 때는 초록불이 켜지면 편안하고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까.
-든솔
성 요셉 성당에 가다.
구시가 거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세유럽의 대성당을 옮겨 놓은 듯한 성 요셉 성당이 나온다. 성당과 바깥의 경계가 되는 철제 문 안으로 들어가니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사이로 들어온 햇빛 탓에 눈이 부신다. 성당 밖의 시끄럽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는 다르게 성당 안은 고요하고 편안하고 따뜻하다. 사람들은 일상을 잠깐 멈추고 제단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일상 안에 스며든 여행자. 바쁜 일정 중 들른 성 요셉 성당에서 잠시나마 고요와 평화를 느꼈다.
-화이
11월. 여기 하노이는 가을이다. 그 중심에는 호안끼엠 호수가 있다. '호안끼엠' 은 검을 돌려받다 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때는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 지배를 받던 시기였다. 레러이가 강을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수에서 거북이가 나타나 검을 주면서 중국의 천년 지배로부터 독립하고 다시 돌려달라고 했다. 그 칼을 받은 레러이는 중국과 10년의 싸움 후 승리하고 호수로 돌아오자 거북이가 다시 회수해 갔다. 지금 호안끼엠 호수에가면 엄청나게 큰 거북이 박제가 전시되어있다. 호안끼엠 호수 나무 그늘아래에서 고독에 잠긴채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를 느끼는 나는 낭만적인 사람이다.
-싼타
보통의 여행자들은 발길을 들이지 않는 작고 평범한 공원이다. 그렇지만 스케이트보더들과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스팟이다. 만약 베트남을 여행하고 싶은 스케이트보더가 있다면 하노이 북쪽 외곽에 있는 타이 응우옌을 추천 하고 싶지만, 하노이의 로컬 스케이트보더들을 만나고 싶다면 매일 저녁 9시 이 곳 레닌광장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저녁이면 스케이트보드가 말고도 BMX, 인라인스케이트, 축구 등을 하러 많은 현지인들이 모인다고 한다.
-프노이마
36거리는 응우옌왕조시절 조정에 올릴 물건을 만들기 위해 유명한 장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각 거리마다 다른 물건들을 파는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한드엉은 과자를 파는 거리다. 과자라고 해서 일반 시중에서 파는 과자를 생각하면 안 된다. 과자 가게들은 말린 과일들을 둥그런 유리병에 담아 앞에 전시해놓는다. 옛날 베트남 사람들은 말린 과일을 과자처럼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흔히 볼 수 있는 키위, 망고, 딸기부터 꽃, 알 수 없는 검은 과일들까지 양쪽 벽을 꽉 차있다. 하나하나 맛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제비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한 뫁 카페는 나이든 부부가 운영했다. 주인아저씨 응웬은 주문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원두 원액으로 나온 커피에 내가 당황하자 몇 번이나 설명을 해주기도, 쓴 커피 맛에 표정을 찡그리자 물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쏘리’라는 말만 몇 번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른하고 조용한 뫁 카페는 베트남 커피의 맛과 베트남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라온
해가 질 무렵에 바라 본 떠이 호수는 정말 아름다웠다. 호숫가에는 논라를 쓴 아저씨들이 대나무로 만든 낚시대로 물고기를 잡고 있고, 야외테이블에는 금발의 외국인이 노트북을 켜두고 한창 무언가에 몰두해 있었다. 하루 종일 차와 오토바이가 마구 달리던 도로를 걷다 떠이 호수에 가니, 노을 빛으로 변해있는 모든 풍경들이 여유롭게만 느껴졌다. 이틀 뒤면 베트남을 떠나는 날이다. 조금 더 호수의 풍경을 기억하고 싶어 택시를 타는 순간까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 보았다.
-길담
11월 8일,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는 5기 떠별들 많이 반겨주세요.
첫댓글 그래야, 여행기 올려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글에서 너희들의 체취가 묻어나는 것 같아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단다. <로꼴> 5기 떠별들은 모두들 건강한지, 안녕한지... 지금쯤 여행 이야기들을 작업으로 풀어내느라 또 한참 바쁘겠구나. <아맙>도 너희들을 응원하고 있으니 아자, 아자, 홧팅!!!하고 기운내길... 모두들 그립다, 보고 싶다!!!
짜노! 저도 보고싶어요 엉엉 루맨이 올려달라고 부탁하셨었는데 이제야 올려요. 응원받고 5기들 열심히 작업할게요! 짜노 루맨 아맙도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