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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927년 |
989년 |
982년 사회 개혁 및 대중국관의 시정 등에 대한 〈시무28조〉를 올려 고려 정치 체제의 토대를 닦았다.
12목을 설치하고 목사를 파견하여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추도록 했다.
소통을 강조한 재상
최승로는 고려 초기의 문인이자 재상이다. 태조에서 경종까지 다섯 왕의 치적을 평가하고 불교의 폐단을 건의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시무28조(時務二十八條)〉를 올려 고려 정치 체제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집권 체제를 지향해 12목을 설치하고 각 지방에 목사를 파견하도록 한 것도 그의 생각이었다.
〈시무28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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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로는 본래 신라 사람이었다. 그는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935년(태조 18)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할 때 6두품이던 아버지와 함께 고려로 갔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해 12세 때는 태조 앞에서 《논어》를 암송해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태조는 최승로의 재주를 기특하게 여겨 왕명으로 문서를 작성하던 원봉성의 학생이 되도록 주선하고 특별한 선물도 내렸다고 한다. 40대 초반까지는 학사직을 맡고 있으면서 소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을 것이라 추정할 뿐 그가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최승로가 처음 요직을 맡은 것은 982년(성종 1) ‘정광행선관어사상주국(正匡行選官御事上柱國)’에 중용되면서부터이다. 그해 성종은 “중앙의 5품 이상 관리는 모두 봉사(封事, 밀봉된 채 임금에게 고하는 글)를 올려 현재 정치의 옳고 그름을 논하라.” 하고 지시했다. 최승로는 인사권을 담당하는 중견 관료로서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는 고려 태조부터 경종까지 다섯 왕의 치적을 평가한 〈오조치적평(五祖治績評)〉과 〈시무28조〉로 나뉜다. 〈시무28조〉 가운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22조이다.
최승로는 왕실이 불교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했다. 광종 때 백성의 고혈을 짜내 시행하는 공덕제(功德齋, 미래의 성불을 위하여 행하는 불교 의식)의 폐단이 많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과다한 보시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승려가 궁에 마음대로 드나들며 왕실의 총애를 입어서는 안 되며, 왕실이 지나치게 불교를 숭상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금과 은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불상을 제작하는 행위도 비판했다. 즉 불교 그 자체보다는 불교를 숭상하며 생긴 사회적 폐단을 꼬집은 것이다.
고려 시대 불화
고려 시대에는 불화가 많이 그려졌다. 왕실에서 불교를 숭상함에 따라 사찰 건립, 불화 제작 등에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는 등 폐단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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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염두에 둔 조목도 있다. 지방관을 파견하고, 토호의 가옥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이는 지방 호족을 억제하는 방안으로 성종은 이듬해 12주에 목사를 파견해 최승로의 주장을 현실화했다. 그러면서도 왕권의 비대화를 우려하여 궁의 노비와 말의 숫자를 줄이고, 국왕이 신하를 예로써 대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승로의 다양한 제안은 결국 유교적 통치 이념에 입각한 정치 체제로 귀결된다. 태조가 승하한 뒤 경종 대까지 수많은 권력 투쟁이 벌어진 것도 사실 신하들이 왕권을 뛰어넘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유교적 이상에 따라 군주가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되, 신권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가지며 왕권과 신권이 상호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승로가 “임금은 신하를 예(禮)로써 대하고, 신하는 임금을 충(忠)으로써 섬겨야 합니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날마다 하루같이 삼가셔서 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신하를 대함에 공손함을 생각하며…….”라고 적은 대목이 이를 보여 준다.
최승로의 상소에 크게 감동한 성종은 그를 가까이 두고 그의 조언에 귀 기울였다. 오늘날의 정치 보좌관의 역할을 한 것이다. 최승로는 983년 문하시랑평장사로 영전했고, 5년 뒤에는 종1품 문하수시중에 임명되었다. 최승로가 나이가 많음을 들어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몇 번이나 청했지만 성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989년 최승로가 세상을 떠나자 성종은 몹시 슬퍼하며 포 1,000필, 면 300석, 갱미(梗米) 500석 등을 부의했다. 이후 태사(太師)에 추증되었고, 998년(목종 1)부터는 성종의 묘에 함께 모셨다가 제를 지낼 때 배식하도록 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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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려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사연구실, BK21한국학 교육연구단 국제화팀에서 연구원을 지냈으며,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연구소에서 고대사에 ..펼쳐보기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 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조선 시대사, 정치사에 관심이 많으며 연구 논문으로 <조선시대 정치권력과 환관>, <소통과 교류의 땅 ..펼쳐보기
출처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 윤재운 | 청아출판사
한국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영역의 인물이 두루 다루어지도록 구성했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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