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Tip
물곰은 쏨뱅이목 꼼칫과로 ‘꼼치’가 표준어이지만, 곰치, 물메기, 물텀벙 등 각 지역별로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고 겨울이 제철이다. 홍게잡이 배들이 부산물로 잡는 어종으로, 홍게 철이 아닌 7~8월에는
맛보기가 힘들다.
이 기간에 ‘물곰이 방학에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해안 여느 바닷가 마을에서나
맛볼 수 있지만 그래도 ‘울진’에서 맛을 봐야 제맛이다.
울진 물곰국은 원래 뱃사람들의 쓰린 속을 풀어주는 ‘해장국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뜨끈한 국물과 얼큰한 맛을 내
물곰국 한 그릇이면 숙취가 한번에 달아난다. 하지만 못생긴 생김새 때문에 처음에는 어부들 사이에서 ‘재수 없다’며
잡자마자 버렸다고 한다. 그러던 물곰이 맛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되었다.
‘작가,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22편은 못생긴 외모지만 해장국의 대명사로 유명해진 울진 물곰국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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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죽변항의 물곰국. 묵은 김치와 꼼치가 어울려 사각하고, 보드랍고, 시원하고, 담백한 감칠맛을 낸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 훌훌 넘어가는 식감 때문에 구십 노인도 편안하게 드실 수 있다. |
“곰.”
차가운 바닷바람이 들어서기도 전에 눈 밑 검은 사내의 한마디가 먼저 앉는다. 주방 문 너머로 얼굴 하나가 쓱 나타나더니
사내를 확인하곤 도로 사라진다.
“마이 했나?”
걸음이 다부지지 못한 주인이 물 잔을 내려놓으며 다감히 묻지만 과묵한 사내는 말이 없다.
“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사내는 툭 내뱉는다. 보글보글 냄비 속 끓는 소리가 나고, 이내 김 오르는 커다란 대접이 사내 앞에 놓인다.
떠 넣는 건지, 마시는 건지, 알맞게 식은 죽 한 그릇 훌훌 비우듯 사내는 생선국 한 그릇을 옹골차게 비워낸다. 생선의 부드럽고
뽀얀 속살이 사내의 속을 어루면 파도와 함께 요동치던 몸이 스르르 균형을 잡는다. 바다에서든, 선창에서든, 모진 밤을 보낸
어부들의 아침 속을 뜨겁게 또 시원히 풀어준다는 국 한 그릇, 그것이 물곰국이다.
물곰국은 물곰탕, 곰치국으로 두루 불린다. 바닷고기 역시 물곰 또는 곰치로 불리지만 본래 이름은 꼼치다. 뱀장어목 곰치과의
곰치와도 다르고, 서남 해안의 물메기와도 같은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다른 종류다. 물메기는 꼼치와 같이 쏨뱅이목 꼼칫과
에 속해있어 생김과 식감이 비슷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보면 해점어(海鮎魚)에 속하는 어류가 여럿
등장하는데, 그 중 미역어(迷役魚)를 물메기로, 홍달어(紅鮎)를 꼼치로 추정한다. 이 생선에 대해 “살과 뼈는 매우 연하고 무르
며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속 풀이에 탁월한 음식이지만 오랫동안 어민 전용 해장국
이라 할 정도로만 소비되어 왔다. 물곰국 마니아가 생길 만큼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근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 못생겨서 재수 없는 놈, 귀하신 몸으로 신분 상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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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곰의 생김새는 아구만큼이나 못생겨 처음에는 잡자마자 ‘재수없다’며 버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
“에잇! 못생긴 놈!”
어부들은 그물에 걸려 올라온 꼼치를 바다에 휙 집어던졌다. 생김새가 흉해 재수 없는 놈! 버려지면서도 텀벙! 요란 떠는 놈.
그래서 바다사내들은 녀석을 ‘물텀벙’이라 천대했다. 얼마나 못생겼나? 뭉툭한 대가리에 눈은 옆구리에 가 붙었고 주둥이는
둔하다. 피부도 연하고 살도 연하고 뼈도 연해 일정한 모양새가 없는데다, 손으로 쥐면 흐늘흐늘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통에 담아 놓으면 푹 퍼질러져 출렁거리는 모양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그렇다고 다 버렸을까. 몇 십 년 전만해도 우리 바다의 어족 자원은 풍부했다. 굳이 이 못생기고 희한한 물고기를 먹지 않아도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가 넉넉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덜 먹게 되는 생선이었다는 게 옳다. 실질적인 이유를 찾아보면 꼼치의
생태 환경과 관련이 있다. 꼼치는 심해에 살면서 게나 새우, 작은 생선을 먹고 사는 육식성 생선이다. 얼리면 살이 풀어지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이 어렵고 활어상태로 보존하려면 심해의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3℃ 이하의 수온을 유지시켜 주는
수족관이 보급된 이후에야 꼼치는 상품으로서 대우받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제일 잘난 것은 내다 팔거나 대처로 나간
자식들의 몫이고, 제일 못난 것은 당신들이 취하는 우리네 부모님들의 정서도 이 못생긴 놈의 운명에 한몫 했을 것이다.
꼼치의 극적인 신분 상승은 5공 때 이뤄졌다. 당시 지방 시찰 차 울진에 들른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곰국을 맛보게 된다.
이튿날, 충남 당진에서 과음을 하게 된 그는 ‘어제 먹은 그것’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부랴부랴 헬기가 띄워지고, 울진의
물곰국이 당진으로 공수되었단다. 이 소극 같은 이야기는 널리 퍼져 지금도 ‘5공 물곰탕’으로 회자된다.
꼼치는 동해안 일원에서 골고루 잡히지만 특히 울진 근해의 것이 크고 맛이 좋아 으뜸으로 손꼽힌다. 꼼치는 보통 홍게를 잡는
통게발선에 부산물로 잡히는 어종이어서 게통발 어선이 많은 울진에 그 양이 많기도 하다. 지금 꼼치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한 마리에 최고 15만원 안팎에 이른다.
#2 맑게 혹은 얼큰하게
울진의 포구마다 홍게가 풍성하다. 그러니 바로 지금이 꼼치의 제철. 꼼치의 몸값 상승은 식당의 가격표에서 금세 알아챈다.
물곰국의 가격에만 덕지덕지 종이가 붙어 있다. 8천원에서 1만원가량 하던 물곰국 1인분은 어느새 1만3천원까지 올랐다.
물곰국은 주문과 함께 끓이기 시작하는데, 우려내는 음식이 아니라서 짧은 순간에 맛을 잡아내야 한다.
몇 년 전 겨울 감포가 떠오른다. 새벽 경매가 막 끝난 포구에서 생선 상자를 질질 끌고 가는 아주머니께 조심스레 아침을 청한
적 있다.
“곰치 있다. 이거 자시면 딱 이겠네. 따라오소.”
비척비척한 모양새가 지난밤 무리를 한 술꾼 여행객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잠시 후 냉면 그릇처럼 큼지막한 대접에 한가득
내어 온 것이 맑게 끓인 탕이었다. 꽁꽁 언 몸에 씹고 삼킬 힘도 없었는데 뜨겁고 시원한 것이 홀랑홀랑 넘어가니 얼마나 신통
방통한가.
“이게 뭔가요?”
“곰치국.”
울진 죽변의 물곰국은 김치를 숭숭 썰어 넣고 끓여 낸 빨간 국이다. 후포에 가면 보통 맑은 물곰탕, 곰치국이다.
꼼치를 끓여내는 방법은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서 강원도만 해도 고성, 속초, 양양 등지에서는 맑고 깔끔하게, 동해나 삼척
등지에서는 죽변처럼 김치를 넣어 깊고 얼큰하게 끓인다. 최근에는 맑은 국에 고춧가루를 더하는 중간 형식도 등장했다.
대충 갈무리하면 경상도는 맑게, 강원도는 빨갛게다. 울진은 경상도지만 김치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는 것이 조금 더 보편적
이다. 지리적으로 강원도와 연접하고, 또 원래는 강원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울진이 경북이 된 것은 1963년이다. 이 분분한
방법에 대해서는 후포항 어판장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호탕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신다.
“하얗게 해달라면 하얗게, 빨갛게 해달라면 빨갛게, 마, 여서는 다 된다.”
#3 영양 많은 해장국, 미용과 다이어트에도 그만
어부의 시간이 지나고, 정오를 향해가는 시간. 식당 안에는 아가씨 팀, 할머니 팀, 가족 팀 등등이 자리를 꿰고 앉아 있다.
주방 앞 불 위에는 냄비들이 보글보글 끓는다. 꼼치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2010년 1월의 웰빙 음식으로 선정하기도 했던
만큼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 필수아미노산 등 풍부한 영양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겨울에는 감기예방에 좋고, 시력 보호와
당뇨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특히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도 그만이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 찾는 음식이다.
한낮의 식당에 아가씨와 할머니들이 특히 많은 이유다.
물곰국 냄비가 상 위에 오른다. 하얀 김 폴폴 오르는 식당 안은 일제히 후후 후루룩 소리로 가득 찬다. 새삼스러운 기대감으로,
달려든다. 불덩이 하나가 목구멍을 쨍 하니 밝히더니 눈 깜짝할 새 쏙 사라진다. 그러자 이내 뜨거운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소로록 흐른다. 눈에는 얼큰한 것이 혀에는 맑고 속에선 시원하다. 맵지 않으면서 사르르 녹는 듯 훌훌 넘어가는 그 맛,
난질난질 낭창낭창 부드럽기 그지없다. 구십 노인도 편안하게 드시겠다.
글·사진=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
공동기획: eride GyeongB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