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실린 도새기, 돌아맨 도새기 타령 한다 ” 이미 불 속에 그을린 돼지가 비슷한 처지의 목 달아 맨 돼지를 비웃는다
-
- 제 큰 흉은 모르고 남의 작은 허물만 나무란다. 이 신세가 그 신세, 너나 내나 같이 ‘잘못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데도
-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흉만 본다는 의미를 돼지 도살과정에서 의인화(擬人化)시켜 탄생된 속담
- 이다. 이 지방 재래식 돼지의 도살과정은 맨 먼저 목을 매달아 숨을 끊은 다음 불로 그슬려 털을 없앤 뒤에 칼을 댄다. 그러
- 고 보면 그슬림을 당하는 돼지는 달아맨 돼지보다 한 단계 처참한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 된다. 오십보백보다. 그런데 도 덜
- 한 상대를 나무라는 것은, 마치 쌍 언청이가 외언청이를 나무라는 것과 똑 같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험한 처지는 모른 채
- 남의 흠집을 들춰내어 비방하기 좋아하는 꼴불견을 빗댄 제주 속담이다.
인간 역사에서 돼지처럼 인간과 가까이 해 온 동물도 드물 것이다. 특히 제주지방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돼지는 식용으
- 로 어떤 ‘큰 일’ (먹을 일)에도 항상 등장한다. 상을 당하거나 소상 대상 제사 대는 물론이요, 잔치 등 집안의 크고 작은 ‘먹
- 을 일’에는 으레 돼지를 잡아 문상객과 하객을 대접했다.
속담이 본래 생활과 가까이 밀착된 일상사(日常事)의 연속에서 흘러나오는 민중의 생활 숨결 내지 방식이라고 한다면 돼지
- 를 늘 가까이 한 이 지방에 있어서 ‘제 흉은 모르고 남의 흉만 나무란다’는 의미를 표현키 위해 돼지를 비교시켜 속담에 등
- 장시킨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도한 이 속담의 표현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언중유골(言中有骨)의 감칠맛도 잘 함축돼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언덕에 자빠진 돼지가 평지에 자빠진 돼지를 비웃는다” △“쌍 언청이가 외언청
- 이를 나무란다”라는 전국 공통의 속담과도 썩 잘 어울리는 내용이다.
자신의 허물은 장막 속에 깊이 감춰놓은 채 사정없이 남의 험담을 지껄여대는 ‘상습 험담자’ … 술자리나 은밀한 장소에서
- 별 죄도 없는 특정인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술안주가 부족해선지 그를 오징어 뒷다리나 된 양 안주 삼아 질겅질겅 씹어대
- 는 ‘알코올성 험담증 환자’ … “그 친구 좋긴 좋은데 말이야...”하고 슬쩍 말머리에는 올려놓고서는 나중에는 구석구석 여지
- 없이 두들겨 패대는 ‘조건성 험담 환자’ …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누비던 총잡이 건맨들에겐 서로 고양이와 쥐의 적수라 하더라도 싸울 적에는 등 뒤에서 쏘아대는
- ‘백 화이어’ (back-fire)의 비열함은 거의 없었다. 백 화이어는 건맨 세계에 있어서는 가장 비겁한 행동이란 불문율의 윤리
- 관념이 그들의 몸에 깊이 배었기 때문이었다.
남의 등 뒤에서 남을 헐뜯고 모함하는 짓은, 곧 건맨 세계에서 백 화이어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남을 등 뒤에서 험담하
- 고 헐뜯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의 파편들을 토로해내는, 서부의 정면 대결이 차라리 깨끗해 보이지 않을
- 까.
좁디좁은 제주지역 사회에서 말이 많고 남의 험담을 즐기는 부류의 사람들은 이 속담의 뜻을 깊이 음미해봐야 할 성싶다.
- 적어도 ‘걸레가 행주 나무라는’ 형태의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대의 험담을 하며 공격하는 인간들은. 사실은 몰래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시인이며 평론가인 포올 발리리는 그의 저서 「있는 그대로」에서 험담증 환자의 열등한 심리적 측면을 이처럼
- 재미있게 꼬집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