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둔 청명한 가을날 경북 영주로 떠나는 여행은 내면과 외양을 한꺼번에 살찌울 수 있는 여정으로 가득하다. 소백산자락에 둘러싸인 '영주'는 국내 불교, 유교 문화의 대표적 집결지. 부석사, 소수서원 등 곳곳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가 하면 선비촌 등 옛 문화 체험의 장도 마련돼 있는 '문화기행'의 적지이다.
특히 명찰 부석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가을 햇살아래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밭이 줄지어 늘어서 탐스런 가을의 느낌과 향취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 불어오는 들녘에 나서 잘 익은 사과 한입 베어 물고, 부석사 종루로 내려앉는 석양을 감상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운치 있다. 거기에 풀벌레 울음소리 들려오는 가을밤 전통 한옥마을에서의 하룻밤이란 그야말로 몸과 마음까지 풍성하게 하는 가을여행이 된다.
▲ 숙박 등 전통체험이 가능한 선비촌은 가을날의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
▶추색 완연한 한옥마을 '선비촌'=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서원 옆에 자리한 '선비촌'은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의 생활상을 두루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선비촌은 1만7400여평의 터에 영주 지역에 흩어진 고택과 정자, 성황당 등을 이건하거나 본떠 7년여에 걸쳐 조선시대의 자연부락을 원형 그대로 재현해 두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부터 아담한 초가에 이르기까지 12채의 숙박동이 있으며, 그밖에도 강학당과 정자, 누각, 원두막, 곳집(상엿집), 저잣거리 등 40여 채의 옛 건물이 들어서 있다.
관광객이 묵을 집들은 영주의 대표적인 옛 가옥을 고증과 실측을 통해 똑같이 지은 것들이다. 집 안팎에는 사람이 살기라도 하는 듯 실물 옛 가구들과 도자기, 문방사우를 비롯해, 지게, 멍석 등속을 옛 모습 그대로 들여 놓아 선인들의 생활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글 읽는 선비, 가야금 뜯는 선비, 자수 놓는 규수 등 양반가의 생활 모습도 인형으로 재현해뒀다. '선비'만 빼고 옛 선인들의 삶의 도구가 다 있는 셈이다.
선비촌의 대표적 건축물은 해우당 고택. 해우당은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으로 고종 16년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 선생이 1875년에 지었다. 툇마루로 통하는 문을 열면 소백산의 국망봉과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운치 있는 공간이다. 소백산 정상 비로봉이 창틀에 걸려 있는 우금촌 두암고택, 소박한 절제미가 돋보이는 중류층 김상진 가옥, 그리고 담장 너머로 환한 웃음 짓는 해바라기와 지붕 위의 박이 멋스러운 초가도 하룻밤 묵어보고 싶은 집들이다.
선비촌 나들이의 최고 묘미는 다양한 전통체험에 있다. 고가옥 토담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농삿일을 체험하고 전통예절과 선비정신, 한문 등 옛 선비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
또 상설프로그램으로 투호와 널뛰기 등 민속놀이는 물론 새끼 꼬기, 연 만들기 등 옛 문화체험도 가능하다.
옛날 시장의 모습을 그럴싸하게 재현해둔 저잣거리에서는 실제 난장과 토속음식점, 특산품점 등이 운영된다.
국보인 회헌 안향의 영정 등 2만여 점의 문화유산을 보유한 소수박물관도 볼거리. 소수서원과 함께 대단위 전통문화학습단지를 이루고 있다.
추석 연휴(17∼19일)에 민속놀이와 전통생활 체험행사를 갖는데 이어 다음달 1∼5일에는 개촌 기념으로 전통혼례, 가야금 병창, 한시 백일장 등 선비문화대축제를 연다.
▲ 탐스런 사과가 매달린 사과밭에 들어서면 저절로 풍성한 가을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
▶가을이 익어가는 '사과밭'=영주는 이름난 사과의 고장이다. 전국 사과생산량의 15%가 영주에서 날 정도이다. 일교차 심한 소백산자락의 지형적 특성과 독특한 점토질 토양이 맛과 향이 뛰어난 사과 생산의 비결이다.
'풍기~부석사'를 오가는 931번 지방도로와 '영주~부석사'간 935번 지방도로변에는 사과밭이 많다. 야트막한 구릉에는 어김없이 빨간 사과들이 탐스럽게 영근 사과밭이 줄지어 있다.
차창을 열면 새콤 달콤 사과향이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밀려 들어와 향기를 좇아 상큼한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다.
풍기읍 전구2리 경일농원은 영주의 대표적 사과밭. 농장주 명달호씨의 조부가 60년 전 정감록을 보고 함경도에서 피난 내려와 일군 곳이다. 조각구름 띄운 쪽빛 하늘 아래 영글어 가는 8000평 규모의 빨간 사과밭은 차라리 한 폭의 그림이다. 고목이 돼 길게 늘어뜨린 가지에 주렁주렁 걸린 탐스런 사과는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친환경 산물. 전국 최초의 GAP(우수농산물 관리제도) 사과 재배지로 선정된 풍기농협의 '사과향기 풍기는'이란 브랜드로 시중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중이다. 특히 풍기농협에서는 직원들이 사과를 씻는 물만 마시게 돼 있을 정도로 청결 제품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요즘은 부사와 껍질째 먹는 홍로가 나고, 11월까지 만생종이 출하된다.
▲ 해질녁 부석사 안양루에서 스님이 힘차게 법고를 치고 있다. | |
▶운치 있는 부석사의 해질녘=영주의 또다른 이름처럼 불리는 '부석사'는 해질녘 석양도 근사하다. 무량수전 왼편 뜰에 서서 안양루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게 일반적 감상 포인트. 소백산 능선을 붉게 물들이는 부드러운 실루엣이 사찰의 고적한 분위기와 더불어 운치를 더한다. 특히 오후 6시 안양루에서 법고를 치는 의식은 그 소리며 광경이 장엄하기까지 하다.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무량수전(국보 제 18호)을 비롯해, 석등,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등의 국보도 즐비해 볼거리도 쏠쏠 하다. 늦은 가을에 찾으면 일주문~천왕문 앞 당간지주까지 500여m 노란 은행나무 길이 펼쳐져 만추의 서정을 느낄 수 있다.
▶즐길 거리
◇풍기온천=불소가 함유된 알칼리성 유황온천수가 용출되는 소백산풍기온천(054-639-6911)에서 여독을 풀 수 있다.
▶영주의 맛
◇인삼의 고장 영주의 미각을 느끼려거든 풍기IC 인근 '약선당'(054-638-2728)을 찾으면 된다. 이 집은 경북 내륙 반가의 손맛이 담긴 푸짐한 상차림에 갖은 인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능이버섯 약초생채무침, 인삼한우갈비, 약초장아찌, 인삼튀김 등이 상에 오르는 약선당 특정식 2만5000원, 인삼정식 1만5000원, 인삼뷔페 9000원(1인 기준).
◇사과=껍질째 먹는 친환경 사과를 풍기농협 백신지소(054-636-3209), 경일농원(054-636-3678)에서 택배 등으로 구할 수 있다.
▶묵을 곳=선비촌(054-638-5831)의 하루 숙박료는 2인1실 2만∼4만원, 4인1실 5만원으로 샤워장과 수세식 화장실 등을 갖춰 재래 한옥의 불편함을 덜었다.
▶축제=영주시는 10월1∼5일 풍기읍 남원천변에서 풍기인삼축제를 개최한다. 인삼 캐기, 인삼 깎기 등 체험 프로그램과 인삼요리 경연대회 등 풍기인삼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줄을 잇는다(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639-6062).
▶여행상품=우리테마투어는 영주 선비촌을 둘러보고 사과 따기 체험행사를 곁들인 당일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18일부터 10월30일까지 매주 수, 토, 일요일에 출발한다. 4만원. (02)733-0882
▶가는 길=◇승용차: 중앙고속도로 풍기IC~풍기 소재지~순흥 방향 931번 도로~순흥~소수서원/ 선비촌
◇대중교통: 열차(서울 청량리역에서 풍기-영주행 무궁화-새마을열차 하루 9회 운행). 버스(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 하루 30회 운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