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서울, 전주, 대전으로 이어지는 조성진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모든 공연들이 예매시작이 되자마자 빛의 속도로 매진이 되었고 그 공연들 중에서 다행스럽게도 전주 공연의 티켓을 남도분들의 도움으로 구하게 되었다.
조성진의 전국 공연에서 연주곡목은 똑같았다. 그 곡들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피아노 소나타 30번, 드뷔시의 영상 2집,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 조성진의 선곡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시선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잘 들려줄 수 있는 것과 앞으로도 더 잘 들려줄 수 있지만 지금의 나이에서도 어울리는 것을 고루 배치함으로써 그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베토벤 비창의 시작에서 악보대로만 보자면 일곱 개의 손가락으로 동시에 내려쳐야 함에도 분산화음의 효과로 시작함으로써 곡에 대한 그의 표현과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은 조성진은 비창이라는 표제나 정념에 집착하지 않고 소리의 배치와 화음의 명징성에 주목했다. 우리는 5,60대의 원숙한 베토벤을 만나기를 원할 때가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소리의 아름다움을 놓치거나 주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대 중반의 조성진은 자기 나이에 들려줄 수 있는 베토벤의 색깔을 들려주었다. 서정적이고 건강하며 화성이 뒷받침된 명징성으로.
비창이 끝나고 그는 베토벤 소나타 30번을 들려주었는데 혹시 그가 이전 작품인 함머클라이버나 발트슈타인같은 소나타였다면(그럴리도 없었겠지만) 필시 잘못된 선곡이거나 무리한 연주였을 것이다. 이는 그가 연주를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나이와 연주취향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나타 30번은 함머클라이버같은 육중한(!) 곡 이후에 나온 서정성과 온화함을 지닌 곡으로 그에게도 잘 어울렸다. 이 곡에 대한 그의 표현은 한마디로 담백한 서정성이었다. 아마도 인생의 경륜이 쌓인다면 이 연주는 그 나이에 어울리게 또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조성진은 드뷔시의 영상 2집인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와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금빛 물고기라는, 소리가 빚어내는 빛깔이라는 인상화를 또랑또랑하게 보여주었다. 드뷔시의 영상은 소재의 주관성과 소리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더해져서 연주가 훌륭해도 청자가 듣기에 감정이입하기에 자연스런 곡들은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열린 귀로 몰입하면서 소리의 뉘앙스를 느낀다면 이미지의 잔영을 보거나 혹은 소리자체의 빛깔을 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은 소리울림이 건조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아서 거의 정확한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이는 성진 군이 과한 표정을 지으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된 기술표현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조성진은 프로그램 마지막 곡에서 쇼팽의 소나타 2번같은 감정선이 뚜렷한 곡이 아닌 우아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소나타 3번을 선택했다. 소나타 3번은 쇼팽이 지닌 기존의 서정성에 구조적 내러티브가 더 갖춰진 명곡으로서 가치가 있다. 그는 이 곡에서 템포와 소리의 조절, 울림의 정도를 좀 더 자유스럽게 함으로써 곡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대부분의 청중들은 이 곡에 그의 해석이 완벽했냐 못했냐를 떠나서 그가 들려주는 쇼팽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 같다. 한 젊은이가 어울리지 않게 고루한 노인의 목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칭얼대는 어린아이의 모습도 아니고 자기 자신의 산 나이대로 작품에 대해 정직하고 담백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름답다.
앵콜의 시간에서 성진 군은 무려 5개의 앵콜을 들려주었는데 이는 이미 앵콜의 시간이 아니라 3부의 시간이었다. 쇼팽의 슬픈 서정성이 드러나는 녹턴과 기백이 나타나는 스케르초, 젊음의 격정이 드러나는 전주곡에 스카를라티의 기교적인 분산화음이 돋보이는 소나타에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까지, 여러 가지 색깔의 여러 곡들을 서슴없이 매력적으로 들려주는 그의 모습에 3층까지 꽉찬 2,000명의 청중들은 놀라운 집중력과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연주의 집중력을 유지시켜주고 호흡을 따라간 모악당의 청중들은 제2의 연주자들이었다.
우리는 어릴적 천재로 불리던 이들이 커 가면서 그 명성이 잊혀져 간 경우를 종종 본다. 혹은 어릴 적에 조숙하게 표현을 하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연주를 과시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나이에 정직하게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작품을 들려준다면 그것이 제일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잠시 반짝 하지 않고 20대에서 30대로, 30대에서 40대로 흘러가며 작곡가의 작품의 받아들이는 그릇은 더 넓어지고 시선은 길어진다. 아마도 조성진은 이런 시선과 자세에 가장 가까운 연주자의 반열에 들 것이다. 자신의 중심을 잡고 길게 가되 우아함과 격조를 갖추고 있는 것도 그의 큰 장점이다. 지금처럼 매번 그 시기에 어울리게 온당한 표현을 들려준다면 생기로움은 여전하고 매너리즘은 먼 이야기일 것이다.
조성진의 공연을 보기 위해 전주까지 무리하게 내려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남도에 계신 분들과 수도권에 계신 분들과 함께 바람을 쐬자는 요량으로 다녀왔다. 그리고 짧았던 1박 2일의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