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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공 한훤당 김굉필(文敬公 寒暄堂 金宏弼) 선생 흉상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세워져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달성군(군수 김문오)은 군청 개청100주년을 맞아 한훤당 선생을 '달성을 빛낸 역사적 인물' 7인 중의 한 분으로 선정하고 3월 29일 토요일 오후 5시 현풍면 소재 달성종합스포츠파크에서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우리 문중에서 한훤당 종택의 백용栢容 차종손을 비롯 흉상이 세워진 문중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달성을 빛낸 역사적 인물’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동방오현의 수현首賢 문경공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비롯 고려시대의 승려로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명인 박팽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한 곽준ㆍ곽재우 장군, 일본에서 귀화하여 삼란공신三亂功臣이 된 김충선, 독립운동가 문영박씨 등 일곱 분이다.
한훤당 김굉필 흉상 (정면)
한훤당 김굉필 흉상 (측면)
한훤당 김굉필 흉상 (측면)
문경공 한훤당 김굉필(文敬公 寒暄堂 金宏弼 1454∼1504년)
1454년(단종2) 5월25일 한성부 정릉(漢城府 貞陵: 지금의 貞洞)에서 출생.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일컬었다. 1480년(성종11)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척불소斥佛疎를 상소. 1494년(성종25)에 행의(行義)로 추천되어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남부참봉南部參奉, 전생서참봉典牲暑參奉,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감찰監察 등을 거쳐 1497년(연산군3) 형조좌랑刑曹佐郞이 되었다.
1498년 무오사화로 김종직 일파로 몰려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에게 학문을 전수하여 유학의 정맥을 잇는 계기를 마련했다. 선생은 다시 순천으로 이배移配되었고 1504년(연산군10)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무오당인이라는 죄목으로 참형斬刑을 받으니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평소 6경六經 연구에 전심, 성리학性理學에 통달했으며, 특히 실천궁행實踐躬行하여 동방도학東方道學의 조종祖宗이 되었고, 충효대절忠孝大節이 조야朝野에 떨쳐 모두 경앙흠모敬仰欽慕하였다[王朝實錄云忠孝大節, 聳動當世]. 기국氣局이 단정하고 성행性行이 수결修潔하며, 언어동정言語動靜이 경건하고 순후諄厚하여 진실로 도학군자道學君子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사후 중종12년 1517년 우의정에 추증追贈. 선조10년 문경文敬이란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광해군2년 1610년 9월4일 동방오현東方五賢의 수위(首位)로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 퇴계 이황退溪 李滉 등과 더불어 문묘文廟에 종사되었다. 문하에 조광조 · 김안국金安國 · 김정국金正國 · 이심원李深源· 성세창成世昌 · 정붕鄭鵬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되었다. 달성 도동서원, 순천 옥천서원, 나주 경현서원 등 15개 서원에 배향配享되었고 선생의 묘소는 도동서원 뒤편 대니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달성종합스포츠파크(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곽재우郭再祐(1552-1617)
곽준郭遵(1550-1597)
김충선金忠善(1571-1642)
문영박文永樸(1880-1931)
박팽년朴彭年(1417-1456)
일연一然(1206~1289)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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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정보를 잘 봅니다. 고맙습니다.
한훤당 선생 흉상을
제막식 현장에서 비를 맞고 직접 촬영해 주신
윤호 종원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님의 노고가 있었기에
선생의 존안을 이렇게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네요.
거듭 감사합니다^oo^
사진 찍을 때 비가 왔다고 해서 걱정을 좀 했습니다.
역시 국보급 사진작가는 환경의 간섭을 받지않네요. 자랑스러운 서흥인,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