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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가 지나도록 주민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섬… |
창간25년 특별기획-거제의 잃어버린 섬들을 찾아서③ |
일본군 1개 중대가 주둔하면서 주민들 강제철거 되는 비운…이후 오늘까지 국방부 소유
주변에 발전소와 막사 등 부속건물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섬에 살던 주민들은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자신들의 땅을 뺏기고 주변의 지세포나 장승포 등으로 쫓겨 갔을 것이다. 지심도 관련 기사를 쓰면서 우연히 봤던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7번지 토지대장용지에 적혀 있던 글씨들이 스쳐갔다. 일제치하 대정 4년(1915년) 3월10일 사정(査定)된 내용에는 정익권(鄭翊權) 씨가 소유자로 나와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 씨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이 땅은 일본인 지주에게 소유권이 이전됐다가 소화 11년(1937년) 6월2일에 일본 육군성에 편입됐다. 이 토지뿐만 아닐 것이다. 섬 전체가 일본군의 강압에 강제로 소유권이 넘어갔을 것이다. 나라가 없어 당하는 울분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 당시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등졌을 것이다. 당시의 아픔을 지켜보던 동백나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계절 푸른 잎을 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안식으로 바꾼 섬
지심도의 아픔을 매미도 아는 것일까. 아니면 한여름 뙤약볕이 너무 따가워 우는 것인지 한시도 쉬지않고 울어 제친다. 일본군 써치라이트 보관소 등 일제시대 잔재들이 그나마 아픈 역사를 말해 주는 곳을 지나 저 멀리 날씬한 유선형 보트가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탁 트인 수평선을 감상하라고 누군가 벤치도 몇개 가져다 놨다. '해안선전망대'라는 친절한 표지판도 보인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은 이마에 맺혔던 땀과 부딪칠 때마다 시원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쭉 뻗은 수평선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유선형의 보트는 이국적 느낌을 선사했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쫓아가자면 이 섬은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치유의 섬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Healing)의 공간이다. 동백숲에서 만나는 서늘한 바람은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서로 손을 꼭 잡고 거니는 아베크족들을 양산하는 원동력이었다. 섬 곳곳 어디를 가도 뭍사람들에게는 안식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세인들에게 그런 치유의 공간이면서도 그 섬 스스로는 뭍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이 섬의 끝자락, 그대 발길 돌리는 곳에서 한참을 걸어 돌아 나오면 만나게 되는 넓은 개활지. 가장자리에 두 명이 함께 탈 수 있는 작은 그네가 2개 있고, 그 그네 위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른 곳에서 가질 수 없는 독특한 풍경, 아름다운 경치는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충분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었다. 예쁜 그네가 두 개 있고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이는 그 개활지는 그러나 지심도 스스로에게는 아픔의 공간이었다. 일제시대, 점령군들이 물자보급을 위해 사용하던 비행기의 활주로가 바로 그 예쁜 공간이었다.
진정한 사랑이 깃들 날 활주로를 지나 조금 올라오면 오른쪽으로 운동장이 보였다. 예전에 일운초등학교 지심분교장이 있었던 곳으로 한때 35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던 곳이다. 하지만 이미 폐교되고 운동장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발길을 더 옮겨 만나 신식건물 앞에는 '국방과학연구소'라는 커다란 간판이 붙었다. 이 섬이 섬사람들의 소유가 아니라 국방부 소유라는 것을 마치 시위라도 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입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일본군들이 설치한 포진지와 탄약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섬의 비극이 시작되는 곳이다. 일본군들이 지심도를 주민들로부터 강탈한 이유가 바로 그 포진지를 설치하기 위함이었다. 군사작전상 요지이기 때문. 일본 육군성이 강탈한 이후 해방을 맞아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섬은 다시 국군이 주둔하면서 주민들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이 섬에 사는 24세대 52명의 주민들은 이 땅의 주인이 아니었다. 국방부 소유의 땅 위에 건물만 자신의 소유로 하는 반쪽짜리 주인이었다. 일본에 강탈된 뒤 한 세기가 다 되도록 주민들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지심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며 그 아픔을 치유할 길은 그들에게 땅을 되돌려주는 것이리라. 거제시가 국방부로부터 소유권 이전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이면에는 지심도 주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는 목적도 있지 않을까. 나그네들에게 평온한 안식을 주는 섬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일제시대 이후 아직까지도 평온을 찾지 못한 섬. 지심도의 이중성은 그래서 작가 윤후명을 그리로 이끌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지심도를 '발견'한 이래 내 사랑은 그곳에서 이루어져야만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웠다. 그러나 사랑이란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섬으로 갈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섬에서만이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절대적이었다."('지심도 사랑을 품다'에 수록된 소설 '섬' 중) 사랑의 완성, 그리고 그 섬으로 가서 사랑을 이룰 날은 아마도 섬사람들이 온전한 주인이 되는 그날, 그들 스스로가 아픔을 치유하는 날, 섬을 찾는 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깃들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 육지와의 유일한 끈인 도선(渡船) 고려호에서 바라보는 지심도는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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