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내 사랑, 여보, 어여쁜 당신,
나는 마침내 당신을 만났습니다.
시내 중심가로 이어지는 큰 대로와 시민회관 사이에 짓는 신축건물 현장은 지상으로 뻗어 올라가는 골조작업으로 연일 바쁘다. 이곳으로 온 지도 어느새 8개월이 지났던 것이다. 춥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은 현장은 올 해 안으로 공사를 끝내야 한다. 앞으로 3개 층의 골조가 더 올라가면 전체 뼈대가 완성된다. 그러면 6월 초여름에 접어들 테고 그때부터는 외부와 내부 마감공사가 순차적으로 그러나 거의 동시에 진행된다. 진행 정도에 따라서 전기, 설비 공사가 본격적으로 이어져 마무리되는 12월 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로부터 준공허가증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본사에서 발령을 받고 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지난 가을 추석 무렵에는 지하 터파기가 한창으로 더위가 아직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날이었다. 현장 가설사무실을 앉히는 공사가 길 건너 맞은편에서 진행 중이었고, 대신 펜스 안 출입구 근처에는 컨테이너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탓에 에어컨을 털었다고 하지만 수시로 드나드는 작업자들로 인해 컨테이너 사무실 문을 늘 열어놓다 보니 냉방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모두 이런 저런 일로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그 사이 마주한 공무담당 상사(만났을 당시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아직 나랑 직급이 같은 사원급 기사였다)는 지난여름 더위에 얼굴이 제법 탄 거무튀튀한 얼굴로 나더러 먼저 고향 집으로 가서 추석맞이 휴가를 가지라고 했다. 갔다 오면 소장님을 비롯한 나머지 직원들이 추석 연휴를 보내고 오겠다고 했다. 그건 건설현장에서라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행으로 신입사원이나 가장 늦게 부임하는 하위급 직원이라면 의례히 지켜야 할 의무이자 예의라고 했다.
골조공사를 진행하던 중에는 어이없는 일로 철근업체 반장과 기초 콘크리트 타설 전에 다량으로 배근해놓은 매트 철근 위에서 서로 멱살을 잡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때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 외에는 대체로 공사는 순항 중이었다. 그리고 되돌아보건대 그런 일은 건설현장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일의 발단은 대개 이러했다.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이면 지하2층에 지상8층 건물의 토대가 되는 커다란 장방형의 두꺼운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들어갈 레미콘 물량이 많아 한 곳으로는 안 되고 지역의 두 군데 레미콘 업체와 사전 예약을 할 정도였다. 현장으로 봐서도 당일 투입될 건설금액으로도, 하루에 타설하는 레미콘 물량으로 봐서도 모두 최고가 될 예정이고 이제 본격적인 공사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예정이어서 현장 직원들은 물론이고 관련업체들도 지난 주말부터 모두 흥분해 있었다.
늘 하던 대로 현장 관행상 지지난주 주말을 꼬박 근무한 터라 지난주는 고향에 가서 주말을 느긋하게 쉬고 일요일 저녁 늦은 기차 편에 몸을 담아 현장숙소로 돌아왔던 것인데 다음 날 있을 다량의 콘크리트 타설로 말미암아 적잖이 흥분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장 주변의 대로변에 길게 널어선 채 차량 뒷 꽁무니를 요란한 소리로 회전시키고 있는 레미콘 차량대열을 보자 뭔가 뱃속아래부터 뿌듯한 기운이 솟아올라 한달음에 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철근배근이 완성된 채 힘차게 쏟아져 들어갈 레미콘을 가만히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작업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
“…….”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글쎄, 어제 작업 일손이 부족해 다 끝나지 못해서 오늘 아침 일찍 나오라고 했는데…….”
반장을 포함해 일고여덟 명이 마치 커다란 죄를 지은 듯 주변을 흘끔거리며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데 꽉 차 있어야 할 철근 매트의 장방형 한 부분은 아직 채 철근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휑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지금 나올 거니까……. 그리고 거기 말 좀 예쁘게 못해?”
다급한 철근 반장은 이제 그 책임을 나에게 전가시킬 요량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제시간에 레미콘 타설을 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예정된 그 날 안으로 작업을 마칠 수만 있다면……. 만일 그 시간 곁에서 봤더라면 불호령을 내렸을 조직폭력단 보스처럼 험악하게 생긴 소장님은 쉬러간 고향에서 아직 올라오지 않으신 것 같았고, 무엇을 보더라도 대형사고가 났음을 직감한 우리는 늘 저급한 남자들이 하는 방식대로 갖은 구실을 대며 아침 댓바람이 불기 전의 황량한 철근 매트 위에서 서로의 멱살을 잡고 뒹굴고 말았던 것이다.
오전 8시면 있는 직원회의에서 소장님이 하신 말씀이 떠나질 않았다. 레미콘 타설 소동이 있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온 지도 한참 지난, 가설사무실의 작업자들과 아침 체조하는 마당 한켠에 아름다운 진달래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오후면 몸이 나른해지며 점심을 먹고 나면 사무실 가장 자리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던 시기였다.
“오늘 오전 중에 일본어를 가르칠 선생님이 우리 현장으로 올 거야. 회사에서 일하는 틈틈이 공부하라고 지원해주는 것이니 일본어 시간에는 가급적 빠지지 말고 참석하도록 해.”
현장을 돌아다녀 보지만 일본어 선생이 온다는 사실 때문에 언제 올지 찾아올 시간을 의식하느라 일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비실에 앉은 이기사가 손짓을 하며 부르고 있었다. 이 기사는 소장님차를 운전하며 아파트 숙소를 같이 쓰고 있는 나이 많은 전라도 출신의 노총각이다.
“정 기사, 빨리 이층 사무실로 가보소. 일본어 선생이 왔는가 보던 디요. 내 보기에 이쁜 처녀인갑소.”
단번의 달음박질로 달려 올라가 눈이 마주친 아내는 초롱초롱한 검은 눈동자에 얼굴이 깨끗하고 준수한 단발머리 차림의 가녀린 아가씨였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서 계약서 작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들은 좀체 소장실에 마련된 교육장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일본어를 기초부터 배워나가야 하는데 처녀 선생으로부터 무안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초반 한 달 가량은 모두 흥미와 장난삼아 오후 다섯 시면 하던 일을 접고 교육용 테이블 자리로 모여앉아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쉬운 기초라고 하지만 일본어 ‘가타가나’와 ‘히라가나’를 외우고 복습을 하지 않으면 천하의 그 누구라도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대부분 그날 일을 끝마치고 나면 나를 제외한 모두 소장실에 모여 고스톱을 저녁 늦게까지 치거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바빠 진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 난 그 고비를 어떻게 넘겼을까. 대학 다니던 시절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나는 3학년 여름방학 때 졸업 후 공부를 계속하려면 일본어를 미리 배워둘 필요성을 절감하고, 대학에서 여름방학동안 이뤄지는 두 달간의 아카데미 일본어 수강을 신청해서는 악바리같이 낙오하지 않고 기초과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어를 가르쳤던 뚱뚱한 강사는 더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종강시간에 비지땀을 흘리며 학생들 앞에서 나의 두 달간 맨 앞자리 출석 고수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래봤자 강의 시작당시 이백 여명으로 출발해 남은 학생 수는 고작 예닐곱에 불과했지만.
두 달이 넘어가도 아내와 나 사이에는 어떤 교감도 연애도 진행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소장님을 비롯한 선배 상사들이 우리 둘 사이에 줄을 엮어주려 당사자들처럼 애간장을 녹이는 노력을 하던 차였다. 전라도 출신 소장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까지 둘 사이를 종용했다.
“정 기사, 일본어 선생이 너보다 내가 보기에는 훨씬 낫다. 잘난 척하지 말고 네가 먼저 서둘러.”
소장님 말씀대로 나는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아내를 계속 외면하고 있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내 눈에 콩깍지가 안 끼워진 것이 아니라 그런 아내를 볼 줄 모르는 내 마음의 시력에 다분히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여겨진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사에 당차고 적극적인 것은 모두 아내였다. 결국 아내와 혼기가 찬 딸을 걱정하는 장모님께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게 되었다. 직원들을 모두 집으로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하셨던 것이다.
“너무 음식이 맛있고 훌륭합니다. 저희를 초대해주셔서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 차린 것도 없어요.”
마치 얼마 전 제사를 지낸 것처럼 찰밥에 구운 생선과 나물과 여러 가지 전, 그리고 푸짐한 닭조림과 소고기국까지 근래 들어 먹은 음식 중에 단연 뛰어난, 여느 잔칫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상차림이었다. 객지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사무실 앞에 장부를 만들어놓고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함바 식당의 음식이 전부고, 가끔 협력업체 사장들이 공사기성이 나갈 때쯤이면 격려차 현장을 방문해서 외식을 시켜주는 정도가 모두였다. 후일 장모가 되실 일본어 선생의 어머니께서는 그 날 음식을 누구보다 맛깔나게 맛있게 먹는 한 청년을 눈여겨보셨던 모양이다. 맛있는 반찬에 훌륭한 반주까지 곁들여 맛있게 저녁을 먹은 우리는 이제 막 일어서야 했다.
“김 대리, 여기서 고스톱이나 한 판 치고 갈까?”
“하하하,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명색이 선생 댁인데…….”
“그렇지? 가야 되겠지?”
나름 엄중했던 식사자리라 내내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워 참다가 막 화장실을 다녀온 참이었다. 모두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현관문이 바로 열리며 누군가 들어서고 있었는데 운동하고 돌아오시는지 추리이닝 차림의 어른으로 바로 일본어 선생의 아버님이었다. 모두는 어쩔 수 없는 듯 현관문 가까이에서 서로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절을 황급히 올렸다. 일본어 선생과 선생 어머니의 재미있어하는 웃음 속에 시간이 많이 늦었던 터라 우리의 상견례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예 화려한 정장차림을 하고 강의도 없는 토요일인데 아내가 현장에 찾아왔다. 소장님을 비롯한 일부는 이미 주말이라 각자 고향으로 가고 없었지만 그래도 공사를 진행하고 감독할 직원들 일부는 남아있었던 터라 대번에 소동이 일었다. 할 수 없이 이제 내가 나서야 했다. 아내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외부 손님이 방문 오면 의례히 그렇게 하듯 먼저 골조가 거의 완성된 현장을 안내하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공무를 보는 상사의 허락을 얻어 아내를 데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202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