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현장에서 문제 학생, 즉 불량 청소년으로 인하여 많은 선생님들이 교권 및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이들은 교직에 대한 깊은 꿈과 아이들을 사랑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교단에 섰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로 인하여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회복하고 문제 학생들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고대의 동양 사상가들이 주장한 본성론에 기대어 글을 써보고자 한다.
먼저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네 가지 덕을 이미 갖춘 선한 본성을 지닌 존재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선한 본성은 불량한 환경으로 인하여 악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맞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학생부에서 문제 학생들을 보면 경험상 70%의 확률로 가정에 문제가 있거나 주변에 안 좋은 환경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로 맹자 입장에서 문제 학생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면 문제 학생들의 잠시 까먹어버린 선한 본성이 깨어날 수 있도록 어루어 만져주고, 선생님과 학교가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굉장히 인권 친화적이고, 어떠한 의미에서 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부합할 수 있지만 굉장히 비현실적이기도 하며 교사의 많은 자기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편적 및 법규적으로 적용되기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지칭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기적 본성이 발현되면 결국 사회적 조화를 해치고 결국 악한 결과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인간 본성을 악하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악한 본성은 성인의 위인 예를 통하여 교화할 수 있다는 화성기위를 주장하였는데 이 주장도 일리가 있다.
가끔 학생들을 마주하면 정말 본성적으로 악하다고 느끼는 친구들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고로 순자 입장에서 문제 학생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면 문제 학생들의 악한 본성을 교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끊임없이 지도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순자의 교육론에 기대면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고 수동적인 존재로 볼 수 있으며, 자칫 잘못하면 형벌로서 본성을 억제하는 법가적 처벌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장난으로 친구의 얼굴뼈를 다 부셔버린 학생의 선한 본성을 기다려야 할까?
지속적인 따돌림으로 인하여 복수심으로 가해자에게 칼을 찌른 친구의 악한 본성을 교화해야 할까?
사실 현실은 성인들의 말씀처럼 딱딱 떨어지지 않을 때가 오히려 더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들도 공자가 말한 것 처럼 상대방의 수준과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선생으로서 착한 마음에 생기를 불러 일으켜야 할 때가 있고, 교사로서 악한 마음에 경고를 줘야할 때가 있고, 지도자로서 악한 행동에 제재를 가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적절한 중용적 방법을 찾는 것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을 수 있지만, 방황하는 학생들이 겪는 성장통이라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