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나에게 총질을 하니 그놈의 총소리가 들리지 안했다
큰 느티나무가 넘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톱질을 해야 한다
톱밥이 발등에 떨어져 피투성이가 호수물로 범람할 때까지
침묵은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동굴 속
등짝이 오싹하여 시간이 죽고 결정된 세월하나가 또 죽었다
들판에다 사랑의 씨앗을 뿌려 거두어 곡간에 가득 채울 때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꽃방석에 앉아 있는 벌이 된다는 것
틈새를 뚫고 스미는 빗물이 거푸집으로 들어와 옷을 벗게 한다
고개들어 눈빛을 내민 화원에는 성난 이리가 제집을 들락거리고
넘어 진다고 쉽게 넘어지지 않는 언덕 몇 겹 철조망이 처져 있다
육체의 비경이 삼거리 어귀에 장승으로 서서 손님맞이를 할 때
뿔난 송아지가 어미소의 젖꼭지를 물고 밥을 먹는 버릇이 곱다
삼류 소설속 주인공은 옛날 옛적 스펙트럼으로 발화점이 된 채
바람소리는 뒷마당에서 마지막 잎새가 되어 허튼소리를 해 된다
미친 짐승의 발작처럼 까발리는 천둥소리는 번갯불에 미지를 먹고
정신없이 쇠망치로 꼭꼭 잠긴 철문을 부셔 깃발을 꽂아야 하는 뉘
야망이 봇물로 터져 껍질 속을 나사못은 가두리벽을 관통해 버린다
옹달샘이 하늘을 아래 눈뜬 그림자를 오랏줄로 묶고 별천지라 하지
계단이 너무 높아도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종점의 여자
깊은 동굴 속에서 거미줄에 걸린 햇빛이 제 집인양 주인 되길 바랬다
떠나가는 배
은 학 표
당신을 만나고부터 내 가슴속에 촛불이 켜졌습니다
제 아무리 세찬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견딜 수 있게
사랑의 성벽 안에서 천 년 만년 갇혀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상 난동의 기후 횡포 때문에
담벼락까지 허물어지고 덮어 놓았던 콘크리트 바닥까지
틈이 생기고 구멍이 나 미래를 먹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세상천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어 죽을 것만 같습니다
미래를 근저당 시키고 내 영혼까지 볼모로 잡더니
한낮 물거품이 되어 떠나가는 종이배가 되었습니다
분명 내일은 저기 저 강물만큼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세상 살맛이 없는 나는 누구와 앞날을 설계해야 합니까?
발목을 잡은 것은 분명 아름다운 우리 둘 사랑일진데
고스란히 이별의 뒷날은 전쟁의 폐허처럼 흔적으로 남아
이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그리움에 눈멀었습니다
찜통 같은 내 육신은 하늘과 땅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고드름 같은 칼날을 세워서 한방에 날려 보내는 당신은
병마와 싸워 이겨 보지도 못한 예쁜 능금빛 꽃 여자였습니다
어느 곳에 가서던지 부디 뒤돌아보지 말고 편히 잘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만 이제 굶주리며 헐벗고 슬퍼집니다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이제는 안녕히 이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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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러 오는 그리움
은 학 표
죽을 쑤어 개주고 몇 년째 주인 잃은 강아지로
저 하늘에 구름속 낮달을 보고 멍 멍 짓고 있을까요
숨넘어가는 세월은 잡아먹고 고독한 생이 되었습니다
기억 너머로 이미 무지개가 옛 그림자로 펄럭이고
이런 저런 생각에 뜬 눈으로 몇 날 며칠 잠 설치다가
지나간 날에 발이 묶여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세상 앞뒤 반납하고 꼭두각시로 산다는 것 죽을 맛입니다
분명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이 기나긴 터널을 지나가면
바닷가 언덕위에 그림 같은 하얀집이 나타날 것만 같고
평생 그놈의 사랑이 좋아서 죽는 주인이 될 줄 알았는데
갈 길 먼 내 앞날이 뜬 구름 속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등잔불에 콩 볶아 먹고 긴긴 동짓날에 고드름이 될 판입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도 한참이나 더 지난 연극 티켓으로
아무도 찾지 않는 쓸어져 가는 초가집 방구석에 쳐박혀서
거미줄에 제 몸을 맡기고 펄럭이는 흙먼지가 되었습니다
그냥 이대로 몹쓸 상사병에 걸려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혹여 그 옛날의 꽃 그림자라도 찾아 나서는 편이 났겠습니다
지나가는 달빛 그림자를 붙들고 물어 봐야 한이 풀릴련지
맘 한 구석 사랑 행복이 찾아올 것 같은 미래라는 세월 앞에
합장을 하고 앉아 있는 어느 산골 부처같은 마음으로 살자니
답답한 마음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안갯속 공연만 같아
마음에 빗장을 풀고는 남몰래 도망친 매몰찬 그 여자는
왜 연극이 다 끝났다고 남의 가슴에 대 못을 박고는
어느 하늘 아래서 저 혼자 호랑이처럼 포식하고 잘 사는지
너 아니면 내가 죽는 이내 심중을 오랏줄 묶어 놓고
한낮에 천둥 벼락 난리통에 게 눈 감추듯 살아져버리니
긴 여운만 추상의 흔적으로 가슴에 티눈 되어 박혔습니다
일편단심 마음을 뒤집어 보여 줄 수도 없는 이내 심정은
짜릿한 그 순간 맨 처음 서로가 만날 때를 잊지 못합니다
기억처럼 아기자기한 소풍 놀이 하고 살 수는 이제 없나요
미지로 날아 가버린 새 한 마리 꼭 내게 되돌아오리라 믿고
행복 통장 하나를 만들어 수취인 없는 그곳으로 부치렵니다.
답장이 올 때까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살아야할 팔자입니다
은학표 약력
설파의 불꽃 외 9권 개인시집 발간
동작문인협회 회장 엮임
개인시비 예천군 성평리
동작구 문화재단 이사 엮임
2020년 대한민국 최고스타 문예대상 수상
헤르만 헷세 문학상, 동작문학 대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